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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56화 (17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56화

“당가타를 지원할 생각이라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객잔으로 돌아온 풍진개가 술을 마시다가 풍백의 얘기에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은 얼굴로 바라봤다.

풍백은 그런 풍진개의 시선에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당가타에 직접 가서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긍정적이기에 당가타까지 가려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지원을 해 주기로 거의 결정한 상태입니다. 아참! 지원이 아니고 투자라고 해야겠죠.”

“지원이나 투자나 같은 얘기지. 어차피 당가타가 이대로 계속 망해 가면 투자라던 것이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생각보다 풍진개는 지원과 투자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풍진개의 말처럼 투자를 하더라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일이 틀어지게 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니 투자가 아니라 지원이 된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봤을 때, 당가타는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더 낮게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혹시 당가타 내부 사정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 건가?”

풍진개는 풍백이 당가타가 과거에 사천당가라 불렸던 영광의 과거만 보고 판단한 것은 아닌가 싶어 물었다.

풍백은 여전히 웃으며 답했다.

“무슨 걱정을 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당가타의 직계와 방계 사이에 대한 얘기를 하시려는 거지요?”

“알고 있는 건가?”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대협께서 오시기 전에 이미 당세기 소협에게 대충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현재 당가타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일단 당가타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된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무려 이백여 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 당가타, 사천당가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혈겁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벌어진 혈겁으로 인하여 사천당가의 주력이자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던 직계 혈족이 거의 대부분 죽임을 당한다.

이로 인하여 직계에게 전해지던 무공이 대부분 실전되었고, 사천당가는 끝없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천당가가 몰락하게 된 이유 중 두 번째는, 이 혈겁으로 인하여 직계 혈족만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무공과 함께 사천당가를 지탱하던 두 개의 기둥이 더 있었으니, 바로 독과 암기였다.

그런데 혈겁이 일어나며 독과 암기를 만드는 독술사(毒術士)와 장인들이 모두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전 독과 암기를 보관하던 곳 역시 무너지게 되면서 모든 걸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무공과 독, 암기까지 모두 잃어버린 사천당가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방계에게 전수되던 수준 낮은 무공뿐이었다.

말이야 수준 낮은 무공이라고 하지만, 방계가 익힌 무공이 대단한 절정무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수준이 결코 낮지는 않았다.

그에 비하여 얼마 남지 않은 직계 혈족은 그저 직계들이 익힌다는 몸을 만들기 위한 입문 무공만 남아 있었다.

이때부터 사천당가의 권력을 손에 넣은 것은 모든 걸 잃어버린 직계가 아니라 방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방계는 직계에게 가주나 허울 좋은 자리를 넘겨주기는 했다.

그러나 사천당가의 모든 대소사는 총관이 결정을 하게 되었고, 그 총관을 비롯한 중요한 직책은 모두 방계가 가져갔다.

이렇게 이백 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 사천당가는 사라지고 당가타가 남았고, 원로원에 직계는 한 사람도 없었으며, 심지어 가주나 타주도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당가타 직계 혈족 중에서 능력을 갖춘 후예가 나오면 임명할 거라고 말하지만, 타주를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은 모두 원로원과 이제 총리(總理)라 이름을 바꾼 총관이 관장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당가타에 지원해 줬던 군웅회의 지원금을 방계가 모두 착복 중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역시 풍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지원해 준 금액은 모두 당가타의 총리가 관리하고 집행하도록 되어 있어. 공식적으로 적가상방에서 지원이든 투자든 돈을 건네주면 총리가 가져간다는 말이야.”

“그것 때문에 직접 가서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는 중이다.

비공식적으로 직계에게 직접 돈을 건네줄 수도 있지만, 과연 그렇게 넘겨주는 투자금을 언제까지 숨길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자세한 건 직접 당가타의 상황을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상황이었다.

풍진개가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주기는 조금 곤란하지만, 지금 당가타는 다른 문파와 중요한 협상을 하는 중이야. 이것도 알고 있어?”

“말씀하시는 것이 당가타가 다른 문파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합병하는 것에 대한 협상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풍백의 말에 풍진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헐……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이건 어지간한 세가나 문파에서도 잘 모르고 있던 건데.”

“상방에는 상방만의 정보 교환 창구가 있지요. 그리고 직접적인 정보가 굴러다니는 건 아니지만, 자금의 흐름을 잘 살펴보면 대충 유추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신기하기도 하구만.”

당연히 풍백의 말은 거짓이었다. 풍백이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건 이미 과거에 들었던 정보이기 때문이었다.

과거 당가타는 금벽궁(金碧宮)이라는 문파에 흡수하듯이 합병이 되었다.

이 과정은 꽤 말이 많았던 부분이었다. 직계는 결사 반대를 외치고 극렬하게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반대를 외쳤던 이유는 단순히 사천당가의 명맥이 끊긴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금벽궁이 정파가 아니라 정사지간의 문파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금벽궁은 사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문파였다. 그러니 그리 대단치도 않은 힘을 가지고 있는 당가타를 굳이 흡수하듯이 합병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금벽궁이 당가타를 집어삼킨 이유는 간단했다.

정사지간으로 분류되고 있는 금벽궁이 당가타를 흡수하며 자연스럽게 정파로 전향하는 것을 노렸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당가타가 다 망해 가는 문파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정파로서 가지고 있는 수백 년의 역사는 금벽궁에게 부족한 명문이 되어 줄 거라 계산한 것이다.

결국 이런 계산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당가타와 합병을 하면서 금벽궁이 그다음 해부터 창룡봉무지회에 초대장을 받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 과정에서 결사 반대를 외쳤던 직계는…… 운이 나쁜 여러 가지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모두 사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직계가 합병 반대를 외치다가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고, 무엇보다 사천성의 성도(成都)에서 감히 금벽궁이 그들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풍진개는 술을 마시며 물었다.

“그러면 언제 떠나는 건가?”

“바로 내일 떠나야지요. 무려 사천성까지 가야 되는데요.”

호북성에서 사천성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호북성이 가로로 길게 생겼고, 그중에 무한은 호북성 동쪽에 있다는 걸 감안해야 했다.

무한에서 사천성 성도까지는 적가상방에서 무한까지 왔던 길보다 더 멀다.

또한 수로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시간이 지체되게 된다. 결국 마차를 타고 바삐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고생이 많겠구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부득이하게 제가 떠나는 바람에 대협이 불편하시지 않도록 이곳 객잔 별채를 창룡봉무지회가 끝날 때까지 빌려 놨습니다. 식사비와 술값도 넉넉하게 미리 계산을 해 놨고요. 머물면서 얼마든지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풍진개가 번쩍 고개를 들어 풍백을 감동한 눈으로 바라봤다.

“적제는 참…… 사람이 아주 반듯하게 살고 있구만! 으하하하!”

크게 웃으며 풍진개가 풍백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지 않아도 풍백이 떠나면 편히 지내던 이 시간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던 풍진개였다.

그런데 풍백이 알아서 이렇게 준비를 해 놨다니, 남은 시간 채설지를 따라다니느라 피곤하긴 하더라도 배 속은 편안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별채가 부산스러워졌다.

마부는 갑자기 사천성 성도로 향한다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이내 마차를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고우길 역시 숙소를 잡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건량과 육포를 준비해야 했다.

빠르게 준비가 끝나고, 풍백은 떠나기 전에 풍진개와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 다음에 한번 꼭 적가상방으로 찾아오십시오. 대협이 오시면 제가 아주 작정하고 상산현의 맛집들과 진기한 술을 마음껏 드실 수 있게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기대가 되는군. 내가 꼭 한번 적제를 만나러 적가상방에 방문을 하도록 하지.”

당세기는 옆에서 풍백과 풍진개가 우애 좋은 모습을 보이는 걸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풍진개는 정파 후기지수들 사이에서도 기인으로 유명했다. 워낙 신기하고 대단한 협행을 많이 하고 다녀, 이제 삼십대인데도 사람들이 대협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즉, 당세기에게 풍진개는 동경의 대상이란 말이다.

그런 풍진개가 풍백을 동생이라 부르며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마침 풍백과 인사를 마친 풍진개가 당세기를 향해 말했다.

“우리 적제를 잘 부탁드리오, 당 소협.”

“그, 그럼요! 제가 절대로 적 공자가 위험하지 않도록 보호하겠습니다.”

엉겁결에 이렇게 대답한 당세기는 문득 자신보다 고우길이 더 고수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밀려오는 민망함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누구도 당세기의 말을 비웃지는 않았다.

풍백이 별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채 소저는 아직 주무시는 건가요?”

“아마도 그러겠지?”

채설지가 일어나는 시간은 규칙적이지 않았다. 언제는 새벽같이 일어나 나가고, 또 다른 때는 거의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별채를 나섰다.

“인사도 못하고 떠나겠군요.”

“적제도 알겠지만 채 소저 같은 사람은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더 안전하다네.”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기는 했다. 아마도 무혈채 수적들을 도륙하는 걸 봤던 사람들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말이다.

이러는 사이 마부가 마차를 끌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 이제 가 봐야겠군요.”

“조심해서 가도록 하게.”

풍진개의 인사를 받으며 풍백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의 채설지가 그림 같은 모습으로 마차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채 소저?”

채설지는 딱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풍진개가 눈이 커다랗게 변하더니 후다닥 달려와 마차에 채설지가 타고 있는 걸 확인했다.

“아니, 당신이 왜 마차를 타고 있는 거요?”

풍진개의 물음에 채설지는 대답은커녕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풍백이 그런 채설지를 보며 말했다.

“저희는 사천성 성도로 가려고 합니다. 채 소저는 무한에 볼일이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채설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어디를 가시려고…… 설마 저희와 같이 사천성 성도로 가시려는 겁니까?”

그러자 채설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진개는 이제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눈으로 채설지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풍진개는 채설지가 무한에서 얼마나 바쁘게 지내고 있는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풍백을 따라가겠다는 듯이 미리 마차를 타고 있는 것을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저 마녀가 적제를 마음에 담았다는…… 건 아니겠지?’

풍백은 분명 풍족해 보이는 상방의 후계자다.

그러나 상인이나 돈이 많다는 것은 강호의 무인인 채설지에게 전혀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그녀의 사부라 추측되는 혈수마괴의 유명암 역시 대단한 부를 가지고 있었다. 겨우 돈으로 채설지의 환심을 살 수는 없었다.

풍백이 생각보다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자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엄청난 미남은 아니었다. 오히려 굳이 말하자면 평범한 축에 들어갔다.

‘아니겠지. 그냥 호기심 때문이든지, 아니면 사파의 마녀에 어울리는 쓸데없는 이유겠지.’

풍백은 채설지가 같이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얼굴로 풍진개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풍진개가 채설지를 쫓아다니고 감시하는 중이었다는 걸 알고 있는 풍백이었다.

풍진개 역시 조금 고민에 빠졌다.

일단 풍진개의 임무는 채설지가 무한에서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하고, 만약에 문제가 발생하면 적당히 뒤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행여나 사파십대고수인 혈수마괴가 정파의 문파들을 쫓아다니며 혈겁을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이렇게 채설지가 무한을 떠나게 된다면 공식적으로는 임무가 끝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풍백과 함께 당가타로 가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잘못하면 당가타 내부 일에 개방이 간섭을 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건데…….’

지금까지 채설지가 보여 줬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마도 그녀가 풍백에게 손을 쓰는 일은 없을 것 같기는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풍진개가 말했다.

“뭘 어떻게 하겠나? 나는 돌아가 봐야지.”

“그러면 저는 채 소저를 데리고…….”

[부디 몸조심하게. 자네를 제법 마음을 들어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갑자기 기분이 틀어져서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네.]

풍백은 풍진개의 전음에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풍진개가 채설지를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부디 은하협녀라는 별호에 걸맞게 적제를 잘 부탁드리겠소.”

그러자 채설지가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은하협녀라니 무슨 말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듣자 하니 무혈채를 상대했던 일 때문에 강서성과 절강성 인근 지역에서 채 소저를 은하협녀라고 부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채설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에게 정파의 협객 같은 별호가 붙은 것을 대단히 못마땅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해는 할 수 있다. 정파의 무인에게 사파처럼 살벌한 별호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테니까.

그러나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과 달리 채설지의 다리는 빠르게 까딱이고 있는 것이 풍백과 풍진개의 눈에 보였다.

‘좋아하고 있네.’

‘좋아하고 있군.’

대체 사파 출신인 채설지가 정파의 협객처럼 보이는 별호를 얻은 것에 왜 기뻐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풍진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풍백이 당세기와 함께 마차를 탔고, 마차는 그렇게 무한을 빠져나가 사천성 성도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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