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51화
서문세가의 가주 집무실에는 가주인 서문자건과 총관인 서문이석을 비롯한 세가의 중역들이 모여 한 가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문자건이 물었다.
“장흥현(長興縣) 분위기는 어떤가?”
장흥현은 절강성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현이었다.
서문자건의 질문에 서문이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청랑파(靑郞派)의 도발과 습격에 분위기가 흉흉하다는 소문입니다. 장흥현에 있는 군소 문파에서는 청랑파에 대응하기 위해 저희 세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음…… 그러면 호주현(湖州縣)에서는 이제 청랑파가 사라진 건가?”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두 현 인근에 있는 태호(太湖)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며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프군. 호주현에서도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두 곳에 모두 무사를 보내기는 힘드니…….”
마음 같아서는 장흥현과 호주현 모두 무사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들려온 보고에 따르면 청랑파의 인원은 무려 백여 명이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적을 최소한의 피해로 물리치고 싶다면, 인원을 많이 보내는 것이 좋다. 여력이 된다면 두 배가 적당하고, 그 이상이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아무리 서문세가라고 하더라도 수백에 달하는 무사를 보내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물론 보내려면 보낼 수는 있다. 그 대신 본가인 서문세가를 지킬 무사가 없을 뿐이었다.
서문자건이 골치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온갖 분란을 일으키면서 청랑파라니…….”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사파 주제에 청랑파라니……. 차라리 청랑파(靑狼派)라고 했으면 이해라도 했을 겁니다.”
푸념하듯 말하는 서문이석의 말이었다. 어지간하면 이런 투덜대는 말을 하지 않는 서문이석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골치 아프기는 한 것 같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서문표가 나서며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말해 보거라.”
“한쪽으로는 본가의 뇌룡대(雷龍隊)을 보내고, 다른 한쪽으로는 일반 무사들을 보내는 겁니다. 아마 청랑파가 인원이 적은 뇌룡대 쪽으로 간다면, 고수로 이뤄진 뇌룡대가 충분히 격퇴할 수 있을 겁니다.”
뇌룡대는 서문세가의 가장 강력한 무력부대였다.
“일반 무사 쪽으로 간다면?”
“그쪽은 소수의 고수들이 위장하고 함께 이동하는 겁니다. 저를 비롯하여 세가의 어르신 몇 분이…….”
“너무 위험한 방법이다. 잘못하다가 정말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면 일반 무사들의 피해가 막대할 수 있어.”
“그러면 이 방법은 어떻습니까? 제 생각에는…….”
가문의 중역 중 하나가 새로운 방법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 방법 역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수 있기에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논의는 이 뒤로도 오랜 시간 지속되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간신히 끝날 수 있었다.
서문세가는 청랑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청랑파은 강소성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신흥 사파였는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점차 그 영역을 절강성으로 넓히는 중이었다.
절강성 북부는 서문세가의 영향력에 들어가는 곳이기에, 많은 군소 문파가 서문세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회의를 마친 서문표가 집무실을 나와 거처로 걸어갔다.
온몸이 녹초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 칼을 쉴 새 없이 휘둘렀을 때보다 더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가주의 자리에 앉아 이런 안건들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차라리 하루 종일 무공 수련을 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렇게 거처로 걸어가던 서문표는 문득 화원에 서 있는 서문세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중이냐?”
서문세령은 서문표를 바라보며 물었다.
“회의는 끝난 건가요?”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결론은 내서 간신히 끝났다.”
“다행이네요.”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심심할 텐데, 그냥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지 그랬냐?”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지금 세가가 창랑파 때문에 비상인데요.”
“하하! 네가 무한으로 떠난다고 하더라도 세가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다. 겨우 사파 하나에 세가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저도 알아요.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집에 있기로 한 거예요.”
짧게 대답한 서문세령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툭툭 건드리며 화원을 거닐었다.
그 모습에 서문표가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것이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애매한 서문세령의 말에 서문표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혹시 그 사람을 생각하는 거냐?”
서문표의 말에 서문세령이 멈칫하며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누구요?”
“나도 얘기는 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쓰였으면 만나러 가지 그러냐? 네가 찾아가면 그 사람도 좋아서 발 벗고 뛰어나올 텐데.”
“……무슨 얘기라도 들은 것이 있어요?”
서문세령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런 서문세령의 모습에 서문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령아도 슬슬 사내를 만날 나이가 됐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사내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던 서문세령이었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이제는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라버니?”
“어흠! 당연히 들었지. 아주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그 사람이라면 이 오라비도 찬성이다. 아주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아마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다.”
서문세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문이 자자해? 그럴 리가…….’
한 번도 단둘이 있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소문이 난단 말인가?
오히려 한 번 얘기를 해 보려고 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궁세가 둘째 공자를 붙여 주고 자리를 비키…….
무언가를 느낀 서문세령이 고개를 돌려 흐뭇하게 웃고 있는 서문표를 바라봤다.
“오라버니, 그 사람이 누구죠?”
“하하하! 다 알고 있다니까. 네가 남궁세가의 둘째 공자인 남궁진 소협과 심상치 않은 사이라고…… 응? 뭐냐? 왜 그런 눈으로 오라비를 바라보는 거야?”
서문표가 당황하며 물었다. 그런 서문표를 서문세령이 크게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니에요.”
“응? 뭐가?”
“그 사람이 아니라고요!”
조용한 성격의 서문세령이 이렇게 빼액 소리를 지르는 건 살면서 몇 번 보지도 못했던 광경이었다.
귀가 찡 하고 울려서 귀를 만지는 사이, 서문세령은 홱 돌아서 거칠게 발을 구르며 자신의 거처로 걸어가 버렸다.
서문표는 그런 서문세령의 뒷모습을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부끄러워서 그러나? 별로 놀린 건 아니었는데. 나는 오히려 잘해 보라는 의미로…….”
여전히 분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서문표였다.
* * *
“제기랄!”
사마진걸은 짐을 싸다가 짜증스럽게 욕을 내뱉었다.
지금 사마진걸은 다시 사마세가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서신을 보내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 그렇다고 전서구를 통해 짧게 얘기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서둘러 사마세가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꾸지람을 받고 징계를 받더라도 차라리 직접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적가상방이라는 곳이 그렇게 부유한 곳이었다니…… 이런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지!’
풍백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오문을 통해 적가상방에 대한 정보를 사 온 사마진걸은 풍백의 말처럼 화오염장이 엄청난 자금줄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금덩이보다 비싸다는 천축의 향신료인 호초를 취급하는 극소수의 상방 중 하나였다는 점도 있었고, 지금은 이제 중견 상방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돈도 돈이지만, 서문세가와 그런 관계일 줄은…….’
서문세가와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적가상방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 같다는 정황 증거들을 보고 다시 한번 자신의 무릎을 내리쳤던 사마진걸이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도지휘사와 어떤 친분을 맺었는지, 도지휘사사와 위지휘사사는 물론이고 천호소와 백호소까지 모두 적가상방에서 군납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절강성 군부는 모두 적가상방과 거래를 한다고 봐야 했다.
사마진걸은 적가상방에 대한 자세한 조사 자료를 보고 하마터면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때릴 뻔했다.
‘이런 곳을 그렇게 허술하게 협박을 했으니…….’
자책을 하던 사마진걸은 문득 자신이 풍백에게 사과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자신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상방의 후계자에 불과한 풍백에게 사과를 했던 일은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당시의 순간순간은 물론이고, 공기의 냄새까지도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떠나지만……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감히 돈밖에 모르는 상인 주제에 내게 사과를 하라고 해? 이 죽일 놈의…….’
얼마나 열이 치솟는지, 이마에서 꿈틀거리며 핏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일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걸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 자식을 죽일 때까지는 잊지 못하겠지.’
사마진걸은 마음에 걸리는 것을 오랫동안 품어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은 적가상방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서신을 쓰겠지만, 나중에 모두 잊었다 싶은 순간이 오면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풍백의 놀란 눈을 바라보며 서서히 그 심장에 검을 박아 줄 것이다.
* * *
개회식 이후 창룡봉무지회는 예정대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창룡봉무지회는 후기지수가 모여 서로 친분을 다지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는 창룡봉무지회의 꽃은 단연 비무대회였다.
전 중원에 있는 대부분의 정파에서 후기지수가 모이는 창룡봉무지회인 만큼, 사람들의 온갖 시선이 모이게 된다.
이렇게 이목이 집중된 곳에서 비무를 통해 명성을 얻고 별호가 생기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비무를 통해 뛰어난 무공을 뽐내는 것을 본 사람들과 매담자(賣譚子)들은 전 중원을 다니며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게 된다.
비무대는 크게 네 곳에 마련되어 있는데, 두 군데는 무한을 빠져나가면 바로 보이는 넓은 공터에 마련되어 있었고, 다른 두 군데는 녹수장 내부에 마련되어 있었다.
외부에 마련된 비무대에서는 창룡봉무지회에 초대받지 못한 무인들이 모여서 비무를 벌였고, 녹수장 내부에서는 초대장을 받은 후기지수들이 서로 비무를 펼치고는 했다.
이제 창룡봉무지회가 열린 지 나흘째가 되고 있는데, 벌써부터 인상적인 비무를 선보인 사람들이 각종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창룡봉무지회는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그 열기가 더욱 뜨거워져 가고 있었다.
풍진개가 입에 음식을 쑤셔 넣고는 빠르게 분쇄시켰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술을 꿀꺽꿀꺽 마시는 걸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풍진개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놀랄 것은 없었다. 평소에도 어지간한 대식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음식을 먹던 풍진개였으니까.
그러나 아침부터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을 해치우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까지 아침부터 음식을 먹어 치우는지에 대한 이유는 곧 풍진개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하루 종일 비무대를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데, 아니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닌다니까!”
“하하…… 고생이 많으시겠군요.”
“정말 죽겠어! 내가 요즘 살이 빠지고 있어요, 살이! 개방도에게 살이 빠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죽어 간다는 거야, 죽어 간다는 거!”
정말 생존이 달렸다는 듯이 무지막지하게 음식을 먹는 풍진개의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했다.
듣자 하니 채설지가 정말 바쁘게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채설지를 감시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던 풍진개는 어쩔 수 없이 밥도 먹지 못한 채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고 말이다.
이러다 보니 풍진개의 입장에서는 하루 먹을 음식을 아침에 배 속에 왕창 때려 박을 수밖에 없었다.
바쁘게 음식을 먹기 바쁘던 풍진개가 풍백을 슬쩍 보고 물었다.
“오늘도 무한 밖에 있는 비무대로 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