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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55화 (172/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55화

당세기는 풍백을 멍하니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풍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풍백은 그런 당세기를 보며 섭섭하다는 듯이 말했다.

“설마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섭섭하군요, 소기.”

아명을 듣고서야 기억했는지 당세기가 벌떡 일어나며 포권을 취했다.

“저, 적 공자님, 안녕하셨습니까!”

풍백은 얼굴에서 장난기를 없애고 마주 포권을 했다.

“기억을 하셨군요. 섭섭할 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마 여기서 적 공자님을 만나 뵐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

“우연히 초대장을 받아서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말을 마친 당세기가 우물쭈물하며 땅에 떨어져 있는 은자를 바라봤다.

풍백은 그런 당세기의 팔을 붙잡고 끌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만났는데,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시지요. 제가 머물고 있는 객잔이 은근히 요리를 잘하는 것 같더군요.”

“자, 잠시만…… 일단 저것 좀…….”

“사양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이 일단 배를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요. 가시지요!”

팔을 붙잡힌 당세기는 주춤거리며 풍백을 따라갔다. 땅에 떨어진 은자가 계속 눈에 밟혔지만, 차마 풍백의 팔을 뿌리치질 못했다.

객잔으로 돌아온 풍백은 비어 있는 식탁에 앉아 점소이에게 음식을 잔뜩 시켰다.

당세기는 풍백의 맞은편에 앉아 풍백이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돌아가고 나서도 풍백은 오늘 일어난 일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룡봉무지회에서 일어난 재미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놨을 뿐이다.

그러다가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나왔고, 두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는 풍백이었기에 당세기에게만 술을 따라 줬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세기도 마음을 많이 추스를 수 있었다.

그제야 풍백이 물었다.

“왜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당세기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척 연기를 했다. 그러나 이런 어설픈 연기에 속아 넘어갈 풍백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세기는 모르겠지만, 풍백은 이미 숨어서 그와 군웅회의 후기지수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두 지켜봤었고 말이다.

“굳이 숨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직접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 소협이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아왔고, 군웅회의 후기지수들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대충 짐작하고 있으니까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오해를…….”

“그때 얘기했었지요? 저는 귀가 밝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는 친구가 있다고요.”

풍백이 자신의 아명을 알아냈던 때가 떠오른 당세기가 입을 다물었다.

“분명히 이전에 서문세가에서 한번 말했던 것 같은데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 건가요?”

서문세가에서 풍백은 떠나려던 당한수와 당세기에게 말했었다.

-하지만 정말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을 때, 더 이상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그런 말이 온다면…… 적어도 절강성에 있는 적가상방은 그런 당가타를 걱정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십시오.

-정말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그러자 당세기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기억……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적가상방으로 찾아오지 않았던 겁니까?”

당세기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그저 적가상방이 당가타를 도와줄 능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런……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신 겁니까?”

“우리 당가타는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것은 어지간한 문파에서 감당하기는 어려운 금액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여러 세가가 공동으로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군웅회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고요.”

당세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이제 지속적인 지원은 불가능한 것 같으니, 조금의 도움이라도 받으려고 적가상방을 찾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전에 적 공자님이 제 앞에 나타나셨지만요.”

이 말을 들은 풍백은 미소를 지었다.

“당 소협은 너무 솔직하시군요. 보통 저와 같은 상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원한다면, 아주 철저하게 준비해서 협상을 하려고 할 텐데요.”

“이전에 적 공자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친분도 없는 당가타를 위해 사마세가와 적대하시기도 하셨고요. 그런 분에게 협상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요. 적 공자님이 도와주시기를 거절하신다고 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웃을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당세기가 풍백처럼 미소를 지었다.

당세기의 말을 들으니 문득 과거 사천세가의 유명했던 율법이 떠올랐다.

-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그러고 보면 과거 사천당가 사람들은 꽤나 화끈한 성격이었던 모양이야.’

풍백은 당세기를 보며 물었다.

“지원이 필요한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으려면 조금 큰 금액이…….”

“그게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건 한 달에 얼마나 지원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당세기는 그 말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풍백을 바라봤다.

“지원을…… 해 주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일단은 얘기를 들어 봐야겠지요?”

잠시 망설이던 당세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전에 군웅회에서 매달 지원해 주던 금액이 금자 열다섯 냥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일 년 동안 지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백팔십 냥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청송표국에게 빌려준 돈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했다.

물론 청송표국은 이 금액을 벌써 다 갚았고, 당가타는 앞으로 갚을 수 있기는 한 건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일 년 전 적가상방이었다면 회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지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지금은 금자 백팔십 냥을 두고 ‘겨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지원을 약속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전에 몇 가지 확인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지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저, 정말입니까?”

당세기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주기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니, 자신이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놀라는 중이었다.

그러나 풍백의 말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정은 지금 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적가상방을 대변하여 이 지원을 결정할 수 있지만, 당 소협은…… 그 정도 권한은 없으시죠?”

“권한이 꼭 필요한 건가요?”

“당연하죠. 저는 상인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지원을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 전에 먼저 명칭부터 정정하고 들어가지요. 지원이 아닙니다.”

“그러면…….”

“투자라고 해야죠.”

“그게…… 다른 건가요?”

“당연하죠! 지원은 원하는 것이 없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투자는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자금을 투입하는 일이라고 해야겠지요.”

당세기에게는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는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평생 상행위라고는 점포에 가서 물건을 사는 정도만 해 봤던 당세기였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저는 당가타의 미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투자를 하면 빠른 시일 안에 당가타가 크게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풍백의 말에 당세기가 감동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당가타에 대해 이렇게 호의적인 평가를 해 주는 사람은 처음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가타는 이제 끝났고, 현판을 떼는 날이 조만간 다가올 거라고 말할 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 예상을 말씀드렸을 뿐이니까요.”

당세기는 풍백이 말했던 투자와 이익을 떠올리고 물었다.

“그러면 투자를 해 주신 금액을 나중에 다시 회수하셔야 하신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뭔가 염왕채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아,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건 아닌데…….”

“괜찮습니다. 일단 하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바로 잡자면, 사실 저는 투자의 대가로 다시 돈을 돌려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풍백의 말에 당세기의 눈이 커졌다.

“네?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

“당가타가 성장세로 돌아서면, 나중에 당가타의 무사를 적가상방에서 고용하고 싶습니다. 물론 고용된 무사들은 전부 따로 월봉을 드릴 것이고, 그 금액은 절대로 시장에서 형성된 월봉보다 적지는 않을 겁니다.”

당가타는 다른 곳에 무사를 파견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과거에 과거 사천당가라 불렸을 때는 무사를 다른 곳으로 파견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은 세가에서 관리하는 사업체에서 벌고 있었으니, 돈 때문에 세가의 무사를 외부로 돌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유가 달랐다.

일단 당가타의 무사가 적었다. 숫자로 말하자면 군소 문파보다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가타 무사들의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 대부분이 삼류무사이다 보니, 차라리 낭인무사를 고용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힐 지경이었다.

이러니 당가타의 무사를 고용할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보통 군소 문파들은 무사들을 상방이나 분란이 일어난 다른 문파에 파견을 보내면서 꽤 쏠쏠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제대로 된 사업체를 이용한 수입원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무사 파견만 한 수입을 올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가타는 무사도 적고, 원하는 곳도 없으니 악순환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한 금액을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월봉을 주면서 무사들을 고용하겠다?

당세기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다.

“저희에게 너무 유리한 제안인 것 같은데…….”

“아닙니다. 만약 제 예상대로 당가타가 앞으로 눈부시게 성장하게 된다면, 오히려 제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대체 풍백이 뭘 믿고 이렇게 당가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인지, 이제는 조금 의심스러워질 정도였다.

심지어 당세기조차 당가타의 미래가 마냥 밝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너무 고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제가 당가타에 가서 협상할 위치에 계신 분과 나눠야 할 얘기를 조금 먼저 알려 드린 것일 뿐입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당가타로 같이 가시려고요?”

“당연하죠. 투자 계약을 맺으려면 당연히 얼굴을 보고 협상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뭔가 너무 급작스럽게 모든 일이 진행되는 느낌에 당세기는 당황한 눈치였다.

“이렇게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당가타의 현 상황에 대해 제가 파악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당가타의 현재 분위기에 대해 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풍백이 이런 말을 하자 당세기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아무리 현재 당가타의 상황이 안 좋고 풍백이 그런 당가타의 중요한 투자를 하려고 한다고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해도 괜찮은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당세기를 보며 풍백이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요? 저는 귀가 밝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는 친구가 있다고요.”

“설마…….”

“당가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현재 당가타는 직계가 아니라 방계가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부터, 당 소협이 직계에 속해 있다는 것과 이대로 가다가는 당가타라는 이름조차 없어질 위기라는 것까지.”

사실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 당가타가 현재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건 대부분의 강호 문파들이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방계와 직계의 불화에 대해서도 뭔가 알고 있다는 듯한 풍백의 말은 조금 놀랐다. 이것에 대해서는 강호에서도 아는 문파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다 알고 있으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혹시나 제가 모르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투자를 하기 전에 투자처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건 아주 기본적인 일이지요.”

“그게 기본적이라고요?”

“그럼요. 만약 저희가 투자를 했는데, 당장 그다음 날 당가타에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더 이상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당가타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 요청하는 겁니다.”

당세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숨기고 싶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풍백이 모두 말했다.

오히려 풍백이 주도권 싸움이라는 완곡히 배려해 준 단어를 썼지만, 실제로는 직계는 방계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받기 위해 온갖 치욕을 감수하는 것도 방계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당가타를 찾아오기 위한 직계의 발버둥이었다.

결심을 굳힌 당세기가 천천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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