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49화
사마세가라는 말에 풍백 뒤에 서 있던 고우길이 오히려 움찔했다.
서문세가에서 사마세가의 직계 혈육인 사마장위를 상대로 대련을 했다가 일검단악이라는 별호까지 받았던 고우길이다.
그러나 어차피 사마세가와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잊고 지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마세가는 무려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낙양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까지 적가상방은 절강성 밖으로 상행을 나간 적도 없었고, 사마세가가 무려 절강성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풍백의 입에서 사마세가라는 말이 나오자, 주마등처럼 이전에 있었던 일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풍백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마세가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방금 얘기하면서 아마도 사마세가일 거라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참 이상하단 말이야. 왜 네 얘기를 듣고 있으면 선문답을 하는 것 같지?”
풍백은 사내의 말에 딱히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그런 풍백에게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음식은 어떻게 드릴까요?”
“됐으니까 그만 돌아…….”
사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풍백이 말을 가로챘다.
“원안녹원(遠安鹿苑)차를 주게. 이분은 딱히 생각이 없는 듯하니, 한 잔만 주면 될 것 같고.”
원안녹원은 호북성에서 나오는 황차(黃茶)의 이름이었다. 근래에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풍백이 호북성에서부터 마시고 있는 차였다.
잠시 사내의 눈치를 보던 점소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사내는 황당하다는 듯 풍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풍백은 그런 사내의 시선에도 환히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잠시 후, 점소이가 풍백의 앞에 황차 특유의 노란빛이 나는 원안녹원을 가져다주었다.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며 입술을 축이는 풍백을 보고 사내가 피식 웃었다.
“보면 볼수록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니었어.”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슬쩍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물었다.
“그래서 아까 얘기를 계속해 보자고. 나와 얘기를 하면서 사마세가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뭔지 알려 주지?”
“딱히 대단한 건 아닙니다.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듣고 나서 내가 판단하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풍백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대화를 하면서 당신이 내게 적의를 갖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가? 나는 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평소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거나,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는 삶을 살아 보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에만 관심이 있고, 그 목소리에 담긴 기분은 어떤지 확인하지 않을 겁니다.”
“음…… 그건 맞아.”
사마세가라면 강호에서 신흥 세가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호사가(好事家)들은 오대세가를 구파일방처럼 구대세가나 십대세가로 늘리면 사마세가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논의를 하곤 했다.
이런 사마세가의 혈육이 딱히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삶을 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의 눈치를 살폈으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적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과 사마세가를 떠올린 것이 무슨 연관이지?”
“딱히 연관은 없습니다.”
“응?”
무슨 말이냐는 듯이 사내의 눈썹이 모아졌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차를 한 모금 마신 풍백이 대답했다.
“저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데, 저는 당신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원한은 아닐 것이고, 제가 대외적인 활동을 이제 겨우 일 년이 조금 넘게 하면서 강호의 문파와 약간이라도 문제가 생겼던 곳은 오직 사마세가 하나뿐이니 예측하기 쉬웠지요.”
생각보다 너무 별것 아닌 대답에 맥이 풀렸다.
하지만 풍백이 몇 가지 사실로 자신의 가문을 맞춘 것이 놀랍기는 했다.
“눈치가 빠르고, 머리도 제법 비상(非常)한 모양이군.”
“좋은 평가를 해 줘서 감사합니다.”
“……사람을 조금 짜증 나게 만드는 경향도 있고.”
풍백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말을 툭 던졌다.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사마진걸이라고 한다.”
사마진걸이라는 이름을 듣자 풍백이 눈을 반짝였다.
‘사마세가의 소가주?’
풍백의 기억에도 있는 이름이었다.
무려 사마세가의 소가주였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풍백 역시 과거에 들어 본 적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들어 본 적이 있다는 정도이지, 사마진걸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풍백이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의 별호가 진천검(震天劍)이라는 것뿐이었다.
“진천검 소협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나를 알고 있었나 보군.”
“사마세가의 소가주님이시니까요. 아무리 제가 강호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라 하더라도 기억을 해야 할 이름이지요.”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평가할 정도였으면 서문세가에서 괜한 짓을 벌이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잘못하면 사마세가와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그 말에 풍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원래라면 그랬어야 했었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가타의 당세기 소협은 저와 제법 깊은 친분을 나눈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모욕을 당할 것이 뻔한 자리에 올라가도록 할 수는 없었지요.”
“아하! 그래서 나섰다?”
“물론 그렇다고 사마세가 직계 혈손을 모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희 적가상방의 호위무사인 고 무사가 패배할 줄 알았지요.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풍백은 뒷말을 마무리하지는 않았다.
사마진걸이 그런 풍백을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봤다.
“분명 머리도 제법 비상한 것 같은데, 계산은 잘하지 못하는 모양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당세기와 친분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그 녀석과 형제지간이든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당시에 당가타와 사마세가 중에서 당가타를 선택했던 거야. 가련하게도 말이지.”
“음…….”
“애당초 당가타와 사마세가가 비교할 대상이나 되는지 이해할 수 없기는 한데, 너는 그때 당가타를 선택한 것이고, 이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중이지.”
사마진걸의 말에 풍백이 미간을 좁히며 다시 한번 차를 마셨다. 그리곤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희 적가상방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그건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겁니까?”
“그 정도는 배려해 주겠다. 들어 보고 선택을 하도록 해 봐.”
말을 하는 사마진걸은 얼굴에 여전히 밝은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아마 그의 얘기를 듣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본다면 풍백과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얘기를 하는 사마진걸의 눈빛에서는 순간적으로 스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풍백은 사마진걸의 눈빛 변화를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첫 번째 선택, 이대로 적가상방으로 도망친다.”
“나쁘지 않군요.”
“당장은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네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나는 사마세가의 무사들을 동원해서 본격적으로 너희 적가상방이 아무런 거래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다. 사람들도 많이 다치겠지. 죽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정파인 사마세가에서 사파나 하는 그런 짓을 벌이려고요?”
“요점은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풍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마세가는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의 위치를 이룬 신흥 세가였다.
보통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세가를 보면, 대부분 다른 전통적인 세가에 비해 조금 과격한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위로 올라가려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누군가를 끌어내려야만 했고, 그를 위해선 독해져야만 했으니까.
도리어 이들에게 있어선 다소 과격한 방법도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했다.
지금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선택은 서문세가에서 했던 잘못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이지.”
“벌…… 이라고요? 설마 저를 때리겠다는 그런 말입니까?”
“하하하! 그럴 리가. 차라리 조용한 곳에서 너를 죽이는 거라면 모를까, 어설프게 때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죽인다는 말을 할 때는 사마진걸의 눈에서 스산한 한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저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풍백은 그런 사마진걸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어떤 벌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간단해. 너희와 같은 상인들은 돈이 가장 중요하겠지. 그러니 사마세가 사람을 모욕한 대가로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 돈을 가져오면 되겠지.”
“아…… 그러니까 돈으로 사죄를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풍백의 물음에 사마진걸이 예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듣자 하니 적가상방이 소금 전매권을 얻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자금적으로 꽤 풍족할 것이고.”
“아무래도 새로운 사업 하나가 신설된 것이니까요.”
“그러면 너희가 소금 전매권으로 얻을 수 있는 매출에 오 할을 가져오면 되겠군.”
사마진걸의 말에 풍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오 할…… 이라고요?”
“왜? 너무 적은가? 칠 할을 가져오라고 하려다가 너희도 남는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오 할로 줄인 건데.”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의 오 할이고요?”
“사마세가의 평판은 감히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지. 그러니 수입의 오 할이 적당한 것 같군.”
“설마 매달 지속적으로 돈을 가져오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그러면? 설마 딱 한 번만 가져오고 끝낼 생각이었나? 배포가 너무 작군.”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사마세가의 혈육을 건드린 대가로 이 정도면 싸다고 해야 맞는 말이지 않나?”
너무 황당한 제안이기 때문인지 풍백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잔뜩 일그러진 풍백의 얼굴이 그의 감정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런 풍백의 모습에 사마진걸이 이제야 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가 진해지고 있었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지? 그나마 자비를 베풀어 줘서 고맙다고 해야 정상이 아닌가?”
“……고맙다고 해야 한다고요?”
“당연하지. 처음에는 소금이 아니라 적가상방 매출의 오 할을 가져오라고 할 생각이었거든.”
“…….”
“그 정도로 하면 적가상방이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내가 한껏 자비를 베풀어 소금 매출의 오 할만 받겠다고 한 거야.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를 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말을 하는 사마진걸은 완전히 자신이 풍백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높은 곳에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풍백은 자신의 말에 절대 반항할 수 없을 거라 믿었고.
원래 강호의 문파와 상방의 싸움은 외부 평판을 무시한다는 가정이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상방이 지는 싸움이다.
그렇기에 사파와 분란이 일어난 상방은 대부분이 막대한 손해를 보거나 무너지는 것이고 말이다.
당장 청해상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광동성에서는 충분히 대상방이라 불릴 수 있는 청해상방이 백련문의 손에 짓밟히는 것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백련문은 주변 평판에 신경을 쓰지도 않는 정사지간의 문파고, 사마세가가 정파라는 사실은 대단히 큰 차이였다.
정파가 명분도 없이 이런 짓을 벌이면 당연히 사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 풍백을 보며 사마진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내 제안에 대해 공론화를 할 생각인 건 아니겠지?”
“지금 소가주님이 말씀하신 조건은 대단히 무리한 조건이라서요.”
“어차피 공론화를 해 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쉽게 가자는 말이야.”
“소용이 없다고요?”
“네가 이것에 대해 공론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증거가 없잖아. 그저 내가 개인적으로 너에게 말했을 뿐이니까.”
“…….”
풍백은 계속되는 사마진걸의 이야기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억눌렀다.
“또한 네가 거절하는 순간부터 나는 적가상방을 찍어 내도 괜찮을 정도의 명분을 쌓을 거다. 적당히 사파를 지원하는 상방이라는 정도의 명분이면 충분할걸?”
“사람들이 그리 쉽게 믿지 않을 텐데요?”
“그건 두고 보자고. 믿을지, 믿지 않을지.”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사마진걸의 모습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사마진걸은 풍백이 오래 생각할 시간을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제 슬슬 대답을 해야지? 나에게 소금 매출의 반절을 넘길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적가상방으로 도망쳐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집안 꼴을 감상하든지.”
“…….”
“아, 참! 그러고 보니 네가 살아서 적가상방으로 도망갈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겠구나?”
대놓고 협박을 던지는 사마진걸이었다.
그런 사마진걸을 보며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풍백은 갑자기 표정을 풀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거절하겠습니다.”
풍백의 대답은 사마진걸이 전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거절…… 한다고?”
“네, 거절하겠습니다.”
지금 선택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는 듯이 풍백의 얼굴에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하…… 이건 참 의외로군. 그러면 두 번째 제안을 선택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닌데요.”
사마진걸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굳이 선택을 해야 된다면, 저는 세 번째나 네 번째, 아니면 다섯 번째 선택을 하려고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아닙니다. 제가 봤을 때, 선택지는 적어도 세 가지는 더 나와야 합니다.”
풍백의 말에 사마진걸이 콧방귀를 뀌었다.
“누구 마음대로 선택지를 늘리는 거지?”
“당연히 제 마음대로지요. 너무 당연한 걸 여쭤보시니 민망하네요.”
“……어이가 없군. 미친 건가? 대체 뭐를 믿고 이렇게 나오는 건지 궁금해.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작자인 건지, 아니면 사마세가의 분노를 받아 낼 자신이 있는 건지 말이야.”
그러면서 사마진걸이 식탁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푸스스스스!
사마진걸의 손바닥이 식탁을 미세하게 파고드는 것이 보였다.
일류고수 이상이 되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이었다.
그걸 본 풍백이 손을 들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것처럼 박수를 한 번 쳤다.
짝!
무슨 뜻이냐는 듯이 바라보는 사마진걸에게 풍백은 여전히 싱글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얘기를 들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어떤 제안을 할지도 모르잖습니까.”
“내 제안을 거절한 순간부터 적가상방은 이제 사마세가와 적이다. 그러니 굳이 제안을 들어 볼 이유는 없겠지.”
풍백이 그의 얼굴 앞에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 좌우로 까딱거렸다.
“틀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적가상방‘만’ 적이 되는 것이 아니지요.”
“……뭐라고?”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감히 자신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실실거리는 풍백의 얼굴에 당장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었다.
‘이놈이 미쳤구나. 건방지게 손가락을 놀려?’
그러나 온갖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런 자리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었다.
사마진걸은 한숨을 토해 냈다. 자신이 조금 흥분한 것을 느끼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것이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사마진걸이 다시 슬쩍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좋아.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 주지.”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추임새를 넣는 모습에 사마진걸의 눈썹이 꿈틀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물었다.
“그래서? 어떤 제안이지?”
“일단 제안에 대해 얘기를 하기 전에 이 얘기부터 먼저 해야겠군요.”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제가 할 이야기도 본론입니다. 뒤에 이어서 얘기할 제안과 연결되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하아…… 그래, 어디 지껄여 봐. 괜한 시간 낭비를 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서 각오를 해야 할 거야.”
빙긋 웃은 풍백이 말을 툭 던졌다.
“제가 봤을 때, 지금까지 사마진걸 소가주님이 하신 말씀과 제안은 사마세가의 공식적인 제안이 아닙니다. 그렇죠?”
사마진걸의 미간에 굵은 선이 그어졌다.
“무슨 소리지?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그 말에 풍백은 다시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네, 소가주님이 거짓말을 하셨다는 겁니다.”
“이놈이 감히 나를 뭘로 보고…….”
“만약 사마세가의 뜻을 그대로 전하신 것이라면…… 사마세가가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애잔해질 정도라고 해야겠지요.”
사마진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앞에서 대놓고 사마세가를 함부로 입을 올리고 있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사마진걸이 손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 순간 풍백이 절묘하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소금 매출의 오 할을 달라고 하셨죠?”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주둥이 간수를 잘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손을 쓰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념하도록 하지요.”
풍백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소금 매출의 오 할이 어느 정도 되는 금액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건 예상치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알지도 못했다.
“그건…….”
“아! 이렇게 말하면 답하기가 어렵겠군요. 그러면 질문을 바꿔 보지요. 음…… 저희 상방이 어디서 생산되는 소금 전매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흥! 당연하지. 화오염장 아니더냐.”
“맞습니다. 그러면 화오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어느 정도 양일까요? 꼭 무게로 말씀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해할 수 있을 수준으로만 대답을 해 주셔도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마진걸은 쉽게 대답을 못했다. 그런 사마진걸의 모습에 풍백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아마도 사마진걸 소가주님께서는 저희 적가상방을 조사하시면서 군소 상방이라고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군소 상방이 가지고 있는 소금 전매권이라고 해 봤자 얼마나 생산하냐 싶었겠지요.”
“…….”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화오염장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절강성은 물론이고 안휘, 강서, 호북, 심지어 사마세가가 있는 하남 그 너머까지도 판매됩니다.”
“…….”
“엄청나죠? 그러면 이제 다시 질문을 드리죠. 절강성 정반대에 있는 감숙(甘肅)까지도 판매가 되는 저희 화오염장에서 생산하는 소금 한 달 매출이 얼마나 될까요?”
웃으면서 말하는 풍백의 모습에도 사마진걸은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자! 그런데 사마세가에서 이렇게 판매되는 소금의 매출 오 할을 달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현실성 없는 제안인지 더 이상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런 풍백의 말에 사마진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런 것까지 우리가 알아야 하나? 사마세가의 분노를 맛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그냥 받아들여.”
사마진걸의 말에 풍백이 혀를 찼다.
“쯧쯧…… 역시 예상대로 그렇게 대답하시는군요. 아까 얘기를 했듯이, 방금 얘기했던 소금 판매 금액에 대한 얘기가 세 번째 제안으로 넘어갑니다.”
“더 이상 네 얘기를 들어 줄…….”
풍백은 사마진걸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끼어들며 계속 말했다.
“세 번째 제안, 군소 상방에서 중견 상방으로 넘어가고 있는 적가상방이 실제로는 대상방에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수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사마세가에서는 망하고 싶지 않으면 절반을 넘기라고 한다.”
“…….”
“그래서 망하고 싶지 않은 적가상방에서는 소금을 판매한 금액의 절반을 사용하여 사마세가를 괴롭힌다. 어떻습니까? 재미있겠죠?”
갑자기 왜 결론이 이쪽으로 흘러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마진걸은 풍백의 말에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할지 기대했는데, 겨우 그 정도였나? 어디 마음대로 해 봐. 우리도 마음대로 적가상방을 밟아 줄 테니까.”
사마진걸의 목소리에는 적가상방이 돈으로 무슨 짓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감히 사마세가를 흔들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마진걸의 믿음은 바로 이어진 풍백의 말에 대번에 박살 나고 말았다.
“재미있네요. 그러면 적가상방에서는 하남성에 있는 단리세가(段里世家)에 막대한 돈을 지불하여 사마세가를 견제할 것을 요청할 겁니다.”
“뭐라고?”
역시 반응이 즉각 나왔다.
단리세가는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남성에서 태두(泰斗)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마세가에 밀려 그 위치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다고 단리세가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제든지 사마세가를 넘어서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막대한 재물이 흘러든다면 정말 삽시간에 단리세가가 사마세가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풍백은 이런 사마진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돌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으음…… 그러고 보니 같은 정파라서 사마세가의 견제를 효과적으로 하기는 어렵겠군요.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 효과가 미미하면 곤란한데…….”
“이놈…….”
“네 번째 제안이 차라리 낫겠네요. 제가 알기로는 하남성 대별산(大別山)에 녹림십팔채가 있었지요? 녹림의 호걸분들에게 거금을 지불하면서 사마세가를 잘 부탁한다고 해야겠군요.”
녹림십팔채의 대별산채(大別山寨)는 상오채에 들어가는 대형 산채였다. 그들만으로 어지간한 대문파와 싸워도 지지 않는다 평가할 정도였다.
“지금 녹림과 손을 잡겠다는 말이냐!”
“요점은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