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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47화 (16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47화

와아아아!

청룡봉무지회의 개회식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제갈세가주가 개회사를 선언하고 많은 박수를 받으며 내려가고, 그 뒤는 녹수장에서 계획한 각종 축하 행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사내는 한창 열기를 더해 가는 녹수장을 나와 주변에 있는 객잔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 객잔은 며칠 전 풍백 일행이 들어갔다가 자리가 없다고 퇴짜를 맞은 객잔이었다.

점소이의 인사를 받으며 사내가 별채로 들어서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제 막 약관(弱冠)을 지났을 것 같은 사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사내가 의자에 편히 앉으며 물었다.

“굳이 개회식이 끝나지 않았는데 불렀다는 말은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말이겠군.”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하오문이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한 건가?”

“그게 아니라 실패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말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실패?”

“네.”

“왜 실패를 했다는 말이지? 고우길이라는 호위무사 놈이 생각보다 더 고수였던 건가?”

“자세한 설명은 해 주지 않았지만, 소가주님의 생각이 맞을 겁니다.”

“흐음…… 하오문이 가진 정보 이상으로 강하다 이건가?”

그의 조사에 따르면 고우길은 이류무인 초입 정도일 뿐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도 하오문이 의뢰에 실패했다면, 고우길이 어쩌면 알려진 것보다 더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하오문에서 다시 기회를 잡아서 그놈을 데리고 온다고 하던가?”

“그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무한에 정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부담됐는지, 위약금을 지불하고 의뢰를 철회했습니다.”

“쯧…… 하여간 자존심도 없는 뒷골목 흑도패 같은 놈들이라니까.”

사내는 하오문에 대해 참혹한 평가를 내렸다.

그들이 정말 제대로 된 문파고, 자존심이 있다면 의뢰가 실패하는 순간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나머지 뒤처리를 해야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깝게 됐군. 일이 생각보다 편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일은 하오문이 실패했는데 네가 죄송할 것은 없지.”

어차피 하오문을 이용하여 풍백을 납치하려고 했던 건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그저 우연히 그가 머물고 있는 객잔을 찾았고, 그가 창룡봉무지회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내서 한번 시도해 본 일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저녁에 있을 연회에는 참석하겠지?’

상인에게 개회식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때는 모두 개회식에 집중하고 펼쳐지는 공연을 즐기는 데 바빠서 서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대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단연코 연회였다. 상인들은 보통 이곳에서 많은 인연을 만들게 된다.

‘그때가 되면 얼굴을 볼 수 있겠군.’

풍백이 어떻게 생겼는지 꽤나 궁금했다. 겨우 군소 상방 주제에 어떤 낯짝을 하고 자신들을 적대한 것인지 말이다.

사내는 기대가 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 * *

해가 지고 대부분의 집에서는 밥을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한에 있는 반점과 주점 등도 지금이 하루의 가장 바쁜 시간인 저녁 장사를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야 풍백이 고우길의 호위를 받으며 객잔에서 나섰다.

녹수장에서 펼쳐지고 있던 창룡봉무지회의 개회식은 약 반 시진 전에 끝난 상태였다. 그리고 개회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먼저 연회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풍백은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오늘 목적은 확실했다.

일단 연회에 참석하여 창룡봉무지회 초대장을 보내 줬을 서문표를 찾아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했다.

그 외에 새로운 누군가와 안면을 트고 인연을 맺는 건 두고 봐야 했다. 어쩌면 서문표가 그를 데리고 오대세가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켜 줄지도 몰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대세가나 명문정파의 후계자와 인연을 맺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어지간해서는 곁을 지키는 수신호위 때문에 다가가지도 못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풍백도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답이 없었다.

그러나 오대세가인 서문세가의 소가주인 서문표가 직접 인사를 시켜 준다면 일은 수월하게 풀린다.

‘어쩌면 오늘 생각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오대세가 전부와 인연을 맺는 것도 좋겠지만, 가장 인연을 맺어야 할 곳은 안휘성의 남궁세가와 호북성의 제갈세가였다.

하북성(河北省)의 하북팽가(河北彭家)와 산동성(山東省)의 황보세가(皇甫世家)는 남궁세가와 제갈세가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휘성은 절강성과 경계를 맞대고 있고, 호북성은 안휘성이나 강서성 일부만 가로지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반면 다른 두 곳에 비해 하북성과 산동성은 너무 거리가 멀었다. 적가상방이 진출하기에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다.

나중에 언젠가는 하북성과 산동성으로 진출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혹시 모르지. 남궁세가에서 남궁진이 왔을지도.’

이미 남궁진과는 두 번이나 안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남궁진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한 이유는 순전히 서문세령 때문이었다.

서문세령에 완전히 푹 빠진 남궁진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서문세령만 바라봤으니까.

당시에는 무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두 사람이 있으면 자리를 피해 줬던 풍백이었다.

그렇게 배려를 해 줬기 때문인지 몇 번은 남궁진에게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했었다.

만약 이번에 남궁진이 왔다면 이전의 배려를 해 준 대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하며 사람이 바글거리는 거리를 걸어가던 풍백은 곧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바로 황학루였다.

녹수장은 이번 창룡봉무지회를 열기 위해 정말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연회를 열기 위해 황학루를 통째로 빌린 것이었다.

황학루는 과거 삼국시대 오(吴)의 손권(孫權)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황학루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 말고도 여러 가지 전설이 많았다.

그중에 풍백이 좋아하는 전설은 이것이었다.

신씨(辛氏)가 만든 주점에 한 노인이 찾아와 술을 마시고, 술값 대신 벽에 황학(黃鶴)을 그렸다.

그런데 이 황학 그림은 신기하게도 손바닥을 두드리면 살아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기사(奇事)를 보여 주게 된다.

황학이 춤을 추는 것을 보기 위해 천하에서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오게 되니, 주인 신씨는 이로 인하여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림을 그렸던 노인이 다시 찾아오게 되고 그는 황학을 타고 구름 위로 날아가게 된다.

신씨는 그걸 보고서야 노인이 선인(仙人)이었다는 걸 깨닫고 그 자리에 누각을 짓게 되니, 그것이 바로 황학루였다.

풍백이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인 적호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개망나니가 되기도 전, 아직 아이였을 때 적호경은 풍백을 재우려고 하면서 황학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줬었다.

어렸을 적에는 이 이야기를 적호경이 만들어서 들려준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아주 어렸을 적에 들었던 이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에 풍백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풍백에게 황학루 이야기를 얘기해 줬던 적호경이지만, 정작 그는 황학루에 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젊었을 적부터 지금까지 오직 적가상방을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쳤던 적호경이니까 말이다.

‘나중에 아버지하고 한번 찾아와야겠어.’

그때는 과거 적호경이 해 줬던 이야기를 꺼내서 담소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풍백은 그때를 기약하며 계속해서 황학루로 걸어갔다.

황학루에 도착한 풍백은 그 앞에 길게 서 있는 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너무 많네.’

이 시간쯤이면 대부분의 사람은 황학루에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황학루에 자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들어가는 사람마다 초대장을 확인하는 작업이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풍백은 줄을 서서 자신이 들어갈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줄어들고 있는 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풍백은 문득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 혹시…… 적가상방의 적풍백 공자님 아니십니까?”

근래에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인지, 풍백은 이번에는 또 뭔가 싶은 얼굴로 돌아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낯이 익은 삼십대의 사내가 들어왔다.

중년 사내는 풍백의 얼굴을 확인하고 반색을 하며 말했다.

“어이쿠! 진짜 적 공자님이 맞군요. 이렇게 무한에서 만나 뵐 줄은 몰랐습니다.”

잠시 기억을 떠올린 풍백은 그가 적가상방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찾아왔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세황조방(洗黃槽坊)의 양가정 소방주님 아니십니까?”

“하하하! 기억하고 계셨군요. 이거 참 반갑습니다.”

조방은 술을 빚는 양조장을 말하는 것이다.

세황조방은 절강성 소흥에서 소흥주(紹興酒)를 만들어 판매하는 양조상방이었다.

소흥주는 짙은 갈색의 빛을 띄어 황주(黃酒)라고도 불리며, 중원에서 팔대 명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진귀한 술이었다.

소흥 지방에서는 마치 여아홍(女兒紅)처럼 딸을 낳으면 소흥주를 준비해 땅에 묻어 놓은 다음, 딸이 성인이 되어 혼인을 할 때가 되면 꺼내서 마시기도 했다.

소흥에서는 소흥주를 만드는 조방이 많았다. 이곳에서 전 중원으로 소흥주가 팔려 나가니 당연히 소흥주를 만드는 조방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세황조방은 그런 조방들 중에서 그리 큰 규모를 가진 곳은 아니었다. 세황조방에 비하면 적가상방은 대상방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역시 적가상방이군요. 창룡봉무지회의 초대장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세황조방 역시 대단하십니다. 초대장은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저희는 어쩌다 보니 엉겁결에 받았습니다.”

“엉겁결에요?”

“저희가 소흥주를 납품하는 곳 중에 강소성에 있는 문파가 한 곳 있는데, 이번에 납품을 받으면서 대금을 조금 늦게 지불해야 할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초대장을 보내 줬습니다.”

말을 하는 양가정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했다. 어떤 종류의 상방이든지 들어와야 할 대금이 늦게 들어오면 곤란한 건 모두 똑같았다.

특히 세황조방의 규모를 생각하면 대금 지불이 늦어지는 것이 절대 달가울 수 없었다.

“저런…… 대금 지불이 늦어지면 우리 같은 상방이 얼마나 피가 마르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특히 강호의 문파들은 이런 상방의 애환을 잘 몰라서 답답합니다.”

“힘내셔야 하겠군요.”

“그래야죠. 기왕 이렇게 된 것,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좋은 계약 하나를 들고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러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지 모르지요.”

양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풍백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숙부가 적가상방을 처음 만들고 고생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세황조방보다 더 작아서 거의 구멍가게 수준 수준이었기에 조그만 풍파에도 휘청거리며 힘들어했었다.

특히 세황조방의 경우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 와야 할 대금 대신 물품을 내주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대로 적가상방이 무너질 뻔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적호경과 진덕양이 뛰어난 능력으로 물품을 싼 가격에 팔아 치워, 손해는 막심했으나 간신히 적가상방이 무너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기왕이면 양가정이 이번 기회에 좋은 계약을 하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양가정은 분위기를 바꿀 생각이었는지 밝은 얼굴을 보이며 풍백에게 물었다.

“적가상방에서는 초대장을 어떻게 구한 겁니까? 쉽지 않았을 텐데요.”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는데, 저희와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서문세가에서 이번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면서 초대장을 보내 줬습니다.”

그러자 양가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서문세가에서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의 반응을 본 풍백이 뭔가 있다는 생각에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아마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뭐가 잘못된 건가요?”

풍백이 계속 되묻자 양가정이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제 처남이 서문세가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들었는데, 제가 듣기로는 서문세가에서 이번에 창룡봉무지회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아무리 오대세가라고 하더라도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초청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발부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러니 만약 양가정의 말이 맞다면, 초대장을 보낸 곳은 절대로 서문세가일 리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제가 잘못 들었거나, 처남이 잘못 주워듣고 얘기해 준 걸 겁니다. 하하하!”

양가정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풍백은 겉으로 같이 웃었으나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초대장만 왔지, 누가 보냈다는 얘기는 없었지?’

처음부터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서문표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초대장을 보내기 전에 먼저 의향을 확인하거나 얘기를 했을 텐데, 이렇게 초대장만 덜렁 날아왔으니 말이다.

‘진짜 서문세가가 참석하지 않았는지 확인을 해 봐야겠네.’

일단은 그것부터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정말로 서문세가가 참석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누군가가 꽤 성대한 수작을 부리는 거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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