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46화
“히익!”
고우길의 용천보검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자신의 숨통 앞을 스치고 지나가자 하오문도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약 일각 정도 싸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죽음이 눈앞에 드리워졌는지 셀 수도 없었다.
‘절대로 이류무인이 아니야!’
‘빌어먹을…… 내가 살아서 돌아가면 분타에 있는 개새끼들을 모조리 박살 내 버리겠다!’
고우길의 초식은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난파칠식이 뛰어난 검법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난파칠식만큼 그들이 하오문에서 배운 검법 역시 충분히 훌륭한 검법이었다.
비록 대문파에서 가지고 있는 절정의 무공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그건 난파칠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감히 대응도 못하고 계속해서 피하기에 급급한 것은 순전히 고우길이 난파칠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과 절묘하게 운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싸움이 일어나고 세 사람의 검은 단 한 번도 부딪친 적이 없었다.
이것은 하오문도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이 고우길의 초식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어떻게든 힘 싸움으로 끌고 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검을 부딪치려 했었다.
그러나 고우길은 이런 하오문 무사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검이 부딪치려고 하면 뻗어 내던 초식을 거둬들이거나 변초로 운용해서 피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의도로 부상을 각오하며 막무가내로 들이쳐 보기도 했다.
그러면 고우길은 진퇴가 빠른 난화보의 장점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서서 피하고, 무사들의 몸에 조금씩 자상을 늘려 갔다.
이런 초식의 운용은 감히 이류무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백히 일류무인의 능숙한 초식 운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이들에게 고우길을 상대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라면 함께 죽자고 달려드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이 있지만…… 자신의 목숨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오문 무사에게 동귀어진을 펼칠 배짱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동귀어진을 펼치라는 듯이 눈치만 줄 뿐, 자신이 펼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고우길은 두 명의 하오문 무사를 상대하며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분명 이들의 무공은 불과 일 년 전의 자신에 비하여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펼치는 합공을 너무 쉽게 상대하고 있었다. 아니, 쉽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초식이 풀려 나가고, 예측대로 상대가 움직이는 느낌은 대단히 짜릿했다.
확실히 자신이 저들과 전혀 다른 수준의 고수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이게 다 도련님을 따랐기 때문이야!’
일 년 전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분명히 일류고수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말이다.
강호에 대한 꿈을 버리고, 상단의 무사가 되어 생계를 이어 나갈 생각만 하던 고우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일검단악이라는 별호도 생겼고, 다시 강호에 대한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언젠가는 먹고살기 위해 강호를 종횡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강호행을 하기 위해 강호로 나오고 싶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조만간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도련님께 충성을 다해야지! 그러면 일류고수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될 수도…….’
이런 흐뭇한 생각을 하며 이제 슬슬 싸움의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우길은 잠시 뒤로 빠졌다가 다시 난화보를 펼쳐 하오문 무사들에게 접근했다. 이번에 펼친 난화보는 지금까지 펼쳤던 것보다 한 단계 이상 더 빠른 움직임이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보여 줬던 수준의 움직임만 상정했던 하오문 무사들은 순식간에 자신들의 간극으로 들어온 고우길의 모습에 대경실색했다.
황급히 고우길의 간극 밖으로 몸을 빼내려고 하며, 검으로 어떤 공세든지 대응할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고우길은 이전까지 난파칠식 중 세 번째 초식까지만 사용했던 것과 달리 네 번째 초식을 펼치는 중이었다.
기묘한 호선을 그리며 빛살처럼 날아온 고우길의 용천보검은 궤적을 막으려고 하는 하오문 무사의 검을 피하며 그의 손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서걱!
“끄아아악!”
검을 든 손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고, 손이 잘린 하오문 무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동료의 손목이 잘린 것을 본 하오문 무사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도, 도망치자!’
둘이서도 감당할 수 없었던 고우길이다. 그러니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다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곤 도주를 선택한 것이다.
도주하려고 등을 돌려 불과 두 걸음을 걸었을 때, 그의 옆에서 불쑥 나타난 고우길이 방금 전 하오문 무사처럼 그의 손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아악!”
결국 그 역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동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하오문 무사를 바라본 고우길은 고르게 숨을 내쉬며 용천보검에 뭍은 피를 털어 내고 멋지게 한 바퀴를 돌리며 검집에 납검했다.
‘해냈다!’
두 명의 이류무인을 쉽게 상대했다. 이제 이류무인이라면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곤죽이 된 열두 명의 하오문도들 사이에 풍백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풍백은 그를 보며 전음을 보냈다.
[너무 오래 걸렸군요.]
그 말에 고우길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무려 두 명의 이류무인을 압도하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빠르게 결판을 내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연이어 들려온 풍백의 말에 고우길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에게 풍백은 사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의 칭찬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풍백은 단지 자신을 기껏해야 교관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풍백 역시 군부에서 무공을 가르쳐 준 사람을 교관이라 불렀으니까.
풍백은 가벼운 걸음으로 손목이 잘린 하오문 무사 중 처음에 말했던 무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잘린 팔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열었다.
“이제 천천히 얘기 좀 합시다.”
“의, 의원부터 좀…….”
“그러면 대답을 빨리 해 주면 되겠군요. 이렇게 있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풍백의 모습에서 상방 후계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상인이라지만, 이렇게 눈앞에 팔이 잘린 사람을 두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웃고 있는 풍백의 모습이 살벌하게 느껴졌다.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살벌한 풍백의 모습 때문인지 하오문 무사의 이가 덜덜 떨려 왔다.
“먼저 어디에서 오신 건지 말씀 좀 해 주시지요?”
“그,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그냥 확인을 하려는 것뿐이에요, 하오문 무사님?”
풍백의 말에 하오문 무사의 눈이 커졌다. 입을 열지는 않았으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입을 벙긋거리는 하오문 무사를 보고 풍백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디서 오셨습니까?”
“어…… 방금 다 알고 말씀한 것이 아니신지…….”
“그게 아니지요. 먼저 제가 묻는 것에 대해 대답을 해 주시는 게 먼저 아닙니까?”
“……하오문에서 온 것이 맞습니다.”
미소가 진해졌다.
“그러면 다음 질문, 저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던 건가요?”
“하오문 무한 지부로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저를 누구에게 넘기기로 한 건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받고…….”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얘기를 해 주지 않아도 대충 짐작은 하잖아요. 설마 저도 짐작할 수 있는 걸 몰랐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그게 아니라…… 지부에서 직접 거래를 할 수도 있지만, 인계할 장소로 다시 데리고 움직일 수 있기에…….”
“아! 그렇군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오문 무사는 잘린 손목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풍백을 바라봤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풍백의 눈빛을 보면, 정말 그가 이걸 몰랐을까 싶었다. 지금 풍백의 눈빛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보이는 눈빛이 아니었으니까.
마치 어디까지 진실한 이야기를 하는지 시험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풍백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을 해 봐야겠군요.”
“…….”
“의뢰를 한 사람은 누굴까요?”
“그건 진짜 모릅니다! 아마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부장님이거나 아니면 의뢰를 받은 당사자만 알고 있을 겁니다! 저희는 그냥 지시를 받고…….”
풍백은 하오문 무사가 열심히 떠드는 걸 심유한 눈으로 듣고 있었다.
‘진짜인 것 같네.’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하오문이라고 하더라도 무력을 담당하고 있을 이류무인이 직접 의뢰를 수렴하고 수행하기 위해 나올 거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풍백은 고개를 돌려 하오문 무인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믿어 드리지요.”
“그, 그럼…….”
“네, 가세요.”
풍백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하오문 무사가 서둘러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곧 풍백의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그냥 가려고요?”
“……네?”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 같은 동료 아니었나요?”
“아…….”
“설마 저보고 이 사람들을 깨워서 보내 달라는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하오문 무사는 황급히 움직이며 기절한 하오문도를 모두 깨워서 객잔을 떠났다.
그걸 지켜보던 고우길은 하오문도가 모두 떠나자 풍백에게 물었다.
“저들을 따라가 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하오문도니까 하오문으로 가겠지요.”
“그러면 의뢰한 사람은 어떻게 찾으실 건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아마 하오문은 일이 실패로 돌아간 걸 알게 되면 둘 중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의뢰를 포기하거나,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한번 찾아오거나.
‘당연히 의뢰를 포기하겠지.’
아마도 하오문은 풍백이 풍진개와 함께 있던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풍진개가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고 혼자 있는 틈을 노렸던 것일 테고.
그리고 현재 무한에는 온갖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상방의 후계자인 풍백을 납치하려던 사실이 들통나면 그냥 골치 아픈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하오문은 더 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습격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나야 고맙지.’
다시 습격한다면 아마도 지부장도 있을 테니, 의뢰인이 누군지 알아보기 손쉬웠다.
하지만 예상대로 더 이상 습격이 없다면…….
‘하오문을 두드려 봐야 하나?’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요란하게 하오문을 박살 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은밀히 방문하여 지부장만 조용히 데리고 나오는 것이 좋은 선택 같았다. 대신 지부장의 입을 열려면 조금 과격한 수단을 동원해야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면구를 챙겨 왔는데, 어쩌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회에 참석했다가 밤이 깊으면 다녀오는 걸로 하지.’
풍백은 무혈채를 보내서 자신을 노렸던 놈들과 하오문에게 의뢰를 맡긴 놈들이 서로 다른 놈들이라 예상했다.
무혈채에게 맡겼다가 실패한 일을 하오문에게 맡긴다?
이렇게 계획을 짜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대체 어떤 놈들이 나를 노리는지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