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44화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날은 풍백이 객잔을 잡고 이틀 후였다.
배에서 내린 이후 미친 듯이 달린 결과 창룡봉무지회가 열리기 이틀 전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보통 이렇게 시간이 남으면 그 지역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정상이다.
무한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뭐니 뭐니 해도 황학루를 손꼽게 된다.
삼국시대에 지어진 황학루는 강남 삼대 명루 중 하나로 손꼽히고, 과거부터 명성이 대단한 시인, 묵객(墨客)이 찾아왔던 곳이다.
그렇기에 처음 황학루를 방문하게 되면 가장 높은 오 층에 올라 최호(崔顥)의 황학루라는 시를 읊는 것이 하나의 의식처럼 치러지는 곳이다.
이런 온갖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많은 곳이기에 원래도 황학루는 평소에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창룡봉무지회를 위해 중원 각지에서 온갖 사람이 참석하다 보니 황학루에 오르고 싶으면 몇 시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것은 비단 황학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한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동호는 당연히 배를 타고 나가 멋진 경관을 둘러보며 술 한잔하는 것이 사람들의 바라는 소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옆에 연인이 함께하거나 하다못해 기예를 파는 기녀가 금(琴)을 탄주(彈奏)하고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동호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배를 띄워 시끄럽기만 했다. 심지어는 배들이 물 위에서 부딪치며 시비가 벌어지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쿵!
“야! 눈깔은 없으면 허전해서 끼우고 다니는 거냐? 똑바로 눈뜨고 다녀!”
“그러는 너는 눈깔 대신에 뭘 끼우고 다니기에 앞을 못 보는 건데?”
“이 새끼 말하는 본새 좀 보소! 너 어디 사는 놈이냐?”
“네놈 집구석 안방에서 산다!”
“이 자식이!”
사공끼리 시비가 붙어 배 위에서 드잡이하니, 결국 배가 뒤집히며 물놀이를 나왔다가 물만 먹고 구조되는 사람들도 나오는 판국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풍백 일행은 그냥 객잔을 나서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객잔에 갇힌 꼴이 된 풍진개는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차피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녹수장에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뭐하려고 이렇게 몰려드는 건지.”
풍진개의 말처럼 창룡봉무지회는 초대장이 없으면 녹수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그러나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구파일방과 몇몇 문파가 불참하기는 하지만,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지 않는 후기지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향후 강호 정파를 이끌어갈 후기지수는 이곳에서 거의 대부분 볼 수 있었다.
또한 행사 중 하나인 비무대회를 통해 새로운 신진 고수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이 모든 후기지수가 밤거리로 쏟아져 나오니 온갖 이야깃거리를 직접 생생히 목도할 수 있기도 했다.
흔치 않은 일이니만큼 어찌 보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정말 녹수장에 가지 않을 건가?”
풍진개의 물음에 풍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늘 하필이면 뒤로 미룰 수 없는 약속이 있어서요.”
“거참 이상한 사람이구만. 하필이면 창룡봉무지회 개회식이 열리는 날에 약속을 잡다니.”
그렇다.
풍백은 오늘 열리는 창룡봉무지회의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창룡봉무지회 개회식에서는 매해 오대세가 중 하나에서 명숙이 참석하여 개회사를 하는 것이 전통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순한 명숙이 아니라, 무려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가주가 참석하여 개회사를 한다고 한다.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는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는 찬사를 받는 세가였다.
과거부터 정파의 머리 역할을 도맡아서 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가 각 세대마다 나오는 제갈세가다. 그렇기에 제갈제가는 언제나 오대세가 중 하나의 축으로 자리를 공고히 잡을 수 있었다.
또한 제갈세가는 강호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남들이 기피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다 몰락해 가는 당가타를 끝까지 지원해 주려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곳도 바로 제갈세가였다.
그러나 군웅회의 협의에 따라 당가타에 대한 지원이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제갈세가는 지금도 당가타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지속적인 지원을 해 주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었다.
이런 제갈세가가 창룡봉무지회의 개회사를 맡는 이유는 이곳이 바로 제갈세가가 자리하고 있는 호북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개회식은 참석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제갈세가주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 않을 텐데.”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안타깝습니다.”
“쩝……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우리만 다녀오도록 하지.”
“그래도 저녁에 있을 연회에는 참석할 생각이니, 거기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럼 연회에서 보자고.”
말을 마친 풍진개가 서둘러 녹수장으로 떠났다.
채설지는 조금 전에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바로 따라갔어야 했는데, 풍백이 개회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서 잠깐 얘기를 하느라 쫓아가지 못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채설지이니, 무슨 사고를 치기 전에 잘 감시해야 했던 풍진개는 서둘러 녹수장으로 달려갔다.
풍백은 풍진개가 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제갈세가주가 있다고 해서 안 가는 거요.’
오대세가의 말석인 서문세가주 서문자건만 하더라도 초절정고수였다.
제갈세가가 아무리 무공보다 뛰어난 머리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것이 제갈세가의 무공이 낮다는 결론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문세가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갈세가이니, 당연히 제갈세가주 역시 적어도 초절정고수일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 맞았다.
서문자건은 풍백을 보자마자 그가 일류고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물론 이제 절정고수가 된 풍백이기에 그가 이전처럼 자신의 무공 수위를 알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는 했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은 일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나았다.
제갈세가의 뛰어난 머리와 식견이라면 서문자건보다 더 뛰어난 안목을 자랑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저녁에 있을 연회에는 참석해야지.’
제갈세가의 가주라는 바쁜 위치를 생각하면 그가 연회까지 참석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창룡봉무지회에 초대해 준 서문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려면 연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쉬면서 무공 수련이나 해야지.’
풍백은 객잔 별채로 다시 돌아갔다.
별채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으니 고우길이 점심 식사를 가져왔고, 식사 후에는 고우길의 무공 수련을 손봐 줬다.
고우길은 어느새 난파칠식의 여섯 번째 초식이자, 후삼식의 두 번째 초식을 전수받고 있었다.
“하앗! 핫!”
기합과 함께 난파칠식을 수련하고 있는 고우길을 보며 풍백은 미간을 찌푸렸다.
딱히 고우길이 초식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부족해…….’
고우길은 이제 일류고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건 대단히 빠른 속도였다.
불과 일 년여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작 이류무인 초입에 불과했던 고우길이었다.
그런데 풍백에게 난파칠식과 난화보를 전수받으면서 빠르게 기량이 상승하여 지금은 이류무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럼에도 풍백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류무인 수준으로는 여기저기 써먹기가 애매하단 말이야.’
현재 고우길의 가장 부족한 점은 무공이나 초식이 아니라 내공이었다.
이미 초식에 대해서는 풍백이 제법 자세히 풀어 줬기에 운용하는 방법이 많이 늘었다. 이 정도면 초식 운용만 봐서는 일류고수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류고수라 칭하지 못하는 건, 고우길이 펼치는 무공을 받쳐 줄 내공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공은 기껏해야 이류무인에 딱 걸맞은 수준이었다.
풍백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에 있는 황금불상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빠르게 털어 버렸다.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고우길을 그 정도로 믿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우길이 황금불상의 효용을 느끼고 나면 어떤 생각을 가질지 몰랐다.
‘영약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정작 영약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고우길에게 넘겨줄 것은 없을 것이다. 영약이 생기면 자신이 먼저 먹을 테니까.
가볍게 입맛을 다시던 풍백은 다시 무공 수련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문득 객잔에서 별채로 들어오는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별채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을 본 풍백이 의외라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흑도패? 아니지. 이류무인이 두 명이나 포함된 걸로 봐서는…… 하오문이겠군.’
흑도패가 이류무인을 데리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무한에서 정파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열리는 중이다.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면 사파가 무한으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러니 풍백은 저들이 하오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여기는 저희가 빌린 별채입니다만…….”
“여기 절강성 상산현에서 온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는 놈이 있을 텐데? 너냐?”
풍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혈채에 이어 두 번째로 자신을 찾는 놈들이 나타났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데 저를 찾으시는지…….”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고, 너를 좀 보자는 분이 계시니 같이 가 줘야겠다.”
이미 풍백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처럼 쉽게 말하는 사내였다.
풍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이쪽으로 모시고 오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이 씨벌넘아! 어르신이 가자고 하면 닥치고 따라올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아무래도 옆에 있는 호위무사 때문에 간덩이가 부어 버린 것 같습니다. 좀 맞다 보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요?”
다른 사내가 옆에서 간사한 목소리로 열심히 뒷구멍을 핥듯이 말했다.
그러자 흡족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린 사내가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십삼조하고 저놈을 맡을 테니, 너희가 저놈 좀 잡아 놔라.”
“알겠습니다!”
이류무인 두 명이 고우길에게 다가가고 나머지 열두 명의 사내가 풍백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풍백은 고우길을 바라봤다.
[되도록 죽이지는 말고 제압을 해 보시오. 다칠 것 같으면 죽여도 괜찮고.]
고우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에게 다가서던 사내들 중 하나는 풍백이 전음을 보내는 중이라는 걸 모르고 말했다.
“호위무사를 쳐다봐도 소용없어. 내가 조언을 하자면,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도록 해. 괜히 팔이나 다리를 뻗었다가는 부러질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겁을 할 상황이었으나 풍백은 오히려 사내들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 죽였다가는 무슨 소리를 듣게 될지 모르니 죽이지는 못하겠고, 죽이지 못한다면 무공을 익힌 걸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겠네.’
풍백이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우드득!
묘하게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