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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43화 (15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43화

풍백의 말에 채설지가 그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의외였다.

채설지가 자신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걸 밝히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만, 아직 그녀가 어떤 목적으로 이러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채설지가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채설지는 단 한 번의 전음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풍백에게 대단히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채설지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본 임범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뭐야? 한번 해보자고?”

그러자 다른 무한사룡도 한마디씩 거들며 이죽거렸다.

“그래도 상대가 여자니까 얼굴은 조심하라고.”

“하여튼 요즘은 은근히 무인을 무서워하질 않더라고. 한번 개처럼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우리가 누군지 잘 몰라서 무모한 용기를 내는 것 같은데?”

막대린의 말에 임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이런 건가? 귓구멍 파고 잘 들어. 내가 바로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녹수장의 소장주야. 알아?”

“흐흐흐! 나는 건청파의 소문주지.”

“우리 무관이 무한에서 가장 큰 무관이라는 걸 아는가 모르겠네?”

우금성까지 약간의 거짓말을 더하며 가슴을 내밀었다.

어이가 없는 현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지홍은 포목점 아들이라서인지 조용했다는 정도였다.

풍백은 이런 임범성과 그 일당들을 보며 화가 난다기보다 자신이 창피해졌다.

이전까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누가 물어도 크게 창피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의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개망나니 짓을 보여 주고 있으니 과거 개망나니였던 자신의 모습이 번뜩이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지금 자신의 집안을 들먹이는 모습은 풍백 역시 적가상방을 내세웠던 그의 모습과 똑같았다.

이러는 사이, 임범성은 채설지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로 손을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뻐해 줄 때 가만히 있어. 그러면 내 손에 상처를 입힌 것 정도는 그냥 봐줄 수…… 으아악!”

말을 하던 임범성이 돌연 비명을 질렀다.

이제 채설지를 어떻게 데리고 놀지 온갖 음흉한 상상을 하던 세 사람이 깜짝 놀라 임범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임범성의 새끼손가락 하나를 꺾고 있는 채설지의 가냘픈 손이 보였다.

가냘프게 보이는 것과 달리 그녀의 손은 야무지게 임범성의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또각!

뼈가 부러지는 것치고는 작은 소리였지만, 정작 손가락이 부러진 임범성에게는 천둥이 친 것처럼 느껴졌다.

“까으흑!”

요상한 비명과 함께 임범성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무한에서는 온갖 소란과 싸움을 벌이고 다녔던 임범성이지만, 어딘가가 부러졌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나 싶어,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임범성이 쓰러지자 화들짝 놀란 우금룡과 막대린이 욕을 하며 식탁에 뛰어올랐다. 당장 채설지를 덮쳐서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모양새였다.

두 사람이 식탁으로 뛰어오르는 걸 본 채설지가 식탁의 아랫부분을 가볍게 찼다.

그러나 가볍게 찬 것과 달리, 식탁은 힘이 센 장사가 식탁을 뒤집은 것처럼 벌컥 뒤집히는 것이 아닌가.

우당탕!

예상치도 못하게 식탁이 뒤집히자 우금룡은 그대로 식탁 위에 있던 음식물을 뒤집어쓰며 식탁에 깔렸다.

막대린은 경공을 펼쳐 우금룡과 같은 꼴이 되는 건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막대린의 앞으로 채설지가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마혈을 제압하고, 식탁에서 기어 나오는 우금룡은 발로 혈도를 짚었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움직임과 혈도를 점하는 모습을 본 요지홍은 채설지가 사실 고수라는 걸 이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히이익!”

기이한 비명 소리를 내며 네 발로 도망치려던 요지홍은 허리춤이 뜨끔해지며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혈도를 제압당해 본 요지홍이었다.

이 모습에 바닥에 쓰러졌던 임범성이 벌떡 일어나며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을 호기롭게 뽑았다.

“이년!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베어 버리겠다!”

사실 이런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 와서 채설지의 정체를 밝혀 봤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소리친 이유는 행여나 채설지가 유명한 정파의 제자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채설지가 자신의 사문을 밝히면, 지금까지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사죄를 하며 물러설 생각이었던 것이다.

‘싸웠다가는 내가 질 수도 있어!’

채설지가 보여 준 것은 별것 없었다.

한 번의 발놀림으로 식탁을 뒤집은 것과 순간적인 보법으로 거리를 좁히며 막대린과 우금룡의 혈도를 제압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임범성은 채설지가 보인 수법을 감히 따라 할 자신이 없었다. 특히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던 보법은 순간적으로 시야에서 놓쳤을 정도였다.

그런데 채설지는 임범성의 외침에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그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방금 전 보였던 것처럼 빠른 보법은 아니었기에 임범성의 눈에도 채설지의 움직임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

‘망할…… 죽어!’

임범성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검을 휘둘렀다. 이미 그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확인했기에, 임범성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초식을 펼쳤다.

하지만 채설지는 검이 닿는 간극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더니, 수장을 휘둘러 검을 든 임범성의 손목을 때렸다.

딱!

“아윽…….”

일수에 손목이 부러지며 검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임범성 역시 마혈이 제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정도면 다행이네.’

임범성이 손가락과 손목이 부러졌지만, 무혈채를 상대로 피바람을 일으켰던 채설지의 손속을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채설지는 아직 손을 쓰는 걸 멈춘 것이 아니었다.

혈도가 제압된 무한사룡을 끌어다가 한곳에 모아 놓더니, 돌연 허리에 차고 있던 채대(彩帶)를 푸는 것이 아닌가.

“저기…… 채 소저?”

풍백이 그녀를 부르자 채설지가 그를 한 번 보더니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한사룡을 향해 매섭게 채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짜악! 짜악! 쫘아악!

“악!”

“으악!”

강호 고수가 채대에 내공을 담아서 휘두르는 것은 채찍과 같았다. 실제로 강호에서는 채대를 병기로 사용하는 여고수들이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무한사룡이 채대를 맞는 부위는 옷이 찢어지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짝! 쫘악! 짜자작!

“아악!”

“그, 그만! 윽!”

“사, 살려 주…… 아흑!”

무한사룡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과 앓는 소리를 내며 자비를 구걸했다. 그러나 채설지는 여전히 냉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채대를 휘두를 뿐이었다.

채찍으로 맞는 것처럼 채대로 맞다 보니 살가죽이 찢어져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채설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무한사룡에게 얼마나 살벌하게 다가오는지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거의 일각에 걸쳐서 채대를 휘두른 채설지는 마치 상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발끝으로 무한사룡을 툭툭 건드려 봤다.

그리곤 아직 부족하다는 듯이 다시 채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살벌한지 점소이가 나왔다가 새파랗게 질려서 뒷걸음질을 쳤다.

다시 일각 정도 채대를 휘두르고 나서야 채설지가 만족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은 채설지가 떨떠름한 시선을 던지는 풍백과 눈을 마주치고는 마치 그의 말처럼 적당히 했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풍백은 골이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쥘 뻔했다.

다른 놈들은 집어치우더라도, 임범성은 녹수장의 소장주였다. 그리고 녹수장은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장소였고 말이다.

임범성이 녹수장으로 돌아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적가상방으로 돌아가야 하나?’

풍백은 이제 어떻게 하냐는 듯이 풍진개를 바라봤다.

그러나 풍진개는 이런 소란이 일어난 뒤에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풍백의 시선에 풍진개가 히죽 웃더니 바닥에 쓰러져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는 무한사룡에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쯧쯧…… 무한사견(武漢四犬)에 대해 대충 알고는 있었다만 직접 보니 더 가관이구만.”

무한사룡은 풍진개의 말에 뭐라 반응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붓는 중이었다.

‘뭐, 뭐? 무한사견!’

‘우리가 개새끼라고!’

‘너희들 얼굴 다 기억했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실제로 무한사견은 무한 사람들이 이들의 뒤에서 조롱하기 위해 부르는 별호였다. 임범성 일행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한사룡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무한사견이란 별호가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개념 없는 놈들을 보니 덥네, 더워.”

혀를 찬 풍진개가 너스레를 떨며 장포를 벗었다.

그리고 장포를 벗은 풍진개의 허리에 요대(腰帶) 대신 더러운 오색 끈으로 여덟 개의 독특한 매듭이 지어져 있는 것이, 쓰러져 원독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무한사룡의 눈에 들어왔다.

‘요대는 어디에 팔아먹고 더러운 끈으로…… 헉’

그걸 본 임범성이 본능적으로 욕부터 내뱉다가 어느 순간 저 끈과 매듭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인지했다.

“개, 개, 개방?”

넋이 나간 듯한 임범성의 말에 풍진개가 히죽 웃었다.

“그래도 눈까지 병신은 아니구나.”

인정하는 풍진개의 말에 나머지 무한사룡도 풍진개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 그러고 보니 코가 빨갛게 주독이 올라있어!’

‘진짜 풍진개라고?’

‘……진짜 뒈졌다!’

피투성이인 무한사룡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무려 개방이다. 그리고 그 개방의 차기 방주가 될 후개가 눈앞에 있었다. 풍진개가 강호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모를 수가 없었다.

무한에서 제법 방귀를 뀐다고 하는 녹수장과 몰락해 간다는 평은 있어도 아직은 충분히 건재한 건청파가 힘을 합쳐도 감히 개방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비록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맞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자신들이 보였던 행동이 얼마나 정파의 이름을 깎아내리는 짓이었는지 알고 있기도 하였다.

임범성이 아픈 몸으로 힘겹게 일어나며 떨리는 손으로 포권을 올렸다.

“푸, 풍진개 대, 대협을 뵙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무한사룡도 그를 따라 일어나 포권을 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풍진개가 손을 흔들었다.

“굳이 너희들에게 인사를 받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런 난장이나 치고 다니는 너희들의 인사 따위를 받아서 뭐하겠어?”

싸늘한 풍진개의 말에 무한사룡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 여자의 미색에 홀려서 이런 짓을 하고 다니니 재미있더냐?”

“그, 그게 아니고…….”

“굳이 거짓말을 늘어놓으려고 머리를 굴릴 필요는 없다. 말했듯이 너희가 무한에서 벌였던 짓이 내 귀에 들어올 정도였으니, 무슨 거짓말을 하더라도 통하지는 않을 테니까.”

풍진개의 말에 무한사룡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각자의 문파와 가문에서는 이들이 어느 정도 망나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각 문파와 가문의 후계자라는 이름으로 묵인되어 왔다.

자기 가문과 문파의 장자(長子)라는 이유로, 또는 같은 혈육이라는 이유로 은연중에 보호를 해 준 것이다.

“그렇게 여자를 농락하고 삶을 망치면서 풍류를 즐기는 거라 말하고 다녔겠지? 그래서 행복하더냐?”

풍진개의 질문에 네 사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풍진개가 자신들이 벌인 짓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너희는 스스로 죄를 알고 있으니, 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겠다.”

무한사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 썩 꺼져라. 계속 그 더러운 면상들을 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나서 밥을 먹을 수가 없구나.”

냉혹한 풍진개의 말에 기겁한 무한사룡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풍백이 물었다.

“이렇게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짓을 벌였던 놈들이니까 감히 함부로 수작질을 부리지는 못할 거야.”

“그렇군요.”

“듣자 하니 어차피 저놈들이 무한에서 온갖 짓을 벌이는 바람에 관청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거든.”

“아…….”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면 개방에서 슬쩍 찔러 넣어 주면 되는 일이고.”

아마 무한사룡이 벌였던 일들에 대해 알려진다면 저들의 가문과 문파에서 받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가뜩이나 몰락 중이란 평을 받던 건청문의 대외적인 평판은 땅에 처박힐 것이고, 우금룡의 무관이나 요지홍의 포목점은 당장 내일부터 망할 것을 걱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녹수장은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지만, 이번 일로 인하여 임범성의 소장주 자리는 확실하게 동생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덤으로 네 명은 모두 관부의 옥살이를 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저놈들이 저지른 일들은 이미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어. 그러니 그 대가도 공정히 받아야지.”

무한사룡으로 인하여 신세를 망친 여인들이 많았다.

무려 정파라는 이름 아래 있는 자들이 사파나 벌이는 짓을 벌였으니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야 했다.

말을 마친 풍진개의 눈에 음식을 들고 어색하게 서 있는 점소이가 들어왔다.

“음식이 나왔구나! 이제 짜증 나는 놈들도 도망쳤으니 본격적으로 먹도록 해 보자!”

이미 열간면을 다 먹고 두부 요리의 절반을 해치웠으며 사계미탕포도 거의 다 먹은 풍진개가 입맛을 다시며 외쳤다.

배에 아귀(餓鬼)라도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음식을 보고 환호하는 풍진개의 모습에 점소이가 얼른 음식을 가지고 왔다.

풍백은 죽엽청과 음식을 입에 쏟아붓고 있는 풍진개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채설지는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고 말이다.

‘하긴, 사파가 원래 보여 주는 손속을 생각하면 충분히 사정을 봐준 것 같기는 하네.’

가볍게 한숨을 내쉰 풍백도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 *

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 다른 지역까지 전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마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사안에 따라 천차만별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호북성에서 절강성 상산현까지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전해지는 데에는 불과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건 정말 놀라운 속도였다.

호북성에서 절강성까지 바삐 움직여도 며칠은 걸린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빨리 소식이 전해진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이렇게 전해진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상산현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전해진 이야기를 듣자마자 처음에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아무리 요즘 적 공자가 정신을 차렸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누구? 적풍백이? 푸하하하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하도록 해. 상대는 무려 상산현의 개망나니라고. 어디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듣고서 그런 말을 하나?”

“내가 적풍백이가 태어나서 처음 술 마실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왔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놈이 아무리 정신을 차렸다고 하더라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얘기야.”

상산현에서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이 믿지 않았다.

전해진 이야기는 간단했다.

강서성에서 호북성으로 향하는 장강상운의 배가 수적의 습격을 받았다. 그 수적이 무려 장강수로십팔채의 무혈채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 수적이 딱 한 사람만 희생시키면 그냥 물러가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희생자를 찾기 위해 격렬히 논쟁하는 가운데,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내가 수적에게 잡혀갈 테니, 서로 다툴 필요가 없소.”

무혈채에 잡혀가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를 희생하며 나선 젊은이의 모습에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크게 감동했다.

바로 이 젊은이가 바로 적가상방의 후계자인 적풍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배에는 개방의 유명한 협객이자 후개인 풍진개가 타고 있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단한 미모의 여고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풍백의 희생정신에 크게 감명을 받아 무혈채와 치열하게 싸워서 쫓아냈다.

이후 여고수에게는 은하협녀(銀河俠女)라는 별호가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풍백에게도 별호가 하나 붙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별호는 바로…….

“뭐? 인의공자(人義公子)?”

적호경은 한창 바쁘게 일하다가 갑자기 집무실에 뛰어 들어온 진덕양의 얘기에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지금 그거 우리 백아를 말하는 것 맞나?”

“그렇다니까요.”

적호경은 들고 있던 붓도 내려놓고 미간을 꾹꾹 눌렀다.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백아가 정신을 차렸다고 하지만, 자기를 희생해서 무사들과 승객을 수적에게서 구하려고 했다고?”

“저도 믿기지 않기는 한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우리 백아라면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승객의 등을 떠밀 것 같은 느낌인데?”

지금까지 풍백은 확실히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여 줬다. 적가상방이 중견 상방, 나아가 대상방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모두 마련한 것이 바로 풍백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과연 풍백이 자기를 희생해서 남을 도와줄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확실히 개망나니였던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풍백이지만, 그렇다고 인의공자라는 별호로 불릴 정도로 자신을 희생해서 누군가를 도와줄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슬슬 상방의 운영에 본격적으로 참여시켜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꽤나 계산적인 모습을 보여 줬었다.

그런 풍백이 자신을 희생하여 누군가를 도와준다니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전해진 이야기는 뭔가 사실과 거짓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실제로는 수적이 풍백을 노리고 습격을 한 것이고, 풍백은 알려진 것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뭐…… 비슷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적호경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괜한 소문이 돌지 않도록 신경을 써 주게. 어디서 그런 헛소문이 흘러나왔는지도 확인을 해 보고.”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백아의 과거를 너무 미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슬슬 들려오는데, 이런 헛소문까지 퍼지면 오히려 백아에게 좋을 것이 없을 테니까.”

“그래야죠. 이제야 슬슬 백아의 평판이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중인데요.”

그렇게 말한 진덕양이 집무실을 나갔다.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건 오판이었다.

불과 며칠 만에 진덕양이 달려 들어와 소리쳤으니까 말이다.

“그게 모두 사실이랍니다!”

“뭐? 그럴 리가…….”

“진짭니다. 제가 장강상운에 사람까지 보내서 알아봤는데, 조금 미화가 된 부분은 있지만 진짜 백아가 나서서 자기를 잡아가라고 했다던데요.”

진덕양의 말에 적호경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멍하니 있던 적호경이 이내 소리쳤다.

“아니, 이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 미련한 놈이…….”

두 사람은 욕을 하려다가 이내 뭐라 욕도 못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분명 풍백이 위험한 짓을 벌이려고 했다는 부분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려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적에게 자신이 잡혀가려고 했다니, 이 무모한 짓을 벌인 이유가 뭔지 확실하게 알아보고 치도곤을 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뭔가 뿌듯한 감정도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풍백이 처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자신을 잡아가라고 나선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더욱 뒤로 숨어서 피하려고 할 테니까.

두 사람은 동시에 앓는 소리를 내다가 곧 진덕양이 말했다.

“확실한 건…… 백아가 돌아오면 크게 혼을 내야겠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끄응. 망할…… 잘했다고 등도 두드려 줘야겠군.”

평소에 욕을 거의 하지 않는 적호경이 거친 말을 토해 내는 모습에 진덕양은 슬쩍 웃었다.

“흐흐! 형님은 참 좋겠수다.”

“뭐가?”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웠으니까 말입니다.”

어이가 없었다.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망나니라 욕을 먹던 풍백이었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가르쳐도 듣지를 않던 풍백이었고.

“잘 키우기는 뭘 잘 키워? 내가 뭘 가르친다고 배우기나 하던 아이던가?”

“꼭 뭔가를 가르쳐야 잘 큰답니까? 다 형님이 바른 모습을 보여 주니 우리 백아도 딱 정신을 차리자마자 인의라는 것을 깨닫고 직접 행동으로 보이는 것 아닙니까?”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적호경은 진덕양의 말에 뭐라 말하지 못했다.

그런 적호경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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