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40화
천잔사존과 만독존.
사파십대고수 중 이존(二尊)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나중에서는 칠대무신으로 손꼽히는 어마어마한 절대 강자들이고 말이다.
그중 천잔사존이 만든 백마성은 정확히 딱 백 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인원수이지만, 가장 약한 자가 절정고수라는 말도 안 되는 전력을 가진 곳이다.
백마성에 몸을 담고 싶으면 기존에 소속되어 있는 백마성 사람 중 하나를 지목하여 승리를 해야지만 몸을 담을 수 있는 독특한 곳이기도 했다.
서열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도전자가 거의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파에 속한 무인들이 백마성에 갖는 동경은 대단했기에 하위 서열의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전을 받아야만 했다.
덕분에 백마성의 하위 서열이 고정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독선장은 다른 의미로 유명했다.
이곳에서는 당연히 독공을 익힌 사람을 우대했는데, 굳이 독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의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면 독선장에 몸을 담을 수 있었다.
이런 특징으로 독선장은 천하에서 독에 대해서는 가장 해박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선장에서 병을 고치지 못한다고 하면 천하에 있는 그 어떤 곳에서도 고칠 수 없다는 칭송을 받았다.
물론 이런 칭송은 사파에 한정하여 받는 칭송이었다.
실제로 정파에서는 성수거(聖手居)가 독선장보다 더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하니까 말이다.
“이것만이 아니지. 역시 사파십대고수 중 삼귀(三鬼)가 세운 사사천문(邪死天門)도 엄청난 세력이고, 사괴 중 하나인 검괴(劍怪)가 수장으로 있는 검옥(劍獄)도 빼놓을 수 없지.”
사사천문은 사파십대고수 중 삼귀로 손꼽히는 세 명이 공동 문주로 있는 곳이다.
백마성은 전원이 뛰어난 고수이기는 하나 인원이 겨우 백 명에 불과했고, 독선장은 규모가 작지는 않아도 거대하다 말하기는 애매했다.
그러나 사사천문은 확실히 그 규모가 거대했다.
사도련과 비교를 하면 분명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사도련의 육 할 이상 규모를 가지고 있기에 사파에서는 사도련과 함께 두 개의 하늘이라 칭하기도 했다.
말을 하던 풍진개가 힐끔 채설지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분위기를 보면 뭔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풍진개는 슬그머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리고…… 유명암(幽冥庵)도 빼놓을 수 없지. 역시 사파십대고수 중 사괴에 포함되는 혈수마괴가 만든 문파니까.”
채설지의 귀가 쫑긋거렸다.
“언제부턴가 외부 활동이 별로 없지만, 유명암이 가지고 있는 힘은 어지간한 대문파는 손쉽게 무너뜨릴 수준이란 평가야.”
다리를 꼬고 있는 채설지의 다리가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혈수마괴가 사괴 중 하나라고만 알려져 있기는 한데, 사실 사괴 중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는 평도 있어.”
까딱까딱!
“들리는 말에 따르면 사괴를 넘어 삼귀도 그를 함부로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하더군.”
까딱까딱까딱!
“더 무서운 건 유명암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고수를 이끌고 혈수마괴가 본격적으로 나서면 사파십대고수의 순위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도 하지.”
까딱까딱까딱까딱!
풍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채설지를 바라봤다. 채설지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는 듯이 창밖을 보고 있었지만 불만이 있어 보였던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맹렬히 다리를 까딱거리는 모습이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보면 볼수록 어딘가 맹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풍백은 너무나 속이 훤히 보이는 채설지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풍진개는 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사파의 대표적인 문파만 말해도 이 정도야. 이외에도 흔히 대문파라 불리는 사파들 역시 역량은 충분하지.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라는 전제 조건 때문에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엄청 많군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여기에 만약 대상을 정파까지 합한다면 더 많지. 일단 당연히 구파일방의 절반 이상은 들어가야 할 것이고, 명문세가로 불리는 세가들 역시 대부분이 들어가야 하겠지. 그 외에 정파십대고수가 포함된 대문파까지 합치면 정파에서만 거의 스무 개 가량의 문파가 쏟아진다.”
“흠…….”
“그러니 적제가 말한 기준이 너무 낮아서 굳이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거야.”
“하하…… 그렇군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는 풍백을 바라보던 풍진개가 물었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물어본 거야? 적가상방이 갑자기 멸문이라도 당할까 봐?”
비실비실 웃으며 말하는 풍진개였다.
풍진개의 말이 농담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풍백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어도, 멸문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를 실제로 느껴 봤기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감정은 감정이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얘기를 끝까지 듣고 있었던 것은 풍진개가 이런 식의 질문을 던져 주길 바라서였다.
“솔직히 좀 무섭기는 합니다.”
“하하하! 적제도 쓸데없이 걱정거리를 만드는 사람이었구만. 상방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멸문을 당할 일이 어디 있겠나? 그것도 상산현 내부에 본가를 두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렇기는 한데…… 이번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서요.”
“이상한 사건? 뭔데?”
“저희 상산현에 백건상방이라고 있는데, 세가 조금 기울어 가고 있었기는 하더라도 저희 상산현에서는 규모가 컸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하룻밤 사이에 거주하던 모든 사람이 다 살해를 당한 채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모두? 생존자가 하나도 없이?”
“생존자는 없었고, 상방주님하고 총관님이 실종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두 분은 찾지를 못했고 말입니다.”
“목격자도 없고?”
“네.”
“관부에서 조사를 했을 것 아냐. 관부에서는 뭐라고 하는데?”
“마적단의 소행으로 보고 토벌대를 보내서 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적대가 상산현에 들어와 상방 하나를 멸문시켰는데 목격자가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풍백의 말에 풍진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네. 애초에 마적단이 현까지 들어와서 상방을 몰살시킨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무엇보다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고.”
“같은 상방이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좀 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창룡봉무지회를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었습니다.”
“음…….”
풍진개가 턱을 손가락을 쓸며 잠시 고민했다. 풍백이 말해 준 이야기만 들어도 이상하다는 걸 모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번 조사해 보라고 해 볼까?”
“어? 괜히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까지는…….”
“굳이 적제 때문이 아니야. 어차피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야. 오히려 상산현에 있는 분타에서 이번 일에 대해 아무런 보고가 올라오지 않은 것이 이상하네.”
개방이 정의를 위해 한 몸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이상한 방향으로 되바라진 사람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아마도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소홀히 했을 거라 생각한 풍진개는 백건상방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해 보라 지시하기로 결정했다.
풍백은 그런 풍진개를 살피며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비싼 모태주를 열심히 가져다가 바친 보람이 있었다.
이러는 와중에 마부석에 앉아 있던 고우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멀리 무한이 보이고 있습니다!”
목적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무한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육상과 수상을 통합하여 무려 아홉 개나 되는 성과 연결이 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한은 관광 명소로도 그 유명세가 대단했는데, 무한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동호(東湖)는 항주의 서호와 쌍벽을 이루는 명승지로 과거 유명한 시인이 방문하여 남긴 시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교통과 관광으로 유명한 무한이기에 전 중원에서도 특히나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성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장소로 무한이 선택된 배경에는 이런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원래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무한에서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니, 현재 무한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바글거리는 무한으로 마차 한 대가 들어섰다.
풍백이 타고 있는 마차였다.
“휘우…… 사람 봐라. 어마어마하게 바글거리네.”
풍진개가 마차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대로에서 마차가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풍백도 창밖을 내다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숙소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이군요.”
군웅지회는 초대장을 가지고 오면 숙소부터 식사까지 모두 준비를 해 주지만, 창룡봉무지회는 달랐다. 준비된 연회를 제외하고는 숙소도 알아서 준비해야 했고, 식사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참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번거로운 일이지만, 지역 상인들에게는 한몫 제대로 당길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에 객잔의 숙박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식사도 자리를 잡지 못해 길거리 노점상이 파는 간편한 음식으로 대충 때워야 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풍백은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자기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는 개방의 후개인 풍진개와 미래에 은발마녀라 불리는 채설지가 함께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두 사람에게 제대로 대접을 해 놓으면 나쁠 거 없었다.
특히 풍진개는 자신을 위해 마겁을 조사해 줄 사람이었다. 함께 하는 동안은 꾸준히 술로 배를 채워 주는 게 좋을 것이다.
사람을 간신히 헤집고 으리으리하게 생긴 객잔에 마차가 멈춰 섰다.
풍백은 원래 비싼 객잔에서 자주 머물곤 했지만, 오늘은 유달리 더 고급스런 객잔을 찾았다.
사람들이 쉽게 숙박을 결정하지 못할 만큼 비싼 객잔이라면 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차가 멈추자마자 객잔에서 점소이가 달려 나와 소리쳤다.
“잠깐만요, 잠깐만!”
“왜 그러지?”
고우길이 마부석에서 내리며 물었다. 점소이는 그에게 오히려 되물었다.
“식사를 하시려는 겁니까, 아니면 숙박을 하시려는 겁니까?”
“둘 다 할 거다.”
“아…… 죄송하지만 숙박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방이 없다는 말이 나올 거라 예상한 고우길이 대답했다.
“우리는 방이 아니라 별채를 사용할 예정이다.”
“죄송하지만 별채도 자리가 없습니다만…….”
“뭐? 별채도?”
원래 별채가 비싸기도 하고, 창룡봉무지회로 인하여 숙박비가 폭등해서 엄청난 가격일 텐데 그것마저 자리가 없다고 한다.
“허…… 일반 방도 없고?”
“그렇습니다. 창룡봉무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녹수장(綠水莊)이 여기 인근에 있는지라, 저희 말고도 주변에 있는 객잔 중에 남아 있는 방이 있는 객잔은 없을 겁니다.”
풍백이 고개를 내밀어 고우길에게 말했다.
“다른 객잔으로 가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말하기는 했으나 풍백 일행은 혹시나 싶어 주변에 있는 객잔들도 들러 봤다.
점소이의 말이 맞았다. 빈방이 있는 객잔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식사를 할 자리도 없어서 한 시진 정도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심가에서 무한 외곽으로 향했다. 외곽 지역으로 나갈수록 객잔 상태가 나빠졌지만, 어떻게든 객잔을 잡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쉴 수 있으려면 적어도 방 세 개 이상은 필요했다. 풍진개와 풍백, 채설지를 비롯하여 마부와 고우길까지 있었으니까.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방 세 개 이상을 잡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이거 여차하면 각각 다른 객잔에 방을 잡아야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걱정을 하던 풍백 일행이 조금 허름해 보이는 객잔에서 멈췄다. 이번에도 마차가 멈추자마자 객잔에서 점소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한숨부터 나왔다.
‘또 방이 없다고 하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고우길이 기대도 하지 않고 물었다.
“방이 있나?”
“몇 개나 찾으십니까?”
“응? 방이 있어?”
“네, 있습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고우길이 혹시나 싶어 물었다.
“그러면 혹시 별채도 있나?”
“있기는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별채로 하시겠습니까?”
그 대답에 고우길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객잔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별채하고 방 하나만 잡아 주면 되겠구나.”
“알겠습니다.”
그제야 마차에서 내린 풍백 등이 내렸다.
“원래 온갖 사람들이 방문하는 걸로 유명한 무한이기는 한데, 객잔까지 이렇게 부족해서 난리일 줄은 몰랐구만.”
“그렇게 말입니다. 녹수장하고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방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거참…… 초청장을 받아서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한 사람은 무한에 모인 사람들 중 절반도 되지 않을 거야. 나머지는 비무 구경을 하거나, 혹시 명문세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싶어서 온 사람들일걸.”
조금 뜨끔했다.
초청장은 받았지만, 풍백이야말로 그런 목적으로 찾아온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점소이를 따라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내부는 예상외로 휑하니 비어 있었다. 그저 한 식탁에서만 네 명의 젊은 청년들이 왁자하니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들렀던 객잔은 사람이 꽉 차서 한참을 기다려야 간신히 밥이라도 먹을 수 있을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의외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가 말했다.
“방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별채는 조금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데 기다리시겠습니까?”
“그러면 식사를 먼저 하도록 하지. 다들 괜찮으시지요?”
자리가 텅텅 비어 있으니 당연히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풍백이 물었다. 풍진개는 고개를 끄덕였고, 채설지도 딱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풍백의 말에 점소이가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어…… 식사는 지금 당장은 조금 곤란합니다.”
“무슨 말이냐?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곤란하다니. 숙수가 어디 가기라도 한 거냐?”
“그게 아니라…… 오늘 해시(21~23시)까지 저분들이 이곳을 모두 빌리셔서요.”
“아니, 이 넓은 곳을 모두?”
“그렇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객잔에 식사할 수 있는 식탁만 열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중에 저들은 고작 한 개의 식탁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고우길의 대화를 들었는지,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풍백 일행을 향해 외쳤다.
“식사를 아직 안 하셨으면 이쪽으로 오셔서 함께 드시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