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42화
풍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설지가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고 임범성 등은 아주 반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흠! 아무래도 소저께서는 그냥 여기서 식사를 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어떻게, 두 분께서는 따로 다른 곳에 가서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말은 풍백과 풍진개에게 하고 있지만, 그의 눈은 온통 채설지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분위기는 마치 너희는 다른 곳에 가서 식사하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풍진개는 채설지를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고, 풍백은 난처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신세 좀 지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풍진개의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풍진개 역시 이런 식의 결론을 낼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풍백이 채설지가 앉아 있는 식탁으로 걸어가자 풍진개 역시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임범성 등의 얼굴이 약간의 짜증이 어렸다. 심지어 성격이 급한 우금룡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가볍게 혀까지 찼다.
그런 네 사람의 모습에 풍백이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행여나 너희 네 놈이 죽을까 봐 있어 주겠다는 거야, 이 멍청한 놈들아.’
풍백과 풍진개가 채설지와 함께 앉자, 눈치를 보고 있던 점소이가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풍진개가 얼른 말했다.
“무한에 왔으면 열간면(熱干面)하고 두부 요리를 먹어야지. 그리고 만두는 사계미탕포(四季美湯包)로 주고, 와관계탕(瓦罐鷄湯)도 되나?”
“네, 됩니다. 모두 무한 지역 음식이니까요.”
“그러면 와관계탕도 주게.”
열간면은 국물이 없는 국수를 말하는데, 유명한 국수 요리를 손꼽으면 꼭 들어가는 무한 지역 음식이었다. 그리고 와관계탕은 암탉으로 만드는 요리로, 각종 재료와 함께 볶다가 육수를 부어 만드는 음식이었다.
“무한 지역 음식만 되는 건 아니지?”
“저희 숙수께서는 계림(桂林) 출신이십니다.”
“오! 잘됐군. 그러면 남유양육(南乳羊肉)도 하나 가져다주게. 아참! 열간면은 세 개를 가져다주고.”
남유지양은 양의 다리 부위를 조려서 만드는 음식이다.
풍진개가 시킨 음식의 양은 절대 세 명이 먹을 양이 아니었다.
점소이가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이걸 전부 드실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부족해서 더 시킬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술은 모태주 있나?”
“죄송하지만 모태주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술이 있는데?”
“죽엽청(竹葉靑)하고 분주(汾酒)가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죽엽청으로 해야겠군. 좋은 놈으로 가져다줘.”
어차피 모든 숙박비와 식비, 술값은 모두 풍백이 낸다고 얘기했었다. 얼마가 나와도 좋으니 부담 갖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렇기에 풍진개가 주문하는 것에 거침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가 고우길의 주문을 받으러 가자, 임범성이 다가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일단 저희가 주문해 놓은 음식을 같이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번에도 풍백이 대답을 하기 전에 채설지가 먼저 고개를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풍백과 풍진개의 의도대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굳이 분란을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닌 건가?’
빌린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하니 앉은 것이고, 같이 식사를 하기는 싫어서 거부의 의사를 보인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일부러 분란을 일으킬 의도는 없다는 말일 테니까.
그러나 무한사룡이 이런 거절에 쉽게 납득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하하! 부담스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술을 마시느라 음식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거든요.”
“맞습니다. 저희 음식을 보세요. 깨끗하죠?”
그들의 말대로 식사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알지도 못한 사람이 먹던 음식을 기분 좋게 먹을 사람은 없었다.
……개방의 거지를 제외하고.
풍진개는 무한사룡의 식탁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같이 식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풍진개 역시 눈을 반짝였다는 것뿐이지 합석을 할 생각은 없었고 말이다.
“좋은 의도로 권해 주셨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음식도 금방 나올 테니, 그냥 저희끼리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풍백이 정중히 거절했다.
이런 풍백의 거절은 소용이 없었다.
“사양할 필요 없다니까 그러십니다. 아예 저희 식탁을 이쪽으로 끌고 오는 것이 좋겠군요.”
임범성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건지, 우금룡과 막대린이 식탁을 번쩍 들고 다가왔다. 그 뒤에 따라오는 요지홍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만면에 미소가 가득이었다.
자신들의 식탁을 바로 옆에 붙인 무한사룡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임범성이 자연스럽게 채설지의 옆에 앉은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풍백이 이런 임범성을 곤란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자, 막대린이 주위를 돌리기 위해서인지 얼른 말을 붙였다.
“그런데 무한에는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풍백의 말에 무한사룡이 일제히 풍백을 바라봤다.
‘참석이라고?’
‘설마 세가 쪽 사람인가?’
‘무인이라는 말이야? 설마 그럴 리가…….’
흔히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어떤 기세라는 것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풍백 일행 중에 그런 기세가 느껴지는 사람은 호위무사로 보이는 고우길밖에 없었다.
우금룡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물어봐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어디 출신이신지?”
계속 대답을 하는 것이 풍백이었기 때문인지, 우금룡이 물어본 사람은 풍백이었다.
풍백은 상황이 공교롭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며 솔직히 대답했다.
“절강성 상산현에서 온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아~! 적가‘상방’에서 오신 분이군요.”
“하하하! ‘상방’분이 절강성에서 호북성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창룡봉무지회는 ‘상방’분이 보시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겁니다.”
풍백의 대답에 우금룡과 막대린, 요지홍의 얼굴이 환히 펴지며 대답했다. 시선을 교환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면 분명 적가상방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자세한 걸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적가상방은 이제 중견 상방으로 도약 중인 군소 상방이었으니까.
그나마 세 사람은 대답이라도 했지, 임범성은 가볍게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웃음소리가 워낙 짧아 마치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진짜 비웃은 걸지도 모르지.’
이런 풍백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임범성의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무한에서 어떤 장사거리를 찾아오신 거라면 얘기를 해 주시오. 우리가 도와줄 테니.”
임범성의 말투는 정중한 것에서 반존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저 좋은 분들과 좋은 인연을 쌓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왔을 뿐이라…….”
“그런 의도라면 우리를 만난 건 아주 운이 좋은 거요.”
“네?”
“이곳 무한에서는 우리가 한마디를 하면 어떤 사람과도 만나고,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오.”
“아…….”
뭔가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대린이 임범성의 말을 거들기 위해 끼어들어 꺼낸 뒷말 역시 기대를 어긋나지 않았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바로 무한사룡이라 불리고 있소. 이 지역에서 저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요.”
“하하하! 우리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 친구의 말이 맞소. 우리 네 명이 자리를 마련하면 설사 지부대인(知府大人)이라고 하더라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오.”
우금룡의 말에 바로 그렇다는 듯이 요지홍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풍백이나 풍진개가 이런 말에 현혹될 사람은 아니었다.
‘너희들이 지부대인을 불러 줄 수 있다고? 개소리를 엄청 과감하게 하고 있네?’
지부대인은 무려 정사품(正四品)의 고관대작이다. 한 성에서 지부대인보다 높은 품계를 가진 사람은 오직 포정사와 안찰사, 도지휘사가 전부였다.
그런 지부대인을 한 문파나 세가의 수장도 아닌 일개 후기지수 네 명이서 불러 줄 수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아마 지부대인부터 뒷조사를 해 봐야 할 것이다. 무언가 받아먹은 것이 있어서 후기지수가 부르는 자리에 나왔을 테니까.
그렇다고 무한사룡의 헛소리를 이 자리에 박살 낼 생각은 없었다.
“오! 그렇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마도 앞으로 신세를 많이 질 수 있을 것 같군요.”
이런 풍백의 반응에 무한사룡의 어깨가 으쓱거렸다.
임범성이 슬쩍 고개를 돌려 채설지를 바라봤다. 그러나 채설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얼굴로 식탁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아…… 정말 살벌하게 예쁘네…….’
원래라면 벌써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여자의 엉덩이라도 붙잡았을 임범성이었다. 그런데 채설지에게는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사람이 어느 선 이상으로 아름다우니까 감히 만져도 괜찮은가 싶어 함부로 손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이러는 사이 점소이가 주문했던 음식을 가지고 나오고 있었다.
“열간면하고 두부 요리, 사계미탕포를 가지고 왔습니다! 와관계탕하고 남유양육은 시간이 조금 걸려서, 이것을 먼저 드시고 계시면 곧 준비가 끝나는 대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음식이 나오자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무한사룡은 풍백과 풍진개가 음식을 입으로 먹든지 코로 먹든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채설지였다.
붉은 입술 사이로 열간면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무한사룡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밥 먹는 게…… 이렇게 고혹적일 수 있는 건가?’
‘와! 미치겠다!’
‘저 입술을 그냥…….’
이렇게 무한사룡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서 채설지는 전혀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열간면을 먹고 사계미탕포를 입에 집어넣을 뿐이었다.
채설지를 바라보는 무한사룡의 눈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을 먹었는지 임범성의 손이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풍백이 목격했다.
‘쯧쯧…… 작살나겠구만.’
기지개를 켜듯이 팔을 쭉 뻗었던 임범성이 자연스럽게 채설지의 등 뒤로 팔을 내렸다.
단순히 어깨에 손을 올리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 가지고는 은연중에 퍼져 있는 무한의 개망나니라는 별칭에 어울리지 않았다.
임범성은 개망나니답게 더 과감했다.
그의 손이 슬그머니 행하는 곳은 채설지의 엉덩이였다.
자신의 손이 채설지의 엉덩이에 가까워지자 임범성이 말했다.
“어이쿠! 여기에 있는 게 뭐지?”
음흉한 미소를 보이는 임범성의 모습에 나머지 무한사룡은 그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채고 비슷한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한사룡의 예상처럼 임범성의 손은 우악스럽게 채설지의 엉덩이를 잡아 갔다.
‘깜짝 놀랄 거다, 이 귀여운 것!’
자신에게 엉덩이를 잡힌 채설지가 화들짝 놀라며 저 귀여운 입을 통해 비명을 지를 것을 예상했다. 아직 채설지의 목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기에 대단히 기대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부드럽고 탱탱한 감촉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장심(掌心)이 뜨끔해지더니 갑자기 극통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억…… 어?”
임범성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봤다.
그의 손은 채설지의 엉덩이와 한 치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가던 자신의 손바닥에는 젓가락이 박혀 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린 임범성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으악! 내 손!”
우금룡과 막대린이 젓가락에 뚫린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임범성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헉! 뭐야? 손에 그거 뭐야?”
“저, 젓가락?”
고개를 돌리니 채설지의 손에는 젓가락 하나만이 잡혀 있었다. 임범성의 손바닥에 꽂힌 젓가락이 그녀의 것이라는 증거와 같았다.
당연히 음흉한 짓을 벌이려던 임범성의 잘못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언제나 하던 버릇이 먼저 튀어나왔다.
“사람 손을 젓가락으로 찍다니!”
“감히 무한에서 무한사룡을 건드리다니! 미쳤구나!”
두 사람의 욕설에 채설지의 표정이 처음으로 변했다.
작게 떠올린 미소.
그건 조소였다.
그걸 본 우금룡과 막대린이 인상을 쓰며 뭐라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임범성이 먼저 외쳤다.
“닥쳐!”
그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명확히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이를 악문 임범성이 손바닥에 박힌 젓가락을 뽑았다.
주륵!
손바닥에 생긴 구멍으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혈도를 짚어 출혈을 막은 임범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채설지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이 악독한 년! 가만두지 않겠다!”
임범성의 얼굴에 분노가 서려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의 눈동자에서는 진득한 정욕도 서려 있었다.
아마 손을 과하게 썼다며 채설지를 데려다가 욕보일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 분명했다.
채설지가 자리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싸늘한 그녀의 얼굴은 당장 네 사내의 목을 잘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사파에서는 다시는 덤벼들지 못하도록 적어도 사지 중 하나는 자르는 일이 쉽게 일어났다.
풍백은 이런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잘잘못을 떠나서, 과하게 손을 썼다가 무한을 떠나야 할 상황이 발생할까 걱정한 것이다.
풍백이 채설지에게 전음을 보냈다.
[적당히 합시다. 곧바로 무한에서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