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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41화 (14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41화

녹수장의 후계자인 임범성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강호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문파라면 누구나 유치하고 싶어 하는 창룡봉무지회를 녹수장이 개최하기 때문이었다.

창룡봉무지회 덕분에 전 강호의 눈이 녹수장을 향해 모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녹수장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기회이기도 했고, 자신이 강호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임범성은 지금까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다른 명문세가에 비해 녹수장이 강호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낮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녹수장이 무한에서는 제법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무한만 벗어나면 녹수장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같은 호북성 서쪽에 있는 의창(宜昌)에만 가서 물어봐도 무당파와 제갈세가(諸葛世家)는 같은 성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녹수장은 아예 아는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 결과가 임범성의 별호였다.

무한사룡(武漢四龍).

이것이 임범성을 뜻하는 별호였다.

단독 별호도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무한사룡의 구성원이 어떻게 되느냐?

제법 큰 무관의 후계자인 우금룡과 긴 역사를 자랑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슬슬 몰락해 가는 것 아니냐는 평을 듣고 있는 건청파(乾靑派)의 후계인 막대린, 심지어 포목점의 아들인 요지홍이 무한사룡의 나머지였다.

사실 무한사룡은 그저 친구지간인 네 사람이 술을 마시면서 호기롭게 자신들을 칭하며 부르던 별호였다.

그런데 이게 은근히 입에 짝짝 달라붙어 평소에 몇 번 주워섬기고 다녔더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그들을 무한사룡이라 부르고 있었다.

강호에서 스스로 별호를 붙이는 사람들에 대한 우스갯소리는 제법 흔하다. 그런데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창피한 건 이것만이 아니다.

‘포목점 아들이랑 같이 싸잡아서 불리는 별호가 가당키나 하냐는 말이지.’

요지홍이 친구이기는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우금룡과 막대린도 애매하다 생각하지만, 그나마 넘어갈 수 있다. 최소한 무공을 익히지 않았냐는 말이다.

그러나 요지홍은 선을 넘은 것이다.

자기 몸을 보호할 수준의 호신술 정도만 익혔을 뿐이지, 무공이라고는 일초반식도 모르는 요지홍과 함께 무한사룡이라고?

이건 솔직히 대놓고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번 창룡봉무지회를 천하의 후기지수들 앞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지. 그리고 새로운 별호를 가지고 강호행을 시작하는 거야.’

벌써부터 눈앞에는 당당히 강호행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선망하는 눈빛과 자신의 도움을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멋지게 무공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가인(佳人)의 모습까지.

‘이제 협객 임범성의 삶이 제대로 시작되는 거야.’

이렇게 좋은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한사룡이라 싸잡혀서 불리는 친구들을 모두 불러, 조용히 술을 마시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행여나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 싶어 일부러 외곽 지역으로 나왔다.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마저 부담스러워 일부러 허름한 객잔을 술 먹을 장소로 고르기도 했고 말이다.

‘나처럼 이렇게 배려심이 좋은 사람도 또 없지.’

흐뭇하게 웃고 있는 임범성의 옆에서 같은 무한사룡의 친구들이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녹수장이 창룡봉무지회를 주최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이제 우리 범성이도 훨훨 날아오를 수 있겠구나!”

“그러게 말이야. 마지막까지 경합이 심했지?”

“그랬지. 낙양(洛陽)에서 개최하자는 의견이 많았잖아.”

“양심도 없는 새끼들이 많았지. 작년에도 하남성(河南省)에서 열렸잖아.”

“그때는 정주(鄭州)에서 열렸었지.”

이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경합이 심했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무한에서 열리기로 정해진 것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몇몇 세가에서 낙양을 강력하게 밀었다는데, 결국 이 년 연속으로 같은 성에서 펼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 무한으로 정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창룡봉무지회는 단순한 후기지수가 모이는 무림대회가 아니었다. 여기에 걸려 있는 이권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런 이권이 걸린 무림대회를 한 성에서 이 년이나 독점한다?

절대 그걸 두고 볼 사람은 없었다.

임범성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실 임범성은 녹수장이 창룡봉무지회의 개최지로 선정되기 전까지는 이런 얘기가 나오면 짜증을 숨기지 않고 쏟아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정도 끝났고, 이런 뒷이야기는 결국 녹수장의 뛰어난 협상력을 자랑하는 하나의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았기에 얼마든지 웃으며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막대린이 그런 임범성에게 물었다.

“이번 기회를 노려야 하지 않겠어?”

“무슨 기회?”

“다 알면서 뭘 되묻고 그래?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멋들어진 별호를 얻어야 할 것 아냐.”

무한사룡의 대표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임범성이었다.

무한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녹수장의 후계자였고, 이제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일류고수를 바라보고 있는 무공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런 임범성이 먼저 높이 날아올라야 했다. 그래야 자신들도 그와 함께 어울리며 덕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 녹수장이 처음으로 이런 거대한 무림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야. 내가 별호를 얻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잘 이끌어 갈 생각부터 먼저 해야지.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점잖게 시작했지만, 마지막 말을 할 때는 싸늘했다. 그런 임범성의 모습에 세 사내가 모두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

“그, 그냥 말이 그렇다는 말이지. 이제 너도 제대로 된 별호를 얻을 때가 되기도 했고…….”

“대린이가 다 널 생각해서 한 얘기일 거야.”

“화내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이런 반응에도 임범성은 다시 냉정하게 말했다.

“괜히 그런 얘기를 꺼내서 사람들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내 생각을 하는 거라면 그 주둥이에서 별호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꺼내지 마.”

으르렁거리는 임범성의 모습에 세 사람 모두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따지고 보면 큰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씩 단속을 해 놔야 나중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니는 일이 없을 것이다.

괜히 자신이 별호에 집착하고 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면 어떤 기괴한 별호가 붙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쓸데없는 소문이 나면서 요설자(饶舌者, 수다쟁이) 같은 별호가 붙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다고 오대세가(五大世家)의 후기지수와 같은 수준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일수삼검(一手三劍) 같은 별호면 아주 만족이지.’

녹수장의 무공은 쾌검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었다. 그러니 일수삼검이라 별호를 받을 수 있다면 이건 첫 별호로 절대 나쁘지 않았다.

잠시 싸늘하게 식었던 분위기는 곧 풀렸다. 이럴 때일수록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 주는 요지홍 덕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술을 마시고 있었을까?

임범성의 눈에 점소이를 따라 객잔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별 관심도 없었다.

식당은 자신들이 빌렸으니, 숙소로 들어가 준다면 상관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손님들 중 한 사람을 보는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긴 흰색 머리카락이었다.

‘무슨 머리카락이…….’

그리고 보이는 아름답게 호선을 그리는 눈썹과 그 아래에 위치한 커다란 봉목,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운 선을 만들고 있는 콧대와 주사(朱砂)를 바른 듯한 붉은 입술.

천상의 선녀라고 하더라도 감히 저 여인보다 아름다울 것 같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상상에서 나오던 아름다운 여인조차 저 여인의 옆에 있으면 빛을 잃을 것 같았다.

얼마나 그녀의 미모가 인상적인지, 같이 들어온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임범성이 넋이 나간 것을 보고 우금룡 등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세상에…….’

‘저, 저런 여자가 진짜 있었어?’

‘사람이긴…… 한 건가?’

비현실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입을 다물기가 힘들었다.

요지홍은 평소 강호에 대한 견문이 넓었다. 앞으로 포목점을 이어받아야 할 후계자였지만, 강호에 대한 동경이 컸기에 온갖 소문을 다 듣고 기억하던 요지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문이 넓은 요지홍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런 여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저토록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에 대해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니지, 소문이 나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

외부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군소 문파의 여식이거나, 애당초 강호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집안의 사람이라면 그나마 납득할 만했다.

결국 요지홍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창룡봉무지회를 구경하려고 무한에 방문한 여행객이거나, 아니면 군소 문파 수준의 사람이겠군.’

요지홍의 포목점은 녹수장과 꽤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서로 사업적으로 협력 관계라고 해야 했다.

그렇기에 향후 포목점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임범성과 계속 좋은 관계를 가져야 했다.

요지홍이 임범성을 슬쩍 살폈다. 임범성은 요지홍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욕심은 나지만…… 어차피 내가 어떻게 해 볼 여자는 아니지. 괜히 욕심 부리다가 기껏 만들어 놨던 인맥마저 조질 수 있어.’

나름 상인의 감각으로 득실을 따져 본 요지홍은 어떻게든 여자를 임범성에게 연결해 보기로 결정했다.

임범성은 무한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사실 임범성을 비롯한 무한사룡은 무한의 대표적인 망나니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한 가지에서는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여자 문제였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지분거리고, 몇몇 여자는 임범성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는 말도 은밀히 나돌고 있었다.

요지홍을 비롯한 무한사룡은 이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자신들과 함께 벌였던 일이니까.

‘어떻게, 이번에도 한번 시도해 볼까?’

마침 여인과 그 일행들이 식사할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당황하고 있는 게 보였다.

요지홍이 웃으며 크게 외쳤다.

“식사를 아직 안 하셨으면 이쪽으로 오셔서 함께 드시면 어떻습니까?”

고우길은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우리에게 하신 얘기입니까?”

그러자 요지홍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번잡한 걸 싫어하여 객잔 식당을 모두 빌렸는데, 괜히 저희 때문에 손님들께서 곤란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니 괜찮으시면 이곳으로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면 어떨까 싶어 권했습니다.”

정중한 요지홍의 말에 고우길이 어떻게 하냐는 듯이 풍백을 돌아봤다.

그러는 동안 요지홍은 임범성을 비롯하여 우금룡, 막대린과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풍백 일행이 보이지 않도록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막대린은 은밀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채설지에게 빠진 사람은 임범성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늘 밤은 매우 지저분해질 것만 같았다.

임성범 역시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딱히 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 남자가 여자하고 술 좀 마실 수 있는 일이지. 겨우 이 정도 가지고 무슨 문제가 되겠어? 그러다가 눈이 맞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 일이고…….’

분명 창룡봉무지회를 치르는 동안에는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었으나, 채설지의 형용하기 힘든 미모에 자기변명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중이었다.

풍백은 이들이 이런 신호를 교환하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굳이 그걸 봐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위험한 여자한테 관심을 보이네.’

잘못하다가 목이 잘릴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네 사내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풍백이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데, 풍진개의 전음이 들려왔다.

[거절하는 것이 좋겠네. 아무래도 채 소저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잘못하다가는 오늘 송장 네 구를 치울 수 있어.]

동감이었다.

그래서 풍백이 정중히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권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희는 반점을 찾아가서 먹는 것이…….”

그런데 풍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설지가 걸어가더니 빈자리 하나에 앉는 것이 아닌가.

말 한 마디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채설지의 모습에 풍백과 풍진개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그녀가 자리에 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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