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35화
풍진개가 두 명의 수적을 순식간에 제압하는 걸 본 무혈채의 수적들이 일제히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풍진개의 외침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푸, 풍진개?’
‘아니, 씨발 무슨 개방 거지새끼가 이런 배를 타고 있어?’
‘거짓말 아냐? 옷도 깔끔하고…….’
서로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수적들이었다.
무려 개방이라고 한다.
아무리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독불장군 같은 문파라고 하더라도 꺼려지는 문파가 있기 마련이다.
녹림십팔채나 장강수로십팔채와 같은 곳이 꺼리는 대표적인 문파가 개방이었다.
강호에서 명문정파라 하는 이들이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십팔채를 꺼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정식으로 소속된 산채만 하더라도 열여덟 개고, 그 하위로 붙어 있는 산채까지 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산채가 전 중원에 뿌려져 있다. 이들이 한 문파를 지목해서 싸우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명문정파는 각자 상방이나 사업을 꾸리고 있기도 하고, 속가제자 등을 통해 문파나 무관, 상방을 운영하기도 한다.
산적들은 명문정파와 연결된 이 모든 곳을 목표로 삼아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은 곳들은 쉽게 무너진다.
남아 있는 곳도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산적들로 인하여 제대로 된 상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문정파는 이것을 막기 위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전 중원에 뿌려진 산적 모두를 잡으러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다 보니 어지간한 명문정파는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싸움 이후에 입게 될 피해가 너무 막심하여 쉽게 녹림십팔채나 장강수로십팔채와 같은 곳을 건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방은 달랐다.
거지들이 모여서 만든 문파인 개방이지만, 사실 개방은 제법 돈이 많았다. 전 중원의 거지가 수집하고 가공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각 문파들이 개방에 보내 주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받은 돈은 지금 풍진개가 비싼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다시 더 중요한 작전을 위해 사용된다.
또한 이렇게 사용하고도 남은 돈은 우습게도 빈민층을 위해서 사용되고 말이다.
누구에게나 손가락질을 받는 거지들인데, 정작 중원에서 가장 막대한 돈을 빈민층에게 지원하는 곳이 개방이라니.
이들이 거지임에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개방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이것만이 아니라 개방은 속가제자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렇기에 개방과 연결된 문파나 무관, 상방 등이 아무것도 없었다.
인원수?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십팔채를 모두 합친 것보다 개방의 숫자가 더 많았다.
막말로 개방이 마음먹고 전 중원의 개방도를 동원하여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십팔채를 상대한다면 답이 없었다.
그리고 개방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개방도를 희생시키며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저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십팔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를 관부에 넘기기면 알아서 얼마든지 토벌대를 만들어 괴롭혀 줄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개방도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 중인 사람을 제외하고 한 지역에 머무는 일이 대부분이다. 산적과 수적이 이런 개방을 치려고 한다면 적어도 현까지는 기어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거의 상극과도 같은 개방이었으니, 풍진개가 무혈채와 싸우는 걸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이에 당당히 서 있는 풍진개를 향해 감히 수적들이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멀리 있는 무혈채의 배에서 내공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빌어먹을 거지새끼가 장강에는 무슨 일이냐!”
그 말에 풍진개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목소리를 듣자 하니 무혈채의 개잡종인 막충이구나. 오랜만에 형님을 만났으면 당장 뛰어와서 인사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니냐?”
풍진개와 무혈채의 막충은 사실 과거에 인연이 있었다.
아주 대단한 사연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슬슬 강호에서 시선을 받고 있을 무렵, 우연히 주점에서 시비가 붙었었다.
혈기왕성할 나이였다는 걸 떠나서, 사파라면 그 좋아하던 술을 먹다가도 튀어나가 박살 내고 다니던 풍진개였다.
그리고 막풍은 장강 인근에서는 무혈채주를 제외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었고 말이다.
이런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으니, 한바탕 거창하게 싸움을 시작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은 확실하게 끝을 내지 못하게 되었다.
느닷없이 끼어든 무혈채주 때문에 승기를 잡고 있었음에도 풍진개는 이를 갈며 피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합공을 받아 낼 정도로 고수는 아니었던 풍진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무혈채주 역시 물러서는 풍진개를 쫓아가지 않았다. 말했듯이 개방과 싸우는 건 장강수로십팔채도 부담스러우니까.
그렇게 싸움은 흐지부지 끝났기에 두 사람 마음속에는 당연히 앙금이 남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풍진개는 나중에 손봐 주겠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만 남았지만, 풍진개와 싸우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잃은 막충은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고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막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드디어 뒈지고 싶어 묫자리를 찾아왔…….”
“내가 잘라 준 손가락 두 개는 찾았나? 하긴, 네 손가락도 병신 같은 주인 놈에게 붙어 있느니, 차라리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걸 더 원했겠지.”
대뜸 말을 자르고 들어온 풍진개의 목소리에 잠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보지 않아도 막충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를 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 개 같은……!”
“아! 그러고 보니 네 손가락 어디 있는지 내가 봤었구나. 분타에서 애들이 개고기를 먹고 있던데, 거기 장작으로 쓰였던 것 같기도…….”
“죽여! 죽여 버려! 저 미친 거지새끼를 죽이라고!”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막충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으…… 으아아아!”
“죽어라!”
주변에 있던 무혈채 수적들이 일제히 풍진개를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걸 본 풍진개가 낄낄거리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갈지자로 걸었다.
그러나 취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움직임은 종잡을 수 없는 변화를 담고 있었고, 수적들의 병장기는 허망하게 모두 빗나갔다.
개방 비전 보법인 취팔선보(醉八仙步)였다.
수적들의 병장기를 피한 풍진개는 지체하지 않고, 병장기를 휘두르는 바람에 빈틈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수적들의 가슴을 향해 일장을 먹였다.
퍼퍼펑!
세 명의 수적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죽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순식간에 세 명의 동료를 단 일수에 처리해 버리는 풍진개의 모습에 수적들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들 중에는 일류고수인 막충의 직속 수하도 있었지만, 그 역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는 풍진개에게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이 병신 같은 놈들! 쏴라! 쏴!”
막충의 목소리가 들리고 두 척의 배에서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수적들이 화들짝 놀라며 화살을 피해 구르듯이 자신들의 배로 달려갔다.
최 대주와 무사들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을 나무방패로 막으며 풍진개를 찾았다.
그러자 풍진개가 그 자리에 서서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에 멈춰서 있던 배가 화살을 쏘며 다가왔다. 아무래도 숫자로 밀어붙일 생각인 것 같았다.
아무리 풍진개가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고수라지만, 저들이 일제히 달려들면 이곳에 있는 사람을 모두 구해 줄 수는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풍진개가 최 대주에게 말했다.
“막충이라는 놈을 조지고 올 테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수 있겠소?”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협!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최 대주가 당당하게 외쳤으나 그렇지 않다는 건 풍진개도 알고 있었다.
겨우 십여 명의 무사들이었다. 이들만으로 일류고수가 포함된 무혈채 수적 수십 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제길…… 저 여자가 도와주면 일이 쉽겠구만…….’
풍진개의 눈이 슬쩍 채설지에게 닿았다.
그러나 채설지는 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선미에 서서 풍광만 즐기고 있었다.
망설이는 풍진개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 최 대주가 말했다.
“대협!”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의지가 가득한 눈으로 풍진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최대한 다치거나 죽는 사람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생각이 안 났다.
풍진개는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갑판을 뜯어서 막충이 있는 배 사이에 던졌다. 그리곤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리더니 강물에 떠 있는 나무를 밟고 뛰어올랐다.
무려 십 장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으나 이런 식으로 두 번만 뛰면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막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놈! 저놈을 쏴! 물에 떨어뜨려 버려!”
풍진개를 물에 떨어뜨릴 수 있으면 일이 쉽게 풀린다.
수공에 능한 수하들이 시간을 끌어 주고, 풍백을 사로잡고 나머지 승객 등을 모두 죽인다. 그리고 홀로 남은 풍진개를 적당히 지치게 만든 다음 배에 올려 손쉽게 죽이면 되는 일이다.
막충은 자신이 풍진개에게 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손가락을 잘렸던 기억 때문인지 풍진개가 찝찝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적당히 힘을 소진시킨 다음에 상대한다면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부하들이 죽겠지만, 어차피 그런 것을 신경 썼으면 사파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막충의 명령에 따라 수적들의 화살이 일제히 풍진개를 향했다.
자신을 노리는 화살을 쳐 내며 두 번째 발판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풍진개를 본 막충이 서둘러 수적이 들고 있는 화살을 빼앗아 시위를 겨눴다.
그런데 막충이 노린 건 허공에 떠 있는 풍진개가 아니었다. 그가 노리는 건 다음 풍진개가 밟을 세 번째 발판이었다.
퉁!
파직!
시위를 떠난 화살이 세 번째 발판을 부수고 지나갔다.
막충은 희열이 가득한 얼굴로 풍진개를 바라봤다. 풍진개 역시 발판이 없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제 막충이 수공에 능한 부하들을 투입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수면으로 떨어지는 풍진개의 발밑으로 풍백이 타고 있는 배에서 발판 몇 개가 더 날아왔다.
그걸 보고 눈을 빛낸 풍진개가 발판을 박차며 소리쳤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맙수다!”
발판을 박찬 풍진개가 성난 호랑이처럼 배에 타고 있는 수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형님이 직접 오셨다! 막충은 어디에 있느냐!”
풍진개의 사나운 기세에 수적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서는 가운데, 수적들 틈에서 막충이 튀어나오며 외쳤다.
“묫자리를 찾아왔구나!”
“그렇지! 네 묫자리를 찾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내가 비싼 모태주를 가지고 있거든.”
“네놈을 죽이고 내가 마시면 되겠구나!”
살벌한 기세로 두 무인이 격돌했다.
풍진개가 경공을 펼쳐 날아가자, 눈치를 보고 있던 무혈채의 수적들이 다시 기세등등하게 바뀌더니 달려들었다.
최 대주가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서 선실을 기준으로 대형을 갖춰라!”
추상과 같은 최 대주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대형을 갖춘 무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수적들이 밀고 들어오는 걸 지켜봤다.
고우길 역시 풍백의 앞에서 검을 뽑아 수적들을 상대할 준비를 했다.
풍백은 몰려오는 수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경공을 사용해 막충을 향해 날아가는 풍진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러다가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 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를 노리고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풍백이 가볍게 혀를 차고는 고우길에게 말했다.
“풍진개가 던졌던 것과 비슷하게 발판 하나 만들어서 준비하시오.”
“네? 아, 알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으면서도 일단 갑판 바닥을 하나 뜯어냈다. 그가 발판 하나를 만들었을 때, 풍백이 다시 말했다.
“풍진개 발밑으로 던질 수 있죠?”
그 말에 고개를 돌려보자 강으로 떨어지는 풍진개가 보였다.
고우길이 아직 이류무인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풍진개가 있는 곳까지 발판 하나 던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급박하여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른 발판을 던졌다. 그러자 풍진개가 자신의 발판을 밟고 무혈채의 배로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맙수다!”
메아리처럼 풍진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뿌듯한 생각이 들어 씨익 웃고 있는 고우길에게 다시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저 무사들을 도와 수적들을 막으세요.”
“알겠습니다!”
고우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몰려오는 수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로 물러선 풍백은 무사들과 수적들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
‘쓸데없이 피를 흘리는군.’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
그저 자신 하나만 건너갔으면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릴 이유도 없었고, 추가로 원하던 정보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풍진개가 나선 이상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풍진개가 죽으면 기회가 생기겠지만…….’
아마 힘들 것이다. 풍진개는 평범한 고수가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무혈채주를 조져봐야 되나?’
정면으로 상대하기는 조금 부담되는 상대이기는 하나 암살을 한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조금 고민 좀 해 보자고. 하지만 그 전에…….’
풍백은 고우길이 발판을 만든다고 뜯어냈다가 바닥에 버렸던 갑판 잔해를 주워 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뜯어냈다.
‘적어도 나 때문에 죽는 사람은 없는 게 좋겠지.’
이전의 자신이라면 정체를 숨기고 있는 와중에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딱히 풍진개 때문은 아니었다.
무사들과 수적의 싸움은 당연히 거의 일방적이었다. 죽는 사람은 없었으나 거의 공세를 펼치지도 못하고 사력을 다해 방어를 하기 바빴다. 그러고도 몸에 잔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는 중이었다.
싸늘한 미소를 띤 풍백이 뜯어낸 나뭇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나뭇조각이 수적 하나에게 박혔다.
“윽…….”
무언가 따끔해지며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자 눈앞에 있던 무사가 그의 심장에 깊숙이 검을 박았다.
암기에 대한 소양은 제법 깊은 풍백이었다. 군부에서 기본 항목 중 하나가 암기였으니 당연했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풍백이 연이어 나뭇조각을 튕겼다. 그렇게 쏘아진 나뭇조각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수적들에게 박혔고, 나뭇가지를 맞은 수적은 움찔하다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동료들이 갑자기 죽어 나가자 수적들이 당황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는 아직도 많았다. 단순히 운이 나빠서 죽었다고 생각한 수적들은 다시 고함과 함께 달려들었다.
풍백은 뒤에서 상황을 보며 나뭇가지를 하나씩 튕겼다.
그럴 때마다 위기에 빠졌던 무사가 빠져나오고, 공격을 하던 수적이 요혈에 박힌 나뭇가지에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순식간에 뜯어낸 나뭇가지를 다 소모한 풍백이 다시 나뭇가지를 만들기 위해 굴러다니는 갑판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흥미롭다는 듯이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채설지였다.
‘아, 씨발. 짜증 나네…….’
오늘 참 재수가 없는 날이다. 계획했던 일들은 모두 틀어지고, 의도했던 일들은 무너지며, 밝히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알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