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31화
포양호는 호남성 동정호(洞庭湖), 강소성 태호(太湖)와 홍택호(洪澤湖), 안휘성 소호(巢湖)와 함께 중원 오대 담수호(淡水湖)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런 포양호의 북쪽으로는 장강(長江)과 연결이 되어 있다.
중원의 젖줄인 장강은 강서성에서 시작하여 끝없이 이어지게 되는데, 말 그대로 중원을 관통한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고대부터 장강은 중원에서 물류나 사람을 운송하는 역사가 깊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장강의 지류로 빠지는 것도 포함했을 때, 중원에서 배를 타고 도착하지 못할 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무한으로 가기 위해 포양호에서 배를 타는 것은 그리 대단한 선택이 아니었다.
파양현의 포구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붐비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무한으로 가는 건 아니었다. 강서성의 성도인 남창(南昌)으로 가는 사람부터 인근 지역의 도창현(都昌縣), 성자현(星子縣) 등으로 가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했다.
이렇게 온갖 곳으로 향하는 배가 많았으니, 파양현 포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타야 할 배를 찾아 온갖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비켜! 비켜!”
“밀지 마, 개새끼야!”
“남창으로 가는 배가 어떤 거냐?”
“성자현으로 가는 분들은 어서 오르시오!”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거요?”
“무슨 뱃삯이 은자 한 냥이야! 이 새끼 사기꾼 아냐?”
“구강현(九江縣)까지 은자 한 냥도 안 받는 사람 있는지 네가 찾아봐! 씨발, 짐도 많으면서 더럽게 징징거리네! 꺼져! 이제 다시 탄다고 하더라도 안 받을 테니까!”
얼마나 시끄러운지 옆에서 말하는 사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풍백이 탄 마차는 이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 포구에 있는 배 중에서도 가장 큰 배를 향했다.
무한이 호북성의 성도이기에 오가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배가 큰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 거대한 배는 소수의 사람만 받아서 운행하는 고급 운송 수단이었다. 배를 타면 크지는 않더라도 승객이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선실도 십여 개나 될 정도였다.
고급이기에 값이 일반 배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그렇다고 풍백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배를 타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풍백이 타야 할 배 지척에서는 일단의 무사들이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고 있었다. 아마도 배를 호위하기로 되어 있는 무사들인 것 같았다.
마차까지 포함하여 막대한 금액을 지불한 풍백은 태연한 걸음걸이로 배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그런 풍백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봤다.
“……봤어?”
“저 비싼 배를…… 마차까지 태워서 가는 걸 본 적이 있냐?”
“나는 없지. 그런데 저기 복건성(福建省)에 엄청 부자가 마차를 태웠다는 얘기는 들어 봤었지.”
“아…… 나도 들어는 봤다. 헛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저런 사람을 볼 줄은 몰랐다.”
“세 사람 요금에 선실도 잡고, 여기에 마차까지…….”
“우리 둘이 일 년 벌어야 하는 돈을 내더라.”
“씨발…… 괜히 억울하네.”
이런 말을 듣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풍백은 그저 돈이 많기에 비싼 배를 타려는 것은 아니었다.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날까지 일정이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니 무한으로 향하는 배 중에서 가장 빠른 배를 선택했던 것이고, 그 배가 지금 타고 있는 비싼 배일 뿐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풍백이 배에 올라 곧장 선실로 들어갔다.
풍백이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을 모두 받은 배는 무한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 * *
배를 타고 선실에서 가만히 있는 건 대단히 지겨운 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대부분은 갑판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그러나 풍백은 배를 탄 이후로 선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아주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선실에 있는 침상에서 계속해서 내공 수련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풍백은 지금 조금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마겁이 튀어나온 상황이고, 아직까지 그의 생각으로는 적가상방이 안전하다고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풍백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조금이라도 자신의 무공을 향상시키는 것뿐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며 탁기를 토해 낸 풍백은 반개하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곤 자신의 손에 있는 황금불상을 바라봤다.
‘역시 이제 황금불상은 내공 수련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네.’
이미 절정 단계에 오르면서 황금불상의 효율은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에 항상 황금불상을 손에 들고 내공 수련을 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황금불상의 공능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 닥치니 아쉽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지.’
풍백은 황금불상은 품에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는 달빛이 물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선실에서 나온 풍백은 갑판으로 올라갔다.
이제 술시(戌時, 19~21시)를 지나는 중이기 때문인지 갑판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은 부유한 장사치로 보이기도 했으며, 젊은 남녀가 손을 잡고 야경을 즐기고 있기도 했다.
풍백은 선수(船首)로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을 전환하고 다시 선실로 돌아가 계속해서 내공 수련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이제 황금불상도 도움이 되지 않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무공 수련을 해야 했다.
등을 돌려 돌아가던 그때, 풍백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선수 한편에 앉아서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있는 서른은 넘었을 것 같이 보이는 사내였다.
풍백을 제외하고 이 사람에게 시선을 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범하게 생겨서 딱히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외모도 아니었고, 이렇게 비싼 배를 탈 정도로 돈이 많아 보이지는 않아도 옷차림이 단정하여 딱히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혼자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는 것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도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도 풍백은 그에게 꽂힌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설마?’
풍백은 쉽게 믿기 힘들었다. 어쩌면 저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다면…… 아마 이곳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예리한 눈으로 사내를 면밀히 살펴보던 풍백의 눈에 마침내 무언가 하나가 들어왔다. 소매 안쪽에 작게 다른 천으로 기운 게 보인 것이다.
개방의 표식이었다.
사내의 옷에 있는 표식은 개방도라면 자신이 거지라는 본분을 잊지 않게 위해 무조건 오의(汚衣)를 입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변장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작게 옷을 기운 것이다.
천하제일방이라 불리는 개방.
과거에 궁가방(窮家幇)이라 불렸던 개방은 누구나 인정하는 강호에서 가장 거대한 방파였다. 얼마나 거대한지 누구도 개방의 인원이 총 몇 명인지 알지 못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들이 거지들로 구성된 방파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방의 분타 중 하나에서는 새로운 개방 제자가 늘어나는 중일 것이다.
오직 강호의 안녕을 위해 움직인다는 개방은 이렇게 끝없이 많은 거지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기에 가장 방대한 정보를 지닌 곳이라 평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정보로 유명한 개방이지만, 강호의 무인들은 개방을 하오문처럼 단순한 정보 단체 정도로 치부할 수 없었다.
개방에 소속된 무인은 하오문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았고, 무공 역시 강호에서도 일절이라 평가를 받는 무공을 다수 가지고 있었으니까.
오죽하면 구대문파가 아니라 구파일방이라 부르며 구파와 같은 선상에 올려놨겠는가.
사내가 개방도라는 걸 알아본 풍백은 사내의 외모를 자세히 뜯어봤다. 이곳저곳 역용술(易容術)을 사용한 것이 보였지만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풍백이야말로 역용술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다고 할 수 있었고, 사내의 특징이 너무 강해서 이 정도 역용술로는 쉽게 가려지지 않기도 한 탓이었다.
‘개방의 후개(後丐)가 왜 이런 배를 타고 있는 거지?’
개방의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바로 후개였다. 이런 후개는 당연히 개방방주를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만나기 어렵다는 후개가 지금 거금을 지불해야 탈 수 있는 배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려 후개가 자신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 배를 탔을 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풍백은 후개가 어떤 사람인지 과거에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쉽게 날 수 있었다.
‘아마도…… 작전 중인 건가?’
개방에서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지만, 과거의 풍백은 누군가를 추적하거나 감시, 잠입과 같은 임무를 작전이나 공작이라 불렀었다.
개방이라고 이런 작전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니, 작전을 하나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고급 정보를 쉽게 얻어 낼 수는 없었다.
‘흐음…… 정보를 얻기 위한 작전인가, 아니면 추적이나 감시 같은 걸까?’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정보를 얻기 위한 작전은 아닌 것 같은데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풍백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할까?’
말했듯이 개방의 후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기회에 안면을 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마겁에 대해 조사를 부탁할 곳이 없어서 곤란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안면을 트고 마겁에 대해 언급하며 조사를 의뢰할 생각은 아니었다.
마겁이 대체 어디에서 어디까지 선이 닿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개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단지 소문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일단 인사부터 해 볼까?’
풍백 역시 지겹도록 작전을 해 왔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전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당황스러운 상황이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풍백은 작전 중에 자신을 알고 있는 예상치도 못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가장 당황스러웠었다.
후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작전에 끼어드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지.’
묘한 미소를 보인 풍백은 선의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후개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풍백이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하자 후개가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시오?”
“이전에 한 번 먼발치에서 뵌 적이 있어서 인사를 드리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나를…… 말이오?”
“그럼요. 개방의 풍진개(風震丐) 대협이 아니십…… 흡!”
번개같이 일어난 풍진개가 풍백의 입을 막고 예리한 눈으로 혹시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을 살폈다.
자신들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풍진개는 풍백의 어깨를 잡으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이것 참 오랜만이구만! 앉자고! 앉아서 술 한잔해야지.”
그렇게 풍백을 앉힌 풍진개가 주변을 살피고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네? 저는…… 절강성 상산현에 있는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고 합…….”
“나를 어떻게 알아봤지?”
“코에 뭔가 묻은 것 같기는 한데…… 분명히 대협이 맞는 것 같아서…….”
풍백이 자신의 코를 가리키자 풍진개가 인상을 썼다.
원래 풍진개의 코는 주독이 올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풍진개의 상징과 같았기에 변용을 하여 숨긴 것이다.
‘제기랄…… 변용(變容)이 조금 약하게 됐나?’
이미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정체를 드러내기 곤란한 일을 하는 중이오.”
“아! 그렇습니까?”
“그러니 되도록 모르는 척해 줬으면 합니다만…….”
“아이쿠! 강호를 위해 불철주야(不撤晝夜) 노력하시는 분이시니 제가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고맙소. 그러면 이제…….”
뭐라 말을 하려던 풍진개의 눈이 선실 쪽으로 향하더니 꿈틀했다. 그걸 본 풍백도 본능적으로 슬쩍 고개를 돌려 풍진개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풍백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