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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30화 (13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30화

강서성 관도를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중원 전체에 거미줄처럼 만들어진 관도는 두 가지로 구분이 된다. 넓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관도(大官道)와 대관도보다는 좁고 이용하는 사람도 적은 소관도(少官道)다.

대관도와 비교를 해서 적다는 말이지, 그렇다고 소관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대관도에 비하여 소관도는 산적과 같은 흉사(凶事)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마차가 달리고 있는 길은 소관도였다.

풍백은 점차 해가 지고 산위로 붉게 노을이 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노숙을 할 것 같네.’

익숙하지 않은 길이다. 그러니 객잔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또한 대관도와 달리 소관도는 객잔도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주 소저를 데리고 오지 않기를 잘했어.’

이제는 시비처럼 대할 수 없는 주약란이다. 그러니 노숙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녀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저도 같이 가겠어요.”

풍백이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호북성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주약란이었다.

주약란의 반짝이는 초록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풍백이 입을 열었다.

“주 소저…….”

“이전에도 말했지만, 소란이라고 불러 주세요. 전 아직 도련님 시비잖아요.”

사실이었다. 아직 주약란은 풍백의 시비는 맞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시비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가상방이 잔치를 벌였던 날까지는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흐르며 슬슬 주약란이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숨길 수도 없었다.

주약란은 최대한 숨기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무려 백련문의 문주인 무정검군 주천구가 그녀를 쫓아다니며 보살펴 주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처음에는 주천구가 주책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눈도 있었지만, 그 이후 몇 가지 소문이 퍼지며 그녀가 주천구의 무남독녀(無男獨女)라는 사실까지 퍼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누구도 주약란에게 어떤 일도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숙소를 손님들께 제공되는 다른 곳으로 바꿔 주려고까지 했었다.

이쯤 되었을 때는 주약란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숙소를 제공받지는 않았다. 대신 주천구가 사용하는 거처에 빈방이 많았으니 그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러면서 수월이는 주약란의 개인 시비처럼 되었다. 이것에 대해서도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수월이가 주약란과 얼마나 친했는지 알고 있었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주약란은 아직까지 명목상으로는 풍백의 시비였다.

이런 주약란의 말에 풍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굳이 제 시비를 자처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주약란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대신 하지 못한 말은 그녀의 속마음에서 이어졌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적가상방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지금도 주천구는 그녀를 데리고 백련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종종 꺼내고 있었다.

그녀 역시 언젠가는 주천구의 말대로 백련문으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이제 백련문이 그녀의 집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게 헤어지게 되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그녀의 마음속에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풍백의 말이 조금 슬펐다.

주약란은 머리를 흔들어 이런 기분을 털어 버리고 말했다.

“이전에 도련님이 저에게 약속하셨어요. 멀리 떠날 일이 있으면 꼭 데리고 가겠다고요.”

“그건…….”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그녀를 데리고 항주에 갔었고, 화오염장까지 데리고 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입장이 달랐다.

지금 풍백이 주약란을 데리고 창룡봉무지회에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단순히 주약란을 호위하는 호법 두 명만 따라올 수 있었지만, 주천구가 보여 주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무정검군이 창룡봉무지회에 나타나게 되겠지.’

주천구는 엄연히 정사지간이다.

그런 주천구가 명문정파 후계자들이 모이는 창룡봉무지회에 나타난다면 대단한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소란은 그리 즐거운 형태의 소란이 아닐 것이고.

그리고 이런 소란 때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약란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주 소저, 제 얘기를…….”

“소란이라고 불러 달라고요.”

단호하게 끼어드는 주약란의 태도에 풍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소란아. 이렇게 부르면 되나?”

“맞아요.”

대답하는 주약란의 얼굴이 한결 밝아 보였다.

풍백은 그런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내 얘기를 잘 듣도록 해.”

“듣고 있어요.”

“아마 네가 없었다면 나는 적가상방을 당분간 떠나지 않았을 거다.”

“네?”

대체 풍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적가상방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어. 그 이유는 우리 적가상방이 대단히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 말고도 더 결정적인 이유가 더 있었다.

마겁이 모습을 드러내고 백건상방을 멸문시켰다. 그러나 풍백은 이것으로 끝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멸문을 당했던 적가상방이었다. 그리고 백건상방과 달리 적호경과 진덕양은 당시에 납치를 당하지 않았었다.

이 말은 어쩌면…… 적가상방은 다른 이유로 멸문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풍백은 언제 적가상방이 과거와 같은 멸문을 당할지 알 수 없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그저 동경과 부러움의 시선만 던진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지. 언제 어디서 어떤 미친놈이 나타나 적가상방을 해코지하려고 할지 몰라.”

주약란은 풍백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하고 제가 적가상방에 남아 있는 게 무슨 상관인지…….”

“굳이 돌려서 말하지 않을게. 네가 적가상방에 있기에 네 아버지와 백련문의 고수가 적가상방을 보호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야.”

무려 초절정고수인 무정검군 주천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필하는 두 호법도 절정고수였다.

마겁이 적가상방을 노리면 이 세 사람을 상대해야 할 것이고, 시간을 지체한다면 청송표국에서 표두와 표사들이 지원을 나오게 될 것이다.

단지 세 사람이 적가상방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문파 수준의 무력을 가진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너를 믿기에 적가상방의 안위를 너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야.”

주약란은 풍백이 자신을 믿는다는 말을 듣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드디어 자신이 풍백에게 도움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풍백은 주약란에게 물었다.

“너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내가 너를 믿고 자리를 비워도 될까?”

“맡겨 주세요! 도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적가상방은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주약란이 작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풍백에게 받기만 했었다. 그러니 이렇게라도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이 순수하게 기뻤다.

이런 주약란의 모습에 풍백이 한시름 놨다는 듯이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고맙다.”

풍백의 감사에 주약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이 홍시처럼 변해 가고 있었다.

풍백이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산 중턱에 걸려 있던 해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여전히 객잔은 보이지 않았다.

마부와 함께 마부석에 앉아 있던 고우길이 말했다.

“소가주님, 아무래도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조금 더 움직이던 마차는 노숙하기 적당한 위치를 찾고는 점차 멈춰 섰고, 고우길과 마부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노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풍백은 생각에 잠겼다.

‘노숙은 오늘까지만 하면 되겠지?’

내일 정도면 강서성 북쪽에 있는 파양현(波陽縣)에 도착할 것이다. 파양현은 강서성 최대 호수인 포양호(我陽湖)에 인접한 곳으로, 그곳에서 배를 타고 호북성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배를 타고 꽤 오래 이동해야 하지만, 그래도 가만히 배를 타고 있으면 호북성의 성도인 무한(武漢)까지 바로 도착할 수 있어서 편했다.

* * *

“어디로 가는 중이지?”

삼소주의 말에 중년 사내가 부복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포양호에서 배를 탈 생각인 것 같습니다.”

“확실하겠지?”

“네, 확실합니다.”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적가상방에 관련해서 실패한 일이 두 번이었나?”

“그,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가 자비롭다고 하지만 세 번이나 봐줄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겠지?”

쿵!

중년 사내가 바닥에 이마를 찍는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이번에는 절대로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래야겠지.”

삼소주는 가볍게 섭선을 살랑이며 말했다. 얼굴에 미소까지 짓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누구보다 냉혹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귀찮게 하고 있어.’

삼소주는 곧 죽을 거라 생각하는 풍백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꾸미면서 굳이 풍백을 목적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다. 상방주인 적호경이나 상방을 꾸려 가는 진덕양 총관이라고 하더라도 영파상방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일은 단순히 개인에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적가상방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이니까.

영파상방에서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적가상방에서 서문세가의 용정차를 모두 구입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공작을 통해 서문세가의 자금줄을 틀어쥘 수 있는 계획이 실행됐는데, 뜬금없이 튀어나온 적가상방 덕분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자 삼소주는 길길이 날뛰며 당장이라도 적가상방을 공격해 부숴 버리려고 했었다. 겨우 중소 규모 상방이 감히 자신들의 행사에 끼어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서문세가를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 풍백을 노렸다면, 이번에는 응분의 대가를 받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현재 적가상방에 백련문의 무정검군 주천구가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가지 정보가 들려오며 습격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주천구는 초절정고수였다. 그리고 문주가 혼자 적가상방을 방문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해 보면 어설프게 습격을 진행했다가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너무 높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습격을 취소한 삼소주는 어떻게든 적가상방에게 응분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번 창룡봉무지회를 이용한 계획이 나온 것이다.

창룡봉무지회는 상인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회의 장과 같은 곳이다. 실제로 몇몇 상인이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여 명문정파와 손을 잡아 크게 일어섰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들려오기도 했다.

영파상방은 이런 창룡봉무지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무리 적가상방이 현재 대상방으로 성장하는 탄탄대로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창룡봉무지회의 이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일이 잘 풀리려고 하니, 이렇게 잘 풀릴 수 있을까?

알아보다 보니 이미 어딘가에서 적가상방을 창룡봉무지회에 초대를 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계획의 수립과 함께 알아서 창룡봉무지회로 향하는 초대장이 발송된 것을 보면 이번 일은 수월하게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얼마 후면 풍백의 시체가 적가상방으로 향할 것이라 생각하며 삼소주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물었다.

“서문세가에 대한 준비는?”

“강소성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미 얘기는 거의 끝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강성으로 내려와 서문세가를 압박할 겁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건?”

“그것도 시행 중에 있습니다. 아직 진행률이 삼 할 정도지만, 강소성에서 사람이 내려와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는 진행이 끝났을 겁니다.”

보고를 들은 삼소주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면 늦어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 결판을 낼 수 있겠군.”

갈 길이 바빴다.

서문세가는 그저 통과할 문에 불과했다. 자신보다 더 앞서 있을 사람들을 쫓아가려면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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