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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29화 (12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29화

청해상방이 몰락해 가는 도중에도 적가상방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상산현의 최대 규모의 상방은 이제 적가상방이라는 말이 종종 들려왔다.

또한 적가상방은 상산현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구주현, 개화현, 강산현에 아주 수월하게 자리를 잡고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각각의 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은 적가상방은 북쪽으로는 건덕현(建德縣), 동쪽으로는 용유현으로 점포를 늘려 갔다.

용유현은 일 년 전 풍백이 적웅에게서 황금불상을 입수한 곳이었다.

하지만 적웅은 이제 용유현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적웅은 뼛속까지 악당이었다. 이미 사람 장사를 하는 놈이었으니, 이 세상에 오래 남아 있어 봤자 다른 사람의 눈물만 뽑을 놈이었다.

그렇기에 풍백의 명령에 따라 고우길이 찾아가 목숨을 빼앗았다.

이제 거의 일류 고수를 바라보고 있는 고우길이었다. 그런 고우길이 적웅과 그 밑에서 일하는 흑도패를 처리하는 것은 소매에서 당과를 꺼내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과거에는 한 지역을 쥐락펴락했던 적웅이었지만, 지금의 적웅은 그저 뒷골목 흙탕물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 갔을 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드디어 적가상방은 절강성을 넘어 강서성으로 진출을 시작했다.

상산현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관도를 따라가면 강서성이 나오고, 강서성 초입에 들어서면 옥산현(玉山縣)이 나온다.

옥산현은 절강성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강서성 마지막 현이기에 규모가 제법 컸다.

아마 적가상방 혼자 강서성으로 진출하는 것이라면 기존에 자리를 잡고 있던 상방과 마찰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가상방의 뒤에서는 강서성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백련문이 버티고 있었다.

주천구는 주약란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경험을 했었는지, 풍백이 그녀를 어떻게 구해 줬고 얼마나 잘해 줬는지 모두 들었다.

겉으로는 풍백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적가상방의 배경이 되어 주면서 강서성 진출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백련문이 쫓아다니며 옥산현의 상방들을 협박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그저 우연인 것처럼 지나가는 말로 적가상방을 두둔하는 말을 한마디씩 던져 주는 걸로 충분했다.

정사지간인 백련문이다. 정파처럼 명분이 있어야지만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옥산현에 자리하고 있던 상방에서는 백련문이 뒤를 봐주고, 무당파 기명제자가 만든 표국이 표물을 운송하는 적가상방을 감히 적대할 간담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백련문이 계속 지원을 해 주기만 한다면 적가상방은 옥산현뿐만 아니라 강서성 전역을 상권으로 집어넣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과거 금호상방이 강서성을 자신의 상권으로 만들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성장 속도였다.

이렇게 가파르게 상승세를 그리고 있는 적가상방에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안찰사가 포정사를 내사하고 있다고?”

“그렇답니다.”

고우길의 보고에 풍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작인가?’

얼마 전, 포정사가 은밀하게 서찰을 전해 왔다. 서찰의 내용은 간단했다.

- 당분간 연락을 자제하고, 건네줄 물건은 다음으로 넘기도록 하라.

여기서 말한 건네줄 물건이란 당연히 소금을 판매하고 포정사에게 건네줄 돈을 말하는 것이었다.

서찰을 은밀하게 전달한 것도 모자라 돈이 아니라 물건이라 표현한 것을 보고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걸 파악한 풍백이었다.

풍백은 곧바로 고우길을 시켜 포정사의 근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시켰다. 그리고 고우길이 가져온 대답은 풍백의 예상이 맞다는 걸 알려 주었다.

‘그런데 다음으로 넘기라고? 아직 뒤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풍백은 포정사가 안찰사에 의해 황궁으로 압송을 당한 뒤, 삭탈관직(削奪官職)을 당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서찰을 몰래 전한 것을 보면 포정사의 욕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지. 설마, 이것도 바뀌는 건가?’

마겁이 튀어나와 적가상방이 아니라 백건상방을 멸문한 것도 원래는 없던 일이었다.

포정사와 관련된 일은 소금 전매권에 관한 일뿐이지만, 이것으로 포정사가 삭탈관직을 당하는 미래가 바뀌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건 풍백에게는 대단히 곤란한 일이었다.

포정사가 삭탈관직을 당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니 포정사는 어떻게든 원래 그랬던 것처럼 삭탈관직을 당해야 했다.

‘만약 삭탈관직을 당하지 않는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슬쩍 밤에 찾아가서 더 이상 눈 뜰 일이 없도록 만들면 되는 일이기는 했다.

‘일단 두고 봐야겠군.’

정말 포정사가 원래 역사와 달리 살아남는다면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적호경과 진덕양이 그를 찾는다는 전갈이 전해졌다.

아마도 포정사와 소금 전매권 때문일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풍백이 적호경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풍백이 집무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적호경과 진덕양이 물어본 것은 포정사에 관련된 일이었다.

적가상방은 현재 소금 판매로 큰 이익을 보고 있었다.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릴 수 있는 이유도 모두 소금 판매로 막대한 금액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포정사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면 화오염장의 소금 전매권을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말 포정사가 착복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행여나 풍백이 소금 전매권을 가져오면서 따로 챙겨 주기로 한 것은 없는지 걱정하고 있기도 했다.

적가상방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보다 포정사와 함께 풍백이 잡혀 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풍백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금 판매로 나오는 금액은 모두 아버지와 숙부님이 처리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포정사에게 따로 챙겨 주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풍백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손톱만큼의 거짓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구나.”

“그것 보십시오. 우리 백아가 그렇게 허술하게 일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덕양의 말에 적호경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분명 포정사 소식을 듣고 당장 백아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던 건 네가 아니었나?”

“어흠…… 물어보자는 말이지 믿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풍백은 조금 가책이 느껴졌다. 사실은 엄청난 금액을 돌려주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포정사가 살아남으면 진짜 해치워서 없던 얘기로 만들어야 하나…….’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적호경이 서찰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포정사 얘기 말고도 이것 때문에 너를 불렀다.”

“이게 뭡니까?”

“네가 읽어 보거라.”

서찰을 펼친 풍백은 눈으로 빠르게 읽었다.

‘응? 창룡봉무지회(蒼龍鳳舞之會)?’

남궁세가를 비롯하여 중원에 있는 각 명문세가가 중심이 되어 세가들과 문파의 모임이 바로 군웅회였다.

군웅회는 과거 무림맹(武林盟)처럼 강호의 안녕을 위해 힘을 쏟는 집단은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강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는 한다.

그러나 이전의 무림맹처럼 부지를 선정하고 한곳에 모여서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웅회의 목적으로 강호의 안녕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 바로 자신들의 영리(榮利)였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 서로의 의견 조율 및 분쟁의 중재를 했는데, 이것을 보통 군웅지회(群雄之會)라 불렀다.

이런 군웅지회와 별개로 열리는 것이 창룡봉무지회였다.

창룡봉무지회는 군웅지회처럼 의견 조율을 하거나 분쟁의 중재와 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창룡봉무지회의 가장 큰 목적은 각 세가나 문파의 후기지수가 모여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친목이라고 해서 매일 연회나 벌이는 것은 아니었다.

혈기왕성한 젊은 후기지수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비무를 통해서 서로 무공을 비교해 보기도 하는데,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사이거나 대립하는 문파가 있으면 이 비무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군웅지회와 창룡봉무지회는 강호를 비롯하여 상계의 사람들도 어떻게든 참가하기를 바란다.

어떻게든 안면을 트고 친분을 다지기 위해 군웅지회나 창룡봉무지회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까지 적가상방은 이런 창룡봉무지회에 참가했던 적이 없었다.

이건 적가상방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지간한 대상방이 아닌 이상 초대 받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테니까.

“어디서 보낸 겁니까?”

“발신인은 없더구나. 그래도 이런 큰 기회를 우리에게 권유할 곳이 한 곳밖에 더 있겠느냐.”

서문세가를 말하는 것이다.

군웅회를 이후는 명문세가에는 서문세가 역시 포함이 되었다. 그러니 적가상방의 후계자를 부를 수 있는 초대장을 발송할 충분한 위치에 있었다.

‘서문세가가? 그러면 왜 이전에 미리 언급하지 않았던 건지…….’

이전에 서문표가 방문했을 때는 그저 용정차에 대한 협의만 진행했었다. 아무래도 용정차가 서문세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다 보니, 당시에는 다른 얘기를 할 경황이 없기는 했을 것 같았다.

“제가 창룡봉무지회에 참석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나쁘지 않은 얘기지 않더냐? 우리 적가상방이 지금 빠르게 커질 수 있었던 이유로 백련문의 힘을 부정할 수 없지 않더냐. 그러니 이 기회에 참석해서 운이 좋게 다른 문파와 친분을 다질 수 있다면 향후 적가상방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적호경의 말이 끝나자 진덕양이 답답하다는 듯이 얼른 끼어들었다.

“아니, 방주님은 뭘 이렇게 돌려서 얘기합니까? 창룡봉무지회입니다, 창룡봉무지회! 당연히 가야지요!”

“자발없이……. 넌 왜 가만 갈수록 더 젊어지는 거냐?”

진덕양이 젊었을 적에는 그 나이에 걸맞게 과감한 결정을 많이 내렸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적호경이 내려야 할 결정을 자신이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고 연륜이 붙으면서 그런 모습보다는 진중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풍백이 정신을 차린(?) 작년부터 점점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적호경은 아마도 적가상방이 급류를 탄 것처럼 요동치다가, 이제는 그들이 젊어서 꿈꿨던 것처럼 점점 대상방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진덕양이 흥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자신들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백아가 결정할 일이다. 그러니 너는 가만히 있도록 해라.”

“당연히 백아가 결정하겠지요. 창룡봉무지회에 가는 걸로…….”

마지막까지 풍백에게 압력을 넣으려고 하는 진덕양이었다.

그런 진덕양을 향해 풍백이 보지 못하도록 등을 돌리고 눈을 부라리며 입모양으로 욕을 쏟아 내는 적호경이었다. 그걸 본 진덕양은 찔끔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풍백은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정말…… 그가 과거에 죽기 전에 바라던 모습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창룡봉무지회에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풍백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덕양이 크게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쳤다.

적호경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쓸어 올리며 물었다.

“정말 괜찮겠느냐? 괜히 네 숙부 때문에 결정한 거라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형님! 백아가 가 보겠다고 하잖습니까!”

“넌 좀 닥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적호경에게 풍백이 얼른 대답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요. 가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문파가 생기면 적가상방에도 좋은 일 아닙니까. 그러니 당연히 가야지요.”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대신 꼭 적가상방이 상권을 넓히거나 점포를 세울 때 도움을 받으려고 친분을 쌓으려는 건 아니었다.

풍백은 마겁이 언제 적가상방을 다시 노리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백건상방이 어떤 의뢰를 받았기에 마겁에게 멸문을 당했다는 걸 알지만, 과거 적가상방도 그런 의뢰 때문에 멸문을 당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것은 적가상방이 자체적으로 무력을 갖는 것이겠지만, 이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우호적인 세가나 문파를 많이 만들어서 부족한 무력을 채워야 했다. 우호적인 세가와 문파가 많이 생기면 최악의 경우에 상주하는 고수나 무사를 빌려올 수도 있으니까.

‘오랜만에 멀리 여행을 가겠군.’

창룡봉무지회가 열리는 곳은 무려 호북성(湖北省)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풍백에게 진덕양이 적호경의 신호를 받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창룡봉무지회에는 젊은 처자들도 많이 온다고 하더구나.”

진덕양의 목소리를 들으니 풍백의 육감이 강렬한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렇겠지요. 각 세가나 문파의 후기지수가 모이는 것이니까요.”

“가면 마음에 드는 처자가 있는지 잘 살펴보고, 괜찮다 싶은 처자가 있으면 얘기도 나누고 그러도록 해. 혹시 아느냐? 그 처자가 너와 같이…….”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일단 알겠습니다. 가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맺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풍백이 후다닥 집무실에서 나갔다.

당장은 혼인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적가상방이 누구에게도 위협이 받지 않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풍백이 이렇게 나가 버리자 적호경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내가 들어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번에 알겠더만.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면 당장 망할 것이다.”

“그러면 형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이 녀석이! 네가 말하는 것과 아비인 내가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게감이 다르겠느냐! 당연히 여기서는 네가 나서서 말하는 것이…….”

“허이구! 지금도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말하는데 직접 하십시오, 직접!”

두 사람이 투덕거리는 소리가 집무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풍백은 그런 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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