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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27화 (12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27화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리할 시간이었다.

풍백이 자리에 일어나 품에서 약병을 꺼냈다. 그의 손은 그중에서도 노란빛의 가루약이 들어 있는 약병을 선택하고 있었다.

조유하는 그런 풍백에게 다가와 물었다.

“우리 얘기 좀 해요.”

“무슨 얘기?”

“백건상방을 습격했던 놈들에 대한 거요.”

“이놈들이 하는 얘기를 같이 들었으면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야.”

“당신은 뭔가 더 알고 있잖아요. 저도 눈치라는 것이 있다고요.”

그 말에 풍백이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 행동하던 걸 보면 그다지 눈치가 좋지도 않은 것 같던데.’

이런 말을 면전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

“전부 얘기해 달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적어도 놈들의 정체가 뭔지만 알려 주세요.”

“나도 몰라.”

“모른다고요? 옆에서 보니까 이놈들이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던데요.”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하는 건데?”

“이 사람들이 자결하기 시작하자 옷을 벗겨서 확인했잖아요. 겁이라고 문신이 새겨져 있던데…….”

“거기까지만 해.”

“뭐가요?”

풍백은 조유하를 보며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굳이 파고들지 말라는 말이야.”

“그러면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던 놈들을 그냥 두고 보라는 말인가요?”

“두고 보지 않으면 어쩌려고?”

“뒤를 쫓아서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스스로의 역량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거야.”

“뭐라고요?”

풍백은 대답을 하는 대신 약병을 열어 총관의 상처 부위에 노란색 가루를 뿌렸다.

그러자 잠시 후, 상처 부위에서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총관의 시신이 부패하여 녹아들기 시작했다.

“헉! 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죠?”

조유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화골산(化骨散)이라고 하지. 처음 보나?”

시체를 처리하는 용도로 대부분 사용되는 화골산은 대단한 극독이다. 피에 닿아야만 발동을 시작하는 화골산은 피와 살점은 물론이고 뼈까지 모두 녹여 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암상을 통해서 극히 소량만 유통되는 물건이기에 풍백 역시 꽤 고생해서 손에 넣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유하는 끔찍하게 녹아 가며 풍기며 악취에 놀라 코를 가리고 소리쳤다.

“얘기는 들어 봤지만…… 그게 아니라! 총관님의 시체는 가족에게 가지고 가야죠!”

“곽자억의 시신도 가져가고?”

“당연하죠.”

“그러면 아마 흉수는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빨리 눈치챌 수 있겠군. 그리고 시신을 인도한 것이 당신이니, 조만간 야밤에 금호상방을 방문하는 놈들을 볼 수 있겠고.”

“아…… 그건…….”

“나쁘지 않네. 곽자억의 시신은 남아 있으니 가지고 가서 관부에 돌려주도록 해. 흉수가 다시 금호상방에 나타나면 몇 놈 잡아다가 뒤를 캐보는 것이 좋겠어. 금호상방에 조금 피해가 일어날 수 있지만…… 그건 대단하신 조유하 여협께서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잔뜩 비꼬는 듯한 풍백의 말에 조유하가 발끈했다.

“은밀하게 시신만 관부에 넘기면…….”

“그러면 상산현을 뒤져 보겠지. 아마 금호상방과 청송표국 정도가 습격을 받겠지? 여기에 있던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곳이라면 두 곳밖에 없으니까.”

“…….”

“아참! 이건 당연히 네가 보타암 사람이라는 것이 들통난다는 가정하에 말한 거야. 들통나지 않는다면 청송표국 정도만 박살 나려나? 내막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이 다치겠군.”

풍백은 실실 웃으며 팔짱을 끼고 조유하를 바라봤다.

대놓고 조롱하는 듯한 풍백의 태도가 몹시 불쾌한 조유하였다.

그러나 뭐라 말하기가 힘들었다. 아무래도 풍백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았으니까.

이제는 조유하도 알고 있었다.

풍백은 그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풍백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건 무언가 자신이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숨을 푹 내쉰 조유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당신에 비하면 식견이 부족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비꼬지 말고 얘기를 해 주면 안 되나요?”

백기를 든 것과 같은 조유하의 말에 풍백은 어깨를 으쓱했다.

“억울해도 참아. 이 정도 비난을 참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

“여기서 최선은 여기에 있는 모든 시신을 없애고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위험을 감수할 것이 아닌 이상, 조 소저와 나를 쫓기가 어려울 테니까.”

“…….”

“그리고 특히 시신에 보타암의 흔적이 남았을 테니 조 소저가 제압했던 놈은 반드시 없애야겠지.”

풍백은 말을 마치고 곽자억과 흑의인들의 시신들도 모두 화골산으로 녹여 버렸다.

흑의인들의 시신에서 몇 가지 소지품들이 나왔지만, 특별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정체나 행적이 드러날 것 같은 것들은 소지하지 않았다.

조유하는 녹아 가는 곽자억의 시신을 보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작게 중얼거리는 걸 보면 명복을 비는 염불이라도 외우는 것 같았다.

그녀가 염불을 외우는 동안 풍백은 동굴과 인근에 남아 있을 흔적들을 깔끔하게 지웠다.

아마 누군가가 추적을 한다면 이곳에서 고문을 했던 흑의인이 떠났다는 흔적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그 흔적도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고 말이다.

흔적 지우는 걸 마친 풍백이 돌아오자 조유하는 마침 동굴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조유하는 풍백에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흑의인들이 누구였는지 얘기해 주세요.”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를…….”

“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만약에 백건상방에서 일어났던 일이 우리 상방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묻는 거예요.”

“흠…….”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는 않을게요. 약속해요.”

상대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던 풍백은 대번에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잠시 고민하던 풍백이 입을 열었다.

“범혜사태에게도 말하지 않을 건가?”

“당신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로 말하지 않아요.”

“오늘 일은?”

“……입을 다물겠어요.”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이지, 조유하는 똑똑한 사람이다.

풍백에게 면박에 가까운 얘기를 듣고서 자신이 함부로 움직이면 그 여파가 파국에 이를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한 것이다.

그녀의 대답에 담긴 진심을 이해한 풍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하면 실망할 것 같지만, 사실 나도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어. 그만큼 자신들의 행적을 철저하게 감추고 다녔던 놈들이지. 심지어 그들의 이름도 아직까지 모르니까.”

“아…… 그래도 황궁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다는 것 아닌가요?”

조유하는 아까 풍백이 북경을 언급하고 어사를 입에 담은 것을 이제 완전히 믿는 것 같았다.

“알고는 있지. 그것도 아주 소수만.”

“그러면 이들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있는 건 어떤 건가요?”

“누구도 믿지 말라는 것.”

“……네?”

“지금까지 나는 이놈들이 아직 중원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지.”

“그러면…….”

“아마 훨씬 전부터 중원 어딘가에 들어와 있었다. 과연 이들은 산속 어딘가에 숨어만 있었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굳은 얼굴의 조유하를 보며 풍백이 말을 이었다.

“이놈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아는 바가 없어. 왜 백건상방을 멸문시킨 건지, 백건상방에 의뢰를 넣었다는 의뢰인은 누군지도 몰라.”

“…….”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아무런 일도 벌이지 말아 주길 바란다. 만약 일을 벌일 생각이라면 철저히 준비를 하고……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풍백이 많은 이야기를 해 준 것 같지만, 사실 해 준 얘기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꽤 거짓이 섞여 있었고 말이다.

모든 진실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사실을 어떻게 알려 주겠나?

그리고 적가상방 대신 백건상방이 멸문하고, 풍백이 적웅이 얻었어야 할 황룡사의 무공을 가로채면서 서문세가가 무너질 가능성도 많이 줄었다.

그러니 서문세가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서문표가 군부에 몸을 담는 일도, 부대를 이끌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과거가 달라지면서 아마 미래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마겁에 대해서 앞으로 알아채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해 보면 조유하에게 많은 얘기를 해 줄 수는 없었다.

조유하는 풍백의 이야기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조유하 역시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제대로 강호에 출도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 강호의 이면에 암약하고 있는 흉수를 발견한 것이다.

당분간 조유하는 풍백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녀가 입을 다물고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어떤 때가 된다면 입을 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풍백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믿지 않았다.

그가 믿는 건 오직 아버지인 적호경과 숙부인 진덕양, 그리고 몇몇 상방의 사람들뿐이었다.

“그럼 이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

“당신은요?”

“동굴 내부 정리를 마치고 나도 움직여야지.”

시신이 화골산에 녹으면 누런빛의 물로 변한다. 그것이 피부에 닿아도 문제는 없지만, 상처에 닿으면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그냥 놔둔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마르면서 없어지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물로 바닥을 적당히 씻어 주는 것이었다.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듣고 싶어요.”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그리고 나는 원래 이렇게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 위치다.”

“왜요?”

“행적이 드러날 수 있으니까.”

어사라는 핑계는 지금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어사에 대해 잘 모르는 조유하이니 속이기도 편했다.

조유하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도 만날 방법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왜? 방금 얘기를 듣지 못했나?”

“혹시라도 또 그들로 인해 상산현에 문제가 생기면요? 아, 아니면 금호상방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도와 달라고 연락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풍백은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수작질인가 싶었다.

하지만 조유하의 말에 조금 솔깃하기는 했다.

금호상방은 은근히 발이 넓고 정보에도 밝았다. 또한 보타암과 깊은 관계를 맺을 곳이기도 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적가상방에 문제가 생긴다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조유하의 말대로 백건상방과 같은 일이 언제 또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풍백은 이런 마음을 숨기고 짐짓 골치 아프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죠?”

“그러면 이렇게 하자고. 나를 만나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발생하면 네 거처에 장대를 세우고 푸른색 깃발을 달도록 해.”

“아…… 깃발이요? 그걸 보고 당신이 찾아오는 건가요? 저는 연락할 수 있는 곳을 알려 주거나 거처를 알려 줄 거라 생각했는데…….”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나는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는 사람이야. 너와 달리 무지막지하게 바쁘다고.”

“그, 그러면 너무 늦을 수 있잖아요.”

“그럼 늦지 않게 서둘러서 깃발을 달아.”

퉁명스럽게 말하며 풍백이 동굴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조유하가 다시 다급하게 물었다.

“이름 좀 알려……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뭐라도 알려 줘요! 계속 그쪽이나 당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풍백은 전혀 상관없었지만, 그래도 서로 호칭은 있어야 하지 않냐는 말에는 동의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반사적으로 이름이 튀어나왔다.

“연유…….”

서둘러 입을 다물었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유요?”

조유하의 되물음에 풍백은 짜증스럽게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제기랄…… 하필이면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연유는 과거 부대에서 풍백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대충 아무 이름이나 말해도 되는 상황에서 이 이름이 튀어나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과거에 오랜 시간 사용한 이름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됐다.

“그래, 연유라고 불러라.”

말을 마친 풍백이 동굴로 걸어 들어갔다.

조유하는 그런 풍백의 뒷모습을 보다가 어둠에 풍백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곧 상산현을 향해 표홀히 몸을 날렸다.

‘연유…… 라…….’

경공을 사용해 달려가는 조유하는 풍백이 말해 준 이름을 다시 떠올려 보고는 진심으로…….

이를 갈았다.

빠드드득!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바보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면박에 구박에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아마 처음일 것이다.

이런 취급을 받았던 적은.

‘나중에 반드시 이 치욕을 갚아 주겠어!’

물론 풍백을 베어 버리겠다는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에 어떤 명목으로 다시 만나든 자신을 무시하던 풍백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다.

‘기왕이면 내의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고 그 뒤통수를 발로 밟…… 이, 이건 아닌가? 아무튼! 절대 가만 놔두지 않겠어!’

조유하의 눈이 맹렬하게 이글거렸다.

어쩌면…… 강호에 검후가 풍백이 알던 과거보다 더 빨리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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