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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25화 (12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25화

“하압!”

기합과 함께 흑의인이 풍백의 머리를 쪼갤 듯이 검을 휘둘렀다.

풍백은 단창을 들어 검을 비스듬히 흘려 내고는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옆으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풍백이 서 있던 자리를 도가 베고 지나갔다.

세 명의 흑의인은 평소에 서로 합을 맞춰 봤었던 건지, 초식 하나하나를 펼칠 때마다 서로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을 해 주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풍백이 단창으로 흑의인 중 하나의 요혈을 찌르려고 하자, 다른 두 흑의인 중 하나가 풍백의 공세를 같이 막아 주고, 다른 한 명은 풍백의 후방을 공격하며 물러서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합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풍백은 세 흑의인이 펼치는 합공을 가벼운 몸놀림과 난화보를 섞어서 피했다.

난화보는 나쁘지 않은 보법이었다. 그러나 절기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유용하지만, 아무래도 변화가 단순하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풍백은 난화보를 펼치면서 이렇게 부족한 변화를 절정의 경지에 오르며 얻은 몸놀림으로 채우고 있었다.

휭! 휭! 휭! 휭!

흑의인 중 하나가 맹렬하게 유성추(流星鎚)를 돌렸다.

유성추는 기다린 줄 끝에 쇠로 된 추를 매달아서 사용하는 기문병기였다.

줄의 길이에 따라 몇 장의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는 유성추는 상당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병기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를 던져 마치 창이나 회수가 가능한 암기처럼 이용하고, 거리가 가까우면 줄을 짧게 잡아 채찍처럼 휘두르거나 목을 조르기도 한다.

만약 줄 끝에 쇠로 된 추가 아닌 예리한 단검을 매달면 승표(繩鏢)라 부르는 또 다른 기문병기가 된다.

그런데 흑의인의 유성추는 한쪽에는 쇠로 된 추를, 다른 한쪽에는 단검을 매달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성추를 사용하기 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두 명의 흑의인이 각각 검과 도를 휘두르며 풍백을 노리고 들어왔다. 아주 익숙하게 검은 풍백의 상체 요혈을 노리고, 도는 풍백의 배후를 노렸다.

풍백은 양손으로 군부에서 배웠던 쇄금십이단창술(碎金十二短槍術)을 펼쳐 두 사람의 공세를 막아 갔다.

그가 이 무공을 배운 이유는 암살을 위해서였다. 암살용 무기 중 하나로, 소지가 용이하다는 이유 때문에 단창을 선택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단창을 들고 정면 대결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제법 손에 잘 맞는 것 같지만…….’

흑의인의 검과 도가 풍백의 단창과 부딪치며 튕겨졌다. 풍백은 빈틈이 드러난 흑의인의 가슴에 단창을 박아 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쐐애액!

귀를 자극하는 파공음과 함께 유성추가 날아왔다.

흑의인의 가슴에 그대로 단창을 박아 넣는다면, 뒤에서 날아온 유성추가 풍백의 척추를 부숴 버릴 터였다.

미간을 찌푸린 풍백이 난화보를 사용해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맹렬하게 날아오던 유성추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다시 돌아갔다.

‘슬슬 짜증 나네.’

익숙하지 않은 기문병기는 꽤 상대를 짜증 나게 만드는 법이었다.

다시 밀려오는 세 흑의인의 합공을 피하며 슬쩍 시선을 돌려 조유하를 확인했다.

조유하와 흑의인의 싸움은 시종일관 일방적이었다.

흑의인은 단지 조유하의 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칠 뿐이었고, 조유하는…… 승기를 잡았음에도 결정적인 마무리를 가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초식을 펼치는 걸 망설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조유하는 점차 과감하게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과 굳이 목숨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제압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름지기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그래도 감을 잡은 것 같으니 아마 몇 초식이면 제압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조유하가 강호초출에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절정고수였으니까.

단지 조금 걱정되는 것이라면…….

‘이러다가 어설프게 저 여자가 도와주겠다고 끼어들겠는데?’

괜히 조유하가 끼어들었다가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빨리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을 정한 풍백을 향해 다시 한번 흑의인의 검과 도가 흉흉한 기색으로 달려들었다.

풍백이 아까처럼 흑의인의 검과 도를 흘려 내는 순간, 유성추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날아왔다.

‘너도 이거나 받으라고.’

풍백은 유성추를 던진 흑의인을 향해 단창을 집어던졌다.

마치 암기처럼 두 개의 단창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흑의인이 대경실색했다. 설마 자신의 무기를 암기처럼 던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흑의인이 다시 유성추를 회수하며 단창을 막아 갔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는 풍백이 정면에 있는 검을 든 흑의인을 향해 난화보를 사용하며 빠르게 접근해 장법을 펼쳤다.

검을 든 흑의인은 풍백이 단창을 던져 버리는 걸 보고 승기를 잡기 위해 도박과 같은 수를 펼쳤다고 판단했다.

풍백의 뒤를 선점하고 있는 도를 든 흑의인과 눈을 마주치고는 곧장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아끼고 있던 절초를 펼쳤다.

그러자 대여섯 개의 검영이 흑의인의 몸을 감쌌고, 흑의인은 그 상태로 풍백을 덮쳐 왔다.

마치 목숨을 도외시하고 치명타를 날리기 위한 동귀어진(同歸於盡)처럼 보였다.

그러나 도를 든 흑의인이 벼락같은 일도로 풍백의 배후에서 사선으로 베어 갔다.

흑의인의 일도를 막아 내는 순간, 검영으로 몸을 감싼 흑의인이 풍백을 들이받으려는 모양새였다.

수장만으로는 자신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의 생각은 곧 풍백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사라지게 되었다.

풍백이 발걸음을 내딛자, 그의 신형이 슬쩍 떠오르는 느낌이 나더니 자신을 노리는 일도에 떠밀리는 것처럼 스르륵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신기에 가까운 보법인 부운연화미리보였다.

유령처럼 움직이는 풍백의 모습에 도를 휘두른 흑의인은 눈이 찢어져라 크게 떴다.

풍백은 뒤에 있는 흑의인이 놀라든지 말든지 상관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 뛰어들고 있는 흑의인을 향해 쌍수를 불쑥 내밀었다.

‘감히? 팔을 잘라 주마!’

흑의인은 풍백이 자신의 검을 향해 손을 내미는 걸 보고 검에 더욱 많은 내공을 집어넣었다. 단숨에 풍백의 팔을 자르고, 연이어 목까지 자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흑의인이 검이 풍백의 손목을 자를 것처럼 접근한 순간, 수장의 움직임이 변하며 가볍게 검면을 밀쳐 냈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지, 마치 나풀거리는 꽃잎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어엇!’

검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자 흑의인의 가슴이 그대로 풍백의 앞에 드러났다. 풍백은 그런 흑의인의 가슴을 향해 준비했던 쇄옥장을 적중시켰다.

펑!

가죽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흑의인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풍백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몸을 돌려 이번에는 도를 들고 있는 흑의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익…….”

흑의인은 이를 악물고 절초를 펼치며 위맹하게 도를 휘둘렀다. 그의 도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보면 자신의 모든 내공을 담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무서운 기세로 떨어지는 도를 향해 풍백이 일장을 내뻗었다.

흑의인은 감히 수장으로 자신의 모든 내공을 담고 있는 도를 마주하려는 풍백에게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으득!

‘오냐! 어디 받아 봐라!’

만약 풍백의 수장에서 위맹한 위력이라도 느껴졌다면 모르겠지만, 풍백이 뻗은 일장에서는 그런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풍백의 수장과 흑의인의 도가 부딪쳤다.

그러나 생각과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렸다.

퉁!

풍선끼리 부딪친 것과 같은 소리가 울리더니, 흑의인의 도가 손아귀를 찢으며 튕겨져 나가 천장에 박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흑의인이 멍하니 풍백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풍백 대신 풍백이 내민 주먹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을 뿐이었다.

빠악!

뇌공권에 얻어맞은 흑의인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내공이 가득 담긴 단창을 이제야 해결한 흑의인이 두 명의 동료가 순식간에 쓰러진 것을 보고 위협적으로 유성추를 돌렸다.

휭! 휭! 휭! 휭!

“이놈!”

분명 유성추를 다루는 흑의인은 다른 두 흑의인보다 조금 더 강했다. 그러나 풍백에게는 어차피 비슷한 수준일 뿐이었다.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유성추를 지켜보고 있던 풍백이 불쑥 손을 내밀어 유성추의 줄을 그러잡았다.

패앵!

줄이 길게 당겨지며 끊어질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손쉽게 유성추를 잡아 내는 풍백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흑의인은 몸을 회전하며 밧줄을 허리에 감는 동시에 반대편에 달린 승표를 던졌다.

그걸 본 풍백은 승표를 피하려 하지 않고 손에 쥔 유성추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허리에 줄을 감았던 흑의인이 빙글빙글 돌며 승표가 다시 뒤로 돌아갔다.

뒤이어 난화보를 사용해 빠르게 접근한 풍백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흑의인의 양다리의 정강이를 발로 연이어 찼다.

빠박!

“아아악!”

정강이의 뼈가 너무 쉽게 부서지며 흑의인이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풍백은 그런 흑의인의 마혈을 점하고 시선을 돌려 조유하를 바라봤다.

마침 조유하 역시 흑의인의 병기를 튕겨 내고 마혈을 점하고 있었다.

조유하와 싸웠던 흑의인의 온몸은 온통 상처가 가득해서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이건 조유하가 흑의인을 일부러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된 실전을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과하게 손을 쓴 것일 뿐이었다.

아마 지금 생사결을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면 알아서 패배를 인정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흑의인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후우…… 후우…….”

아직 첫 실전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조유하가 조금 숨을 거칠게 쉬었다.

‘꽤 안정적인 첫 실전이었네.’

실전을 처음 경험하게 되면 긴장하여 자신이 다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절정고수에 오르면서 실전을 처음 갖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건 전적으로 조유하가 너무 뛰어난 탓이다.

그녀의 나이에 실전을 경험하지 않고도 절정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풍백은 거칠게 숨을 쉬는 조유하에게 말했다.

“내공을 도인하면서 천천히 숨을 가라앉혀.”

“알고 있…… 아, 부상자가!”

조유하는 풍백의 말에 대답하다가 백건상방 총관을 떠올리고는 서둘러 달려갔다.

풍백은 그런 조유하를 놔두고 유성추를 사용하던 흑의인에게 다가갔다. 명령을 내리던 걸로 봐서는 그가 이곳에서 가장 직위가 높아 보였으니, 아마 가장 해 줄 말이 많을 것이다.

“씨익…… 씨익…….”

그는 다리가 부러진 고통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피식 웃은 풍백이 흑의인의 부러진 다리를 발로 꾸욱 밟았다.

“끄으으윽…….”

“참아? 제법이네.”

흑의인은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풍백을 노려봤다.

그러나 풍백은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히죽 웃고 있을 뿐이었다.

과거 풍백은 암살, 추적은 물론이고 명령에 따라 온갖 일들을 처리하고 다녔다.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 적의 입을 열도록 만들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풍백을 비롯하여 부대원에게 고문은 기본 소양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궁금한 것이 참 많거든. 그래서 너에게 듣고 싶은 말도 많아. 그러니 어지간하면 쉽게 가자고. 네 이름이 뭐지?”

“…….”

흑의인은 여전히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풍백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좋은 말로 하면 왜 듣지를 않니.”

“…….”

“그리 즐거운 시간이 되지는 않을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풍백은 흑의인의 아혈을 점혈하려고 했다. 어차피 조유하가 보고 있는 앞에서 이들을 고문할 수는 없었다. 보타암의 제자인 그녀가 그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제법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날이 샐 것 같았다. 그러니 풍백도 적가상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적당한 곳에 일단 숨겨 놓고 밤에 와서 심문을 해야…….’

이런 생각을 하는 풍백의 귀에 흑의인이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간을 찌푸린 풍백이 그를 바라보자 낄낄거리며 웃던 흑의인이 광기에 찬 눈빛으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풍백이 그가 하는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미약하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일부분이 들려왔다.

“……아홉 개의 하늘을 날아…….”

그 말을 들은 풍백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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