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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23화 (12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23화

백건상방을 멸문시킨 흉수가 이동한 방향은 찾았다.

그러나 이동하던 그들이 언제 방향을 바꿀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풍백은 주기적으로 피 묻은 발자국을 찾으며 흔적을 뒤쫓았다.

본래라면 이 같은 과정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게 되어 있지만, 풍백은 과거의 경험 덕분에 꽤나 수월하게 흔적을 쫓을 수 있었다.

과거 풍백이 쫓았던 사람 중 경공에 대해서는 일가를 이뤘다는 평을 받았던 사람이 있었다. 실제 가지고 있는 무공은 일류고수 수준이었으나, 경공만은 초절정고수 부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람에도 휘어지는 풀잎을 밟는다는 초상비(草上飛)를 겨우 일류고수가 펼쳤었다. 그를 쫓기 위해 풍백은 풀잎 하나까지 모두 살펴보며 쫓았어야 했다.

그랬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그나마 수월한 것이었다. 흉수는 한 명이 아니라 다수였고, 그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였으니까.

‘모든 사람이 동시에 발을 구르며 움직이지는 않으니, 흔적 찾는 건 쉬운 일이지.’

백건상방에서 시작된 흔적은 상산현 밖으로 나올 때까지 이어졌고, 다시 인근 지역을 갈지자 형태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노력은 풍백이 만들어 낸 시약에 의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 되었다.

화아악!

시약이 다시 한번 안개가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은은한 빛을 흘리며 발자국이 드러났다.

풍백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에서 따라오던 조유하가 조금 더 가까이 오더니 물었다.

“지금 제대로 쫓고 있는 것 맞나요?”

아무래도 상산현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하는 것 같아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 같았다.

대충 이해는 되었다. 그녀가 봤을 때는 그저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는 걸로만 보일 수 있으니까.

“의심이 되면 돌아가. 굳이 네가 쫓아올 이유는 없으니까.”

“왜 나를 보내려고 하는 거죠? 도망치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죠?”

그러면서 은근히 검파를 만지는 조유하였다.

아마 위협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는 대단한 위협이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누군가에 풍백은 포함되지 않았다.

“네가 점점 방해가 되고 있어서 말이야.”

“바, 방해요? 내가 언제요!”

“지금. 바로 이 순간. 추적하는 일은 꽤나 심력 낭비가 심하거든. 그러니 입 좀 다물어 줘. 나중에 추적술을 꼭 배워 보도록 해. 그러면 지금 네가 얼마나 짜증 나게 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쳇!”

조유하가 고개를 홱 돌리며 혀를 찼다. 아마 자신이 제법 화가 났음을 표현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번에도 역시 관심이 없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며, 거의 상산현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흔적이 마침내 한곳으로만 향하기 시작했다.

흔적이 향하는 방향은 상산현 인근에 있는 이름도 없는 야산이었다.

풍백은 야산을 올라가며 더 이상 시약을 뿌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조유하가 다시 풍백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방금 당했던 면박 때문인지 조금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물어봤다.

“왜 시약을 계속 뿌리지 않는 거죠?”

“이제 뿌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왜요?”

“산이잖아. 여기서는 굳이 시약을 뿌리지 않아도 나뭇가지 하나, 풀잎 하나가 적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 주고 있다고.”

무려 수십 명의 사람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조심해서 움직였다 하더라도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쫓는 사람이 추적에 이골이 난 풍백이었다. 이 정도라면 더 이상은 시약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흩어진다?’

지금까지는 함께 움직이던 무리들이 서서히 흩어지는 흔적이 포착된 탓이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 그다음에는 한 사람, 간혹 세 사람이 무리에서 빠져나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추적자가 있으면 여기서 완전히 털어 낼 생각이었나?’

추적하는 사람이 다수라면 몰라도 소수의 사람이 추적 중이라면 이렇게 인원이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큰 고민에 빠질 것이다.

추적하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명령을 받는 사람을 잡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잡고 싶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흩어지면 답이 없었다. 하나하나 쫓다 보면 결국 누구도 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면서도 풍백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야산으로 진입하고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때, 빠르게 움직이던 풍백의 걸음이 멈췄다.

‘진법이다.’

몇 장 높이의 절벽이 보였고, 그 앞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넓은 공터일 뿐이었다.

그러나 풍백은 그곳에서 백건상방에 펼쳐져 있었던 환상진이 펼쳐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흩어진 사람들의 숫자를 보면…… 아마 이곳에 적어도 대여섯 명은 있겠지.’

그리고 높은 확률로 잡혀 온 곽자억이나 총관도 있을 것이다.

아마 백건상방에서 혈사를 벌인 자들은 여기서 곽자억과 총관을 데리고 무슨 재미있는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여기서 환상진을 펼쳐 가며 멈춰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이제 풍백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환상진 자체를 부숴 버리고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파훼법을 따라 안으로 몰래 들어가는 방법.

환상진 안쪽에 있을 적들이 어떤 수준일지 알 수 없었다. 진법이 가려 주기에 안에 누가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라면 다수의 절정고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야 했다.

풍백은 고개를 돌려 조유하를 바라봤다. 조유하는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왜 자신을 바라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가볍게 혀를 찬 풍백이 전음을 보냈다.

[앞에 백건상방에 펼쳐져 있던 진법이 펼쳐져 있다.]

[백건상방에 진법이 펼쳐져 있었어요?]

풍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하라는 거야?’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풍백이 백건상방에 펼쳐졌던 진법에 대한 설명과 환상진에 대한 설명을 해 줬다.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나서야 조유하가 물었다.

[백건상방에 펼쳐졌던 진법이 이곳에 펼쳐져 있다니, 그러면 여기에 흉수가 있다는 말이겠죠?]

[맞다. 그래서 지금 조용히 진법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진법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

[……무인의 소양에 진법이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모른다는 말을 참 어렵게 하는 여자였다.

진법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진법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별것 아닌 진법에도 크게 놀랄 수 있었고, 진정시키기 위해 방위를 알려 줘도 제대로 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컸으니까.

특히 강호초출을 데리고 진법으로 들어간다?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은 일이었다.

[여기서 기다려라.]

[혼자 들어간다고요?]

[들어가서 상황을 봐서 진법을 풀도록 하지.]

[저도 같이 가겠어요!]

[어리광은 범혜사태에게나 하도록 해.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 같아?]

풍백이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조유하를 노려봤다.

지금까지는 굳이 분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느 정도 받아 주며 여기까지 왔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그녀를 매달고 진법으로 들어갔다가 몰래 들어온 것이 들킬 거라면, 차라리 지금 환상진 자체를 무너뜨려 버리고 칼춤을 추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적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풍백의 눈길에 담긴 감정을 이해했는지 조유하는 살짝 움찔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이 소리도 없이 공터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조유하의 눈앞에서 풍백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진법으로 들어간 것이다.

풍백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조유하가 입술을 삐죽였다.

‘나중에 사부님에게 진법도 알려 달라고 해야겠어. 추적술도…….’

지금까지 자신이 부족한 것에 대해 인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범혜사태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강호에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조유하였다.

* * *

진법 안으로 들어오면 원래 살던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불과 몇 장에 불과한 크기에 진법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진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는 그 안에서 사흘 밤낮을 걸어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니까.

과거 풍백은 딱 한 번 정말 끔찍하게도 무서운 진법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무극연환미혼진(無極連環迷魂陣)이란 진법이었는데, 이 진법에 들어가서 다시 나올 때까지 무려 보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천운이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제법 많은 비상식을 가지고 있었고, 빠져나올 때도 본신의 능력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이 진법으로 들어서며 진법이 변화하는 틈을 타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무시무시했던 무극연환미혼진에 비하면 지금 이곳에 펼쳐진 환상진 정도는 어린아이 장난에 가까웠다.

진법으로 들어가자 환상진이라는 종류에 걸맞게 풍백의 눈앞에 온갖 귀신이 번뜩이며 튀어나왔다. 그러나 풍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귀신을 무시하며 방위를 밟아 갔다.

애초에 사람을 살상하기 위해 만든 진법이 아니라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든 진법일 뿐이다. 이런 진법에 놀라기에는 풍백이 너무 경험이 많았다.

불과 몇 걸음 걷지 않아 진법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풍백은 진법에서 나가기 전에 슬쩍 진법 밖을 살펴봤다.

‘동굴?’

곰이 살던 것처럼 보이는 동굴이 하나 보이고, 그 동굴 입구에는 두 사람이 경계를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살펴본 풍백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며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문양도 없는 검은 옷에 검은 피풍의.

어쩌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복식이었다.

그러나 풍백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독한 악몽을 꿀 때마다 항상 튀어나오던, 과거 적가상방을 멸문시켰던 바로 그들이라는 걸.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걸 확인하자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심이 폭풍처럼 밀어닥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저들의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왜 적가상방을 멸문시켰었는지도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풍백은 이런 감정을 꾹 눌러 참았다.

과거 군부에서는 임무를 수행하며 절대로 감정이 섞이면 안 된다며, 감정을 다스리고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훈련을 혹독하게 했었다.

눈앞에서 가족이 처참하게 죽는 걸 목격한 이후, 이놈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것도 무려 십여 년이나.

그렇게 참아 온 이유가 겨우 경비나 서고 있는 조무래기를 처리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저놈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낸 풍백이 진법 밖으로 나가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들키지 않게 설치한 진법이었지만, 지금은 풍백의 기척을 숨겨 주는 용도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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