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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20화 (12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20화

상산현 뒷골목에 있는 하오문 지부를 책임지는 지부장인 이량이 크게 소리쳤다.

“아직도 추가로 나온 정보가 없어?”

“관부에서 조사한 내용은 분석 중에 있습니다!”

“그건 몇 시진 전에 이미 했던 보고잖아! 그 이후로 추가된 소식은 없냐고!”

“그건 아직…….”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해? 한동안 편하게 지내더니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이거야? 다들 한번 죽어 볼까?”

“그, 금방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겁니다!”

“그 얘기만 지금 몇 번째인지 알아?”

서슬이 시퍼렇게 선 이량의 목소리에 하오문도들이 전전긍긍하며 발 빠르게 달려 다녔다.

이량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 나가는 하오문도를 보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이를 뿌득뿌득 갈아 댔다.

무려 상산현을 주름잡던 백건상방이 멸문한 사건이다.

비록 이제는 몰락해 가던 상방이기는 하지만, 백건상방의 멸문이 상산현에 가져다준 충격은 대단했다.

이량이나 하오문이 백건상방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오문도를 독촉하는 이유는 당연히 돈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적가상방이나 금호상방하고 협상할 증거만 나오면 돼!’

백건상방을 멸문시킨 것이 적가상방이나 금호상방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증거가 없다면……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상방이라면 악소문에 대해서는 몸서리를 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약간의 증거라도 내밀면서 입을 다물거나 여론을 움직이는 대신 합리적인 가격을 요청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가격은 하오문 지부 입장에서는 대단히 큰돈이 될 것이고.

그러니 어떻게든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하오문도를 닦달할 수밖에 없었다.

강호의 문파들이나 상방과도 거래를 하는 하오문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하오문은 사파다. 아주 잘 쳐줘야 정사지간 문파고 말이다.

그렇기에 상방에서는 하오문을 이용하기는 하되 신뢰하거나 장기간 거래를 하지는 않는다. 기반이 사파인 하오문이기에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때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량이 준비하고 있는 수작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아주 정중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협상을 하는 거라 말할 수 있었다.

“아직이야? 나간 놈들은 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이량이 다시 소리를 치는데, 마침 이때 하오문의 닫혀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드디어 왔…… 누구시오?”

반색하며 고개를 돌리던 이량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오문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야행의를 입고, 날카로운 인상의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면구를 쓴 풍백이었다.

풍백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 층에 있는 이량과 눈이 마주치더니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걸 본 이량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의뢰를 받을 수 없으니 돌아가시오.”

“지금 백건상방에 대해서 조사한 걸 보고 싶다.”

여전히 다가오며 말하는 풍백의 말에 이량이 미간이 더욱 심하게 찌푸려졌다.

지금 이량은 단순히 돈 몇 푼을 벌자고 정보를 모으는 중이 아니었다. 적어도 적가상방이나 금호상방을 엮어서 크게 털어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처음 보는 뜨내기에게 건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괜히 이런 식으로 정보를 흘리면 찝찝해서 적가상방이나 금호상방을 상대로 엮기가 껄끄러워지는 탓이다.

“말했지만 오늘은 의뢰를 받을 수 없으니 그만 돌아가시지?”

이량의 목소리에 위협적으로 힘이 실렸다.

이량이 서 있는 이 층으로 올라온 풍백이 차갑게 말했다.

“내가 지금 협상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나?”

“그러면? 감히 하오문을 상대로 한번 해보겠는 건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이량의 말에 풍백은 조소를 지었다.

“하오문이 대단한 문파인 것처럼 말하는군. 이미 이백 년 전에 다 망해서 정보나 팔아먹는 걸로 명맥이나 간신히 유지하는 주제에.”

이 말을 들은 이량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풍백의 말은 사실이었다.

과거의 하오문도 정보를 팔던 밑바닥 인생의 집합체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오문은 강호에서 문파로 인정을 해 주기는 했다. 심지어 이백여 년 전에 전 강호가 뒤집어졌던 사건에서 하오문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양지에 자리를 잡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 문주가 이유도 없이 실종되며 하오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당시의 위세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이전처럼 음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듣기 좋은 말로는 뒷골목의 지배자라 부르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오문이 양지로 올라올 힘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하오문도에게 이런 얘기를 직접 던진다는 말은 싸우자는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이 개잡놈의 새끼가! 죽여!”

이량의 명령이 떨어지자 의외의 사태에 하던 일을 멈추고 풍백을 지켜보고 있던 하오문도가 각자 병장기를 뽑아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야아아!”

“죽여 버려!”

“하오문에서 감히 뭐라고? 혓바닥을 잘라서 젓갈로 만들어 주마!”

욕설과 함께 하오문도가 풍백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풍백의 쌍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하오문도의 팔목을 가볍게 비트는 것을 시작으로, 풍백의 수장은 마치 허공을 유영하는 용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우드득!

“아악!”

팔목을 붙잡혔던 하오문도가 비명을 지르며 일 층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풍백의 수장에 어딘가 한 군데 잡힌 하오문도는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부러진 뼈를 잡고 쓰러졌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뭔가 신기한 것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작 풍백은 가만히 서 있는데, 달려들던 하오문도가 풍백의 손이 스쳐가는 순간 어디 한 구석을 부여잡고 튕겨져 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씨발! 고수다!’

이량은 풍백이 심상치 않은 무공을 익혔다는 걸 알아채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러다가 괜히 하오문도가 모조리 의원 신세를 질 것 같다는 판단을 한 이량이 소리쳤다.

“십삼조(十三組)! 뭐하고 있는 거냐!”

하오문 지부에는 고급 임무와 지부 보호를 목적으로 고수들이 파견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삼조였다.

이량의 외침과 함께 하오문도 틈바구니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오며 벼락같이 도를 휘둘렀다. 그가 휘두른 도는 이전까지 하오문도가 펼치던 수법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맹한 힘이 담겨 있었다.

또한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는 서까래에서 한 사람이 풍백의 머리 위로 뛰어내리며 검을 현란하게 흔들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검의 움직임이, 상대가 적어도 일류고수라는 걸 알려 주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풍백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아래층에서는 풍백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뛰어오르며 창을 찔러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풍백의 무공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십삼조가 합을 맞춰 합공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슬쩍 눈을 빛낸 풍백이 자신을 사선으로 베어 오던 도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마치 팔을 베어 가라고 내주는 것처럼 보였다.

도를 휘두르던 십삼조원은 그것을 보고 더욱 강맹하게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턱!

가벼운 소리와 함께 풍백의 세 손가락에 도가 잡힌 것이다.

도날을 가볍게 잡아 낸 풍백이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왼쪽으로 반쯤 회전하며 왼발을 옮겼다.

콰직!

왼발이 있던 바닥이 부서지며 창이 불쑥 튀어 올라왔다.

풍백은 왼발로 창을 부러뜨려 버리고, 연이어 자신에게 도를 잡힌 십삼조원의 복부를 차 버렸다.

펑!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도를 휘둘렀던 십삼조원이 튕겨지듯 날아가 버렸다.

다시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자, 원래 그가 있던 자리로 현란한 검영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풍백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검을 휘두른 십삼조원의 가슴에 가볍게 일장을 뿌렸다.

펑!

다시 한번 폭음이 울리고 검을 든 십삼조원이 일 층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풍백이 손에 들고 있던 도를 바닥에 도파만 남을 정도로 박아 버렸다.

“악!”

바닥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일 층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바닥을 뚫고 올라오려고 몸을 날렸다가 풍백이 도를 바닥에 박아 넣는 바람에 찔린 것이 분명했다.

순식간에 세 명의 하오문 소속 일류고수를 무력화시키자, 남아 있는 하오문도가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멈춰 섰다. 풍백이 감히 그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고수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풍백은 주뼛거리는 하오문도를 보고 뒷짐을 지었다.

‘절정의 벽을 넘어서니 군부에서 배웠던 무공도 한 단계 새로워졌군.’

하오문도와 일류고수들을 상대하면서 풍백이 펼쳤던 무공은 교룡금나수와 쇄옥장이었다.

교룡금나수와 쇄옥장은 한계가 명확했던 무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풍백이 펼친 두 가지 무공은 이전 일류고수였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무공인 것처럼 느껴졌다.

초식의 연계는 자연스러워졌으며, 빈약했던 변초는 절정에 오르며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다채롭게 느껴졌다.

위력도 이전과 달랐다.

내공의 수발이 원활해지며 초식에 담을 수 있는 내공이 늘어나 비약적인 상승을 한 것이다.

흔히 강호에서 고수가 펼치는 삼재검법과 삼류무사가 펼치는 삼재검법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풍백의 경우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지 곁다리로 배웠던 무공을 가지고도 일류고수를 상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보법은 사용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풍백은 이량을 바라봤다. 이량은 크게 당황한 얼굴로 풍백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 어떻게…….’

무려 세 명의 일류고수를 대수롭지 않게 해치워 버린 풍백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무위를 보여 준다는 말은 풍백이 절정고수라는 말이 되니까.

이량 역시 하오문의 지부장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고수였다. 그러나 그 말이 이량이 절정고수라는 말은 아니었다.

십삼조보다 조금 더 강하기는 하더라도 그래 봐야 일류고수였다. 감히 풍백과 비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 백건상방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가져와.”

풍백의 말에 이량을 비롯하여 하오문도가 움찔했다. 싸늘한 풍백의 말에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량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거절한다! 하오문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정보를 제공할 거라 생각했나?”

“…….”

“전 강호에서 하오문의 정보를 원한다! 협박에 굴복해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하면 하오문은 예전에 승냥이 같은 놈들에게 갈기갈기 찢겨졌을 것이다!”

하오문도는 절대로 대가를 받지 않고 정보를 제공할 수 없었다. 만약 협박에 의해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해당 지부와 하오문도는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풍백이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이량과 하오문도는 이제 풍백을 노려보며 마지막을 준비했다. 어차피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죽는다면 발버둥이라도 쳐야 할 테니까.

풍백은 그런 이량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이량에게 던졌다.

발치에 떨어진 누런 말발굽 모양의 금덩어리.

금원보였다.

금화 열 냥 가치를 가지고 있는 금원보를 보는 순간 이량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런 이량의 귀에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보료다.”

“……뭐라고?”

상황이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기에 힘을 과시했지만, 풍백은 하오문과 척을 질 생각은 없었다.

또한 이 기회에 한 번 눌러 놓으면 나중에 하오문을 이용하는 경우에 얘기하기가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쉽게 내놓지 않을 정보도 풍백 정도의 무력을 가진 사람이 충분한 돈을 제공하면 쉽게 건네줄 테니까.

“내가 시간이 없거든. 빨리 정보를 가져와.”

이량이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이제 와서 정보료를 내놨다고 감히 하오문을 모욕했던 일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땡그랑!

풍백이 던진 금원보 하나가 이미 바닥에 있던 금원보와 부딪치며 바닥을 굴렀다.

“……겁니다! 그럼요! 사정이 있었겠지요. 원래 사람이 욱하는 마음에 말을 하다 보면 마음에도 없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금원보 두 개를 냉큼 주워 들며 이량이 말을 쏟아냈다.

이번 백건상방의 멸문을 이용하여 적가상방과 금호상방을 압박하며 받아 내려던 돈이 이 정도였다. 그런데 풍백이 이미 그 돈을 내놓다니,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중이었다.

하오문을 모욕한 것?

전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하오문은 돈이 최고였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아니지! 제가 아까 말이 심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요. 제가 마음이 급하면 주둥아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버릇이…….”

“정보나 가져와.”

“알겠습니다!”

이량이 직접 뛰어갔다. 그러면서 대충 눈으로 상황을 확인해 보니, 뼈가 부러진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처음부터 풍백이 손속에 사정을 뒀다는 말이었다.

죽은 사람만 없다면 이 정도 가지고 풍백을 적대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목숨도 건지고, 돈도 벌고…….’

풍백은 이량이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를 받아 들어 차근차근 읽어 봤다.

하오문이 수집한 정보는 방대했고, 무려 관부에서 작성한 보고서마저도 필사(筆寫)해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생각보다 쓸모가 없었다.

‘이것도 추정…… 저것도 추정…… 증거가 확실한 내용은 없나?’

흉수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많았는데, 풍백이 봤을 때는 신뢰도가 떨어졌다. 심지어 목격자들끼리 서로 본 내용이 다르니, 누굴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쓸모가 없어.”

“그게…… 이제 막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라 아직 사실 확인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정보 단체의 능력은 확실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리지 않고 어떤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당장 어느 것이 확실한 정보이고, 가치 있는 정보인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이에 하오문은 능력 있는 단체이긴 하나,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해 수집한 정보를 가공하진 못한 듯했다.

‘그래도 몽땅 쓰레기는 아니군.’

관부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는 풍백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사체에 대한 보고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풍백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차피 제대로 된 흔적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대신 풍백의 눈에 들어온 한 가지가 있었으니.

‘이것 봐라? 두 명의 시체가 없다?’

보고서에는 두 사람의 실종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바로 백건상방주인 곽자억과 총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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