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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19화 (11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19화

두근!

심장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진짜라니까요! 지금 이것 때문에 상산현 전체가 완전 뒤집어졌다고요!”

겉으로 봤을 때는 풍백에게 어떠한 반응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풍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왕삼은 그런 풍백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완전 꼬소하지 않습니까? 그 망할 놈의 새끼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요. 그렇게 지독하게 우리 상방을 괴롭히더니 다 이렇게 엄청난 벌을 받은 거…….”

“좀 닥쳐 봐.”

싸늘한 풍백의 말에 왕삼이 평소처럼 말대꾸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갑다 못해 서늘할 정도로 굳은 얼굴로 안광을 형형하게 뿌리고 있는 풍백을 보고는 얼른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무래도 지금은 풍백에게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왕삼의 입을 닥치게 만든 풍백은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백건상방이 멸문을 당했다고? 우리 적가상방이 아니라? 왜? 이유가 대체 뭐야? 목격자는? 이번에도 아무런 목격자가 없는 건가? 생존자는 어떻고?’

너무나 많은 것이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알아내려고 하더라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왕삼의 말에 따르면 바로 얼마 전에서야 백건상방의 변고를 알게 되었고, 지금 관부에서 백건상방을 조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마도 수십 명은 죽어 나갔을 것이다. 그러니 조사를 하는 관부의 인원 역시 많을 것이고, 그런 관부의 시선을 모두 피하며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풍백은 관부의 일 처리를 불신했다.

만약 정말 과거 적가상방을 멸문시켰던 놈들이 벌인 일이라면 관부의 인물이 무언가를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겨우 시체나 수습하는 수준이겠지.’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사람의 시체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사람의 시체가 누워 있는 모습, 시체에 생긴 벌레의 유무, 피가 뿌려진 방향 등을 모두 모아 보면 흉수에 대해 대단히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그렇지만 관부에서 일을 시작하면 현장이 훼손된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시체부터 수습하는 일이 다반사다.

부검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한데, 그 결과 부검 전에 알아낼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기다려야 해…….’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풍백은 적가상방의 소상방주일 뿐이다. 그가 직접 백건상방에 나타나 현장을 조사하고 다니는 걸 용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 대한 정보는 포기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제기랄…… 목격자는 있을까?’

목격자나 생존자가 있다면 오늘 밤에 나가서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과거 적가상방을 멸문시켰던 이들이 벌인 일이라면 목격자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체 이유가 뭘까……. 원래라면 우리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했어야 했어. 그런데 이번에는 왜 적가상방을 건드리지 않고 백건상방으로 넘어간 거지? 혹시…… 상산현에서 가장 상황이 나쁜 상방이 멸문하는 법칙이라는 말인가?’

스스로 생각한 것임에도 풍백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아닐 거라 생각한 것이다.

답답해졌다.

백건상방이 멸문한 것으로 일단락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이것은 시작일 뿐이고 적가상방에도 그 마수가 뻗칠 것인지가 너무나 궁금했다.

풍백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을 본 왕삼이 슬그머니 물었다.

“제가 가서 뭐 알아낸 것은 없는지 알아볼까요?”

“뭐?”

“가 보면 뭐라도 저들끼리 말하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이라도 제가 알아다가 얘기를 해 드리면…….”

“쓸데없는 짓은 벌이지 마. 그런 짓을 벌이다가…… 아!”

풍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을 해 보니 지금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아버지와 숙부님께 얘기를 해야 해!’

누군가가 죽었을 때, 대부분의 범인은 죽은 사람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백건상방은 적가상방과 앙숙이었다. 아니, 앙숙을 넘어 원수였다.

비록 적가상방이 백건상방을 상대로 이빨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누구나 두 상방이 양립할 수 없는 사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건상방이 멸문을 당했다.

과연 사람들은 누구를 의심하기 시작할까?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지.’

풍백이 서둘러 적호경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유능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단지 상재가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상재가 뛰어나다는 것 하나만으로는 적가상방을 이 정도까지 성장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풍백이 적호경과 진덕양을 찾았을 때는 이미 그들의 조치가 끝난 뒤였다.

적호경과 진덕양도 백건상방의 멸문으로 인하여 적가상방이 의심을 받을 거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당장 사람들의 입단속과 함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상방 외부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외부로 나가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는 적가상방이 어젯밤에 외부로 무사를 내보낸 적이 없다는 소문을 흘리도록 만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곧장 관부를 찾아가 지주대인과 만났다.

이전의 적가상방이라면 지주대인은커녕 종구품인 이목(吏目)이나 간신히 만났을 테지만, 풍백이 소금 전매권을 가져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주대인은 상부 소식에 민감하다. 그렇기에 풍백이 포정사와 도지휘사에게 대단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초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전에 적가상방의 잔치에 참석을 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두 사람의 면담 요청을 지주대인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지주대인을 만난 두 사람은 적가상방은 전혀 관련이 없음을 자세히 설명했다.

풍백은 이런 진행 상황을 직접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과거 적가상방이 멸문했을 때도 백건상방이 우리처럼 지주대인을 만났던 것 아닐까?’

지금 적호경과 진덕양도 백건상방의 멸문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행여나 연관되었다는 소문이 날까 봐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과거 적가상방이 멸문한 이후에도 조용히 지나갔던 걸 생각한다면, 백건상방이든지 금호상방이든지 누군가가 나서서 쓸데없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풍백은 아마도 백건상방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당연히 나섰을 거라 예상하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도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건…….

‘아마도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하며 흘러나온 재물과 재산을 착복한 이후라서 굳이 파고 싶지 않았겠지.’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하고 풍백은 거의 빈털터리로 상산현을 떠나게 된다.

아무리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하기 전에 거의 망해 가는 중이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중에 거의 돈도 없이 쫓겨나듯 떠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마도 적가상방의 남아 있던 재물을 백건상방을 비롯한 관리들이 챙겼을 것이다. 그나마 적가상방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곳은 돈을 적당히 쥐여 주고 입단속을 시켰을 것이고.

당시에는 이런 생각도 못했었다.

그건 풍백이 당시에 멍청하고 개망나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앞에서 아버지와 가족 같은 사람들이 도륙당한 직후라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호경과 진덕양이 발 빠르게 대응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입에서 적가상방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백건상방 사람들이 모두 죽은 거 말이야…….”

“무서운 일이지. 우리 옆집에 살던 사람도 백건상방에서 일하고 있었잖아. 지금 그 집 부인이 혼절하고 난리도 아니라고.”

“그냥 무섭다고 하고 끝날 일인가? 범인을 찾아야 해.”

“음…… 범인을 잡아야지.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니, 왜 갑자기 백건상방 사람들이 다 죽었냐고.”

“그게 왜?”

“솔직히 백건상방은 이제 망했다고 다들 얘기하고 있었잖아. 이제 상행은 물론이고, 점포도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대체 이런 백건상방을 누가 찾아가서 다 죽이냐는 말이야.”

“이상하긴 하지.”

“내가 봤을 때는 분명히 원한 관계가 있어서 다 죽인 거라고 본다.”

“원한 관계? 설마…….”

“적가상방 말고 누가 있겠어?”

“헉! 그럴 리가! 적가상방은 지금까지 백건상방을 어떻게 하려고 수작을 부린 적도 없었잖아.”

“그게 다 포석이었던 거지. 한 방에 쓱싹하고 우린 아무 죄가 없어요, 이러는 거 말이야.”

“쉿! 말조심 좀 하자. 괜히 그런 말 꺼냈다가 엄한 꼴 당할 수 있어. 증거도 없잖아.”

“돈도 많은 놈들이니 증거야 얼마든지 숨길 수 있겠지. 관부하고 입을 맞추는 방법도 있고,”

물론 이런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지금까지 적가상방이 보여 줬던 모습은 음험한 수작을 부리는 것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소문이 흘러나오는 것은 상방의 입장에서 별로 좋을 건 없었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소문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상산현에 있는 빈민층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겠다는 발표를 고민하게 됐다.

이전부터 조금씩 하고 있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지원을 늘려서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오지 않게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그렇게 하루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 * *

‘지금쯤이면 적당하겠어.’

어두운 방에서 창밖으로 달을 본 풍백이 침상에서 일어나 내려왔다.

자정을 지나 축시(丑時, 1~3시)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고, 아직 잠을 청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풍백의 거처를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침상에서 내려온 풍백은 이전 화오염장에서 사용했던 야행의와 도구들을 꺼냈다.

화오염장에서 야행과 암살을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풍백은 그 이후 소모했던 물품을 다시 구비하고, 추가로 몇 가지 물건을 더 챙겨 놨다.

그중 하나가 지금 풍백의 손에 들려 있는 면구(面具)였다.

풍백의 손에 들린 면구는 암향거에서 구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면구를 말하면 가장 먼저 인피면구(人皮面具)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실제로 강호에서 실제 인피면구를 쓰고 다닌다는 걸 들키는 순간 강호공적(江湖公敵)이 될 것이다.

인피면구를 만들었다는 말은 곧 죽은 사람 것이든지, 살아 있는 사람 것이든지 진짜 얼굴 가죽을 벗겨서 만든 것이라는 말이 되니까.

그리고 면구를 만들 때 진짜 사람의 가죽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보통은 동물 가죽으로 만드는데, 오히려 사람의 가죽보다는 동물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 원하는 대로 가공하기가 쉬웠다.

원래 면구는 암시장 같은 곳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굳이 암향거에서 면구를 구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암향거는 황궁에서 만든 정보 단체다. 그렇기에 면구에 해당하는 신분이 실제로 만들어져 있었다. 면구를 쓰고, 면구와 같이 받은 호패를 들고 관부를 찾아가면 신원 확인이 가능할 정도였다.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기왕 준비하는 것이니 제대로 준비를 한 것이다.

‘이걸 지금 사용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

가볍게 혀를 찬 풍백이 면구에 약물을 묻히고 얼굴에 붙였다. 이렇게 하면 손으로 잡아당겨도 벗겨지지 않았다. 나중에 벗을 때는 다른 약물을 물에 풀어서 살살 벗겨 내면 되는 일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면구를 조정한 풍백이 동경을 바라봤다.

동경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비춰지고 있었다.

‘내 원래 나이로 돌아왔을 뿐인데…… 뭔가 어색하군.’

겨우 일 년을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만족스러웠던 나날들이었기 때문인지 원래 나이로 보이는 동경의 모습이 어색했다.

어색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행여나 자신이 누군지 적에게 들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물론 불편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체를 숨길 수 있다면, 이전처럼 분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면구 다시 한번 확인한 풍백이 거처에서 나와 지면을 박차고 빠르게 경공을 펼쳐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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