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가상방 개망나니-115화 (11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15화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도.’

겉으로 봤을 때는 이제 이립에 가까운 나이를 가진 평범한 무당파의 도사로만 보이지만, 사실 청수는 현호자의 평범한 제자가 아니다. 그는 현호자의 진전을 그대로 잇고 있는 수제자(首弟子)였다.

지금은 별호도 없는 청수지만, 나중에 본격적으로 강호행을 하면서도 정파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인재 중 하나라는 칭송을 받으며 무당신룡(武當神龍)이라는 별호까지 생기게 된다.

이런 청수의 말에 따르면 후에 칠대무신이라 불리게 되는 현호자가 청송무관이 빨리 자리 잡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이건 엄청나게 좋은 소식이었다.

‘무려 칠대무신이 청송무관의 발전을 위해 적가상방의 손을 들어 준다면…….’

적가상방이 얼마나 성장하게 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풍백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 관주님의 사부님이시라니, 언제 기회가 생기면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그래요? 오래 걸리지는 않겠군요. 아마도 개파식(開派式)에 오실 테니까요.”

“개파…… 식이요?”

풍백이 조금 놀란 얼굴로 우검학을 바라봤다. 그러자 우검학이 조금 멋쩍은 기색으로 말했다.

“조금 빠른 듯하지만 조만간 정식으로 개파를 하려고 하고 있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그 얘기도 하려고 했었는데, 이 녀석이 먼저 얘기를 해 버렸군.”

“문파를 만드는 겁니까?”

“거창하게 문파라고 하면 좀 이상하구만. 그냥 장(莊)을 만드는 것일세.”

우검학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청송장이든 청송파든 정식으로 강호에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는 것이다. 이전처럼 관부에 지원하는 무관을 양성하는 무관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회귀 전에도 청송무관이 문파를 만들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무려 몇 년이나 지난 이후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적가상방이 끼어들어 자금이 풍부해지면서 몇 년의 시간을 단축시켜 버린 결과라 봐야 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우 장주님이라 불러야겠군요.”

“아직은 아니지. 그리고 개파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아닐세. 아마 몇 달은 더 지나야 할 거야.”

말을 마친 우검학은 잠시 흐뭇한 눈으로 풍백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맙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덕분에 애먼 고생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 고맙다고 해야지.”

금호상방의 수작에 넘어가 스스로 고생의 길을 걸어가려던 우검학이었다. 그런 우검학에게 금호상방의 수작을 알려 주고, 청송무관이 자립할 수 있도록 청송표국을 설립하게 도와준 적가상방과 적풍백은 우검학에게 은인과 같았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때는 저희 적가상방도 많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우 관주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적가상방이 먼저 무너졌을 겁니다. 그러니 저희가 고맙다고 해야 되는 일이지요.”

굳이 생색을 내는 것보다 더 숙이고 들어오는 풍백의 태도는 우검학을 더욱 흐뭇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적가상방과 관계는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군.’

세상이 험하다 보니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적가상방이 먼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자신이 먼저 적가상방의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청수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다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사형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형이 좀 어리숙한 구석이 있습니다.”

“허어! 어리숙하다니.”

우검학이 짐짓 목소리를 내리깔며 말했으나 청수는 그런 우검학을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무관을 하면서도 방만하게 운영하여 문제가 될 소지를 만들었던 사형입니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문파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면 제가 걱정이 되어 밤에 잠을 잘 못잘 지경입니다.”

“크흠! 뭘 그런 얘기를…….”

말은 이렇게 해도 청수의 말을 막지는 못했다.

실제로 청송무관을 운영하며 하마터면 현판을 내릴 뻔했었고, 청수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모두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운영에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적 공자님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도 적 공자님에게 문제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겠습니다.”

“과한 걱정이십니다. 우 관주님은 당시 눈치를 채기 어려운 계략에 빠져 있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이후로 청송무관에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었고요.”

그건 사실이었다. 현재 청송무관은 아주 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검학이 문파로 개파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고 말이다.

풍백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방점을 찍었다.

“또한 청송무관과 저희 적가상방은 한 몸과 같습니다. 청송무관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적가상방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도울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풍백의 말에 우검학은 제법 감동한 눈치였고, 청수는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은 자연스럽게 우검학의 뒤에 어색하게 서 있는 중년의 사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분도 소개를 해 주시려고 같이 오신 것 아니십니까?”

“어이쿠! 내가 큰 실수를 했군. 이게 모두 네가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서 그런 것 아니냐!”

“엄청 중요한 얘기였습니다, 사형. 사부님도 사형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밑 빠진 독 같은 놈이라고…….”

청수가 더 길게 말하기 전에 얼른 우검학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막았다.

“크흐흠! 적 공자, 이쪽은 내가 무당파를 내려와 짧은 시간 강호행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라오.”

“안녕하십니까,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풍백이 먼저 말하자 중년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숭무장(崇武莊)의 노성한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풍백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균열이라도 간 것처럼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그리고 환히 웃으며 되물었다.

“숭무장이라면…… 혹시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숭무장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풍백이 숭무장을 안다는 듯이 묻자 노성한이 반색을 하며 다시 되물었다.

그러나 정작 풍백은 웃는 얼굴로 굳은 것처럼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풍백도 진짜 놀란 것이다.

* * *

“후우…….”

보리패엽수를 펼치며 수련을 마친 풍백이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확실히 절정에 들어서니 초식을 풀어내는 것이 훨씬 수월하네.’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내공의 수발이다.

단전에서 끌어낸 내공을 정해진 혈도에 따라 움직이며 수장을 통해 발출하고, 초식을 펼치다가 모종의 이유로 펼치려던 초식을 멈추게 되면 다시 내공을 단전으로 돌려보내는 것.

고수가 될수록 그러한 내공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내상을 입을 확률도 현저히 낮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고수가 되면 내공을 운용하는 것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편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절정에 도달한 풍백은 이걸 확실히 몸에 체득하고 있었다.

거처로 들어온 풍백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이러고 있으니 낮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떠올랐다.

서문세가 사람들을 만난 것부터 남궁진을 만나고, 우검학을 비롯한 무당파 사람을 만난 것까지 되새기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숭무장의 노성한까지 이어졌다.

‘숭무장의 노성한이라……. 설마 우검학 관주가 숭무장과 인연이 있을 줄은 몰랐어.’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풍백이 청송무관과 손을 잡은 것은 단순히 멸문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향후 적가상방이 규모를 키워 가는 상황에서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로 선택한 것이다.

우검학은 우직하고 신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적가상방이 극단적일 정도의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면 절대로 잡았던 손을 놓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말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현재로써는 적가상방에게 청송무관과 같은 협력자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청송무관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숭무장…… 마검쟁탈(魔劍爭奪)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었지.’

마검쟁탈.

사실 여기서 마검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보통 마검이라면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흡혈마검(吸血魔劍)이나 검을 쥐면 사용자를 점점 미치도록 만든다는 탈혼마검(奪魂魔劍)과 같을 것을 말한다.

그게 아니라면 사용자가 악명이 자자한 마두가 사용하는 검을 두고 마검이라 말하고는 한다.

마검쟁탈에서 문제가 되었던 검은 마검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병이기라 불려야 맞았다.

그러나 쟁탈전이 일어나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목숨을 잃어 갔기에 마검이라 불리게 된 경우였다.

이 모든 사단은 아주 우연히 벌어지게 된다.

숭무장은 호남성에서 작은 군소 문파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군소 문파가 그렇듯이, 숭무장 역시 문제가 있었다. 바로 금전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썼다. 그러나 숭무장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문파에 있는 여러 물건들을 팔아 치우기 시작한다.

세간살이를 팔아 치우는 과정에서 숭무장주 노성한은 하나의 검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검이라 불리게 되는 화홍(花紅)이었다.

다 낡아 빠진 이 검이 어떻게 하다가 숭무장에서 나온 건지는 노성한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병기창에 굴러다니던 검이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화홍을 팔아 버리기 위해 상태를 확인을 해 보고 기겁을 하게 된다. 화홍이 어지간한 강철도 두부처럼 가르는 무지막지한 능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화홍의 가치를 알아본 노성한은 이 검을 그냥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경매를 통해 판매를 하고자 한다. 신병이기가 확실하니 비싸게 판매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숭무장이 화홍에 대한 소문을 내고 얼마 뒤, 한 가지 소문이 더 돌게 된다.

- 숭무장에 있는 화홍에는 전대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의 무공이 있다!

이 소문과 함께 강호가 발칵 뒤집혔다.

절정고수의 무공 비급만으로도 피바람이 일어나는 것이 강호다.

그런데 천하제일검의 무공이 감춰져 있다는 기물이 있다? 사람들의 혼백을 쏙 빼놓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실 이 소문의 출처가 어딘지, 천하제일검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이미 검으로써 가치는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니 일단 손에 넣고 진짜인지 아닌지 차근차근 살펴보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숭무장주 노성한이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화홍의 경매를 취소해 버린 것이다.

노성한 역시 강호 무인이었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무려 천하제일검이었던 사람의 무공이 담겨 있다는 기물을 함부로 팔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정말로 화홍에서 엄청난 무공을 얻게 된다면 숭무장 같은 문파는 수십 개라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건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노성한이 경매를 취소하자, 강호에서는 노성한이 화홍에서 무공을 얻었기에 경매를 취소했다는 소문이 돌아 버린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의심스러운 상황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던 사파와 정파들이 모두 눈을 뒤집고 숭무장으로 몰려들었다.

의외의 사태에 노성한은 친분이 있는 문파와 고수들을 초청해서 화홍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몰려드는 온갖 고수들로 인해 결국 숭무장은 무너지고, 화홍은 강호에서 온갖 사람들의 손을 넘나들며 피바람을 뿌리고 다니게 된다.

그리고 결국 화홍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강호에 몰아치는 피바람을 멈추기 위해 절대고수 중 누군가가 나서서 화홍을 회수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은밀히 손에 넣고 이미 새로 얻은 무공을 수련 중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강호나 일반 세상이나 똑같지.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거야.’

풍백은 이런 사건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이 모든 분쟁은 호남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멀리 떨어진 절강에서 영향을 받을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풍백은 자신이 얻은 황룡사 삼대무공이 이름도 모르는 전대 천하제일검의 무공에 비하여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온갖 고수들이 목숨을 걸고 부딪치는 자리에 굳이 머리를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청송무관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는 말이지…….’

본래라면 이때 청송무관은 금호상방의 계략에 한창 고생을 하는 중이었어야 했다.

그러니 아무리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청송무관이 도와줄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노성한이 알아서 손도 내밀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송무관이 크게 커 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파식을 할 거라고 말하고 있었고.

‘아마 대략 일 년 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됐었지?’

풍백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도 직접적으로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잘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방법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숭무장을 지원해 주면 금전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노성한이 적가상방을 찾아온 이유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충 짐작은 갔다. 아마도 호초나 소금을 공급받고 싶어서 찾아왔을 것이다.

지금 숭무장과 계약을 하고 호초나 소금을 공급해 준다면 숭무장이 금전적으로 문제가 생길 일도 없어질 것이고, 금전적 문제가 사라지면 세간살이를 팔아 치울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며, 최종적으로 화홍을 발견하는 일도 없어질 테니까.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을 해 보도록 하고…….’

풍백은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로 오늘이 과거에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했던 그날이니까.

준비는 끝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방문을 했고, 더 많은 고수와 문파가 적가상방을 찾아온 상태였다. 그러니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마지막이겠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쳤다고 생각하자 이제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풍백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때처럼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마치 범람하는 파도처럼 적가상방의 담을 넘어오기를.

이전처럼 잠을 자다가 부지불식간에 그들을 맞이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똑똑히 눈을 뜨고 상대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각…….

한 식경…….

한 시진…….

두 시진…….

시간이 지나갈수록 풍백의 눈빛은 점점 강렬하게 빛났다.

그리고 마침내 동쪽 하늘에서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풍백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