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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12화 (112/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12화

조유하는 풍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상산현에 살면서 풍백에 대해 모르면 그게 이상한 것이니 그녀가 풍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풍백이 얼마나 개망나니였는지, 그가 평소에 벌이고 다녔던 온갖 패악질에 대한 소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었다.

우연히 풍백을 마주친 적도 있었다.

당시 풍백은 대낮이었는데도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 시종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함께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는 조유하였다.

그에 비하여 조유하는 풍백과 반대의 의미로 상산현에서 유명했다. 아름다운 미모는 물론이고 항상 단아한 모습을 보여 상산현에 있는 유지들에게 온갖 혼담이 들어왔던 것이다.

당시 적가상방에서는 감히 조유하에게 혼담을 넣지도 못했다. 풍백과 조유하의 혼담은 누구나 꿈에서도 생각 못할 그런 일이었다. 만약 혼담을 넣었다면 반대로 금호상방과 조유하가 기분이 나쁠 그런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두 사람이 어느 날은 한 번 직접 엮이게 된 일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술에 잔뜩 취해 있던 풍백이 반점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있던 조유하를 상대로 접근을 했던 일이었다.

당시 상대가 조유하라는 것도 모르고 접근한 풍백이 어설프게 돈 자랑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조유하의 호위무사에게 집어던져져서 음식물과 함께 뒹굴게 되는 망신을 맛봤었다.

다음 날 금호상방으로 찾아온 적호경이 조태명에게 고개를 숙여 가며 사과를 하고 사건이 대충 수습되었기도 했었다.

이런 온갖 패악질을 벌이고 다녔던 풍백이 이제는 상산현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망해 가는 적가상방을 되살리고,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제는 적가상방이 상산현은 물론이고 절강성 전역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방이 되어 간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전까지 눈길조차 마주칠 가치가 없던 풍백과 혼담 얘기까지 나온 것이고 말이다.

조유하는 풍백과 혼인을 할 생각은 먼지만큼도 없었다.

지금도 과거에 자신이 봤던 풍백의 모습이 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혼인에 대해서 아무런 뜻도 없었고.

그래서 적당히 장단만 맞추다가 거절하려고 했는데, 어이가 없게도 풍백이 먼저 거절을 해 버렸단다.

다시 팔만사천반야검형의 기수식을 펼친 조유하가 검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이글거리는 열기가 보이고 있었다.

‘어차피 혼인할 생각도 없었지만, 네가 나를 먼저 찼다고? 어이가 없어서!’

여기에 금호상방에서는 계속해서 적가상방에 혼담을 추진하는 중이기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온갖 소문을 만들어 내기 충분했다.

이런 소문들 중에 가장 조유하를 화나게 만드는 건, 그녀가 평소에 풍백을 무시하다가 이제 막대한 돈을 벌기 시작하자 혼인을 하자고 달려드는 중이라는 말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금호상방의 재력도 안중에 없었다. 하물며 적가상방의 재력이 그녀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신이 순식간에 속물이 된 것 같은 지금 상황은 대단히 기분이 나빴다. 여기에 평소 풍백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그가 먼저 자신과 혼담을 거절했다는 건 더 기분이 나빴고.

‘흥! 언제는 먼저 접근하더니, 망나니였던 주제에 나를 차?’

까득!

조유하의 입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달라졌는지, 얼마나 잘나셨기에 먼저 혼담을 거절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며칠 후에 적가상방에서 잔치를 연다고 했어. 어차피 할아버지가 가자고 할 테니까, 그때 한번 똑똑히 지켜봐 주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미래의 검후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며 이를 갈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풍백은 자신의 침상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단전 앞에 놓인 양손 위에 황금불상이 들려 있는 걸로 봐서 내공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풍백이 적가상방의 대소사에 관여하며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실 풍백의 하루 일과는 거의 대부분 무공 수련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마 풍백은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벌써 전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적가상방의 일에 풍백이 나설 일은 전혀 없었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뛰어난 상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비하여 풍백은 자신이 상재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미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뿐이지, 정말 상방에 관련된 일에 국한하여 얘기를 한다면 적호경과 진덕양에 비해 초라할 뿐이라 여겼다.

그래서 풍백은 적가상방의 일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적호경과 진덕양도 굳이 풍백에게 일을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풍백이 일 년 동안 이뤄 낸 성과를 이미 충분히 본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 풍백이 겉으로는 아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풍백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무튼 하루를 거의 대부분 무공 수련에 집중하고, 밤에 잠들기 전 보리항마선공을 이용하여 내공 수련을 하는 것은 풍백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벌써 시간이 자시(子時, 23시~1시)가 다 지나가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벌써 내공수련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갔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풍백은 여전히 눈을 반개(半開)하고 보리항마선공을 운용하며 계속해서 내공을 주천(周天)시키고 있었다.

내공 수련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지게 된다.

주화입마는 사파에서 더 높은 확률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파에서도 내공 수련을 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주화입마에 빠진 무인은 열에 아홉 폐인이 되게 된다.

물론 풍백은 주화입마의 징후가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여전히 편안한 표정을 보면 그가 내공 수련을 하다가 문제가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슬슬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풍백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부공삼매(浮空三昧)였다.

보통 내공 수련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으며 한 단계 벽을 뛰어넘을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평소 운용하던 내공보다 흐름이 빠르고 더 많은 진기가 움직이기에 몸에서 진기가 발산하며 몸이 허공에 뜨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 자가 넘도록 허공에 뜬 풍백의 몸에서 두 번째 특이한 현상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풍백의 몸에서 푸른색 기운이 서광이 흐르더니 점차 붉은색, 검은색, 흰색, 노란색의 서기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서광은 점차 움직여 풍백의 머리에 있는 백회혈(百會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이곳에 누군가 무공을 배운 사람이 있어서 풍백에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목격했다면, 이것이 오기조원(五氣朝元)의 현상이라는 걸 말해 줬을 것이다.

오기조원.

그것은 바로 절정고수가 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였다.

이 현상은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거의 반 시진에 걸쳐 지속된 이 현상은 풍백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다섯 가지의 서기가 점차 옅어지고, 부공삼매 현상으로 허공에 둥둥 떠 있던 풍백이 침상에 내려오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번쩍!

풍백이 눈을 뜨자 강렬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러나 그 안광 역시 곧 원래도로 변했다.

잠시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몸을 관조하던 풍백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절정 단계에 올랐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풍백은 자신이 절정고수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것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일 뿐이었다. 워낙 빨리 무공이 상승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진짜 절정 단계에 올라서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는 평생을 노력해도 절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그것은 풍백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그는 일류고수에서 절정고수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불과 일 년가량 되는 시간만으로 절정고수에 오르고 말았다.

‘이게 다 황금불상 덕분인가?’

풍백은 자신의 손에 있는 황금불상을 잠시 바라봤다.

이제 황금불상은 내공 수련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계속 황금불상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평소 항상 이렇게 손에 쥐고 내공 수련을 했기 때문인지 이렇게 쥐고 있어야 뭔가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었다.

황금불상은 챙긴 풍백이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갔다.

원래는 내공 수련을 마치고 잠을 자야 했지만, 이제 처음으로 절정의 단계를 밟았다. 그렇기에 이대로 잘 수 없었다. 적어도 자기 전에 초식을 한번 풀어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사람의 벽을 치는 건 계획대로 되고 있었다.

솔직히 자신이 절정 단계에 올랐다는 건 계획에 없었던 일이었다. 그저 자신마저 절정고수가 된다면 조금 더 안심이 되겠다 정도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 절정고수에 오르게 되니 마음이 더욱 진정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비밀 병기와 같은 존재도 있었다.

풍백은 시선을 돌려 중요한 손님이 머물도록 만들어진 객청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무정검군 주천구라는 초절정고수가 머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생각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풍백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한 번 겪어 봤었던 멸문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흉사(凶事)를 피하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이며 발버둥을 쳤다.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 두근거림을 진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멸문이 일어났던 그날이 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한 풍백이 보리패엽수의 기수식을 취했다. 이제 무공을 펼쳐 볼 시간이었다.

* * *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주천구의 뒤로 한 사람이 유령처럼 나타나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맞잡고 말했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그 말에 주천구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상황이 조금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고 있다?”

“청해상방의 상행을 방해하고 있던 세력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어디에서 나온 놈들인지 추적을 해 봤나?”

그 물음에 사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대답했다.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실패했다고?”

“복건성까지는 추적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한순간 그들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천구는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면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도 없었다는 말인가?”

“대략 절강성으로 향한 흔적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절강성이 최종 목적지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절강성이라는 말에 주천구의 눈이 살짝 가늘게 변했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을 뿐, 곧 원래대로 돌아온 주천구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그들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그만 넘어가도록 하자고.”

“충.”

“본문에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준비는 끝났습니다. 문주님의 재가(裁可)만 있으면 바로 출발할 겁니다.”

그 말에 주천구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출발하는 걸로 하지.”

“어디까지 손을 쓸까요?”

“음…… 그냥 다 박살 내도록 하고, 문태성이라는 놈은 살려 두도록 하라. 그놈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까.”

“충.”

청해상방은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이미 한 번 참아 줬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를 빼앗아 갔음에도 그녀가 사는 곳이기에 차마 손을 쓰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행복하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문약란의 얘기를 듣고 그녀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문약란이 성장하는 동안 많은 구박과 함께 정략혼의 대상으로 써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 정도면 참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쌓인 분노의 철퇴를 휘두를 때였다.

백련문은 강호의 문파였다. 그렇기에 상방처럼 돈을 가지고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정파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강호 문파들이 그러는 것처럼 무력으로 청해상방을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러나 문태성을 죽이는 건 뒤로 미뤄야 했다.

그를 죽이기 전에 적어도 문약란의 생각을 알아야 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문태성을 아버지로 인정하는지 알아야 확실히 처리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자랑하던 재산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는 과연 어떻게 할 건지 한번 두고 보자고.’

주천구가 차가운 시선으로 한쪽 입꼬리를 슬쩍 위로 끌어 올렸다. 그의 앞에 불타 버린 청해상방을 바라보며 절규하는 문태성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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