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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10화 (11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10화

다음 날.

적가상방이 발칵 뒤집어졌다. 바로 어젯밤 풍백이 적가상방으로 데리고 온 손님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곳은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한 방이 있기 마련이다. 이건 적가상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풍백은 그가 데리고 온 손님을 이렇게 특별히 만든 숙소에 머물도록 지시를 했었다.

사람들은 왜 풍백이 이 숙소를 내주라고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풍백의 말에 의문을 갖지 않은 것은, 이제 풍백이 적가상방에서 갖는 위치가 아주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개망나니라 불리던 풍백이었다면 숙소를 준비하라고 하자마자 곧장 진덕양을 찾아가 풍백이 손님을 데리고 왔다고 보고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풍백이 어떤 명령을 내리든지 적극적으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전 물소의 뿔을 창고를 구해 가며 잔뜩 모으는 기행을 벌였는데, 그것이 결국 소금 전매권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누구도 풍백의 명령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풍백이 알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건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이 밝고, 풍백이 데리고 온 손님이 상방주인 적호경과 진덕양 총관을 만나며 정체가 밝혀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왜 풍백이 가장 좋은 숙소를 손님에게 배정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강서성 백련문 무정검군 주천구라는 말은 사람들이 다시 한번 풍백을 추앙하도록 만들었다.

“어제 소상방주님이 데리고 오신 손님 얘기 들었어?”

“당연히 들었지. 강서성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고수라며?”

“다섯 손가락이 아니래. 강서성 제일 고수라고 하더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그것보다 우리 적가상방이 생긴 이후로 이런 고수가 방문했던 적이 없잖아. 이게 제일 중요한 거지.”

“이제부터 소상방주님이 지시하는 일은 닥치고 따라야 할 것 같아.”

“당연하지! 적가상방을 살리신 분인데.”

적가상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주천구와 대화를 하고 있던 적호경과 진덕양은 크게 당황스러운 얘기를 듣고 있었다.

“어……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따님이 백아의 시비를 하고 있던…….”

“그렇소. 여기서는 소란이라 불렸다고 들었소.”

주천구의 대답에 적호경과 진덕양은 크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마주치는 시선에는 온갖 대화가 담겨 있었다.

‘알고 있었어?’

‘형님이 모르고 있던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가 소란이에게 뭔가 잘못한 건 없겠지?’

‘소란이가 백아의 시비를 하고 있었는데…… 혹시 두 사람 사이에 정분이 났을지도…….’

‘제발 백아가 소란이에게 허튼수작을 부린 적이 없어야 할 텐데…….’

그들의 시선에는 대부분 불안함이 감돌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문약란은 너무나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뛰어난 미모라고 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압도적인 미모였다.

여기에 그녀가 갖고 있는 초록빛 눈동자가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는 어지간한 남자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얼마 전 풍백이 금호상방과 혼인 얘기를 거절한 것도 혹시 문약란과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만약 정말 풍백이 문약란과 단순히 시비 관계가 아니라 정분이 났다고 하더라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두 사람이 정분이 났으면 다행인데, 혹시나 문약란은 마음에도 없는데 풍백이 지분거리지는 않았는지가 걱정되는 중이었다.

그나마 풍백이 개망나니 소리를 들을 때에 기루를 드나들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아무 여자한테 추행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는 기억이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주천구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별호에 걸맞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서 두 분께 부탁할 일이 있소.”

“무슨 얘기를 하실지 짐작이 됩니다. 주 대협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후임을 어떻게 할지는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백아에게 말해서…….”

두 사람이 주천구가 무슨 얘기를 할지 예상하고 대답부터 했다.

그러자 주천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하려는 얘기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오해…… 라니요?”

“따님을 데리고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게 아닙니까?”

주천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당분간 이곳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소.”

문약란은 이제 주천구를 만나서 대단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아직 풍백이 주천구가 했던 말에 대해 조사를 끝마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주천구는 감히 문약란에게 떠나자는 말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문약란이 자신을 아버지로 인정을 해야 같이 백련문으로 가자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슨 부탁을 하신다는 말씀이신지…….”

“당분간 나도 적가상방에 머물고 싶은데, 그동안 신세를 좀 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소.”

“그 정도야 당연히,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계속 일을 하고 싶다고 하는구려.”

말을 하는 주천구는 무뚝뚝한 표정을 깨뜨리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적호경과 진덕양 역시 주천구의 말을 듣고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로 그를 보며 되물었다.

“네? 그러면 우리 백아의 시비를 계속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대체 왜…….”

그 말에 주천구가 대답 대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문약란은 주천구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풍백의 시비 일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했었다.

아직 주천구가 진짜 자신의 아버지인지 풍백이 확인하는 중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풍백의 곁에서 그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마음은 바로 다음 날부터 산산이 부서져 갔다.

문약란이 풍백이 마실 차와 다기(茶器)를 준비하고 있자 어느새 주천구가 나타나 물었다.

“어디에 가져다주려고 그러는 것이냐.”

“어…… 도련님이 차 마실 시간이라서요.”

“알았다.”

“네? 어엇!”

주천구가 무슨 수를 썼는지 손에 들린 다기가 어느새 주천구의 손에 들려 있었다. 다기를 들고 있는 주천구가 나지막이 불렀다.

“호법.”

그러자 마치 유령처럼 사내 두 명이 지면에서 솟아나듯 나타났다. 주천구를 호위하는 좌우호법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주천구는 다기를 우호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걸 적 공자에게 가져다주도록.”

“충.”

다기를 받은 우호법은 다시 유령처럼 사라졌다.

이것을 시작으로 주천구는 문약란이 무언가를 하려고만 하면 나타나서 그녀의 일을 모두 빼앗아 호법에게 건네주기 시작했다.

풍백의 세안물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하여 식사를 챙기는 것, 의복을 챙기는 것 등 모든 일을 빼앗았다.

그리고 문약란의 할 일은 대신하기 시작한 호법들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져 가는 것이 문약란의 눈에도 보였다.

무려 절정고수인 호법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를 대신하여 풍백의 시중이나 들고 있으니,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보며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약란에게 풍백의 시비 일은 단순히 시중을 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서 같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무나 행복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일을 모두 빼앗겨 하루가 다 지나도록 풍백의 얼굴 한 번 보지를 못하는 경우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문약란이 소리치고 말았다.

“제가 할 일은 빼앗지 마세요! 지금 엄청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요!”

주천구의 별호는 무정검군이다.

그의 별호에 무정이라는 말이 들어갈 정도로 표정의 변화도 적고,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약란에게 한마디를 듣자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얼굴마저 창백하게 변해 사정없이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미안하구나. 나는 단지…… 네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서…….”

주천구가 이렇게 나오자 문약란이 더 당황했다.

문약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모진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말에 눈앞에서 충격을 받아 쓰러질 것처럼 변하는 주천구를 보니 오히려 자신이 대단히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 그게 고맙기는 한데요……. 그래도 제가 할 일은 직접 하는 것이…….”

“아비가 되어 딸자식이 고생하는 것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겠느냐.”

“하지만 호법 아저씨들이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그래? 알겠다. 그러면 앞으로는 내가 직접 하도록 하마.”

“……네?”

다음 날부터 주천구가 직접 풍백의 시중을 보려는 모습에 문약란이 기겁을 해서 말렸다.

“꺄하하하!”

수월이가 자지러지게 웃으며 침상을 굴러다녔다.

“그만 웃어.”

문약란이 곱게 흘겨보며 말했지만, 수월이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웃고 나서야 간신히 눈물을 닦으며 일어날 수 있었다.

“완전 웃기잖아. 세상에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도련님 시중을 들겠다고…… 푸훗!”

“웃을 일이 아니야. 그것 때문에 내가 아버지를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간신히 주천구를 말린 문약란은 결국 협상을 해야 했다.

일단 문약란이 시비가 되기 전 풍백을 시중 들었던 왕삼을 다시 불러와 사정을 설명하고 일을 넘겨줬다. 왕삼 역시 문약란에 대한 얘기를 들었기에 예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딱히 길게 얘기하지 않고 흔쾌히 일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문약란은 오직 풍백의 차를 준비하는 일만 맡기로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천구가 절대로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말이다.

침상을 굴러다니던 수월이가 문약란의 얘기를 듣고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주 대협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네?”

“……뭐, 아버지가 맞으니까.”

풍백이 주천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단 주천구가 워낙 유명 인사이기도 했었고, 그가 강서성에서 손꼽히는 백련문을 세우는 과정은 대단히 유명했기에 꽤나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걸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천구가 왜 문파 이름을 백련문이라 붙였는지 사연까지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주천구가 사랑했던 사람이자 문약란의 어머니의 이름이 바로 백련이었다는 것이다.

백련문에 대한 얘기까지 듣고 난 이후로 문약란은 주천구를 완전히 아버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주천구를 살갑게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러면 이제 백련문으로 가는 거야?”

“…….”

문약란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적가상방에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주천구는 특히 한 문파의 수장이기에 빨리 돌아가야 할 것이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풍백의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월이도 있어서 더욱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평생을 혼자 살아온 아버지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다시 백련문으로 혼자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문약란이 쉽게 대답을 못하는 것을 보고 수월이가 다시 침상을 뒹굴거리며 말했다.

“만약 백련문으로 가게 되면 미리 얘기를 해 줘.”

“……왜?”

“왜긴? 나도 너 따라가려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수월이의 말에 문약란이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너도 따라가게?”

“뭐야? 그러면 나를 버리고 혼자 가려고 그랬던 거야?”

“그게 아니라...너는 여기 상산현이 고향이라고 해서…….”

기어드는 문약란의 목소리에 수월이는 피식 웃었다.

“백련문이 있다는 응담현에서 상산현까지 마차 타고 천천히 움직이면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그 정도면 그렇게 멀지 않잖아.”

“그, 그래?”

“그리고 내가 너 시비로 일자리를 구하면, 적가상방에서 받는 것보다 월봉을 더 많이 줄 것 같거든.”

수월이는 장난기가 다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적가상방에서 받는 월봉은 다른 상방에서 받는 월봉보다 훨씬 후했다. 그랬기에 수월이가 문약란을 따라간다는 말이 정말 돈 때문일 리는 없었다.

문약란 역시 그것을 알기에 수월이가 자신을 따라가겠다는 말에 괜히 목이 메어 왔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친구 복은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도 떠올렸고 말이다.

“뭐야? 설마 감동한 거야?”

“아, 아니거든!”

“에이! 눈이 빨개지고 있는데?”

“졸려서 그래!”

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방 밖으로 울려 퍼졌다.

그럼 두 사람이 있는 방문 한편에는 주천구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은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구나.’

점점 팔불출이 되어 가는 주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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