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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07화 (10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07화

저희들끼리 낄낄거리며 얘기를 하던 네 사람은 서로 은자를 주고받은 다음에야 고우길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이쿠! 우리 위대하신 일검단악 고 대협님을 이렇게 멀뚱하게 서 있게 만들었네.”

“우리가 큰 잘못을 했네.”

“그러게 미안해서 어쩌나?”

사내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조롱하듯 고우길을 보고 말했다.

그러나 고우길은 분노하지 않았다. 지금은 분노를 할 시간이 아니었다.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고, 심지어 상대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자신의 별호도 알고 있었으니까.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야. 나에 대해 조사를 하고 기회를 봐서 일을 벌인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곳은 적가상방의 텃밭이다. 그러니 저들이 불리한 입장이고, 짧은 시간 안에 지원할 무사가 몰려올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다는 건 저들이 자신을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 제압하거나 죽일 자신이 있다는 말일 테니까.

‘시간을 끌어야 해.’

먼저 검을 뽑아 싸우도록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야 했다.

흑도패 두목이 적가상방으로 빨리 달려갔다고 가정하더라도 무사들이 오려면 이각(二刻, 30분)은 잡아야 할 것이다. 만약 풍백이 혼자만이라도 빨리 와 준다면 그보단 빠를 것이고 말이다.

과연 그 정도 시간을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도는 해 봐야 했다.

생각을 마친 고우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온 놈들이냐. 청해상방인가?”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현재 적가상방과 가장 큰 분란을 일으키는 곳은 백건상방이었어도, 그들의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곳이 청해상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무인을 고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네 명의 사내는 청해상방이냐는 물음에도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둘째 형님, 청해상방이 어딘지 몰라도 엄청 기분 나쁜데?”

“그렇지? 우리가 겨우 상방 따위에게 고용되어서 움직이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다니. 아마 셋째 너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맞습니다. 원래 셋째 형님이 겉으로 보면 비리비리하게 보이잖아요.”

저들끼리 두런두런 대화하는 모습에서 여유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고우길은 그런 그들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나를 노리고 온 것 같은데 이름이라도 알려 주는 건 어떤가?”

그러자 사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장년의 사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천목사웅(天目四雄)이라고 하지. 들어는 봤겠지?”

그 말을 들은 고우길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떠올랐는지 눈이 살짝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신이 동요한 걸 알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천목사견? 이 사파 놈들이 여기는 왜…….’

천목사견.

스스로를 천목사웅이라 자칭하며 천목산 인근에서 활동하는 놈들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이전에 서문세가의 무인을 죽여서 분노한 서문세가의 추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들이 안휘성으로 도망을 갔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소문이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악명이 높은 네 마리의 미친개가 왜 이곳에서 적가상방을 상대로 수작을 부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절대로 싸우면 안 돼!’

천목사견에 대한 소문이 맞다면 자신은 절대로 저들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도 거의 불가능했다. 듣기로는 천목사견 중 적어도 두 명이 일류고수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입안이 바짝 말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태연하게 말했다.

“천목산의 네 마리 개새끼가 서문세가에게 쫓겨서 도망갔다는 말은 들었지.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서문세가에서 너희들 얘기를 들으면 당장 목을 자르겠다고 달려올 텐데.”

도발 섞인 고우길의 말에도 이들은 분노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웃었다.

“막내야, 우리한테 면전에서 개새끼라고 하는 놈은 정말 오랜만이지 않냐?”

“맞습니다, 셋째 형님. 마지막으로 개새끼라 말했던 놈의 사지를 잘라 준 다음부터는 누구도 그랬던 적이 없었죠.”

“그래도 오랜만에 이런 말을 들으니 신선하지 않냐, 둘째야?”

고우길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서문세가에서 너희들을 쫓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절강성에 기어 들어왔나?”

“우린 걸어 들어왔다.”

“서문세가 놈들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아?”

“우리 앞에 서문세가 놈들이 나타나면 목을 잘라서 네놈 발치에 던져 주지.”

저들 역시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의 말하는 걸 들어 보면 분명 서문세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고우길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 지금 적가상방에 있는 서문세가 사람들에게 말해 주면 아주 좋아하겠군.”

그 말에 저들의 얼굴에 살짝 변화가 보였다.

“거짓말이야.”

“당연한 얘기지, 셋째야.”

“적가상방에 서문세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 말입니다.”

이런 반응에 고우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거짓말 같으면 믿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데 얘기를 이미 들었지 않나? 우리 도련님하고 서문세가 소가주님하고 꽤 친분이 깊다는 것 말이야. 이번에 적가상방에서 준비하는 잔치에 참석하려고 일찍 오셨지.”

이 말에 셋째가 얼른 대답했다.

“구라를 치려면 확실히 해야지. 너희 적가상방을 우리가 꽤 지켜보고 있었거든. 서문세가 무사들이 들어가는 건 본 적이 없다.”

“너야말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소가주님은 혼자 오셨어. 무사들은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지금쯤 적가상방에 도착했을걸.”

“허튼소리!”

쿵!

셋째가 발끈해서 소리침과 동시에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돌려 보니 첫째가 서 있는 바닥에 선명한 발자국이 보였다.

첫째는 혀를 차며 동생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멍청한 놈들. 지금 시간 끌려고 헛소리하는 거잖아.”

그러자 방금 전까지 발끈한 것처럼 보이던 셋째가 대번에 표정이 바뀌더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냥 살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웃겨서 장단 좀 맞춰 준 겁니다. 지금 서문세가 소가주가 항주에 있는 걸 뻔히 아는데 넘어갈 리가 없잖습니까.”

이번에는 고우길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내가 겨우 너희를 상대로…….”

“굳이 부정할 필요 없어. 이제 슬슬 시작하지? 이러다가 정말 너희 적가상방 놈들이 오면 더 죽여야 하잖아.”

“그렇지. 허접한 놈들을 죽이는 것도 귀찮아.”

“그럼 누가 해치울래?”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막내가 빨리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형님들은 꼭 나만 일 시키려고 하더라.”

천목사견은 고우길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고 저들끼리 두런거리며 말하더니 곧 막내가 불퉁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그렇지만 표정과 달리 그의 눈은 곧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기대된다는 듯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제기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고우길은 용천보검을 뽑았다.

고우길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내를 내보냈다는 말은 저놈이 가장 약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일 것이고, 고우길은 그를 상대로 최대한 버틸 수 있다는 말일 테니까.

풍백의 호위를 시작하기 전인 일 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얼마 전에는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련이었다고 하더라도 사마세가 직계인 사마장위를 이기기도 했었지 않던가.

막내는 고우길이 들고 있는 용천보검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좋은 검을 가지고 있네. 나중에 팔아먹으면 짭짤하겠다.”

“흥!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을 하던 고우길이 기습적으로 난화보를 펼쳐 막내와 거리를 좁히더니 숭양검법을 펼쳐 사선으로 베어 갔다.

막내는 고우길을 얕보고 있었는지 아직 검파도 잡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그러나 이건 고우길의 오산이었다.

깡!

“크윽!”

귀를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고우길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검파를 잡고 있던 손아귀는 찢어질 것처럼 통증이 밀려왔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막내는 어느새 손에 검을 들고 있었다. 발검을 하며 고우길의 검을 튕겨 낸 것이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어도 고우길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고수다!’

고우길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천목사견 중 가장 무공이 강한 사람은 첫째지만, 두 번째로 무공이 강하고 일류고수인 사람은 막내였다.

막내는 대번에 안색이 변한 고우길을 보며 히죽 웃었다.

“나를 뭘로 보고 그런 얄팍한 수작을 부리는 거야? 우린 사파라고.”

“으음…….”

“평소라면 같이 어울려서 조금 놀아 주겠는데, 지금은 시간이 없네. 괜히 귀찮은 일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빨리 끝내 주도록 할게.”

말을 마친 막내가 갈지자를 그리며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그가 펼치는 검법은 피 냄새가 풀풀 날 정도로 살기가 짙었다. 사파 특유의 상대를 격살하는 것에 집중한 검법이었다.

차차창!

안간힘을 쏟으며 간신히 막아 내고 있지만, 숭양검법만으로는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풍백에게 난파칠식의 몇 초식을 배운 이후로 고우길은 숭양검법을 기반으로 삼고, 난파칠식을 펼치며 방심한 상대를 압박하는 형태의 싸움을 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난파칠식을 아끼다가 얼마 버티지도 못할 것 같았다.

“하압!”

큰 기합과 함께 반전을 노리며 난파칠식을 펼쳤다.

쾌검에 기반한 난파칠식으로 검법을 바뀌자, 막내는 눈썹을 꿈틀하더니 자신의 상체 요혈을 노리는 고우길의 검을 강하게 후려쳤다.

카강!

검을 타고 강력한 내력이 밀어닥치자 고우길은 크게 당황하며 연이어 난파칠식의 두 번째 초식을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막내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광폭하게 검을 휘두르며 고우길을 폭풍처럼 몰아쳤다.

고우길은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다시 난피칠식을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막내가 휘두르는 검은 너무나 매서웠다. 막는 걸 멈추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몸을 가르고 지나갈 것 같았다.

실제로 막내의 검을 완전하게 막아 내지 못하고 있기도 했다. 검에 실린 경력을 모두 해소하지 못해 고우길의 옷이 조금씩 갈라지고, 그 사이로 핏방울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제기랄…….’

이를 악문 고우길이 난화보를 펼치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그러나 이전 상대했던 사람들과 지금 싸우고 있는 천목사견의 막내는 비교할 수 없었다.

무공도 더 강했지만, 그보다 가지고 있는 실전 경력이 전혀 달랐다. 싸움을 좋아하는 천목사견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 일이 일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고우길이 펼친 난파칠식을 효과적으로 막은 것처럼, 그가 난화보를 펼쳐 뒤로 피하려는 걸 눈치채고 빠르게 쫓아온 것이다.

아무리 난화보가 짧은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강점이 있는 보법이라고 하나, 미리 알아채고 한 걸음 빨리 움직인 일류고수를 떨쳐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였다.

채채채챙!

연속으로 검을 부딪치며 고우길은 점차 내상을 입어가고 있었다. 일류고수의 검격을 받아 내며 점차 단전에 그 충격이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대문 밖에서 고개를 배꼼 내미는 것이 천목사견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것을 본 천목사견의 눈이 일제히 커다랗게 변했다.

심지어 고우길을 몰아치고 있던 천목사견의 막내가 움찔하며 공세의 틈을 줬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고우길은 훌쩍 몸을 띄우며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대문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바로 문약란이었다.

밖에서 초조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던 문약란은, 안에서 격렬한 칼 소리가 들리자 불안한 마음에 고개를 내밀어 확인을 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천목사견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고 말이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천목사견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이것…… 봐라?”

“꿀꺽! 듣던 것보다…….”

“……더 끝내주네.”

이때 음흉한 눈빛을 빛내던 첫째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말했다.

“저거 끌고 오라는 말은 없었지?”

그와 함께 천목사견의 눈에서 온갖 욕망의 광채가 뿜어졌다.

고우길은 얼른 문약란이 있는 대문을 몸으로 가리며 소리쳤다.

“어서 도망쳐!”

“으하하하! 감히 누구 앞에서 도망친다는 말이냐!”

천목사견 첫째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뛰어오르더니 먹이를 낚아채려는 매처럼 문약란을 향해 쏘아져 갔다.

고우길이 그런 첫째를 막기 위해 검을 휘두르려고 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막내가 그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크크크! 넌 나랑 놀아야지.”

“이 자식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저 예쁜이는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재미있게 데리고 놀다가 팔아 치워야 되거든. 엄청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을 거야.”

귀가 더러워지는 말이었으나 고우길은 그를 뿌리치고 첫째를 막으러 갈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어느새 도망치려던 문약란의 앞에 내려서며 흉소(凶笑)를 흘렸다.

“크크크큭! 어딜 가시려고? 같이 놀아야지.”

첫째의 손이 문약란의 팔목을 잡아 갔다.

그런데…….

그 순간 매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첫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에 담긴 심상치 않다 느낀 첫째는 문약란을 잡는 걸 포기하고 뒤로 물러섰다.

“어떤 놈이냐!”

첫째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마치 대답이라도 되는 듯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연이어 그를 향해 날아왔다.

이번에 날아온 것은 단순히 날아오지도 않았다. 교묘하게 속도를 조절하여 후발선지(後發先至)의 묘리를 담아 날아온 암기는 첫째가 다시 담장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형님!”

천목사견은 암기를 피해 들어온 첫째를 보며 각자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날아오던 암기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를 보이며 또다시 무언가가 날아와 그들의 병장기를 때렸다.

따다다당!

“크윽!”

“아악!”

천목사견은 손아귀가 찢어지며 일제히 병장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서둘러 다시 병장기를 잡기 위해 자신들의 병기를 본 그들은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들의 병장기에 박혀 있는 가늘디가는 솔잎을 봤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초절정을 바라보는 고수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적엽비표(的葉飛鏢)의 수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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