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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06화 (106/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06화

식당에서 나온 문약란과 수월은 언제나 그랬듯이 상산현의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주전부리를 사 먹고 다녔다.

방금 전까지 식당에서 배부를 정도로 밥을 먹고 나왔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달달한 주전부리가 들어갈 자리는 항상 있는 것 아니겠는가.

달달한 주전부리가 입에 들어가니 아직 조금 처진 듯했던 기분도 다시 올라왔다.

오늘따라 상산현의 밤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오늘 경극단이 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거 구경하겠다고 엄청 나왔다고 하더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수월이의 모습에 문약란이 그녀를 슬그머니 바라봤다.

“너 이거 보려고 오늘 같이 나가자고 한 거구나!”

“헤헤! 재미있을 거야. 경극단에 나오는 사람이 엄청 유명한 사람이래. 너도 보면 재미있을 거야.”

수월이는 문약란의 손을 잡아끌고 경극을 펼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랑경극단은 보통 적당한 공터에 간이 무대를 만들고 경극을 펼친다. 그리고 입장료 대신 공연을 본 대가로 경극이 끝나면 사람들이 알아서 돈을 던져 주는 것이다.

상산현을 찾은 경극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공터에는 생각보다 꽤 큰 경극 무대가 간이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경극을 펼치고 있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경극은 용봉정상(龍鳳呈祥)이란 경극이었다. 대략 삼국시대에 초나라 유비가 오나라 손상향과 혼인을 하게 되는 내용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문약란은 처음으로 경극을 본 것이었다. 그렇기에 눈을 반짝이며 배우들이 무대에서 펼쳐 나가는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재미있지?”

수월이가 문약란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 말에 문약란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웠다.

“여기 잠깐만 있어.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응? 어디 가려고?”

“금방 다녀올게. 자리나 잘 잡아 놔.”

그러고는 수월이는 사람들을 헤치며 어딘가로 향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이내 시선을 무대로 옮겼다. 당연히 곧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약란은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건드리자 당연히 수월이가 돌아왔을 거라 생각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 어? 고 무사님?”

고우길은 조금 다급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수월이가 어디 간다고 했소?”

“그런 말은 안했는데요.”

“이런 제길!”

고우길은 다시 사람들을 헤치고 나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한 문약란은 더 이상 경극을 보지도 않고 얼른 고우길을 따라 사람들을 헤치고 나왔다.

“수월아! 어디 있냐!”

연신 소리를 치는 고우길의 모습에 더럭 겁이 났다.

“무슨 일이에요? 수월이…… 수월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죠?”

“나도 모르겠소. 소피라도 보러 간 줄 알았는데…….”

이럴 때가 아니었다. 고우길은 다시 수월이를 찾아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문약란 역시 가만있을 수 없었다.

경극을 펼치는 곳을 한참 뒤지고 다니니, 곧 술 취해서 해롱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월이? 저쪽으로 어떤 남자들이랑 가던데……. 술 먹으러 가는 거면 나도 좀 같아 가자니까 손만 흔들더라고.”

술 취한 사람이 가리킨 곳은 상산현에 있는 뒷골목으로 향하는 음습한 길이었다. 그리고 수월이가 손을 흔든 것은 도와 달라는 손짓이었을 테고.

당장 그쪽으로 달려가려던 고우길이 문득 문약란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지금 고우길은 문약란을 호위하는 것이 임무였다. 아무리 수월이가 뒷골목으로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호위해야 할 문약란을 두고 혼자 달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다른 무사를 찾거나 풍백에게 알리러 적가상방으로 갔다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될 것이다.

이런 고우길의 고민을 알았는지 문약란이 먼저 뒷골목 쪽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절 보호해 주세요!”

“그럴 수 없소! 저런 곳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고 무사님이 보호해 주면 되잖아요. 전 수월이가 없으면…… 안 돼요.”

삶에 처음 생긴 친구였고, 자신의 반쪽처럼 느끼고 있는 수월이였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수월이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

애절한 얼굴의 문약란은 그러곤 뒷골목으로 달려갔다. 차마 그런 문약란을 잡을 수 없었던 고우길을 마음을 굳게 먹고 얼른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내가 앞장서겠소.”

문약란은 마음이 급해 몸이 앞서 달렸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그녀가 위험하게 앞장설 이유는 없었다.

‘그래 봐야 뒷골목이다. 흑도패 한 무더기가 기어 나와도 아무 문제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마도 수월이를 데리고 간 놈들은 외부에서 온 뜨내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수월이는 상산현의 토박이였다.

그렇기에 수월이가 적가상방의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흑도패는 없었고, 청송표국에서 적가상방의 무력을 채워 주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었다.

청송표국은 단지 표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계속해서 실력 있는 표두나 표사를 충원하고 있었기에 그 힘을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러니 당장 상산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곳이라고 말하더라도 누구 하나 감히 반박을 못할 것이다.

이런 청송표국을 배후에 세워 두고 있는 적가상방의 사람을 흑도패가 건드린다?

당장 다음 날 숨이 끊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감히 수작을 부릴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청송표국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고우길은 이류무인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이곳 상산현 뒷골목에서는 사신과 같은 존재였으니까.

뒷골목으로 들어간 고우길은 가장 먼저 보이는 흑도패의 거처로 가서 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갔다.

콰직!

문이 두 쪽으로 부서지며 떨어져 나갔고, 안에 있던 흑도패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그러나 고우길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고 말했다.

“대가리 나오라고 해. 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러자 몇몇 어려 보이는 흑도패가 인상을 긁으며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얼른 튀어나와 바닥에 머리부터 박으며 절을 하는 두목을 보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고 대협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살려만 주십쇼!”

고우길을 처음 본 흑도패 몇몇은 뜻밖의 모습에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상산현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흑도패들은 냉큼 두목을 따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고우길은 비록 이류무인에 불과하지만 적가상방의 최고 고수였다.

과거 적가상방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 상산현의 흑도패들은 여러 군소 상방을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적가상방을 상대로도 조금이라도 뜯어먹을 것이 있을까 싶어 슬쩍슬쩍 건드리던 흑도패들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고우길은 그런 흑도패를 상대로 맹활약을 하며 두들겨 패고 다녔었다.

지금 벌레처럼 납작 엎드려 있는 흑도패 두목도 당시에 무참히 얻어맞았던 흑도패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고우길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이곳에 있는 흑도패는 삽시간에 썰려 나갈 거라는 사실도 알았다.

‘제기랄! 대체 왜 우리한테 나타나서는…….’

이런 두목을 보며 고우길이 서릿발이 날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적가상방 사람 하나가 납치돼서 이쪽 방면으로 끌려갔다.”

“으헉! 정말입니까?”

적가상방의 사람이 납치됐다는 말에 두목이 기겁했다. 잘못하면 적가상방의 무사들이 이곳 뒷골목을 작살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물론 적가상방의 무력만으로 상산현 뒷골목을 모조리 박살 내고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러나 적가상방의 뒤에는 청송표국이 버티고 있었다. 청송표국이 작정하고 뒷골목을 조지고 다닌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지금부터 일다경(一茶頃) 안에 그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낸다.”

“이, 일다경이요?”

너무 짧은 시간에 두목이 고개를 벌떡 들고 되물었다. 그런 두목을 보며 고우길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식구가 뒷골목에서 죽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마 이곳 뒷골목에 있는 흑도패는 싹 갈려 나갈 거다. 참고로 포도아문으로 끌고 간다는 말이 아니야. 진짜 싹 뒈진다는 말이다. 알아들어?”

“딸꾹…….”

고우길의 온몸에서 쏟아지는 살기를 정면으로 받은 두목은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딸꾹질만 했다.

“그리고 방금 끌려갔다고 말했지. 지금 이 근처에 뒹굴고 있던 놈들만 족쳐도 들을 말이 얼마나 많은 줄 모를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잘 들어. 납치한 놈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고, 납치당한 사람은 열여덟 살 여자다. 알겠어?”

“네, 넵!”

“주변에 있는 다른 흑도패에게도 전해!”

“바,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두목이 후다닥 달려 나가자 흑도패들도 그를 따라 우르르 달려 나갔다.

뒤에 서 있던 문약란이 불안한 얼굴로 고우길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에게 맡겨도 괜찮은 걸까요?”

“뒷골목은 흑도패가 쥐고 있소. 하오문을 찾아가도 되겠지만, 그쪽하고 얘기하다가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흑도패에게 맡기는 것이 낫지.”

두 사람이 초조하게 흑도패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흑도패 두목이 달려왔기 때문이다.

“헉! 헉! 차,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서 조금 놀란 고우길이 서둘러 물었다.

“어디에 있지?”

“저쪽에 있는 빈집에 있다고 합니다! 외부에서 온 놈들이고, 네 놈인데 모두 처음 본 놈들이라고 합니다. 그놈들이 적가상방 시비 하나를 끌고 가는 걸 봤다고 했고, 시비를 알아본 놈의 말에 따르면 수월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문약란이 급한 마음에 먼저 나서며 대답하고는 고우길을 바라봤다. 그 시선에 고우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목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이 길로 당장 적가상방으로 달려가서 여기 상황을 알려라. 그러면 일이 잘 풀리면 절대 섭섭하지 않도록 톡톡히 챙겨 줄 거야.”

돈을 챙겨 준다는 말에 화색이 돌며 두목이 얼른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여기 상황을 알리면서 꼭 적풍백 소방주님께도 알려야 한다는 거야.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두목은 대답을 마치고 얼른 달려 나갔다.

풍백을 부른 이유는 정말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현재 적가상방의 무사들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풍백이라면 충분히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 무사님, 어서요!”

문약란의 재촉을 들으며 고우길이 두목이 말한 빈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두목이 알려 준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곧장 흑도패 거처의 문을 부쉈던 것처럼 문을 걷어차며 고우길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과 조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당연히 사람 장사를 하는 놈들이 수월이의 미색을 보고 수작을 부렸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갑자기 들이치면 바삐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보이는 모습은 수월이가 기절한 것처럼 한편에 쓰러져 있었고, 네 명의 흉악하게 생긴 사내들이 여유롭게 여기저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들은 누구냐!”

고우길은 불길한 마음이 드는 걸 애써 무시하며 크게 소리쳤다.

그런 고우길의 외침에도 네 명의 사내는 별다른 대답도 없이 저희들끼리 얘기하기 바빴다.

“젠장! 내가 졌네.”

“낄낄낄! 내가 이겼으니까 형님들 모두 돈 내놓으시죠?”

“아니, 이 새끼는 무슨 배짱으로 혼자 쫓아와?”

그러고는 서로 은자를 건네는 모습이었다.

고우길은 이곳으로 유인을 당한 거라는 생각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뜨내기 놈들이 유인을 한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목숨을 내놓고 사는 흑도패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대범하게 일을 벌이는 흑도패는 없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무인이 벌이는 짓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더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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