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04화
초췌한 얼굴의 곽자억이 심각한 얼굴로 자신의 집무실에서 끝없이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참담한 얼굴의 총관이 곽자억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걸 본 곽자억이 황급히 물었다.
“청해상방의 답변이 왔나? 뭐라고 해? 추가 자금을 가지고 온다고 해?”
“그게…….”
“빨리 대답을 해! 뭐라고 했냐고!”
곽자억의 재촉에 총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 지금은 곤란하다고 합니다……. 기다리라고…….”
“기다리라니! 지금 무슨 개소리야! 현재 이곳 상태를 알리기는 했어?”
“알렸습니다! 하, 하지만 전서구를 통해 들어온 내용은 그저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만…….”
“이 개 같은 새끼들! 저희들을 믿고 벌인 일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때려?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으아아아!”
곽자억이 괴성을 지르며 집무실에 있는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벼루를 집어서 던지고 의자로 책상을 내려쳐 부쉈다.
총관은 곽자억의 시선이 최대한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하며 이 난동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백건상방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대략 한 달 정도 전부터 적가상방이 위지휘사사 등에 상행을 나가기 시작하면서, 청해상방에서 들어오던 지원금이 느닷없이 중단된 탓이었다.
처음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었다. 이전에도 잠깐 지원금이 누락된 경우가 있었고, 누락된 만큼 다음에는 누락된 금액까지 더해서 가져왔었으니까.
그래서 청해상방의 지원금이 도착하기 전까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백건상방의 자금을 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낀 건, 그 이후 두 번이나 더 지원금이 누락되었을 때였다.
백건상방이 아무리 상산현에서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상방이라고 하지만, 청해상방처럼 돈을 펑펑 쓸 만큼 자금이 충분한 건 아니었다.
이미 세 번에 걸쳐 누락된 지원금 대신 들어간 백건상방의 자금은 충분히 백건상방의 대들보 하나를 갈아 넣었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불안함을 느낀 곽자억이 청해상방의 지원금을 빨리 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청해상방은 지원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지원을 미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청해상방이 말하는 핑계를 믿었다. 지금까지 청해상방이 이곳에 쏟아부은 돈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정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거의 한 달 동안 이어지자 곽자억은 더 이상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가격을 후려쳐서 팔면 팔수록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는 백건상방으로서는 청해상방의 지원이 없다면 지금까지 하던 전략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었으니까.
이제는 적가상방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당장 백건상방이 무너질 상황이었다.
한참 동안 집무실을 때려 부순 곽자억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앉아서 호흡을 고르던 곽자억이 입을 열었다.
“이제 청해상방의 지원이 없다면…… 백건상방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자 곽자억의 난동을 피해 한쪽에 피해 있던 총관이 슬그머니 나서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힘…… 듭니다…….”
“힘든 건 알고 있다. 더 자세하게. 앞으로 청해상방의 지원이 없다는 가정하에 말해 봐.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지도.”
“……일단 가장 먼저 지금까지 저희가 판매하고 있던 모든 물건의 가격을 원래대로 다시 올려야 할 겁니다.”
“그래야겠지.”
이 정도는 당연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전략을 계속 들고 나갈 이유도 희미해졌다.
이것만이 아니다.
적가상방은 관부와 계약을 맺으면서 지금까지 막고 있던 상행마저 재개한 상태였다. 관부와 맺은 계약의 규모는 막대해서 이전보다 더 바쁘게 상행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급하게 일할 사람을 더 고용하고 있겠는가.
또한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소금 전매권마저 손에 넣었다고 한다. 소금 전매권 얘기를 들었을 때는 곽자억조차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을 정도였다.
세상에는 돈을 쓸어 모을 수 있는 몇 가지 품목이 있는데, 소금은 그런 품목 중에서도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적가상방의 앞날은 너무 밝아서 감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적가상방은 이전처럼 과연 압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지고 있던 부동산이나 몇 가지 재산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총관의 말에 곽자억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래야 하지?”
“그게…… 한 달 동안 쏟아부은 돈이 너무 많아…… 현재 백건상방을 유지할 자금이 부족한 상태라서…….”
한 달 동안 청해상방을 대신해 자금을 투입했던 백건상방이었다.
그런데 겨우 한 달 동안 투입한 자금에 백건상방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렇기에 몇 달이나 자금을 대면서도 힘들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던 청해상방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곽자억이 물었다.
“그 정도면 수습할 수 있는 건가?”
“조금 부족하지만 급한 불은 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상산현 상계(商界)에서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쯧…….”
가볍게 혀를 찼으나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백건상방이 벌인 엄청난 가격 싸움의 대상은 당연히 적가상방이었다.
그러나 그 여파까지 모두 적가상방에 한정된 건 아니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소규모 상방은 이 여파에 휩쓸려 망해 나간 곳도 많았다.
이런 백건상방을 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당장 뒤에 서 있는 청해상방 때문에 어디에서도 백건상방을 지탄하지 못했었지만, 이제 청해상방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이를 악문 곽자억이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버텨야지. 그래도 용정차 공급을 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으니, 그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다.”
백건상방이 믿을 구석은 오직 용정차뿐이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으니 백건상방은 적가상방이 어떻게 나올지 몸을 숙이고 잘 지켜봐야 했다.
* * *
청해상방 총관인 엄탁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표(錢票)를 들고 백건상방으로 가던 행수 및 무사들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전장(錢莊)이라는 것이 있다.
전장은 전점(錢店)이나 전포(錢鋪)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맡기거나 환전을 할 수 있으며 신용에 따라 저리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런 전장은 개인이 만들거나 상방이나 관부에서 만들기도 했는데, 운영하는 사람이나 상방의 신뢰가 높은 곳은 관부에서 만든 전장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전표는 전장(錢莊)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이 전표를 들고 발행한 전장을 찾아가면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되어있는 종이였다.
뿌드득!
이를 갈은 청해상방주 문태성은 엄탁을 무섭게 노려봤다. 엄탁은 그 시선이 자신에게 분노해서가 아님을 알면서도 모골이 송연해져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었다.
“……전표는?”
당연히 없어졌을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음에도 물었다.
“사라…… 졌습니다.”
“흉수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고?”
“네…….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태성은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한 달 전부터였다.
어디서 나타난 놈들인지, 이들은 백건상방으로 향하는 상행을 막아서고 사람을 모두 죽인 다음에 은자를 챙겨 갔다.
처음에는 그저 산적이나 마적을 만났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강호에서 산적과 마적 등이 워낙 많았기에 운이 없으면 횡액을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행을 하는 상방이 많은 돈을 벌고, 그들을 호위하는 표국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기 시작하면서 이게 쉽게 볼 일이 아니라, 어쩌면 청해상방이나 백건상방을 노리고 벌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태성은 당연히 계속 이렇게 당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 광동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표국에 표물을 맡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혹시나 은자로 가져가다 보니 정보가 새어 나가는 건 아닌가 싶어, 이번에는 전표로 준비하여 행수와 표사, 그리고 청해상방에서 고용한 무사들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엄탁이 말한 것처럼 깔끔하게 모두 죽임을 당하고 전표를 강탈당했다.
일반적으로 전표에는 일련 번호가 있어서 잘못하면 행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전표를 암시장으로 가져가면 수수료로 상당 부분을 떼어 줘야 하더라도 암상에게 판매를 할 수 있기는 했다. 뒷골목에서 팔 수 없는 물건이란 없으니까.
“이것만이 아니라…….”
“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버럭 호통을 터뜨리는 문태성의 모습에 엄탁이 기겁하며 얼른 하려던 말을 쏟아냈다.
“일반 상행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뭐라고? 상행에서도?”
“네, 모든 상행에 문제가 생긴 전 아니지만…… 고가의 물품을 운송하던 상행 몇 개가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물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전부 불태운 흔적만 있다고…….”
문태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보통 상행을 공격하는 건 당연하게도 돈 때문이다. 그런데 상행을 공격하여 사람을 죽이고, 상행 물품을 모두 불 태운다?
이건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와 원한이 있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과거가 깔끔하지는 않다. 오히려 험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근래에 어떤 수작을 부려 원한을 살 그런 일을 만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들인 문영후가 죽임을 당했었기에 원한을 가져야 할 입장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
광동성에서 알아주는 표국의 호위를 받는 청해상방의 상행을 건드리면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절대로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 말은 적어도 상대가 가진 힘이 대문파 수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문태성은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 백건상방을 지원하는 일은 포기한다.”
적가상방이 관부와 계약을 맺고 다시 살아난다는 말에 귀에서 연기가 날만큼 화가 나던 문태성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수를 두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면 상행을…….”
“표국을 더 붙여!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면 다른 표국도 부르고, 그래도 문제가 발생하면 상행 하나에 표국 하나를 붙이더라도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히익! 아, 알겠습니다!”
* * *
착!
섭선을 접은 사내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이거 생각보다 소득이 너무 좋군요. 감히 우리 일에 끼어들어서 혼 좀 내 주려고 했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모두 삼소주(三少主)의 혜안 덕분입니다.”
“사실이 아니기는 하지만 듣기는 좋군요. 이것 보십시오. 일을 잘하시기만 한다면 이렇게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
삼소주라 불린 사내는 웃으며 말하고 있으나, 보고를 하는 중년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스르면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기에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광동성 내부에서는 어떻습니까? 청해상방이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겁니까?”
“청해상방의 모든 상행에 작전을 걸 수 없기에 가치가 높은 상행을 위주로 작전을 벌였습니다. 물품은 장물로 넘기다가는 저희 행적이 노출될 위험이 있어서 모두 소각했습니다.”
“훌륭하군요. 그러면 이제 슬슬 청해상방에서도 방비를 할 테니, 시행하고 있는 작전을 마치면 슬슬 마무리를 짓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서문세가 쪽 일은 어떻습니까? 준비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요.”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두 가지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생각이고, 현재까지 경과를 보면 중간에 들키거나 문제가 발생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삼소주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환히 웃으며 다시 섭선을 펼쳐 살랑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적풍백이라는 놈에게 경고하는 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거죠?”
풍백이 심오경과 계약하며 호초를 빼앗아 갔던 것을 잊지 못하는 삼소주였다.
그렇다고 당장 적가상방을 어떻게 압박한다거나, 아니면 풍백이나 적가상방에게 무력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정확한 전후 사정을 몰라도 현재 도지휘사와 포정사가 적가상방에 혜택을 몰아주는 중이었다. 이런 적가상방을 괜히 잘못 건드리면 뜻하지도 않게 관부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급할 것은 없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언제든지 기회가 생길 테니까. 단지 지금은 그 전에 가볍게 손을 봐 주려는 수준이었다.
“혹시 몰라서 저희와 연관이 없는 적당한 놈들을 구해 보냈습니다. 아마 조만간 소식이 들어올 거라 생각합니다.”
“외부에서 구했다는 겁니까?”
“직접적으로 적가상방을 건드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을 대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흐음…… 쓸 만한 놈들로 보낸 겁니까?”
“사파 중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천목사견(天目四犬)이라는 자들을 보냈습니다.”
“아! 나도 들어 봤습니다. 천목산(天目山) 인근에서 활동하는 사파입니까? 네 명 중 두 명이 일류고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진짜인지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 명은 일류고수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적가상방을 직접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행수나 시종, 시녀를 건드는 수준일 테니 과하게 무공이 대단한 자들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들켜서 죽는다 하더라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