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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03화 (10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03화

절강성 동쪽에 있는 주산군도(舟山群島)에는 보타산(普陀山)이 있다.

풍경이 아름다운 보타산은 불교 사대 명산 중 하나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영지라 불리며, 불교에서는 범명으로 보타락가(補陀洛伽)라 부르기도 하는 곳이었다. 보타락가라는 말은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보타산에는 보타암(普陀庵)이 있는데, 이곳은 비구니(比丘尼)라 불리는 여승들로 이뤄진 불문이었다. 보타암은 강호에서 신묘한 검공(劍功)으로 강호에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이렇게 명성이 높은 보타암이지만, 그들이 강호에 나타나는 일은 극히 드물어 신비에 가려진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이들이 강호에 나타나는 일은 오직 천하가 도탄(塗炭)에 빠졌을 때뿐이었다.

강호에서는 이런 보타암을 문파로 인정하며 보타문(普陀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작 이곳의 여승들은 자신들을 뭐라 부르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기도 했다.

이런 보타암에서 아주 드물게 한 명의 속가제자를 세상에 내보내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검후였다.

역대로 검후는 속가제자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보타암의 모든 진전을 이어받았기에 그 무공은 강호 절대고수에 비하여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 검후하고 선을 보라고?’

풍백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미간마저 잔뜩 찌푸렸다.

물론 지금 조유하는 아직 검후가 아니었다. 조유하가 강호에 정식으로 출도하는 것은 앞으로 적어도 몇 년은 더 지나야 했다.

지금은 그저…… 보타암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열일곱 살의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잠깐 정리 좀 해 보자…….’

얼마 전 금호상방은 청해상방이 관부를 움직이려는 수작을 막아 주며 적가상방을 노리고 있다고 경고까지 해 줬으니 굳이 각을 세울 이유는 없었다. 이것은 이미 적가상방과 싸울 의사가 없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지금까지 풍백은 백건상방을 무너뜨릴 생각은 했었으나 금호상방까지 무너뜨릴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었다. 그건 금호상방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조유하였다.

몇 년만 더 있으면 강호를 주름잡는 고수가 될 조유하였는데, 그녀의 가문을 무너뜨리면서 큰 분란이 일어날 수 있는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었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런 조유하와 혼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태명이 자신의 손녀와 혼인을 주선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직 조태명은 자신이 소금 전매권을 손에 넣었다는 걸 모를 텐데 말이다.

‘어이가 없네. 설마 미래를 보는 눈이 탁월하기 때문인가?’

이미 풍백이 봤던 과거에서는 대상방이 되었던 금호상방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풍백의 행보를 보고 그 미래 가치를 파악하여 미리 손을 잡으려는 생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전에도 생각했었지만, 조태명은 백건상방의 곽자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자였다.

그렇지만…….

‘자기 손녀가 앞으로 검후가 될 거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야.’

지금까지 조유하는 혼인과 관련된 자리에 나왔던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풍백이 경험했던 미래에서도 검후는 그 유명세만큼 많은 소문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정략혼에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적이 없었고 말이다.

당연히 조태명 역시 그녀가 보타암의 속가제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과 정략혼 얘기가 나왔다는 말은 조태명이 조유하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유하가 검후가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풍백과 정략혼을 진행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려 검후다.

검후가 강호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는 명문정파 장문인과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검후가 정략혼을 하는 건데, 그 상대가 아무리 소금 전매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겨우 절강성에서 활동하는 상방이다? 그것도 지금은 겨우 중소 상방 수준으로 인식이 되는?

조태명이 그런 계산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풍백이 경험했던 과거에서 금호상방이 대상방이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혼인은 거절해야겠지.’

풍백과 혼인을 한다고 하더라도 조유하는 여전히 몇 년 후에 검후가 될 것이다. 그녀는 보타암의 속가제자이기에 혼인을 했다고 파문(破門)을 당할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 조유하와 혼인을 한다면, 향후 적가상방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고 튼튼한 날개를 얻게 되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나 이제 앞으로 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었기에, 얼굴도 모르고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 혼인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적호경이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풍백이 대답하기 전에 진덕양이 먼저 나섰다.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조 대인의 손녀라면 이곳 상산현에서도 엄청 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그럴 것이다.

후에 조유하가 강호에 검후라는 이름으로 나서게 되면서 강호의 젊은 무인들은 그녀의 미모에 현혹되어 상사병에 빠지는 사람이 많았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젊은 무인은 검후와 싸우게 되면 눈을 감고 싸우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풍백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응? 생각이 없어? 네가 아직 조 대인 손녀를 못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진짜 예쁘다. 놓치면 엄청 후회할 거야.”

진덕양이 약간 짓궂게 말했다. 그런 진덕양에게 풍백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예쁜 여자와 혼인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풍백의 대답에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진덕양이 말했다.

“……뭔 개떡 같은 소리야?”

“조태명 상방주께는 정중히 거절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진덕양이 뭐라 더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적호경의 대답이 더 빨랐다.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알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 물러가서 쉬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풍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섰다.

그제야 진덕양이 적호경에게 물었다.

“저 녀석이 철이 든게 아니라 조금 아픈 것 아닙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전에 개망나니 시절에는 선 자리가 잡히면 입에 미인이냐는 말을 달고 살았던 백아입니다. 그런 놈이 갑자기 예쁜 여자를 원하지 않는다고요? 진짜 의원을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닌지…….”

적호경은 진덕양의 노골적인 말이 조금 거북한 표정을 지었어도 부정은 하지 않았다. 사실인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 상산현에서 미녀로 손꼽히는 조 대인의 손녀입니다. 그리고 무려 조 대인이란 말입니다. 대대로 지역 유지로 있어서 가진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그 조 대인이요. 여자는 예쁘고, 집안도 좋은데 안 만난다고요? 이게 정상적이면 할 수 있는 얘기입니까?”

“쯧…… 그럼 우리 백아가 비정상이라는 말인가?”

진덕양은 잔뜩 골이 난듯한 적호경의 대답에 얼른 헛기침을 하며 궁색하게 말했다.

“허험!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그만하게. 정작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점잖게 말하는 적호경의 모습에 진덕양은 묘한 눈으로 그를 흘겨봤다. 분명 풍백이 과거 선을 볼 때는 싫다는 풍백을 때려 가며 선을 보였던 적호경이었으니까.

“거 너무 티 나게 아들 편을 드는 것 아닙니까?”

“……아비가 아들 편드는 것이 잘못인가?”

“아까도 너무 칭찬을 하면 안 좋을 것 같다는 둥 하더니, 소금을 보고 냉큼 달려가서 안아 대는 걸 잘 봤었습니다. 형님도 팔불출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만…….”

“크흠! 그러면 일단 백아가 가져온 소금을 어떻게 할 건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적호경이 말을 돌리는 걸 보며 진덕양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렇지만 진덕양 역시 풍백이 보이는 모습에 대단히 기뻐하고 있는 건 같았다.

* * *

풍백이 적가상방으로 돌아왔다는 건 금세 상산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요즘 상산현에서 가장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 바로 풍백이었으니, 그가 적가상방으로 돌아온 것은 사람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적가상방이 곧 현판을 내릴 것이라는 말이 많았었는데, 그 위기를 한 방에 해결해 버린 사람이 바로 풍백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적가상방의 위기를 날려 버린 풍백이 엄청난 양의 소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또 다른 소문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백건상방이 가격으로 장난치는 것에 화가 난 적가상방이 소금을 가지고 반격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혹시 풍백이 이번에는 작은 염전의 소금 전매권을 얻어서, 그 소금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소수의 의견을 웃으며 무시했다.

대상방이나 가지고 간다는 소금 전매권을 상산현에서도 전전긍긍하는 적가상방이 손에 쥐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지 확실한 건 하나였다.

개망나니라 불렸던 풍백이 이제는 적가상방을 회생시킨 장본인이 되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인지 상산현에 혼기가 찬 여식을 데리고 있는 집에서는 점점 적가상방에 풍백과 선 자리를 넣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이미 풍백과 선 자리를 가졌다가 그 패악질을 맛보고 맨발도 도망쳤던 집안도 다시 선 자리를 슬금슬금 넣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이제 풍백이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 * *

“허허…… 쓸모도 없는 물소의 뿔을 왜 사들이는가 했더니, 그것이 소금 전매권이 되어 돌아왔군.”

조태명은 약간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관부와 돈독한 관계인 조태명이기에 아직 상산현 그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를 빨리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풍백이 소금 전매권을 얻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고 말이다.

“그것도 무려 화오염장을 말이지요.”

총관인 모심천이 말을 덧붙였다.

화오염장은 절강성에서 독보적으로 많은 소금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절강성 구석구석으로 흘러들고, 절강성 넘어 다른 성까지 판매가 될 것이다.

이 말은 곧 화오염장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양의 소금이 황금으로 변해서 적가상방으로 돌아온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중소 상방에 불과했던 적가상방이 대상방이 될 것이고, 꾸준히 상행을 하며 경험을 쌓아 왔기에 직접적으로 절강성 전역은 물론 인접한 성까지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절강성의 대상방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게 되겠어.”

조태명의 말에 모심천은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호초에 소금까지 손에 쥐고 있는 적가상방이 대상방이 될 수 없으려면, 적어도 적가상방의 상방주인 적호경이나 대소사를 관장하는 총관 진덕양이 무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태명이 봐 왔을 때에는 두 사람은 차고 넘치는 능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그들에게는 풍백이 있었다.

불과 일 년이라는 시간만에 적가상방을 대상방이 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기틀을 세운 사람이 바로 풍백이 아니던가.

호초를 구해 오고, 화오염장의 소금 전매권을 따 와서 적가상방만의 강력한 무기를 구해 왔고, 청송표국을 만들어 물품을 어디든지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이 녀석이 내 아들이었다면…… 나는 천하제일의 상방을 만들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고작 일 년 만에 이런 성과를 보인 풍백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조태명은 하나의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가상방에서 혼인을 거절했다고?”

“네. 적 공자가 아직은 혼인을 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조태명은 그 말을 듣고 실망보다는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정신을 차리긴 한 것 같군.”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상방 일에 재미를 붙였다는 말이야. 나 역시 상방 일에 재미가 들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지. 미래를 예측하고 상방 일을 진행하면서 그 예측이 맞아들면 어찌나 재미있던지……. 아마 그 녀석도 그럴 테지. 평생 개망나니라 욕만 먹다가, 주변에서 사람들이 온통 자신을 보며 열광한다고 생각해 봐.”

“음…… 잘은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아마 지금 그 녀석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더욱 풍백이 탐났다.

또한 어떻게든 혼인을 시킨다면 적어도 적가상방이 취급하는 호초와 소금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가상방이 강서성이나 안휘성으로 진출하라고 하고, 우리는 복건성이나 좀 멀어도 강소성으로 진출해 볼 수 있기도 하지.’

곰곰이 생각을 하던 조태명이 모심천에게 물었다.

“유하는 뭐하고 있나?”

“평소와 똑같습니다. 범혜사태(凡慧師太)와 거처에 머물고 있습니다.”

“적가상방과의 혼인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그냥 담담하게 듣기만 하더군요.”

그 말에 조태명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싫다고 한다면 몰라도, 별다른 말이 없으면 계속해서 진행해도 되겠군.’

조유하는 조태명에게 사랑스러운 손녀였다. 그렇기에 되도록 좋은 남자와 엮어 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확실히 풍백은 흠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얼마 전까지 개망나니로 이름이 높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는 순간부터 술도 먹지 않고,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조사를 해 보니 일꾼들에게 이전처럼 패악질을 부리는 일도 없어졌고,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존중을 보여 주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조유하의 상대로 부족함이 없을 듯싶었다. 물론 아직 확신이 없기에, 혼인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약혼까지만 해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백건상방 쪽은 어떤가? 그쪽도 슬슬 소문이 들어가고 있을 것 같네만.”

“덕분에 그쪽은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그래? 그건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군.”

조태명은 모심천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백건상방이 지금까지 벌인 일이 적가상방에게만 큰 손해를 발생하던 것은 아니었다. 의도했는지, 아니면 의도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금호상방 역시 그 피해를 크게 입고 있었다.

그러니 백건상방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은 금호상방에게 기쁜 소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백건상방은 금호상방에게도 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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