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102화
“이게 화오염장의 소금 전매권입니다.”
풍백은 적호경의 집무실에 들어와 앉자, 곧바로 품에서 전매권 두루마리를 꺼내 내밀었다. 적호경과 진덕양은 그것을 받아 펼치고는 차근차근 읽었다.
“진짜구나.”
“포정사의 직인이 확실합니다.”
두 사람은 잠시 멍하니 소금 전매권을 바라보기만 했다.
상인을 하면서 여러 가지 꿈을 꾸고는 한다.
단순히 부자가 된다거나, 아니면 대상인이 된다는 막연한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자세히, 예를 들면 곡물 상인이 된다거나, 약초로 큰돈을 번다는 구체적인 꿈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꿈을 꾸면 반드시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금 전매권을 가지고 있는 염상(鹽商)이었다. 그리고 호초를 판매하는 향신료 상인도 빠지지 않는 꿈 중 하나였다.
두 가지 모두 상인이라면 모두가 바라는 염원과 같은 꿈이지만, 이 중에서도 염상은 특별했다.
호초는 그 영향력이 크기는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영향력의 대상은 부자나 권력자 등에 한정된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호초의 냄새도 맡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염상은 아니다.
소금을 먹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돈이 많든지 적든지, 권력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든지 누구나 먹는 것이 바로 소금이다. 그렇기에 그 영향력은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염상이 될 수 있는 소금 전매권을 풍백이 들고 왔다. 심지어 작은 염전도 아니다. 절강성에서 가장 큰 염전이자, 중원 전체를 놓고 따져도 손가락에 꼽히는 화오염전의 소금 전매권이었다.
직접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진짜 소금 전매권인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후우…… 진정 좀 합시다. 이러다가 숨넘어가겠습니다.”
숨 쉬는 것도 잊고 있을 정도였기에 진덕양이 주위를 환기시켰다.
잠시 숨을 몰아쉰 진덕양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단 하나씩 얘기를 해 보도록 하자. 도지휘사에게 받아 온 계약서는 어떻게 된 것이냐? 대체 어떻게 도지휘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지? 절대 쉽게 만날 수 없는 위치의 사람인데 말이다.”
당장 이곳 상산현의 지주대인을 만나려고 하더라도 쉽게 만나지 못하는 적가상방이었다. 그런데 상방주도 아닌 풍백이 도지휘사를 쉽게 만났을 리는 없었다.
풍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제가 도지휘사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모두 서문세가 가주님께서 힘을 써 주셔서 간신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헉! 서문가주님도 직접 만났다는 말이더냐?”
말했듯이 절강성에서 서문세가의 영향력은 아주 대단했다.
“서문자건 가주님은 서문표 소가주님께 부탁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문가주님께 도지휘사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었지요. 그건…….”
풍백은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풍백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거짓말이 섞여 있었다.
먼저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얻은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미래를 경험하고 과거로 돌아왔기에 알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특히 포정사와 나눴던 이야기에서는 거짓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포정사와 뒷돈을 챙겨주기로 했던 협상 내용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무려 육 할이 넘는 수익을 넘겨줘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적호경과 진덕양이 알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포정사는 안찰사에게 고발당해 사라질 테니까.
“정말…… 믿기지가 않는 이야기구나. 네가 모아 왔던 물소의 뿔이 그런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니…….”
“솔직히 왜 물소의 뿔을 모으고 있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소금 전매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구나.”
적호경과 진덕양은 소금 전매권을 물소의 뿔을 건네준 것으로 거래를 하듯이 받아 오게 되었다고 알게 되었다.
화오염장에 대한 이야기도 그저 대략적으로만 얘기를 해 줬다. 무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숨기고 있는데, 암살에 대해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이야기였다.
아무튼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두 사람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감탄한 눈으로 풍백을 바라보기만 했다. 풍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든 일이 풍백의 행동에 맞춰서 아귀가 맞아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허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미래를 보고 있다고 오해를 했겠군.’
아마도 풍백이 들었다면 움찔했을 생각을 하고 있는 적호경이었다.
진덕양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속만 썩히기에 이걸 어떻게 사람으로 만들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네가 복덩이였구나!”
“그렇게 부르시니 엄청 낯뜨거운데요.”
“내가 부르지 않아도 소금 전매권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가면 누군가는 그렇게 부를 거다. 이제 누가 너를 개망나니라고 부르면 내게 말하거라. 아주 그냥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도록 혼꾸멍내 줄 테니까.”
진덕양은 껄껄 웃으며 풍백의 등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얼마나 기쁜지 손에 힘 조절도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일단 화오염장에서 일꾼들을 관리할 사람도 마련해야 하고, 소금을 관리해서 이곳으로 보내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할 얘기가 있습니다.”
“뭐든지 말해 보아라. 이제는 네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주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적호경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얼마 전에 자기 입으로 말했던 것은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제가 떠나오기 전에 지현대인과 어느 정도 얘기를 마쳤는데, 저희가 그곳에 점포를 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점포를?”
“이전까지 상산현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동해상방이 전매권을 잃고 나서 내분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황입니다. 그러니 현재 그곳은 완전한 무주공산(無主空山)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주공산이라는 말에 두 사람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의 지현대인이 저희가 직접 점포를 세운다면 적극적으로 뒤에서 받쳐 주겠다는 언질까지 받아 온 상태입니다.”
“오! 그래?”
“화오염장의 전매권을 가지고 있으니, 상산현에서 일하는 사람들 다수가 저희 적가상방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현대인이 적극적으로 받쳐 주기만 한다면…….”
“동쪽에 있는 상산현을 완전히 우리 적가상방의 터전으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이제는 두 사람의 눈이 반짝이는 수준이 아니라 번개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더 이상 풍백이 뭐라 단초(端初)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적호경과 진덕양은 상인으로서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벌써 머릿속으로 점포를 만드는 방법과 예산 등에 대해서 순식간에 계산을 하고 있었다.
‘백아의 말대로라면 이건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인데?’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가 않아. 그리고 화오염장에서 소금을 판매하면서 나온 수익을 바로 투자해도 되니, 은자를 다시 그곳으로 가져갈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기도 하겠군.’
두 사람의 생각은 화오염장이 있는 상산현을 중심으로 절강성 동쪽에 있는 현에 점차적으로 진출하는 그림과 남서쪽에 있는 적가상방을 중심으로 절강성의 서쪽의 현에 진출하는 그림을 그리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 적가상방은 호초와 소금이라는 천하무쌍의 보검 두 자루를 들고 있었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항주를 중심으로 해서 절강성 북부는 건들지 말도록 유도해야겠지? 그쪽은 앞으로 서문세가의 상권이 되어야 하니까.’
풍백은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며 생각했다.
현재 서문세가의 상권은 대부분 항주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향후 서문세가는 적어도 북부까지 상권을 넓히려고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리한 상권 확장을 시작하다가 영파상방에 일격을 맞고 항주에서 가지고 있던 상권과 영향력을 빼앗겼던 거니까.
영파상방과 손을 잡는 방법도 있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건 그들이 자신을 습격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새외에서 풍백은 바로 어제까지 서로 죽이려고 하던 사이였던 자와 손을 잡았던 일도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감수했던 것이 바로 풍백의 삶이었다.
그런데도 영파상방과 손을 잡는 걸 생각하지도 않는 이유는…….
‘그놈들은 뭔가 찜찜하단 말이야.’
서문표를 암습하려고 했던 일부터 풍백을 습격했던 영파상방의 염평까지, 일개 상방이라고 믿기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염평은 거의 절정을 넘보던 일류고수였지 않던가.
이런 찜찜한 구석이 있는 영파상방과 손을 잡느니, 차라리 지금까지 서로에게 호의적이고 도움이 되는 관계인 서문세가와 더욱 돈독한 관계를 가져가는 걸 선택하는 것이 맞았다.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은 서문세가와 충돌하기보다는 좋은 유대 관계를 갖기를 원하고 있었다. 또한 적가상방이 굳이 절강성에서만 활동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풍백이 경험했던 과거에서는 금호상방도 강서성 등으로 진출하여 대상방 수준까지 발전하는 걸 봤었다.
현재 적가상방은 과거 풍백이 봤던 금호상방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무려 호초와 소금마저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전에 백건상방하고 청해상방부터 치워야겠지만.’
이제 소금까지 손에 넣었기에 백건상방이 하는 것처럼 물품의 가격을 극단적으로 낮춰서 싸우는 것은 적가상방도 가능했다. 소금을 판매하며 나오는 막대한 돈이 그걸 가능하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이런 방법은 장기적으로 절대 좋을 것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상권을 장악하고 다시 가격을 올리게 된다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도 감당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풍백은 굳이 이런 식의 대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언제까지 돈을 쏟아붓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버티고만 있으면 알아서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해만 보면서 물건을 팔다가 망하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지금은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 이번에 돌아오는 적가상방 창립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드디어 그날이 돌아오고 있었다.
바로 적가상방이 멸문당하던 그날이.
풍백의 물음에 적호경이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직 백건상방이 장난을 치고 있는 상황인데…… 이번 해에도 그냥 조용히 지나가야 하겠지?”
작년 창립일에는 백건상방이 산적을 가지고 수작을 부리는 중이었기에 아무런 행사나 잔치를 벌이지도 않았었다.
풍백도 과거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청성무관과 협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하던 때였고 말이다.
풍백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크게 잔치를 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호하고 자신이 가득한 풍백의 말에 적호경과 진덕양은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풍백을 바라봤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도 상방주님과 같은 생각이다. 굳이 그런 식으로 잔치를 벌이는 것보다 나중에 일이 모두 해결된 다음에 더 성대하게 잔치를 벌이면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더 요란하게 잔치를 벌여 우리의 건재함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눈치를 봐야 합니까? 이제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백건상방과 청해상방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소금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벌이는 잔치는 선전 포고라고도 할 수 없고, 승리의 함성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풍백의 말에 두 사람은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소금이 갖는 위상은 그 정도였다. 그러니 풍백의 말처럼 승리의 함성이라 말하는 것도 과한 말은 아니었다.
‘하긴 우리가 숙이고 있을 필요는 없지.’
‘하도 우리가 백건상방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그저 본능적으로 조용히 있으려고 했던 것 같구나.’
사로 눈을 마주친 적호경과 진덕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면 이번 창립일에는 최대한 많은 손님들을 끌어 모아서 아주 성대하게 잔치를 벌이도록 하자!”
“훌륭하신 생각이십니다.”
풍백은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작이구나.’
이제 일 년 동안 뿌려 놓았던 씨앗을 거둬야 할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풍백이 만나고 친분을 쌓아 놨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마도 절강성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상인들까지 모두 몰려들 것이다.
화오염장에서 생산한 소금은 절강성에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전 중원으로 팔려나가게 된다.
그러니 기존에 동해상방과 거래하던 거래처는 물론이고, 소금이 필요한 상인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 몰려올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당연히 관부에서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다. 아니, 풍백이 도지휘사, 포정사와 거래를 한 걸 알게 된다면 지주대인이 직접 나타날 가능성도 봐야 했다.
‘절대로 적가상방이 멸문하는 일은 없을 거야.’
풍백이 눈빛을 빛내며 생각했다.
그런 풍백에게 적호경이 어색하게 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네게 혼처(婚處)가 들어왔는데…… 한번 만나 볼 생각은 있느냐?”
“네? 혼처요?”
이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였다.
워낙 개망나니로 소문난 풍백이고, 이전에 있던 선 자리에서 온갖 패악질을 부렸던 소문이 나서 아무도 적가상방에 혼인을 타진하는 사람이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워낙 나쁜 풍백의 평판을 바꿔 보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을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이 있었지만, 이제는 진짜 풍백이 완전히 달라졌고 온갖 놀라운 일들을 성사시키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그렇기에 슬금슬금 혼처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적호경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혼처가 하나 들어와 풍백에게 은근히 물어보는 중인 것이다.
“어디에서 혼처가 들어왔습니까?”
풍백의 물음에 적호경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금호상방주 조 대인에게서 들어왔다.
“조태명 상방주요?”
금호상방주인 조태명에게서 혼처가 들어왔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분 딸은 이미 혼인도 했고, 나이도 거의 사십이 다 되어 가는 걸로 아는데요.”
“딸이 아니라 손녀다.”
“손녀라면…… 조유하 소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미 누군지 알고 있는 듯한 풍백의 물음에 적호경의 얼굴이 조금 편해지며 대답했다.
“그래, 맞다. 어떠냐? 한번 만나 볼 생각이 있느냐?”
풍백은 쉽게 대답을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은 조유하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었다.
‘미래의 검후(劍后)와 혼인을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