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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100화 (10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100화

아침이 밝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상산현 전체가 난리도 아니었다.

동해상방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누구도 믿지 못했었다.

“에이…… 거짓말을 해도 좀 말이 되는 거짓말로 해라.”

“속아 주고 싶어도 어느 정도 가당한 얘기를 해야 속아주지?”

“야! 바로 그저께까지만 하더라도 총관이랑 부상방주가 멀쩡히 돌아다니던 걸 내가 봤는데?”

그렇게 믿지 못하던 사람들은 오전 동안 동해상방에서 들려 나오는 무사들의 시체들을 보고 가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심지어 동해상방주인 여만경마저 시체가 된 모습으로 들려 나오는데 믿지 못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당혹감에 뭐라 말도 못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곧 진짜 동해상방이 무너졌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돌아다녔다.

“망할 놈의 동해상방이 망했다!”

“으하하하! 진짜 동해상방이 망했어!”

“잘 죽었다! 개놈의 자식들! 잘 죽었어!”

누구 하나 동해상방이 무너졌다는 것에 절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동해상방이 은연중에 끼치던 암수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화오염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조합을 만들도록 해서 제대로 임금도 주지 않고 손끝으로 부리던 동해상방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소금을 팔면서 나온 막대한 돈으로 기루와 주점 등을 사들였는데, 그 모든 것을 사면서 제대로 된 가격을 치르지도 않았다.

또한 무사들과 수하들이 이곳 상산현에서 벌이던 패악질이 얼마나 심한지 치를 떨 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니던 동해상방이었지만, 그 누구도 동해상방을 욕하지 못했다.

흑도패였을 때부터 끌고 다니던 수하들이 있었고, 막대한 돈으로 무사들을 끌어들여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간혹 동해상방의 행태를 꾸짖던 명사들이 온갖 수모를 당하거나, 심지어 행방불명이 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었다.

이런 동해상방을 성토하는 사람들이 지현대인에게 탄원을 했었다.

그러나 지현대인 역시 방법이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동해상방의 뒤에 포정사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지현대인이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는가?

그렇게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다녔던 동해상방이 무너졌으니 싫어할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후가 됐을 때는 몇 가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진짜 누가 동해상방을 무너뜨린 거야? 뭐 들은 거 있어?”

“나야 모르지.”

그러자 한 사내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내가 들은 얘기가 있는데…….”

“무슨 얘기?”

“현청에서 나온 얘긴데…… 다들 동해상방의 개자식들이 서로 내분이 일어났다는 건 알고 있지?”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렇지. 길바닥에서 그렇게 서로 칼질을 해 대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그런데 내분은 멈췄던 거 아니었어?”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었대. 사실 몰래 저들끼리 계속 싸우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싸우고도 모자라서 계속 싸우고 있었다고?”

“미친놈들이네.”

“그렇지. 아무튼 그래서 개자식 여만경이랑 부상방주만 남았는데, 어젯밤에 서로 가슴에 다정하게 칼을 박고 죽었다고 하더라고.”

“아니, 무사들은 어쩌고?”

“무사들도 서로 싸우다가 다 죽었나 봐. 그리고 둘만 남으니까 서로 칼을 박은 거지.”

“잘됐다! 천벌을 받은 거야!”

뭔가 어설픈 이야기.

그러나 누구 하나 이것에 트집을 잡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유로 동해상방이 무너지고 여만경 등이 죽었는지 알게 뭔가? 중요한 건 이놈들이 모두 죽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 * *

“일 처리가 모두 끝난 겁니까?”

“허허! 적 공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끝났소. 동해상방의 평판이 워낙 나빠서 굳이 여론의 방향을 움직일 필요도 없었소.”

지현대인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동해상방이 벌이는 일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지현대인이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속을 엉망으로 만들던 동해상방이 이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일이 제대로 풀리는 건가 싶었는데, 결국 적 공자가 말했던 대로 잘 끝나 버렸군.’

처음 풍백이 찾아와 동해상방을 정리할 생각이라 하기에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그러면서 도움은 필요 없으니, 동해상방에서 자신에게 어떻게 나오더라도 딱히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했었다.

그래서 이후 동해상방이 풍백을 객잔에 감금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묵인하고 있었다. 그가 나선 것은 그저 동해상방의 내분이 대낮에도 일어나 일반 시민들까지 피해를 입는 걸 막아선 것뿐이었다.

처음 동해상방의 내분 때문에 칼부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던 지현대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이 다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태연하게 차를 마시는 풍백을 보는 지현대인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동해상방의 내분부터 암살 의혹 등은 아마도 포정사가 보내 준 고수가 벌인 일이라 생각하는 지현대인이었다.

‘포정사가 직접 고수까지 붙여 줄 정도라니, 이자는 확실히 내 뒤를 밀어줄 그런 사람이다!’

이런 오해를 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는 지현대인이었다.

이런 지현대인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풍백은 태연히 차를 마시다가 물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화오염전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좋아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네. 아무래도 적가상방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는 거겠지.”

동해상방이 없어졌으니 이제 화오염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앞으로 적가상방의 밑에서 일을 해야 했다. 소금에 대한 전매권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월봉을 받았던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정말 적가상방은 제대로 월봉을 지급할 생각인가?”

이미 풍백에게서 일꾼들에게 제대로 월봉을 지급할 생각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지현대인이었다.

풍백은 그런 지현대인에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요. 일을 했으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

“적가상방은 지금까지 일꾼들에게 제대로 월봉을 지급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일꾼들의 월봉을 착복하다가 상방주이신 아버님에게 들키면 엄청나게 혼나고 쫓겨날지도 모릅니다.”

풍백의 말이 정말인지, 아니면 관리의 앞이라 입조심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만 이 자리에서는 당연히 추켜세워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이 확실했다.

“허허허! 적 공자 아버님이 참 대단하신 분인 모양이군.”

“대단하시지요. 그러니 더욱 월봉을 제대로 치러야 하는 겁니다.”

동해상방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화오염장을 관리하던 상방들 중에서 일꾼들에게 제대로 월봉을 보장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기에 쉽게 믿기 어려웠다.

지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일꾼들에게 제대로 월봉이 치러지는 것은 아주 반길 만한 일이었다.

어떤 곳이든지 지역이 활성화가 되려면 그만큼 돈이 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이곳 상산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원들이 바로 화오염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하니, 상산현 전체에 제대로 돈이 흐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앞으로 적가상방이 월봉을 제대로 지급한다면, 지금까지 낙후되어 있던 이곳 상산현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정말 상산현이 큰 변화를 겪게 된다면 그 수혜는 아마 지현대인이 가장 크게 받을지도 몰랐다.

절강성에서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낙후된 상산현이었다. 그런 상산현을 보란 듯이 활성화시킨다면, 당연히 지현대인의 공로 역시 고평가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려면 월봉이 제대로 지급해 줘야 하는데…….’

과연 적가상방이 말한 것을 지킬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지현대인은 이런 속마음을 숨기고 다른 말을 꺼냈다.

“동해상방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엄청난 재산이 나올 것 같소. 워낙 그동안 쌓아 놓은 재산이 많아서 혹시라도 중간에 착복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은자 하나 허투루 흘러나가는 일이 없도록 내가 직접 관리를 하고 있는 중이요.”

보통 연고가 없는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되면 그들의 재산은 해당 지역 현청에서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정리한 재산은 현청에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상부로 넘기게 된다.

동해상방처럼 막대한 재산을 정리하는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중간에서 거금을 착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마도 풍백이 없었다면 지현대인은 거금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동해상방이 무너진 것은 모두 풍백의 계획이었다. 또한 풍백의 뒤에는 포정사가 버티고 있다고 믿고 있는 지현대인이었다. 그러니 지현대인은 동해상방의 재산에 손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풍백은 그런 지현대인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법도에 따라 처리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풍백의 대답이 의외였던 것 같았다. 당연히 풍백이 한몫 단단히 챙길 거라고 예상을 했었던 지현대인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소?”

“그럼요. 저희 재산도 아닌데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지요.”

풍백 역시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로 이런 돈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찰사는 포정사를 찍어 내고, 포정사와 손을 잡거나 거래를 한 절강성의 관리와 지역 유지를 작살내고 다닐 것이다.

지금까지 포정사와 엮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여기서 동해상방의 재산에 돈을 대면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아버지가 제형안찰사사에 끌려가도록 할 수는 없지.’

그런데 지현대인은 이런 풍백의 말과 행동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건 나도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경고겠지?’

이미 포정사의 수족이라 생각하고 있는 풍백이었다. 이런 풍백마저 동해상방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데, 어떻게든 윗선과 연을 만들려고 하는 지현대인이 감히 손을 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지현대인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풍백은 그런 지현대인을 슬쩍 보면서 생각했다.

‘흐음……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운이 좋은 건지…….’

대충 눈치를 보니 지현대인 역시 동해상방의 재산에 손을 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다가 안찰사의 철퇴를 피하게 된다면…… 그때는 좀 구슬려 볼까?’

지현대인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더 높은 자리로 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풍백의 기억에 지현대인의 이름은 없었으니, 계속 이곳 상산현의 지현대인으로 있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더라도 요직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컸다.

앞으로 포정사가 안찰사에게 찍혀 나가게 된다면, 아무래도 지현대인과는 꽤 긴밀한 사이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주 고위관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 상산현에서는 왕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봤던 지현대인의 성향을 보면, 아마도 적당히 챙겨 주기만 해도 충분히 적가상방의 편에 설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풍백에게 지현대인이 물었다.

“또 필요한 것은 없소?”

“적가상방으로 돌아가면서 창고에 있는 소금을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 보시다시피 제가 호위무사 하나만 데리고 온 터라 도움이 조금 필요합니다.”

풍백의 말에 지현대인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구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특별히 이번에는 병사들을 동원해서 호위를 하도록 명령을 내릴 테니 말이오.”

“그렇게 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허허허! 뭘 이 정도 가지고. 이제 앞으로 계속 돈독한 관계를 가져가야 할 사이인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소이다.”

부드럽게 생색을 내는 지현대인의 말에 풍백은 슬쩍 미소를 보였다.

여만경이 서찰을 들려 포정사에게 보냈던 수하도 고우길이 잡아 왔으니 상산현에서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럼…… 이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생각보다 너무 오래 집을 떠나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일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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