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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97화 (9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97화

동해상방 부상방주는 어제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사행수와 칠행수가 시신으로 발견되고, 그 이후 그들의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움직이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자신은 사행수의 세력을 무사히 흡수할 수 있었지만, 칠행수의 세력은 여만경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사태에 총관이 분노하여 길길이 날뛰었지만, 정작 이 사태를 지켜본 부상방주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총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총관은 생각이 짧고 기분파며 주변을 제대로 돌볼 줄 몰랐다. 그렇기에 칠행수를 자신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거의 성사 직전의 단계까지 간 것이다.

그런데 칠행수의 세력이 오히려 여만경에게 붙었다는 말은 총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것은 단순히 칠행수만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던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총관은 칠행수의 세력이 여만경에게 붙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보다는 창피해했어야 정상이었다. 오죽하면 자신들의 수장을 죽였다고 의심이 되는 여만경에게 붙었겠는가?

아무튼 결국 칠행수의 세력을 여만경에게 빼앗겼으니, 실질적으로 여만경의 세력은 더욱 강해진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반대로 총관은 더욱 약화되었고 말이다.

총관은 그래도 눈치라도 있는 것인지, 자신의 처지가 이제 달라졌다는 걸 깨닫고 부상방주에게 손을 내밀고 들어왔다.

부상방주는 총관의 손을 잡아 줬다.

비록 총관이 미덥지는 못해도, 향후 여만경과 싸워야 할 상황을 고려한다면 총관과 손을 잡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총관과 손을 잡는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협의를 이어 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늦잠을 자려고 했던 부상방주였는데, 무언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으음……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지.’

창밖을 보니 아직 달이 떠 있었다. 부상방주가 잠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말과 같았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부상방주가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것인가?”

그 외침에 곧 황망한 감정이 듬뿍 담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상방주님! 지금…… 지금 이곳에…….”

“이곳에 뭐가 어떻다는 건지 말을 해!”

“이, 이곳에 일행수(一行首)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뭐라고!”

한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부상방주는 여전히 침의(寢衣)를 입은 상태로 문을 벌컥 열며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일행수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니!”

“지, 진짭니다. 이쪽으로…….”

수하를 따라 이동하자 곧 일행수의 시신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행수의 시신은 부상방주의 집 정문 앞에 있었는데, 소금 무더기에 묻혀 있는 모양새였다.

말했듯이 시신을 소금에 담그는 것은 여만경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그리고 시신을 이렇게 부상방주 집 앞에 놔뒀다는 말은 대놓고 협박을 하는 것이다.

“시신을 이곳에 놔두는 걸 본 사람은 있는 것이냐?”

“죄송하지만 목격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내 집 앞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행수의 시신을 이런 꼴로 놔뒀는데 목격자가 없어? 경비를 서는 놈들은 다 뭐하고 있었다는 말이냐!”

“죄, 죄송합니다…….”

으드득!

이를 갈은 부상방주가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여만경의 거처가 있는 방향을 노려봤다.

‘좋아,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싸워 주지. 네놈이 쪽수는 더 많더라도 싸움이 머릿수로만 하는 건 아니야!’

* * *

다음 날부터 시작된 동해상방의 내분 소식은 상산현 전체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방이라면 적어도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행여나 힘으로 싸우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동해상방의 싸움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이들은 상인의 탈을 쓰고 있었으면서도 마치 흑도패 싸움처럼, 길에서 만나면 칼부터 휘두르고 있었다. 너무나 전형적인 흑도패의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황당할 뿐이었다. 뒷골목에서나 벌어져야 할 칼부림이 대낮에 길바닥에서 벌어지는 꼴이었으니까.

상황이 이렇게 흘러나가 상산현을 지배하는 지현대인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현대인은 포두와 포쾌 등을 총동원하고, 심지어 관부에서 데리고 있던 병사까지 출동시켜 길에서 싸움을 벌이는 동해상방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이게 만들었다.

그러자 눈치가 보인 동해상방에서 더 이상은 대낮에 대로에서 칼부림을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하나 그 대신 야밤이 되면 서로의 거처에 수하들을 떼로 보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는 과정에서 동해상방 중역들이 차례대로 하나씩 죽어 가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상황은 충분히 중역들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상방주의 무사와 수하들이 여만경와 손을 잡은 중역 중 하나인 이행수의 거처를 습격하고, 그날 이행수는 목숨을 잃게 된다.

이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여만경이 무사들을 보내 부상방주와 손을 잡은 삼행수(三行首)의 거처를 습격했고, 삼행수 역시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누가 마지막으로 이행수와 삼행수의 목숨을 끊었는지, 나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소였다면 너무나 이상한 상황이라 생각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적이 어떻게 죽었는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이러다가 간신히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싸움을 중단했을 때는 동해상방에 중역이 고작 세 명이 남았을 때였다.

* * *

동해상방주인 여만경과 부상방주, 그리고 총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상황에서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당장 눈빛이 흉기로 변한다면 서로를 난자할 그런 흉악한 눈빛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벌한 건 당연했다. 바로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죽이겠다며 습격을 하고 칼부림을 하던 사이였으니까.

공기마저 무거운 회의실에서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여만경이었다.

“……모두 이렇게 모인 것을 보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우린 아직 당신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았소.”

“이 자리마저도 수작을 부린 거라면, 오늘 이곳에서 모든 일이 끝나는 거야.”

냉철하게 대답하는 부상방주와 달리 총관은 눈마저 충혈된 상태로 으르렁거렸다. 아무래도 이 자리 자체를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여만경은 그런 총관의 말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의구심이 생기지 않았다면 싸움을 중단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가지지 않았을 테니까.

현재 여만경은 부상방주와 총관보다 더 많은 무사와 수하를 데리고 있었다. 그러니 정면으로 충돌을 한다면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굳이 싸움을 중단하고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이 자리를 만든 건 행수들이 너무 이상하게 죽어 나가는 것 때문이다. 그건 너희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맞소.”

“내가 먼저 얘기를 하자면, 나는 이 싸움을 시작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사행수와 칠행수를 죽인 것도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소리!”

총관이 대뜸 욕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만경에게 삿대질을 했다.

“네가 죽였잖아! 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왜 칠행수의 패거리를 네놈이 데리고 갔지? 그것만 보더라도 네가 죽인 게 확실해!”

“당시에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했어도 믿었겠나? 나를 욕하고 죽이려고 했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믿어 달라고 너희에게 간청하거나, 아니면 어차피 오해를 받을 일이니 조금이라도 내 세력을 늘리는 것뿐이었어.”

“조잡한 변명이 가관이다! 네가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 거라고?”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여만경과 총관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와중에 부상방주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일행수도 방주가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오?”

“얘기는 들었지. 시신이 너희 집 앞에 있었다고 하더군. 내가 죽였다면 절대 그렇게 대놓고 놔두지 않았을 거야. 당장 정면으로 싸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빤한데,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런 짓을 벌일 리가 없잖아.”

“음…….”

“그리고 너희 삼행수를 죽였다는 무사나 수하를 찾지 못했다. 아무도 죽였다는 사람이 없었어. 너희는 이행수를 죽인 놈을 찾았나?”

그 물음에 부상방주와 총관이 잠시 시선을 나눴다. 그리고 총관은 못마땅한 얼굴로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돌렸고, 부상방주가 대답을 했다.

“못 찾았소.”

“그렇겠지. 그러니 이 자리에 나온 것 아닌가.”

“그러면…… 정말 우리가 서로 내분이 일어나게 만들고, 싸우는 와중에 행수들을 암살한 놈이 있다는 말이오?”

“그럴지도 모르지. 확실한 건, 만약 그런 수작을 부린 놈이 외부에 있지 않다면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 중 하나일 거라는 사실이야.”

그 말에 총관이 또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흥! 이제는 우리 사이에 내분을 내고 싶은 건가?”

“너희 사이를 갈라 놓고 싶었다면 굳이 내가 이렇게 너희를 불러서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가만히 놔뒀어도 너희는 알아서 싸웠을걸?”

“뭐라고?”

“아니라고? 과연 내가 죽으면 너희가 계속 손을 잡고 동해상방을 이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당장 처음에는 그럴 수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날걸. 이미 나를 찍어 낼 생각을 했던 놈들인데 서로를 믿고 함께 동해상방을 이끈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지.”

“이 개 같은…….”

총관이 다시 욕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부상방주가 그런 총관의 팔을 진정하라는 듯이 잡았다.

“그러면 외부의 누군가라면 의심하는 사람이라도 있소?”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적어도 이곳 상산현에서 우리 동해상방을 밀어낼 생각이라면 한 번 이라도 모습을 보였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

“그게 누구요?”

“지현대인.”

그 말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듯이 부상방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현대인이?”

“우리가 없어지고, 동해상방이 해체된 다음에 적가상방의 애송이 놈을 지현대인이 손아귀에 넣는다면…… 여러 모로 쓸모가 많아질 것 같아서 말이야.”

“흠…… 그렇겠군. 포정사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아니라면 적가상방 애송이를 휘둘러서 중간에 이것저것 챙길 것도 많을 테니까.”

“그것만이 아니지. 어쩌면…… 포정사가 지현대인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을 내뱉은 여만경부터 듣고 있던 부상방주와 총관까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만약 그렇다면 가장 최악의 사태라고 할 수 있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해.”

“하오문에 조사 의뢰는 했소?”

“이 판국에? 내가 하오문을 찾아갔으면 아마 끝을 볼 작정으로 달려들었겠지.”

부정할 수 없었다. 여만경이 하오문을 찾아가는 이유가 낭인무사를 추가적으로 고용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면 일단 하오문에 먼저 조사 의뢰를 하도록 합시다.”

“모두 동의를 하는 것 같으니 당장 조사 의뢰를 하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 외부에 다른 놈들이 우리를 노리는 것이 맞아?”

총관은 여전히 여만경이 의심스러운 것 같았다. 그런 총관을 보며 여만경이 짜증스럽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렇게 의심이 된다면 다 집어치우고 다 죽을 때까지 계속해 보던가.”

“이상하니까 그렇지. 정말 외부의 누군가가 우리는 노리는 거라면, 적어도 이 시점에는 우리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암살을 시작한 것은 내분이 일어나, 수월하게 의심받지 않고 암살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자고. 그런데 우리는 싸움을 멈췄어. 그러니 무언가 다른 수작을 부리거나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총관이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수하 하나가 달려와 회의실을 향해 말했다.

“상방주님!”

아무도 부르기 전까지 들어오거나 찾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동해상방 사람 중에 지금 이곳 회의실에서 중요한 회의를 하는 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은 사안이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무슨 일인가?”

“아이 하나가 서찰(書札)을 가지고 왔는데…… 어젯밤에 흑의를 입고 복면을 쓴 남자가 상방주님께 가져다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흑의를 입은 남자라는 말에 세 사람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야밤에 흑의를 입고 복면을 썼다면 누가 들어도 수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가져와.”

허락이 떨어지자 수하가 들어와 여만경에게 손에 들고 있던 서찰을 건네줬다.

봉투를 열고 서찰을 꺼낸 여만경이 내용을 읽으며 인상을 썼다.

“무슨 내용이오?”

“같이 좀 봅시다!”

여만경은 들고 있던 서찰을 두 사람에게 넘겼다.

서찰에 담긴 내용은 간단했다.

- 살고 싶다면 동해상방의 모든 권리를 적가상방의 적풍백에게 넘기고 상산현을 떠나라. 그러면 적어도 수레 하나 정도의 재물을 들고 갈 수 있게 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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