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가상방 개망나니-92화 (92/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92화

동부에 있는 상산현은 절강성에 화오염장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것과 달리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어쩌면 풍백이 다녀본 절강성에 있는 현 중에서 가장 작은 것 같기도 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잔에서 나온 풍백은 곧장 상산현 현청(縣廳)으로 향했다. 현청은 현의 정사(政事)를 보는 곳으로, 거의 모든 행정적인 일은 모두 현청에서 보게 된다.

이곳의 현청 역시 적가상방이 있는 상산현에 비하면 아기자기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현청 안으로 들어가자 중년의 사내가 작은 탁자에 지필묵을 앞두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현청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일로 방문한다. 그래서 이렇게 방문한 사람들이 어떤 업무를 보려고 온 것인지 확인하는 관리가 있었다.

보통 현청에서 일하는 관리 중에는 지금 풍백 앞에 앉아 있는 사내처럼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모두 통틀어 전사(典史)라고 칭했다.

전사는 품급이 없는 관리이기에 실질적으로 아무런 권한이 없지만, 현청에서 어떤 일이든지 원활하게 끝마치려면 전사에게 잘 보이는 것이 좋았다.

전사에게 잘못 보이게 되면 관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엉뚱한 곳으로 보내서 한참을 헤매다가 오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 보여야 한다는 건 당연하게도 약간의 뇌물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 현청 입구에 앉아 있는 관리 역시 꽤 권위적인 얼굴로 앉아서 풍백이 다가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아주 영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거 제법 돈 냄새 나게 생겼는데?’

입고 있는 옷도 비단으로 만들어 제법 부자인 것 같은데, 그 뒤로 시중을 드는 것 같은 시비와 무사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심지어 시비는 면사를 쓰고 있어도 헉 소리가 나도록 아름다운 눈매와 신비로운 초록빛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평소 사람들이 그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내미는 것은 보통 철전 몇 개였다. 그러나 입고 있는 옷과 시비 등을 고려하면 은자까지도 노려 볼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속내를 숨기고 기다리고 있던 관리의 앞에 멈춰 선 풍백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현대인 좀 만나 뵙고 싶습니다.”

지현대인은 흔히 사람들은 현령(縣令)이라 부르는, 이곳 상산현에서 가장 높은 관직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지현대인을 찾는 풍백의 모습에 감히 수작을 부릴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괜히 뇌물을 요구하다 목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혹시…… 약조(約條)를 하신 겁니까?”

풍백은 품에서 고급스러운 두루마리를 꺼내서 내밀었다.

“읽어 보시지요.”

미심쩍은 얼굴로 두루마리를 받은 관리가 두루마리를 펼쳐 내용을 읽어 보더니 눈이 점점 커지더니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헉! 이, 이건…….”

“이제 지현대인을 좀 만나 뵐 수 있는 겁니까?”

“바, 바로 따라오십시오!”

풍백을 이끌고 지현대인의 집무실로 가는 관리는 눈동자가 극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매권이었다! 분명 화오염장의 전매권이었어!’

분명 그가 알기로 화오염장의 전매권은 동해상방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전 전매권의 효력을 무효하고, 새로운 전매권을 발부한다는 내용을 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동해상방은 이 작은 상산현에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매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말은 곧 상산현에 평지풍파(平地風波)가 일어난다는 말과 같았다.

관리는 눈을 반짝였다.

‘평지풍파고 나발이고 일단 이 정보를 빨리 알리면…… 짭짤하게 받을 수 있겠지?’

관리에게 화오염장의 전매권이 누구에게 넘어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머니로 몇 푼이라도 더 들어오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지현대인과 독대를 하며 화오염장의 전매권을 자신이 갖게 되었다는 것과 적가상방이 어떤 곳인지, 앞으로 화오염장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담소를 나누듯이 이야기했다.

풍백과 대화를 하는 지현대인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치 자신보다 품계가 높은 관리를 만난 것처럼 풍백의 말에 맞장구쳐 주고 비위를 맞춰 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지현대인이라고 하더라도 조그만 상산현의 지현대인과 어지간한 주(洲)에 비교할 정도로 거대한 현의 지현대인은 그 처지가 완전히 달랐다.

이렇게 작은 상산현의 지현대인이라는 말은 곧 뒷배가 되거나 그를 더 위로 끌어올려 줄 연줄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니 포정사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를 들고 온 풍백에게 간이라도 빼어 줄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나중에 풍백에 대해 더 조사를 하고 나면 아예 풍백을 보고 절을 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지금 풍백의 뒤에는 포정사뿐만 아니라 도지휘사 역시 서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현대인과 독대를 마치고 현청을 나온 풍백이 제일 처음 말한 것은 문약란이나 고우길의 예상과 달랐다.

“그럼 이제 슬슬 어제 얘기했던 것처럼 바다를 좀 보고, 근처 전망 좋은 곳에서 식사라도 하자. 바다에 가서 구경 조금 하면 슬슬 점심시간일 거야.”

풍백의 말에 어제 기억을 떠올린 문약란이 살짝 볼이 상기됐지만, 면사로 가려져 그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문약란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렇게 구경을 다닐 시간이 있는 건가요? 시간이 없는데 괜히…… 저 때문에 시간을 내시는 건 아닌지…….”

풍백이 자신을 배려해 주는 건 너무 기분이 좋고 기뻤다. 하지만 현재 적가상방이 힘든 이유가 바로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문약란은 이런 배려를 편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문약란의 말에 풍백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당연히 시간은 아주 많으니까.”

“그…… 래요? 저는 도련님이 바로 동해상방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동해상방? 굳이 내가 먼저 찾아갈 필요가 없어. 어차피 그쪽에서 준비가 되면 알아서 나를 모시러 올 거야.”

“네? 모시러…… 요?”

무슨 말인가 싶은 얼굴로 바라보는 문약란에게 풍백이 씨익 웃었다.

“내가 오늘 왜 현청에 왔었을 것 같아?”

“어…… 소금 전매권을 가지고 있다고 알리려고…….”

“그걸 왜 보고까지 해? 어차피 이대로 놔두면 끽해야 지현대인으로 있다가 끝날 관리를 상대로. 어차피 포정사가 직접적인 전매권을 나에게 내렸어. 목숨이 두 개가 아닌 이상 깽판도 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런가요?”

“그럼! 지현대인 역시 이런 걸 알아. 아마 이전 동해상방에서는 오히려 지현대인에게 인사도 한 번 안 했을걸. 감히 자신들에게 손을 못 댄다고 알고 있을 테니까. 오히려 난동이나 부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아…….”

“내가 현청을 찾아온 이유는 하나야.”

“그게 뭔데요?”

“소문.”

“아! 그럼 도련님은 전매권이 도련님께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하려고 일부러 현청을 찾아왔다는 말이군요?”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이후 설명할 것도 없이 모두 이해해 버리는 문약란이 기특했다. 아마 왕삼을 상대로 말하고 있었다면 눈만 끔뻑거리며 계속 말해 보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풍백이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치가 빠르네.”

그 손길에 문약란의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사실 풍백은 문약란을 아직까지 여자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귀여운 여동생을 대하듯이 저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풍백의 나이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말하자면, 풍백과 문약란은 고작 대여섯 살 정도밖에 차이가 날 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떠올린 풍백은 곧 손을 거뒀다. 진짜 혈육도 아니었으니, 문약란이 귀엽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그리 좋을 것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문약란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풍백은 벌써 고개를 돌려 걸어가며 말을 이어 갔다.

“아마 내게 전매권이 있다는 사실이 곧 동해상방에 들어갈 거야. 그러면 동해상방에서 대책을 세운다 어쩐다 난리가 나겠지.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나를 부를 것이고. 재수가 없다면 딱히 의견 취합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부르겠지.”

아직 남아 있는 풍백의 손길을 떠올리며 문약란이 물었다.

“굳이 그렇게 해야 될 이유가 있는 건가요? 어차피 전매권을 도련님이 가지고 있으니, 그냥 가서 얘기하면 끝날 것 같은데요.”

“아마 다른 곳이었다면 그래도 상관없겠지. 그런데 여긴 좀 복잡해. 뭐가 좀 꼬여 있어서 내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는 좀 귀찮아.”

“귀찮아요?”

“그럼! 많이 귀찮지.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면 동해상방에 상방주는 하나지만,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만 무려 아홉 명이나 되거든. 그 사람들을 어떻게 다 쫓아다니면서 얘기하고 있겠어?”

“아홉 명이요? 그럼…… 동해상방 주인이 모두 열 명이라는 거예요?”

깜짝 놀라는 문약란의 모습에 풍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놀랄 필요 없어. 생각보다 이런 구조로 굴러가는 상방은 많거든.”

“아…… 그렇군요.”

“아무튼 우리는 오늘 바다 구경이나 나갔다가, 맛있는 밥이나 먹고 쉬고 있으면 돼. 적당한 때가 되면 연락이 올 테니까.”

* * *

“전매권이라니? 전매권이라니! 어떤 개잡종이 감히 동해상방의 화오염장 전매권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야!”

동해상방주 여만경의 고함이 동해상방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상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덩치가 산만 한 여만경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어지간한 사람은 오금이 저리도록 만들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마침 긴급 사안이라며 보고를 한 사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덜덜 떨며 대답했다.

“아, 아직 정확하게 파…… 파악을 하지 못했습니다. 방금 들어온 급한 소식이라 서둘러 보고를 먼저…….”

“야! 이 개새끼야! 이름도 모르고, 어째서 우리 동해상방이 가지고 있던 전매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면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거야! 여기서 신세 한탄이라도 하면서 술이나 처먹을까? 씨발! 안주로 네놈을 씹어 먹어 줄까?”

“헉! 아닙니다! 바로 확인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내는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갔다.

혼자 남은 여만경은 씩씩거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포정사, 이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새끼……. 이렇게 우리 뒤통수를 후려쳐?’

슬슬 재계약을 해야 할 시기이기는 했다. 아마도 포정사가 갑자기 자신에게 배당되는 금액을 이 할로 높여 달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이미 계약을 했을지도 몰랐다.

단순히 이 할이라고 하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이전에 받던 금액이 일 할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무려 두 배로 배당을 높여 달라는 말이지 않은가.

가뜩이나 동해상방에는 한 다리 걸친 놈들이 많아서 정작 자신조차 순이익의 일 할을 채 못 가져가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만경이 무작정 포정사의 의사를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줄다리기를 하다가 대략 삼사 푼 정도 더 배당을 해 줄 생각은 했었다는 말이다.

그것만 하더라도 여만경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수당을 줄여야 하는지 안다면 적다고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매권을 팔아 버리다니…….

여만경은 지금 귀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올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눈 뜨고 전매권을 빼앗길 수 없는 일이다.

실질적으로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하더라도 포정사에게 일개 상방주인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매권을 가지고 있다는 놈은 다르지.’

아무리 전매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손에 소금이 쥐어지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적어도 지금 전매권을 가지고 있는 놈은 소금을 생산하지 못한 죄로 전매권을 박탈당할 것이고, 포정사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에게 다시 전매권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예, 있습니다!”

여만경은 집무실로 들어온 사내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부상방주를 비롯하여 상방의 중역들에게 모두 모이라고 해.”

“어떤 일로 모이는 거라 전할까요?”

“동해상방이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전해라.”

“헉! 아, 알겠습니다!”

사내는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전매권을 팔았다고 해서 화오염장이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아? 우리 허락이 없으면, 이곳에서 소금 한 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야지!’

여만경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