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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91화 (91/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91화

요즘 곽자억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눈엣가시 같았던 적가상방을 드디어 현판을 내릴 정도로 만드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가소롭게만 여겼던 적가상방을 무너뜨리는 일이 이토록 오래 걸리고, 심지어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해 청해상방의 도움을 받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탓에 곽자억은 미칠 것만 같았었는데,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적가상방과 손을 잡았던 청송표국까지 점차 상황이 힘들어지자, 그의 입꼬리는 더더욱 올라갔다.

청송표국은 상산현에서 개국한 이후, 아주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을 받았었다. 이렇게 큰 문제 없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적가상방이 일감을 몰아줬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적가상방이 실질적으로 상행을 하나도 못하게 되자, 일감이 줄어들은 청송표국 역시 요즘 적자를 걱정한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안정적으로 수익에 연결되는 상방과의 계약을 적가상방하고만 맺은 것이, 현 상황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실착이라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송표국이 망하면 적당한 가격에 인수를 하든지, 아니면 쓸 만한 고수만 고용하든지 하면 되겠어.’

물론 백건상방에서 직접 표국을 운영하거나 고용한 고수를 상방 무사로 쓸 생각은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사돈을 맺고 있는 풍운표국을 위한 것이었다.

사돈인 백건상방을 위해 큰 고객 중 하나였던 적가상방을 등졌던 풍운표국이었다.

그런데 정작 망할 거라 예상했던 적가상방이 다시 살아나고, 뒤이어 강력한 경쟁자인 청송표국이 자리를 잡는 것을 보니 귀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화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 때문에 풍운표국주가 곽자억에게 얼마나 뒷말이 많았던지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적가상방이 망하고 청송표국마저 흔들린다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더 크게 크기 위한 성장통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적가상방은 이제 버틸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 상행을 못하고 있어도 상방을 운영할 수익은 벌어들이고 있었던 적가상방이었다.

‘하지만 그 알량한 호초마저도 청해상방에서 준비할 줄은 몰랐겠지.’

청해상방에서 준비해 온 호초를 적가상방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칠 할 정도로 판매하자, 적가상방은 그나마 팔던 호초마저도 치우고 아예 점포를 닫은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듣자 하니 상방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모두 휴가를 줬다고 했다.

상방은 중양절(重陽節) 같은 날이 아니면 상방 자체가 쉬는 경우는 없다. 아니, 대부분의 상방이 중양절이라고 하더라도 일부 인원은 일을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 일하던 사람들 전원에게 휴가를 줬다는 말은 이제 적가상방은 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적가상방 사람들이 절대 아니라고 손을 흔든다고 하더라도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상방이 망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 이상, 그 상방에 물품을 주문하거나 거래를 하려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말이다.

이러니 곽자억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에 가벼운 손놀림으로 각종 서류를 확인하고 승인하던 곽자억은 문득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지만,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쾅!

“바, 방주님!”

“쯧쯧…… 소란스럽게 뭐하는 짓이냐. 아무리 급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켜야 될 예절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거늘…….”

적가상방이 무너졌다고 확신하고 있던 곽자억은 요즘 전에는 볼 수 없는 여유가 잔뜩 배어 있었다.

하지만 집무실로 뛰어 들어온 총관은 곽자억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 지금 적가상방이…….”

적가상방이라는 말이 나오자 곽자억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곽자억이 적가상방이 무너졌다고 확신한 것은, 만약 자신이 적가상방의 처지였다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솔직히 돈의 힘으로 눌러 버리는데 이걸 어떻게 빠져나온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뛰어 들어온 총관이 적가상방을 입에 담자 부지불식간에 더럭 불길함이 솟구쳐 올랐다.

“적가상방이 왜?”

“그, 그게…….”

“어서 말해! 말하려고 들어와서 왜 말을 못해!”

“적가상방이 지금 상행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정말 엄청납니다!”

“사, 상행? 상행을 준비한다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가 싶었다.

상행은 당연히 물품을 구입할 거래처가 있어야 나갈 수 있다. 거래처도 없이 나가는 상행은 그저 돈을 들여 나들이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원래 적가상방이 거래하던 거의 모든 거래처는 모두 백건상방과 거래를 하는 중이었다. 적가상방과 오랜 거래처마저도 가격의 압박에 버티지 못하고 백건상방의 손을 잡았기에 더는 적가상방과 거래할 거래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 상행을 준비한다니, 대체 총관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행이라니? 어디로 상행을 나간다는 말인가!”

“위지휘사사를 비롯해서 절강성 중부에서 남부에 걸쳐 백호소, 천호소 모두 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휴가를 갔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였고, 사람이 부족해서 단기로 일할 사람마저 찾는 중이라고 합니다!”

“위, 위지휘사사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적가상방 따위가 어떻게…….”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적가상방의 망나니…… 아니, 소방주가 도지휘사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고…….”

“뭐라고?”

더 놀라기도 힘들었다.

도지휘사는 절강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하는 세 명 중 하나였다. 그런 도지휘사의 직인이 찍힌 계약서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상산현에서 제법 방귀 좀 뀐다는 백건상방이지만, 그들은 고작 상산현의 지주대인조차 제대로 된 선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적가상방은 그마저도 없어서 실무자 선에서만 간신히 정보를 받는다고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 도지휘사가 튀어나오니, 지금 총관이 미친 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그 대단한 도지휘사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적가상방의 상방주인 적호경도, 남다른 상재를 보여 주던 진덕양도 아닌 개망나니 풍백이라니 이걸 어떻게 믿겠는가?

“그게…… 저, 정말인가?”

“확실합니다! 적가상방에서 이 일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모두 이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적가상방에서는 아예 사람들이 몇 명만 모이면 온통 적풍백 소방주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 난리도 아닙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개 같은 짓거리야! 여기서 그 개망나니가 왜 나와! 그 개망나니가 도지휘사와 계약을 어떻게 했다는 거야!”

곽자억은 마치 모래를 손에 쥔 것 같았다.

분명 손에 쥐었을 때는 자신의 것 같았지만, 손에 힘을 주면 곧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흘러내려 버리는 모래 말이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가?

자신이 이겼다고,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한 순간, 적가상방은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적가상방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적가상방 따위가…… 개망나니 놈이 무슨 계약을 했겠어!”

곽자억은 현실을 부정하기로 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더 자세히 확인을 해 와! 그리고 위지휘사사, 천호소, 백호소에 납품하는 것이 확실한지 알아보라고!”

“네, 넵! 알겠습니다!”

벼루를 집어던지는 곽자억의 광기 어린 외침에 총관은 황급히 대답하며 후다닥 도망치듯 집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솔직히 더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괜히 저기에 있다가 어디 한구석 깨지느니 차라리 뭐라도 알아보기 위해 나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 * *

백건상방에서 난리가 난 동안, 금호상방에서도 적가상방의 상행 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지휘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습니다.”

“확실한가?”

“저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금호상방주 조태명의 물음에 총관 모심천이 확실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마저 끄덕이며 대답했다.

“왜?”

“기회가 너무 좋으니까요. 상방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면서, 동시에 아직까지 미진하던 적풍백 소방주에 대한 인식마저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적풍백이 가지고 있던 망나니라는 이름은 진작 뗐어야 했지. 그런 이름으로 계속 불려 봤자 장기적으로 도움될 건 하나도 없고.”

“맞습니다.”

지금까지 풍백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던 금호상방이었다. 그렇기에 풍백이 일 년 사이에 무려 두 번이나 적가상방을 위기에서 구해 내고, 향후 확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런 확고한 실적을 가지고 있는 풍백이 계속해서 망나니라 불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번에 그 이름을 떼어 낼 것으로 보였다. 무려 세 번째로 적가상방을 위기에서 구해 내면서 말이다.

이번에는 조태명은 물론이고 모심천조차 적가상방이 꼼짝없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풍백을 높이 평가를 하고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결국 풍백이 이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말았다.

“결국 그 녀석은 진짜였던 거군.”

“인정하긴 싫지만…… 상방주님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위기를, 무려 도지휘사와 인연을 만들어서 풀어낼 줄은 나도 몰랐어.”

“그걸 누가 알았겠습니까?”

금호상방이 관부와 친밀한 관계이기는 하나, 그 관계도 상산현에서나 강력했다. 그나마 절강성 남서부에서는 조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그걸 넘어가면 금호상방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풍백은 무려 도지휘사와 모종의 관계를 형성했다. 그 말은 이제 앞으로 절강성에서 적어도 관부와 인맥으로 부족할 일은 없다는 말과 같았다.

만약 이전처럼 청해상방이 관부를 움직여 적가상방을 압박하려고 한다면, 아마 역으로 절강성에 들어온 청해상방이 관부의 압박을 강하게 받게 될 것이다.

“이걸로 적가상방을 확실히 일어날 거야.”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지 않습니까? 아직 청해상방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인데요.”

“청해상방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관부에는 청해상방의 힘이 전혀 소용이 없을 테니, 적가상방이 위지휘사사 등에 납품하는 걸 막아 낼 방법이 없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시장에 깽판을 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음…… 그건 인정합니다.”

“이 정도면 청해상방도 인정하고 물러서야지.”

그러나 모심천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쉽게 물러설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왜?”

“이미 백건상방과 손을 잡고 시장을 교란하는 일도 이익을 하나도 바라지 않으면서 벌이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겨우 관부하고 손을 잡았다고 순순히 물러설까요?”

모심천의 말에 조태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네 말도 맞지. 하지만 어떤 식으로 움직이더라도 이제 적가상방을 찍어 내는 것은 너무 어려워졌다는 건 사실이야. 차라리 우리 금호상방을 찍어 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지.”

“적어도 상산현에서는 그럴 수가 없지요.”

“그리고 난…… 아직 적풍백 그 녀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군.”

이미 적가상방을 수렁에서 구해 낼 수 있는 계약을 가져온 풍백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계약서를 겨우 시종에게 들려서 보내고 정작 본인은 다른 일이 있다니, 무언가 대단한 걸 준비하는 것 같았다.

만약 정말 여기서 하나 더 거대한 무언가를 가져온다면…….

‘그러면 우리 금호상방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 납작 엎드려야겠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조태명이 불쑥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적풍백 소방주가 아직 미혼이지?”

“선을 몇 번 봤다고 알고 있지만, 그 자리에서 매번 온갖 패악질로 파투가 났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아직까지 적풍백 소방주와 혼인을 올리겠다는 좋은 선자리가 나오지 않고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잘하면 기회가 생길 수 있겠군.”

“네? 설마…….”

조태명은 모심천의 말에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풍백이 정말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모든 것이 운이 아니라 스스로 얻어 낸 것이라면, 절대로 금호상방과 정략혼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미리 적가상방에 얘기를 넣어 놓는 것이 좋겠지?’

정말로 풍백이 이번에 돌아오면서 거대한 무언가를 들고 온다면 얘기조차 할 수 없을 테니, 미리 넣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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