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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9화 (8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9화

포정사와 상산현 화오염장 소금 전매권에 대한 협상은 며칠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전에는 핵심적인 부분만 풍백이 논의해서 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적가상방의 총관인 진덕양이 직접 협상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이번 소금 전매권에 대한 협상은 이전처럼 진덕양에게 맡겨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표면적인 계약 내용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포정사와 은밀한 계약까지 취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이나 걸렸다고 하더라도 미리 충분히 준비를 했었기에 그나마 빨리 협의가 끝난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표면적인 계약이 대단히 적가상방에게 유리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수익을 올리고 그중에 육 할은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올 거라 생각한 포정사가 후하게 인심을 썼기 때문이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협상을 끝냈을 때는 또 한 가지의 즐거운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도지휘사사에서 적가상방에게 내려온 물품 납품 계약서였다.

“우와아! 이…… 이게 전부 도지휘사사에서 주문한 물품이라고요?”

왕삼은 풍백이 건네준 계약서를 읽어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도지휘사사에서 요청한 물품은 그들이 주문하는 전체 물품에 비하면 일부일 뿐이지만, 그것만이라고 하더라도 적가상방이 평소 올리던 수입 정도를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아까운 점은 정기적으로 물품을 납품하는 계약이 아니라, 세 달에 걸친 단발성 계약이라는 점이었다.

멍하니 계약서를 보고 있던 왕삼이 문득 정신을 차린 것처럼 풍백에게 물었다.

“아니, 도련님은 도지휘사사에 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것입니까? 대체 어떤 얘기와 협상을 했기에 이렇게 엄청난 물량을 주문했냐고요!”

“내 영업 기술을 왜 네가 묻고 있냐? 넌 그냥 내 수발이나 잘 들면 되는 일인데. 왜? 말해 주면 나가서 따로 상방이라도 차리게?”

히죽 웃으며 묻자 왕삼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이런 기술을 배운다면 당연히 저도 따로 상방을 차려야죠!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기회만 생기면 배신하겠다는 말을 엄청 당당하게 하네.”

“에이……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배신이라니요? 그냥 아름다운 이별을 하며 서로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자는 말이지요.”

“잘 생각해. 도망간다고 하면 무궁한 발전이 아니라 무한한 복수를 할 테니까.”

진심이라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왕삼을 노려봤지만, 왕삼은 그런 풍백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런 가벼운 농담은 하루에 몇 번씩이고 나누는 두 사람이기에 당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소식을 적가상방 사람들이 알게 되면 엄청나게 좋아하시겠네요. 빨리 그쪽에 연락을 보내서 주문한 물량을 보내야겠습니다.”

“그렇지.”

“보니까 여기 항주로만 보내는 게 아니네요. 지도를 보고 확인을 해 보야겠지만, 이 정도면 절강성 남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백호소와 천호소에 납품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그럴 거야.”

“엄청나게 바빠지겠군요. 이걸로 적어도 세 달 동안은 우리 상방도 고생이 끝난 것 같습니다! 망할 백건상방이 이 계약에서는 아무런 힘도 못 쓸 테니까요.”

그 말에 풍백이 묘하게 웃었다. 마치 왕삼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다 맞는 말이야. 그래서 엄청나게 중요한 계약서지.”

“맞습니다!”

“그래서 이런 계약서를 전서구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잖아. 사람이 직접 들고 가서 전해 줘야지.”

“그렇지요!”

“그러니까 너는 지금 당장 적가상방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해.”

“알겠습…… 네?”

그냥 흐름을 타고 대답을 하던 왕삼은 뭔가 이상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황급히 물었다.

“저 혼자만요?”

“그럼 혼자 가야지, 같이 가냐?”

“아니 왜 저 혼자 가는 겁니까? 도련님은요?”

“난 아직 일이 끝나지가 않았어. 이번 일 마무리하려면 동쪽에 있는 상산현에 가 봐야 해.”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저도 같이 갈 겁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왕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풍백이 툭 말을 던졌다.

“상방이 지금 힘들다는 걸 알면서? 한시라도 빨리 계약서를 가지고 가야 할 판국에, 굳이 같이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더 상방을 힘들게 만들겠다?”

그 말에 크게 당황한 왕삼이 말까지 더듬었다.

“아…… 아니, 제가 무슨 상방을 힘들게 만들겠다고 했습니까? 그냥 같이 움직이겠다고…….”

“한시가 급한 상방 사정 뻔히 알면서 굳이 늦게 계약서를 전하겠다는 말이 그런 의미였던 것 아니었어?”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 그리고 저 혼자 상방까지 돌아가는 거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문세가에서 무사 두 명을 붙여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제가 도련님을 따라가고, 소란이를 상방으로 보내도 되잖습니까.”

그 말에 풍백이 혀까지 차면서 왕삼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너는 지금 소란이를 생전 처음 본 남자 두 명에게 맡기겠다는 거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서문세가 무사들인데 무슨 문제가 생길 리가 있겠습니까?”

“정파 무사라고 모두 착한 사람만 있는 거면 세상에 더러운 꼴 보는 일들이 왜 벌어지겠냐. 안 그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풍백의 말이 맞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왕삼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알겠습니다.”

처음으로 떨어지는 거라서 그런지 왕삼은 꽤 많이 낙담한 것 같았다.

풍백은 그런 왕삼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너를 믿기 때문에 보내는 거야. 이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보여 줬잖아. 다른 사람 누구한테 이걸 맡길 수 있겠냐?”

그 말에 왕삼이 바로 기분이 풀렸는지 고개를 들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렇죠? 역시 저만큼 믿을 사람이 많지 않지요.”

“그럼. 그러니까 상방으로 돌아가면 일 처리 잘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가슴까지 두드리는 왕삼을 보며 풍백은 생각했다.

‘단순해서 참 다행이란 말이야.’

물론 지금까지 했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아마도 현재 적가상방은 백건상방의 압박 때문에 제대로 상행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한시적이나마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계약서를 최대한 빨리 적가상방으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계약서를 맡겨서 보낼 사람은 왕삼이 가장 적합했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 * *

덜컹! 덜컹!

맹렬하게 달리는 마차가 상산현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적가상방 앞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마차가 멈추자마자 문이 열리며 왕삼이 뛰어내리더니 속에 있는 것들을 땅바닥에 모조리 쏟아 냈다.

“우웨엑!”

서문세가 무사들은 그런 왕삼을 더럽다는 눈보다는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항주를 떠난 이후로 매일같이 마차에서 내리면 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 내고 있는 왕삼이었다. 이렇게 게워 낸 이후에는 속이 쓰려 제대로 먹지도 못해 미음이나 자극이 적은 음식으로 속을 달래는 정도밖에 못했다.

그야말로 왕삼은 지금 거의 실신 지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항주에서 출발할 때는 최대한 빨리 상산현에 도착해야 한다는 풍백의 말에 말을 타고 달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왕삼이 말을 탈줄 모른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마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서문세가 무사들은 아무래도 마차를 타면 시간이 지체될 거라 생각해서 조금 짜증이 났었지만, 이렇게 매일같이 초죽음이 되는 왕삼을 보니 이제는 그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고생한 덕분에 열흘도 지나기 전에 상산현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입에서 쓴물이 올라올 때까지 게워 낸 왕삼이 부들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왕삼의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도, 도착했다……. 살아남았어!’

이전에 항주에 갈 때는 그나마 천천히 움직여서 괜찮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지독한 멀미 때문에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던 왕삼이었다.

만세라도 부르는 것처럼 두 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던 왕삼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항주로 출발할 때도 일이 없어서 조용하기는 했었던 적가상방이지만, 지금은 아예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상방은 이렇게 조용할 수 없는 곳이다.

‘서, 설마 벌써 상방이 무너진 것은…….’

화들짝 놀란 왕삼이 휘청거리는 몸으로 황급히 적가상방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적가상방 대회의실 안에는 상방주인 적호경과 총관인 진덕양을 비롯하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중역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들의 얼굴은 모두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은 벌써 며칠 전부터였다.

현재 적가상방은 백건상방의 무지막지한 가격 공세에 밀려 아무런 상행위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호초를 판매하면서 적가상방이 무너지는 것을 간신히 막아 내는 중이었다.

그러나 적가상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적가상방이 무너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애초에 아무런 상행위도 못하고, 오로지 호초만 판매하고 있는 순간부터 적가상방은 상방이 아니라 점포나 다름이 없는 신세였다.

분위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 나가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 적호경은 아예 과감하게 호초를 담당하는 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모두 휴가를 주었다.

할 일도 없는데 상방에 나와서 축 처진 모습으로 앉아 있으면 사기만 떨어질 뿐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일이 없는 사람들을 휴가 보내고 난 이후,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적가상방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 백건상방 호초 판매 개시.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어마어마했다.

단순히 호초를 판다는 것이 아니었다. 적가상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이 지금까지 간신히 붙들고 있던 마지막 구명줄을 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들었다.

이번에도 백건상방이 호초를 기존 가격의 절반까지 내리며 판매에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호경을 비롯하여 모든 중역들이 장시간 회의를 며칠에 걸쳐 이어 가고 있었지만,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답이 있었다면, 이전에 상품 가격을 가지고 장난을 쳤을 때부터 대응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흐리멍덩하게 죽은 눈으로 회의실을 둘러본 적호경은 하나같이 시커멓게 죽어 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슬슬 모든 희망을 버려 가고 있었다.

‘이제 끝났구나……. 이렇게 끝나고 말았어…….’

언젠가는 적가상방도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것이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무너진다면, 망나니였던 풍백이 자신의 사후에 상방주가 되어 몽땅 말아먹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풍백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죽은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적가상방이 무너지게 될 줄이야.

심지어 이전 백건상방이 산적으로 말려 죽이려고 할 때도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건만, 이번에는 정말 아무런 답도 없다고 느껴졌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적호경이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은 남겨 놔야 우리 백아가 먹고살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적호경 역시 아버지다 보니, 가장 먼저 자신의 앞날보다 풍백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게 되었다.

‘그래, 백아가 정신을 차렸으니 이런 상방 정도는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야…….’

풍백이 근래 보여 준 모습은 아주 대단했었다. 그러니 어쩌면…… 정말 운이 좋다면 풍백이 다시 적가상방을 세울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해 봤다.

그러려면 최대한 풍백에게 장사 밑천을 남겨 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풍백에게 남겨 주려고 하다가는 적가상방의 식솔들은 거의 맨주먹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적호경은 상인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부당한 짓을 벌이며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풍백에게 장사 밑천을 남겨 주려고 남은 식솔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맞아. 내가 식솔들을 내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나중에 백아 역시 내가 했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돈 많은 못된 상인이 되느니, 차라리 착한 점포 주인이 되는 것이 맞는 일이야.’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적호경이 귀에 누군가 황급히 달려오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방주님! 총관님!”

목소리를 들은 적호경이 진덕양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이건 왕삼이 목소리 아닌가?”

“맞…… 는 것 같습니다. 백아가 돌아온 모양입니다.”

적호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풍백이 어떤 대책을 가지고 돌아오지는 못했을 거라 예상했다. 만약 어떤 대책이나 대안이 있었다면 전서구를 통해 빨리 알려 왔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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