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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7화 (8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7화

도지휘사가 풍백이 건네준 두루마리의 정보를 검증하고 황궁으로 전령을 보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특급 정보였던 만큼 그 누구보다 빨리 황궁에 정보를 알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움직였던 탓이 컸다.

절강성을 떠난 전령이 황궁이 있는 북경(北京)에 도착하는 시간 역시 오래 걸릴 리가 없었다. 아마 오래 걸려도 열흘이 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풍백은 전령이 출발하고 약 열흘이 지난 후에야 포정사와 약속을 잡았다.

사실 포정사와 약속은 잡기 쉬웠다. 서문세가는 항주는 물론이고, 절강성 전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가였기에 승선포정사사와 제법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된 이유는 포정사를 만나기 전, 도지휘사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풍백은 자시(子時, 23시~1시)경이 되어서야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마차를 타고 서문세가를 나섰다.

도지휘사에 비하면 대단히 늦은 시간에 잡힌 약속이었고, 약속 장소 역시 업무를 보는 승선포정사사가 아닌 항주 외곽에 있는 조용한 작은 장원이었다.

풍백이 탄 마차가 장원에 도착하자 평범한 마의를 입고 있는 사내가 문을 열고 풍백이 편히 내릴 수 있도록 시중을 들었다.

사내를 따라 장원으로 들어가 가장 커다란 방으로 들어가니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포정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지천명(知天命, 50세)을 넘었을 것처럼 머리가 희끗거리는 사내는, 한눈에 보기에도 어지간한 장정 두 명보다 무거울 것처럼 생긴 대단히 뚱뚱한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대신 그의 얼굴은 꽤 선하게 생겨 많은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이 바로 절강성 행정을 책임지는 포정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허허!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아서 미안하오. 일이 바쁘다 보니 이때밖에 시간이 나지 않더구려.”

사람 좋게 말하는 포정사에게서 진한 주향이 풍겼다. 불빛에 비친 얼굴 역시 붉게 상기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일이 바빴던 것이 아니라 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포정사의 모습에 풍백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네.’

직접적으로 만났던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암향거에서 보고서를 통해 여러 번 접했었기에 익숙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아닙니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께서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것도 감사하지요.”

“그렇게 생각을 해 준다니 고맙소. 일단 앉아서 얘기를 합시다.”

포정사는 거대한 몸을 이끌고 의자에 앉았다. 워낙 비대한 몸을 가지고 있다 보니, 그가 앉아 있는 의자는 언제라도 기회만 생기면 부서질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맞은편에 풍백이 앉자 포정사가 말했다.

“시간도 늦었으니, 시간을 오래 끌지 말고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적 공자에게 좋을 것 같구려.”

정확히 말하자면 풍백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빨리 풍백을 보내고 다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마 이렇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하는 건, 중소 상방에 불과한 적가상방이기에 자신에게 딱히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자건이 부탁한 만남이 아니었다면 직접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빨리 본론을 넘어가는 건 풍백에게도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럼요. 제가 대인의 시간을 오래 빼앗을 수 없지요.”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한 것이오?”

포정사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크게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풍백이 어떤 부탁이나 뇌물을 건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풍백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포정사의 흥미가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 도지휘사사가 대단히 어수선하지 않았습니까?”

“응? 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어쨌다는 것이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궁금했다.

승선포정사사가 한 성의 행정을 책임지는 막중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도지휘사사는 군권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위치다. 그런 도지휘사사 전체가 어수선할 정도라는 말은 사안이 절대 가볍지 않다는 말과 같았다.

제법 흥미가 생겼다는 얼굴이 된 포정사가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이유를 알고 있다는 말이오?”

“아주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이유를 듣는 데 무엇이 필요한 것이오?”

포정사는 당연히 풍백이 그냥 알려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풍백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정보를 알려 드리면서 무슨 대가를 바라겠습니까?”

“그냥 알려 주겠다는 것이오?”

“당연하지요.”

미심쩍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포정사가 물었다.

“그러면 이유가 무엇이오?”

“그건, 얼마 전 도지휘사께서 조선의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화, 화피궁!”

화피궁이라는 말에 얼큰하게 올라오고 있던 술기운마저 싹 사라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황궁에서 내려온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찾으라는 명령은 비단 도지휘사처럼 군부와 관련된 곳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포정사 역시 사람을 시켜서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었다.

포정사는 아직까지 화피궁에 대한 애매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무엇 하나 찾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도지휘사가 이미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포정사에게 풍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도지휘사께서는 정보를 얻고, 곧장 장인을 불러들여 검증을 끝마치고 열흘 전에 황궁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으음…….”

전령이 말이 지칠 때마다 바꿔 타면서 밤낮없이 달렸다면 지금쯤 북경에 도달했을 것이다.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그 정보를 얻었다면…….

‘충분히 남겨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을 텐데…….’

포정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명예나 사람들을 평안하게 다스리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손에 쥐어지는 돈이었다.

그러니 정보가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면, 그 정보를 잠시 숨겨 두고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손에 들어왔던 것을 놓친 것처럼 괜히 입맛이 썼다.

이때 풍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화피궁에 들어가는 재료 중 물소의 뿔이 핵심 재료 중 하나라는 것이 도지휘사사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그, 그걸 적 공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오?”

“당연히 알고 있지요. 제가 도지휘사님을 직접 만나서 이 정보를 알려 드렸는걸요.”

예상치도 못한 말에 눈이 커다랗게 변한 포정사가 풍백을 바라봤다. 풍백은 언제나 그랬듯이 환하게 웃으며 그 시선을 받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풍백을 바라보던 포정사가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감히 대인을 앞에 두고 어찌 거짓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 왜…… 아, 아니오.”

순간적으로 왜 자신에게 먼저 말하지 않았냐고 소리치려던 포정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말을 삼켰다. 대신 그의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소의 뿔이 화피궁의 핵심 재료라고? 그러면 먼저 물소의 뿔부터 매점(買占)하기 시작해야겠군.’

도지휘사는 일은 대충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장인을 데리고 검증을 마쳤다면, 당연히 황궁에서 곧 물소의 뿔을 구입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눈먼 돈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황궁에서 흘러나오는 돈이다.

‘어차피 물소의 뿔을 구입하려는 건 나만이 아닐 거야. 각 성의 포정사는 물론이고, 돈 냄새를 맡은 상인 놈들까지 설쳐 댈 것이 뻔하지. 그러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물소의 뿔을 구입하는 비용을 약간만 더 적어 낸다면…….’

포정사는 마치 상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욕심에 눈이 먼 포정사는 당장 앞에 풍백이 앉아 있다는 것도 잊고 계산에 집중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런 포정사에게 풍백이 말했다.

“물소의 뿔을 구입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장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생각을 풍백이 말했기 때문인지 포정사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움찔하며 겉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포정사는 이내 웃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허허허허! 아무래도 화피궁의 재료를 알아냈으니, 황궁에서 그 재료의 수급을 요청할 거라는 생각에 잠시 생각을 깊이 했던 것 같소.”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그런 대인의 고민을 조금 덜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저희 적가상방에서 물소의 뿔 상당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대인께 드릴 수 있다는 얘기지요.”

풍백의 얘기를 들은 포정사는 더럭 생기는 의심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긴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도지휘사에게 직접 화피궁에 대한 정보를 알렸던 사람이 자신을 찾아와 다시 한번 그 정보를 알리고, 그 재료인 물소의 뿔을 제법 많이 가지고 있다며 자신에게 넘길 수 있다니…….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 이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부였어.’

한 번 의심이 들자 풍백의 모든 것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이런 포정사의 눈치를 읽은 풍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믿기지 않지요?”

풍백이 이렇게 묻자 포정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서문자건의 주선으로 만난 관계라고 하지만, 결국 풍백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도지휘사처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증거를 꺼내서 눈앞에 내민 것도 아니고 말이다.

“제가 했던 말들이 모두 진실인지 확인을 해 보시고, 제가 했던 말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되시면 다시 저를 찾아 주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쉽게 믿지 못해서 미안하오. 하지만 사안이 중요하니 확실히 확인을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소.”

자신을 아직 믿지 못한다는 포정사의 말에도 풍백은 여전히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확인을 해 보시고 연락을 주십시오. 아마 지금쯤이면 황궁에 전령이 도착했을 테니, 아마 도지휘사님께서도 관련 정보를 쉽게 말해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미안하게 되었소.”

“아닙니다. 대인께서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걸요.”

풍백은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과거에 봤었던 포정사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맞다면, 포정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취할 테니까 말이다.

* * *

포정사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정확히 사흘만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약속 시간은 이전보다 더 늦어진 자정(子正) 무렵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전과 달리 술냄새는 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풍백은 자리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포정사에게 웃으며 물었다.

“확인은 해 보셨습니까?”

“……대체 적 공자는 어디서 정보를 얻었던 것이오?”

포정사는 도지휘사에게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었다.

아무리 이 정도면 황궁에 보고가 끝났을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쉽게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포정사가 정보를 받아 낸 건, 이미 풍백에게 들었던 정보를 말해 주며 사실 확인을 하러 왔을 뿐이라는 걸 알렸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포정사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가 풍백을 통해서라는 걸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도지휘사는 정말 한 끗 차이로 자신이 먼저 정보를 입수했다고 생각하며 풍백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포정사는 도지휘사의 정보를 확인하고 나서야 풍백이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더욱 도지휘사에게 풍백이 제안했던 물소의 뿔 구입에 대한 건을 공유하지 않았다.

풍백은 심각한 포정사의 표정을 보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그저 상방 일을 돕다 보니, 귀가 밝은 친구들을 조금 알게 되어 이번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대단하군. 그래서 이전에 물소의 뿔 상당량 가지고 있다고 했었는데, 얼마나 가지고 있소?”

“정확하게 수량으로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가장 큰 창고를 기준으로…… 여덟 개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보고하지 말고 최대한 모으라고 했었기 때문에 어쩌면 열 개가 넘는 창고를 채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최소한의 숫자로 말한 풍백이었다.

포정사는 무려 대형 창고 여덟 개라는 말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허…… 그러면 대체 얼마나 모았다는 말인가?’

물소의 뿔을 각 성에서 경쟁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다면 가격이 폭등할 것이다.

그렇기에 대체 얼마나 비싸질지 모르지만, 최소한으로 잡아 은자 세 냥 정도만 잡는다고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었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소의 뿔을 자신이 조금…… 조금 많이 싸게 은자 두 냥 정도에 구입할 수만 있다면 물소의 뿔 하나당 은자 한 냥은 남겨 먹을 수 있었다.

‘허허…… 이 정도면 거의 내가 이 년에 걸쳐 뒤에서 챙기는 것을 한 번에 벌 수 있겠군.’

아니, 가격 책정을 낮게 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삼 년에 걸친 수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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