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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5화 (8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5화

“도련님! 도련니임!”

멀리서부터 왕삼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풍백의 방문을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왕삼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풍백이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그 정도로 문이 부서지겠어? 조금 더 힘을 내도록 해 봐. 아주 그냥 작살을 내 버리게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제가 이렇게 급하게 들어왔다는 걸 보면 얼마나 중요한 얘기를 듣고 왔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평소에 네가 어디서 듣고 왔다고 말하던 걸 떠올려 보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데.”

실제로 왕삼은 어디에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든지, 아니면 엄청난 경극을 보고 왔다며 달려왔던 적이 제법 많았었다.

이런 시큰둥한 풍백의 반응에 왕삼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진짜 엄청난 얘기를 듣고 왔다니까요!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냥 얘기를 하지 않는 수가…….”

“잘 생각했다. 나는 조용히 좀 쉬다가 몸 단련이나 할 거니까, 그 중요한 얘기는 너 혼자만 알고 좀 나가 주지 않을래?”

“진짭니까? 진짜 이 중요한 얘기를 듣지 않겠다는 겁니까?”

“됐으니까 그냥 나가 줘.”

“후, 후회하실 텐데요! 아! 이거 진짜 엄청난 얘긴데!”

“나 적풍백, 후회를 모르는 남자지.”

“진짭니다! 저 나갑니다! 나간다고요!”

“아직 안 나갔냐? 빨리 나가.”

이런 풍백의 태도에 왕삼은 어깨가 축 처졌다.

“정말 너무하십니다……. 전 도련님께 도움이 될 얘기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숨이 헐떡거릴 정도로 급하게 달려왔건만…….”

“헐떡거리지도 않더만.”

“그게 중요합니까? 정말 제가 숨을 헐떡거리길 바라는 겁니까?”

“알았으니까, 그냥 네가 듣고 왔다는 얘기나 빨리 해 보지? 차 다 마실 때까지 얘기 안 하면 내가 직접 쫓아낸다.”

“훗! 이렇게까지 원하신다니 제가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풍백이 왕삼을 믿고 좋아하지만, 이럴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왕삼은 대단한 비밀 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고는 풍백의 귀에 주둥이를 가져가 조용히 말했다.

“이전에 서호에서 발견된 시체들 있잖습니까.”

풍백의 눈이 살짝 빛났다. 예상외로 이번 왕삼이 알아 온 내용은 풍백의 흥미를 끌었다.

“그 시체들이…… 항주 인근에 있던 청사파라는 사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응? 뭐가 그리고라는 겁니까? 청사파라는 사파였다고요.”

“그게 끝이야?”

“네, 이게 끝인데요.”

상대는 왕삼이었다. 괜한 기대를 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저얼대로 혼자 돌아다니시면 안 됩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는 거야?”

“나이가 중요합니까? 이번에 벌어진 얘기를 듣고도 몰라요? 이 사건이 도련님이 혼자 어디 갔다 오신다고 하셨을 때 벌어진 거라니까요! 혼자 돌아다니시다가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번처럼 적당히 처리하고 들어와야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겉으로는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었다.

이런 풍백의 모습에 왕삼은 풍백이 자기 얘기에 집중하는 줄 알고 연이어 계속 얘기를 이어 갔다.

“이제 도련님은 이전처럼 혼자가 아닙니다. 만약 도련님이 큰일을 당하면 우리 적가상방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시냐 이 말입니다! 아마 상방주님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 일이 벌어질지 모르…….”

“그건 아니야. 이전부터 내가 워낙 사고를 많이 치기도 했고, 끝내주게 건강하셔서 쓰러지는 일은 없을걸.”

“어…… 그건 그러네요. 아무튼 절대 혼자 다니지 마시고, 꼭 고 무사님하고 같이 다니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게 한 사람이라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요.”

“수발을 들어 줄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건 나도 편해서 좋다만, 그렇다고 항상 그렇게 다닐 수는 없는 일이지. 나도 내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다고.”

“아닙니다. 도련님은 사생활이 없어요. 그런 것이 있으면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셨으니 앞으로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을…….”

열정적으로 말을 늘어놓는 왕삼을 바라보면서 풍백은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충성심 하나만큼은 참 좋단 말이야.’

냉정하게 말하자면 왕삼은 수발을 그리 잘 들어 주는 시종은 아니다. 아마도 능력적으로만 말하자면 보통 미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왕삼이 지금까지 풍백의 곁을 지키는 이유는 간단했다.

하나는 풍백의 곁을 어렸을 적부터 지켜 왔기에 이제는 거의 친구와 같은 사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풍백의 지랄 맞은 성격과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망갔다는 점이다.

이런 온갖 사건을 겪으면서도 왕삼은 풍백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보다시피 이렇게 자신의 안전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말이다.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이유라고 할지 모르지만, 풍백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손꼽으면 왕삼은 항상 고민도 하지 않고 집어넣었다.

망나니와 같았던 자신을 끝까지 따랐던 왕삼은 풍백에게 단순한 친구 이상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제 얘기를 듣고 계신 겁니까?”

“듣고 있어. 알았으니까 적당히 하지? 뭔 잔소리가 이렇게 길어?”

“백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것 아닙니까!”

“알았으니까, 밖에 나가 봐라. 누가 오는 것 같다.”

“응? 누가 와요? 귀도 밝으시네.”

왕삼이 풍백의 말에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왕삼이 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서문세가 무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니 무사가 풍백에게 정중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가주님께서 적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다시 한번 풍백의 눈이 빛났다.

“바로 따라가면 됩니까?”

“네, 저를 따라오시지요. 가주님이 계신 곳까지 안내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사가 앞장을 서고 풍백은 그를 따라 걸었다.

풍백이 도착한 곳은 이전에 서문자건을 만났던 그의 집무실이었다.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안내를 해 준 무사가 집무실을 향해 풍백이 왔음을 알리고, 서문자건은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집무실로 들어가자 무언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던 서문자건은 잠시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며 말했다.

“조금 앉아서 기다려 주겠나? 이것을 마저 끝내고 마음 편히 얘기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저는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시지요.”

“고맙네.”

간단한 대답을 마친 서문자건이 또다시 온갖 서류를 가지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확인하곤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난 서문자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풍백의 앞에 앉았다.

“후우…… 미안하네. 손님을 청해 놓고 너무 기다리게 만들었구만. 자네를 부르고 나서야 갑자기 일이 들어와서 말이야.”

“아닙니다. 이렇게 거대한 세가의 가주님이시니 당연히 바쁘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며 서문자건이 한탄하듯이 말했다.

“어렸을 적에는 가주가 되면 매일 무공을 수련하고 못된 사파를 때려잡으러 뛰어다닐 줄만 알았지. 나이가 들고 가주라는 위치가 되면 오히려 더 밖으로 나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실망했었지.”

“아무래도 처리할 일이 많으실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다못해 상방에 관련된 일만이라도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아주 골치가 아파. 차라리 도 한 자루를 들고 사파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이 더 낫겠어.”

연신 투덜거리는 폼이 잔뜩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서문세가와 영파상방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서문자건은 초절정고수였다. 그러나 초절정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없던 상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가 알던 서문세가의 미래는 영파상방에 의해 상방이 완전히 압도당해 항주에서의 영향력 자체를 상실할 수준이 된다고 알고 있었다.

비록 풍백의 영향으로 지금도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바뀌고 있지만, 말했듯이 서문자건의 없던 상재가 생길 일은 없었다. 그러니 아마 앞으로 서문세가는 상권에 관련해서는 점점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개입을 하면서 미래가 바뀌고 있으니, 마지막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물론 지금 풍백은 서문세가를 위해 나설 생각은 없었다.

현재만 두고 본다면 서문세가는 명백한 강자였고, 적가상방은 당장 내일이라도 무너질지 모르는 중소 상방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풍백이 지금 누굴 걱정하고 도와준단 말인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숨을 돌린 서문자건이 지나가는 것처럼 말을 툭 던졌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꽤 거하게 일을 벌였더군.”

정확하게 무슨 일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풍백은 서문자건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하긴 서문세가가 서호에서 벌어진 일을 모른다면 이상한 일이지.’

항주는 서문세가의 세력권이다. 이곳에서 사파가 떼몰살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 지역의 패자인 서문세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충분히 당황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풍백은 가볍게 미소까지 보이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얼굴 표정이 상황에 맞춰 움직였다. 과거 풍백이 받은 훈련은 여전히 여러 곳에서 유용하게 쓰였다.

“설마 발뺌을 할 셈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르는데 발뺌이라니,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셔야 알 것 같습니다.”

“서호에서의 일이 자네가 벌인 일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제야 풍백은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걸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자네가 벌인 일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서문자건은 풍백이 이렇게 흔쾌히 인정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살짝 몸을 움찔했다.

“……너무 쉽게 인정하니 이상하군.”

“굳이 숨길 필요는 없는 일이지요.”

“무려 삼십 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은 일인데, 너무 당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오해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죽인 사람은 오직 두 명이었을 뿐입니다.”

“두 명이라고?”

“네, 호반에서 나온 시체 두 명만이 저와 직접 싸운 사람들이지요.”

가만히 풍백을 바라보던 서문자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청사파라는 사파의 악명을 생각해 보면 굳이 왜 그들과 싸웠는지 이유를 듣지 않아도 괜찮네만, 적어도 이번 일로 자네는 나에게 세 번째 부탁을 빚지게 되었네.”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일을 수습하기 위해 형부(刑部)가 직접 나서서 통솔하며 움직였네. 자네가 연루됐다는 걸 알았기에 내가 부탁을 해 놨지.”

풍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게 어떻다는 말이지요?”

“내가 자네 뒤를 봐줬으니 자네가 적어도 내게 빚을 진 것이지 않나?”

“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것 같습니다.”

“애매하다? 뭐가 애매하지?”

“저를 습격한 놈들 중 청사파와 직접적으로 싸운 놈 하나는 영파상방에서 보낸 놈이었으니까요.”

“영파상방?”

여기서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영파상방이라는 말이 나오자 서문자건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저를 습격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서문세가와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군. 자네는 어차피 호초로 영파상방과 엮이지 않았나?”

“정말 호초 때문이라면 그 전에 저를 노렸겠지요. 굳이 제가 항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영파상방에서 풍백에게 암살 명령을 내린 사람을 찾기 전에는 말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추측을 해야 했는데, 서문자건은 풍백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서문자건이 물었다.

“자네가 손을 쓴 건 두 명이라면, 나머지 대부분의 사파 놈들은…….”

“맞습니다. 영파상방에서 나온 놈이 죽였습니다.”

“아니, 왜?”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영파상방에서 나온 놈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을 한 것 같고, 청사파 놈들은 그놈을 저의 호위무사로 생각한 것 같더군요.”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서문자건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그런 공교로운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건가?”

“저도 모릅니다. 그저 누가 쫓아오는 것 같아서 되도록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서호로 나갔을 뿐이거든요.”

“재미는 있군.”

“그러면 저는 아직 두 개의 부탁을 빚진 것이 맞는 거겠죠?”

풍백의 말은, 자신이 서호에서 싸움을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서문세가 때문이니 자신에게 온전히 빚을 지울 수 있냐는 말이었다.

서문자건은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내가 큰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겠네.”

“저도 손해를 보셨다고 생각한 만큼 서문세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서문자건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적어도 재미없는 사람보다는 낫지요.”

“그건 동의하네.”

“이 얘기를 하려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겸사겸사 얘기를 한 거지. 본론은 자네가 여기에 이렇게 머물고 있는 이유 때문이네.”

그 말에 풍백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약속이 잡힌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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