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84화
항주는 중원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성도였다. 그렇기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고, 각종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거의 서른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시체로 발견되는 일은 흔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들이 발견된 곳이 항주의 자랑 중 하나인 서호였으니, 그 여파는 생각보다 더욱 컸다.
이런 커다란 사건이었기에 관부에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른 대처를 보여 줬지만, 그렇다고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며칠에 걸쳐 조사를 하고 나온 결과는 아주 간단했다.
- 강호의 무인들이 서호에서 모종의 사건으로 시비가 붙어 서로 양패구상했다.
이 결과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수긍하고 지나가는 편이었다.
일단 조사 결과 다수의 사람이 절강성에 있는 청사파라는 사파의 무인들이었고, 그런 청사파와 싸웠다고 알려진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사 하나였다.
사람들은 이 결과를 놓고 온갖 상상에 망상을 더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얘기 들었어? 서호에서 발견된 시체들 말이야.”
“사파 놈들 이었다고 들었어.”
“전부 사파가 아니라 한 명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 무사였데.”
“헐…… 그럼 혼자 그 많은 무사들하고 싸웠다는 거야?”
“듣자 하니 그 무사가 사실 산에서 평생 무공을 익히다가 이제 막 강호에 나온 초출이었는데,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시비가 붙은 게 청사파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서호에서 청사파 습격을 받고 죽도록 싸워서 양패구상을 당했다고…….”
주점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객잔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청사파가 자기 약혼녀를 납치해서 싸운 거래.”
“아니, 약혼녀를 왜 납치했대?”
“예쁘니까 납치했겠지! 사파가 괜히 사파라고 불리는 게 아니잖아.”
“그러면 약혼녀는 어떻게 됐대?”
“자기를 구하다가 약혼자가 죽어서 정신이 나가 버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머리도 산발하고 맨발로 항주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고, 그 이후로 그 여자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저런…… 하여간 사파 놈들이 문제라니까!”
이런 온갖 얘기들이 퍼지면서도 사람들은 강호의 무인에 대한 환상과 함께 공포도 늘어 갔다.
고수라 불리게 되면 일반 사람들은 감히 비벼 보지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의 삶이 이렇다.
잊을 만하면 강호의 어떤 고수나 협객이 수십 명의 사람과 싸웠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를 강호의 고수를 동경하든지, 아니면 강호 자체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아무튼 염평과 청사파에 대한 얘기는 빠르게 종식되어 갔다.
풍백이 원했고, 의도했던 바로 그대로였다.
* * *
착!
섭선을 접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저는 분명히 적풍백을 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청사파에게 습격을 당했네요?”
부복하고 있는 중년 사내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사내는 훈풍(薰風)이 불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왜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겁니까? 설마 보고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무 정보가 없다는 말인 겁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얘기를 해 보세요. 적어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 정도는 말해 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내의 말에 중년 사내가 마른침을 삼키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일단 청사파에게 염평이 죽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추측을 하는 건가요? 이거 참 재미있군요.”
삐딱한 사내의 말에 중년 사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그, 그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관부에서 저희에게 시신을 건네줄 수 없다고 통보를 하는 바람에 제대로 부검도 하지 못했기에…….”
“관부가 거절했다라…… 포정사와 계약 유지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는 겁니까?”
새로운 사안이지만 이것 역시 중년 사내에게는 곤란한 대답이었다. 중년 사내는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바라는 금전적 대가가 너무 커서 저희가 받아들이면 수입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 상태라…….”
“그러니까 욕심이 지나치다…… 라는 건가요?”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안찰사와 도지휘사도 얘기가 잘 안 풀리고 있는 건가요?”
“안찰사는 워낙 꽉 막힌 사람이라……. 이전에도 잠시 단속을 미뤄 달라는 부탁에 오히려 도지휘사와 손을 잡고 절강성을 휩쓰는 바람에 극도로 신중히 움직이려고 합니다.”
“쯧…… 하긴 그 덕분에 우리 쪽 장사하던 사람들이 참 많이 잡혀갔었지요.”
안찰사가 절강성에 부임한 이후로 도지휘사와 손을 잡고 단속을 벌였던 일은 오직 사람 장사에 관련된 일 뿐이었다.
이 일로 인하여 뒷골목 사람 장사꾼들을 비롯하여 그들의 뒤를 봐주던 관부의 부패한 관리까지 일거에 쓸려 나갔었다.
이 문제로 포정사와 약간의 마찰을 벌였던 안찰사지만, 결국 너무나 명백한 증거와 증인들로 인하여 포정사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안찰사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해당 성의 감찰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도지휘사는요?”
“그쪽 역시 안찰사와 같이 손을 잡고 단속을 했던 것을 보면 비슷한 성향이라 판단하여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중입니다.”
“이것 참…… 우리 절강성 관리분들은 참 명예욕이 높으시군요. 짜증 나게도 말이지요.”
사내가 인정하기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얼굴이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일을 해결하라고 당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시면 말씀을 하세요.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면 되는 일이니까요.”
대단한 협박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많은 비밀을 다루는 자신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어떻게 될지는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바로 토사구팽(免死狗烹)이다.
즉, 사내는 중년 사내의 목숨을 가지고 위협을 한 것이 되었다.
쿵!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중년 사내는 머리를 땅에 박으며 소리쳤다. 사내는 그런 중년 사내를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래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시 원래 했던 얘기로 돌아와서, 관부에서 시신을 내줄 수 없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는 겁니까? 강호 무인의 다툼으로 판단을 했다면 시신을 내주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요.”
“맞습니다! 다른 때라면 얼마든지 시신을 빼 올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형부(刑部)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 시신을 내주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 말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부에서 직접 나섰다고요?”
“그렇습니다!”
“흐음…… 포정사와 협상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일에는 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설마 포정사가 우리와 등을 돌리려는 전조 아닙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까지 포정사와 저희의 관계는 큰 문제가 없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저희도 아직 이유를 모르고 있는 상태라…….”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헉! 죄, 죄송합니다! 이유도 빨리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촤악!
사내는 섭선을 펼쳐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청사파의 배경부터 파 보도록 하지요. 사파가 왜 염평을 노린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일이 꼬인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누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도발을 하는 것은 아닌지까지도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만약 누가 애매한 수작을 부린 거라면 적당히 보복을 해 줘야 할 테니, 그 부분도 같이 준비를 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적풍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시 사람을 보내서 처리를 할까요?”
사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굳이 지금 적풍백을 죽여 서문세가와 긴장관계를 더 높이고 싶지 않군요. 먼저 어떤 놈들이 우리 일에 훼방을 놓았는지 찾는 것이 먼저겠지요. 적풍백은 그다음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년 사내가 바로 달려 나가려고 하자 사내가 다시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더. 서문세가에 대한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또다시 중년 사내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아직…… 앞에 내세워 시선을 분산시킬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실망스럽군요.”
착!
사내가 다시 섭선을 손바닥을 때리며 소리 나게 접었다. 그걸 본 중년 사내는 목을 자라처럼 쑥 집어넣으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래에 절강성에 시선을 잡아끌 사람이 나타나질 않아서…….”
“절강성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성에서 데리고 올 생각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흐음…… 설마 이번 일에 회의적인 입장이라 일을 띄엄띄엄…….”
“절대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쿵! 쿵! 쿵!
중년 사내는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에 머리를 찍어 가며 소리쳤다.
그런 중년 사내를 바라보는 사내의 얼굴은 여전히 훈훈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한 번 더 믿겠다고 했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슬슬 계획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그 말에 중년 사내가 움찔했다.
“아직 시선을 끌 상대를 구하지도 못했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위쪽에서 결과를 빨리 보내 달라고 하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유능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신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중년 사내는 사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반론을 내밀 수도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정말 이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을 테니까.
“……반드시 결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러는 게 좋을 겁니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중년 사내가 신속히 달려 나갔다. 한시라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의 뒷모습에서는 조금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 남은 사내는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생각보다 운이 좋은 놈이네.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게 되었으니.”
사내가 말한 운이 좋은 놈이라는 것이 풍백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파악할 수 있었다.
* * *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여기서 왜 청사파가 무너졌다는 말이 나와?”
청해상방주 문태성의 고함에 총관은 엄탁이 바짝 긴장하며 대답했다.
“저도 자세한 상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전서구로 전해 온 내용에 따르면 청사파가 신원 불명의 고수 하나와 서호에서 싸우다가 양패구상했다고만…….”
“신원 불명? 혹시 적풍백 놈의 호위무사가 아니고?”
“그건 아닐 겁니다. 정기 보고에 따르면 그 호위무사는 서문세가주가 일검단악이라는 별호를 받았다고 하니, 아마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망할…… 청사파 놈들은 의뢰를 수행하러 가서 왜 누군지도 모르는 놈과 싸우다가 다 죽었단 말이야?”
“혹시…… 적풍백을 습격하려다가 지나가던 고수가 끼어들어 싸운 것은 아닐까요?”
엄탁의 말에 문태성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나가던 고수가 왜 그놈을 구해 주는데?”
“원래 협객이라 불리는 무인들이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기도 한다는…….”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 가며 적풍백 그놈을 구해 줬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제발 말을 하려면 네 위치에 맞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해! 협객이라는 놈들이 얼마나 이중적인 놈들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엄탁을 바라보던 문태성은 이를 갈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문태성에게 엄탁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적풍백을 처리할 사파를 다시 보내야 할지…….”
“청사파 놈들에게 보낸 선수금만 해도 얼만데 사파를 또 보내? 어차피 적가상방으로 돌아올 놈이니까 놔둬.”
적가상방을 고사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돈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했다. 여기에 청사파를 움직이기 위해 들어간 돈까지 더하면, 사실상 분기 순이익을 통째로 쏟아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사파를 포섭해 움직이는 것은 돈 낭비처럼 느껴졌다. 만약 풍백이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적가상방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파를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때에 맞춰서 움직이면 되는 일이다.
“적가상방은 지금 어때?”
“거의 모든 상행위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호초 하나만 팔아 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호초를 준비하고 있지?”
“네…… 그런데 급하게 구하느라 가격 흥정에 손해를 많이…….”
“상관없다. 어차피 이익을 보려고 하는 일도 아니니까.”
문태성은 이대로 호초를 판매할 수 있도록 놔두면 적가상방이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적가상방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호초를 더 이상 팔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어디 한번 최대한 버텨 보거라.’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문태성은 눈앞에 풍백을 비롯하여 적가상방의 사람이 있다는 듯이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