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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2화 (82/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2화

까드득!

염평은 노골적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 아주 낭패를 봤다. 근래에 오늘처럼 낭패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을 정도로.”

“그것참 축하하오. 아주 근사한 경험이 되었겠구려.”

여전히 환히 웃으며 말하는 풍백의 말은, 아주 평범한 내용이었는데도 이마에 핏대가 설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네 덕분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더러운 경험을 할 리가 없었을 거야.”

아까 자신이 물 위에 밟을 것들을 띄우자, 풍백이 배를 몰아 움직였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자 또 화가 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풍백은 그런 염평을 보며 진정하라는 것처럼 손을 내저었다.

“상처가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 너무 화를 내지 마시오.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렇게 흥분하시는 것이오?”

“흐흐…… 신기하게도 네 상판을 보고 있으니 아주 화가 치밀어 오르는구나.”

“쯧쯧…… 특정 사람을 보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다니, 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 봐야겠구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네놈을 죽이고 난 다음 바로 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예정이니까. 그런데 아마 내 생각에는 너를 죽이면 치밀어 오르는 화가 가라앉을 것 같군.”

“흥미로운 접근 방법이지만, 안타깝게도 당분간 누구에게 죽어 줄 생각이 없으니 미안하게 되었소.”

“미안할 것 없다. 어차피 네게 선택권은 없으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평이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려고 하는 것처럼 풍백을 향해 쏘아지며 태산십삼검을 펼쳤다.

태산십삼검의 특징은 검에 담긴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흔히 이런 검법을 통틀어 패검(覇劍)이라 부르는데, 태산십삼검은 이런 패검의 대명사 중 하나였다.

단지 지금 염평이 펼치는 태산십삼검은 이런 위력을 모두 펼칠 수가 없었다. 독문내공심법이 없기에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내공심법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태산십삼검 특유의 강맹함은 충분히 보여 주고 있었다.

후웅!

패도적인 위력을 품은 태산십삼검을 본 풍백은 검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난화보를 밟으며 신속하게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염평은 바로 변초를 펼쳤다. 내리치던 검의 경로가 거의 직각으로 바뀌더니 풍백의 허리를 쓸어 갔다.

갑자기 검의 경로를 바꿨는데도 그 위력은 조금도 경감되지 않았고 오히려 탄력이라도 붙은 것처럼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기에, 풍백의 허리는 당장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처럼 느껴졌다.

미간을 찌푸린 풍백은 자신의 허리를 노리는 염평의 검을 향해 쌍장을 내질렀다.

펑!

압축된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풍백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순수하게 검에 담긴 힘에 밀린 것은 아니었다. 풍백이 염평의 검을 받아 내며 몸을 살짝 띄워 반발력을 이용해 거리를 벌렸을 뿐이다.

“어디로 도망가느냐!”

지면에 내려서자마자 염평은 대갈일성을 토해 내며 빠르게 풍백을 향해 돌진하며 태산십삼검을 연이어 펼쳤다.

풍백은 두 번째 펼쳐진 염평의 태산십삼검이 방금 전 펼쳤던 한 수보다 오 할가량은 더 강력한 위력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공을 쏟아붓는 건가?’

풍백은 자신을 노리는 염평의 검을 향해 연이어 삼장을 벽공장(劈空掌)으로 날렸다.

벽공장은 허공을 격하여 기를 발산해 장력이 밀려가도록 하는 것으로, 일류고수가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기술이었다. 흔히 일반 사람들은 벽공장을 가리켜 장풍(掌風)이라 부르기도 했다.

풍벽이 펼친 벽공장이 염평의 검과 부딪쳤다.

퍼퍼펑!

염평의 검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한지, 풍백의 벽공장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그 대신 염평의 검 역시도 품고 있던 힘을 대부분 소진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도 염평은 당황하지 않고 연이어 세 번째 초식을 펼쳤다. 하단세(下段勢)부터 시작된 검의 궤적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단순한 경로였는데, 그 검식에 포함된 힘은 또다시 이전보다 오 할이, 첫 초식보다는 두 배 강력해져 있었다.

‘망할 연환검식(連環劍式)이구나!’

패검은 초식 그 자체가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것도 있지만, 지금 염평이 펼치는 것처럼 초식을 연이어 펼치며 점점 강해지는 형식도 있었다.

연환검식은 처음부터 강력한 힘을 검에 담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부터, 검식이 중간에 막히면 다시 가장 약한 초식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약점까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런 연환검식을 상대하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연이어 검식을 이어 갈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사실 태산십삼검은 원래 연환검식이 아니다.

태산십삼검을 손에 넣은 염평은 어떻게든 독문내공심법이 없이도 이 검법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결국 찾아낸 방법이 지금처럼 연환검식으로 최대한 비슷한 위력이 나오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 결과 비록 원래 태산십삼검 수준의 위력을 낼 수 없어졌지만, 대신 초식이 쌓이면 나중에는 태산십삼검으로도 낼 수 없는 막강한 위력을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생기게 되었다.

풍백은 내공을 끌어올려 자신을 반으로 쪼개기 위해 밀려오는 염평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따앙!

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풍백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일부러 몸을 띄운 것이 아니라 순전히 검에 담긴 힘을 버티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몸이 떠오른 것이다.

무인이 타의에 의해 몸이 허공에 떴다는 것은 대단히 큰 위기라는 말이었다. 허공에서는 특별한 경공이나 보법이 아니라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염평이 하늘을 향해 치켜올린 검을 빙글 돌리더니, 풍백의 어깨를 향해 사선으로 그어 갔다.

이번에도 염평의 검에는 또다시 오 할의 위력이 더 상승해 있었기에 검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풍백이 황급히 자신을 노리는 염평의 검을 향해 벽공장을 십여 번에 걸쳐 펼쳤다.

퍼퍼퍼퍼퍼펑!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싸움에 참여도 하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마적삼이 귀를 막을 정도로 폭음은 시끄러웠다.

무려 십여 번의 벽공장을 펼쳤음에도 염평의 검을 막지 못했다. 입술을 깨문 풍백이 마지막으로 쌍장을 내밀어 염평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퍼엉!

또다시 폭음이 울리며 풍백의 몸이 주욱 밀려갔다. 허공에 몸을 띄운 상태였기에 풍백이 밀리는 거리는 더욱 길었다.

거의 이 장 정도로 날아간 풍백이 지면에 내려서고도 아직 해소하지 못한 검에 실린 내공에 몇 걸음을 더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쿵!

풍백의 앞에 발자국이 남았다. 검에 실린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의 족적은 거의 한 치 정도 푹 들어가 있었다.

“이제 그만 뒈져!”

염평이 한걸음에 쫓아와 다음 초식을 펼쳤다. 이번에는 염평의 검이 마치 환검인 것처럼 몇 개의 검영을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도 검에는 또다시 오 할의 힘이 더 늘어나 있는 것이 대단했다.

염평은 이것이 이 싸움의 끝이라고 확신했다. 방금 전까지 풍백은 자신이 헤엄쳐 호반까지 오는 동안 머릿속으로 그렸던 바로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자신을 향해 막대한 힘을 담고 쏟아지는 염평의 검을 올려다보는 풍백의 모습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런 생각은 틀렸다는 것을 말하듯이 풍백의 쌍수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세상을 찢을 것처럼 막강한 힘을 잔뜩 과시하며 쏟아지는 염평의 검과 마치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풍백의 쌍수가 부딪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여실히 보이는 듯했다.

염평은 얼굴에 비웃음을 지었다.

‘그래, 발악이라도 해 봐라! 그리고 절망하다가 죽어!’

검을 쥔 염평의 손아귀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런 염평의 눈에 풍백의 하늘거리는 듯한 수장이 자신의 검과 부딪치는 장면이 들어왔다.

손을 자르고 연이어 상체를 절반으로 자르는 모습을 직접 보며 절망에 빠질 풍백의 얼굴을 상상하던 염평의 귀에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쾅!

“크윽…….”

손아귀가 찢어질 듯이 아파 오며 하마터면 손에서 검을 놓칠 뻔했다. 서둘러 검파를 움켜쥔 염평의 눈에 풍백이 쌍수를 팔랑거리듯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길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랑거철(螳螂拒轍)처럼 보였던 풍백의 쌍수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거력과 함께 깊은 무리가 느껴졌다.

염평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바로 풍백의 가슴에 있는 옥당혈(玉堂穴)을 향해 검을 찔러 갔다.

그리고 검 끝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여섯 개로 분열하며 천돌(天突)부터 중정(中庭)을 지나 배 쪽에 있는 수분(水分)까지 광범위한 부위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번 초식은 또다시 위력이 오 할 정도 더 늘어나 있었다.

이 정도 되니 이제 염평이 펼치는 태산십삼검은 절대 일류고수가 펼치는 무공의 위력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실제로 염평은 이제 이 이상의 초식을 펼칠 수도 없었다.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심득이 부족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신했다. 결국 일류고수 수준인 풍백이 자신의 한 수를 받아 낼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말이다.

그때 팔랑거리는 꽃잎과 같았던 풍백의 수장이 순식간에 기세가 달라졌다.

몸을 회전시키며 현란하게 움직이는 수장은 봄날의 꽃잎이 아니라, 마치 폭풍 속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화려한 난폭함은 상대하는 염평조차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풍백의 폭우와 같은 수장이 염평의 검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다당!

요란한 소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수장과 병장기가 부딪치는 중임에도 소리는 병기와 병기가 부딪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염평의 검은 풍백의 수장과 몇 번 부딪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미 그 기세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오로지 살기 위한 버둥거림에서 나온 염평의 발버둥질이었다.

무려 수십 번을 격돌하고 나서야 염평은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그러곤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비릿한 선혈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내상은 입은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했고, 더 이상 내상을 심각하게 만들면 자신이 패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염평은 이미 알았다.

‘이 싸움은 승산이 없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 위력의 태산십삼검을 발휘했음에도 풍백은 전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자신을 압박하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방법은 얼마 없었다.

‘내상을 입든지 말든지, 다음 초식까지 펼쳐야 해!’

아직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다음 초식을 펼칠 수 있다면, 다시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용할 방법이 있었다.

염평이 다음 초식을 펼칠 준비를 하며 입술을 달싹이며 마적삼에게 전음을 보냈다.

[뒤에서 암습해!]

마적삼은 염평의 전음을 듣고 움찔했다.

직접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자신이 절대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자신은 꽤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가 아니던가.

이런 마적삼의 망설임을 알아챘는지 염평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 미련한…… 내가 지면 네놈도 여기서 살아남지 못해!]

[……당신도 나를 살려 두지 않을 생각이지 않소.]

비록 오해로 시작된 일이지만, 마적삼은 염평이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놈만 죽일 수 있다면, 네가 내게 했던 모든 짓을 용서하겠다!]

솔직히 마적삼은 염평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풍백이 이긴다면 자신은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테니까.

[약속을 지킬 거라 믿겠소.]

전음을 보낸 마적삼은 미세하게 움직여 풍백의 뒤로 이동했다. 염평이 무언가 대단한 한 수를 펼칠 것 같았으니, 풍백이 염평을 상대하느라 자신에 대한 방비가 약해지면 바로 뒤통수를 노릴 생각인 것이다.

풍백은 두 사람이 이런 작당 모의를 했다는 걸 모르는지, 눈앞에서 심상치 않은 기세를 흘리고 있는 염평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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