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81화
마치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풍백의 발언과 손짓은 충분히 마적삼을 도발하고 있었다.
“감히……! 죽어라!”
마적삼은 숨기고 있던 모든 것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보법부터가 이전과 달랐다. 그리고 마적삼의 손짓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기세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빠르게 풍백에게 접근한 마적삼이 양손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풍백을 긁어 갔다. 그의 갈고리 같은 손에서 풍기는 날카로움은 어지간한 병장기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기세를 보고도 풍백은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고, 이전처럼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따다다당!
마적삼의 조법과 풍백의 수장이 부딪치는 소리는 흡사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난폭하게 움직이는 조법을 상대로 풍백의 수장은 간신히 버티고만 있는 것처럼 보였고 조금만 지나면 곧 갈가리 찢길 것처럼 같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크으윽…… 뭐냐, 대체!’
풍백의 수장은 보이는 것과 달리 막대한 내공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조법과 부딪치는 순간, 그 웅혼한 내공에 조법을 펼치는 손끝에 통증이 서서히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를 악문 마적삼은 풍백이 펼친 초식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걸 포기하고 쪼그려 앉듯이 몸을 숙이며 풍백의 하체를 긁어 갔다. 풍백이 뒤로 물러서면 연속해서 펼치는 연환격으로 승기를 잡아 갈 궁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풍백은 자신의 하체를 쓸어 오는 조법을 보고 피하는 걸 선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볍게 지면을 구르며 몸을 띄우는 걸로 마적삼의 조법을 피하면서 동시에 폭풍처럼 발차기를 날렸다.
군부에서 배웠던 광풍퇴(狂風腿)라는 삼류무공이었다. 비록 삼류무공이지만, 너무 적절한 상황에 튀어나왔기 때문인지 마적삼은 자신을 얼굴을 향해 무공의 이름처럼 광풍같이 날아오는 퇴법에 깜짝 놀라서 펄쩍 뛰며 뒤로 물러섰다.
풍백은 내려서기 무섭게, 물러서는 마적삼을 난화보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따라붙으며 그의 두 팔을 잡아 갔다. 이번에는 서문자건과 수장을 겨루며 펼쳤던 교룡금나수였다.
교룡금나수는 뛰어난 무공은 아니어도 방금 전 광풍퇴처럼 절묘한 순간에 펼쳤기에 마적삼은 한쪽 팔목을 잡힐 수밖에 없었다.
완맥을 잡힌 마적삼은 반신이 시큰해지는 느낌과 함께 제압된 것을 느끼고 황급히 나머지 한 손으로 탈명살조를 극성으로 펼쳤다.
풍백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 탈명살조를 봤지만, 그것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훤히 드러난 마적삼의 발목을 가볍게 걷어찼다.
어떤 무공이든지 하체가 안정되지 못하면 초식이 안정적으로 펼쳐지지 못한다.
마적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목을 걷어차인 마적삼이 공중에 붕 뜨자 펼치던 초식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풍백은 잡고 있던 마적삼의 팔목을 꺾었다. 그러자 팔목이 꺾이는 방향으로 마적삼의 신형 역시 빙글 돌아갔다.
만약 완맥이 제압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공중에서 신형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반신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는 마적삼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벌써 절정고수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꺾인 팔목을 따라 신형이 회전하며 마적삼은 지면을 향해 머리부터 떨어졌다.
꿍!
“커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마적삼의 눈앞에서 별이 번쩍했다. 머리에서 터지는 듯한 통증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눈을 가리고 있던 하얀빛이 사라지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을 향해 내지르고 있는 풍백의 장법이었다.
풍백의 육장에 담긴 힘은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렇게 누운 상태로 준비도 없이 받았다가는 무슨 꼴을 당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펑!
풍백의 장법이 지면을 두드리며 마치 화약이라도 터진 것처럼 흙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장법이 떨어졌던 자리에 있었어야 할 마적삼이 벌레처럼 데굴데굴 굴러 간신히 피한 것이다.
바닥을 굴러서 장법을 피한 마적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풍백은 그런 마적삼을 쫓아가 또다시 현란하게 무공을 쏟아 냈다.
지금 풍백이 펼치는 무공은 전부 군부에서 배웠던 무공들이었다.
교룡금나수나 요심수, 쇄옥장 등은 하나하나가 충분히 좋은 무공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적삼이 펼치는 탈명살조에 비할 무공이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싸움은 오히려 풍백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꼴이었다.
현란하게 무공을 쏟아 내는 풍백의 입가에는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군부에서 배운 무공들도 위력이 확실히 늘어났어.’
흔히 강호에서 하는 말 중에, 고수가 펼치는 삼재검법(三才劍法)과 하수가 펼치는 삼재검법은 완전히 다른 무공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낮은 수준의 무공이라고 하더라도 고수가 자신의 심득을 녹여 내서 펼치는 삼재검법은 하수가 비급에 적힌 대로 펼치는 삼재검법보다 훨씬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풍백이 그런 상황이었다.
풍백은 곧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의 무공 수준은 이미 군부에 있었을 당시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렇게 무공이 높아지며 이전에 배웠던 무공들 역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해석을 하며 더욱 깊은 무리를 담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퍼퍼펑!
마적삼의 조법을 구렁이처럼 피해 낸 풍백의 쇄옥장이 가슴에 삼장을 박아 넣었다.
쿵! 쿵! 쿵! 쿵!
커다란 소리를 내며 네 걸음이나 물러선 마적삼의 앞에는 그가 물러선 족적(足跡)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목을 타고 비릿한 선혈이 넘어오는 것을 느낀 마적삼이 어떻게든 피를 토하지 않기 위해 숨까지 참으며 막으려고 했다. 내상을 입고 올라오는 선혈을 그대로 내뱉으면 더 극심한 내상을 입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쿨럭!”
결국 입을 통해 밖으로 기침과 굵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답답한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마적삼을 향해 풍백이 마지막 일격을 넣기 위해 요심수를 펼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마적삼은 방금 전 선혈을 토하며 내기가 막혀 풍백의 수장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만이라도 있으면 막힌 내기를 다시 돌릴 수 있겠건만, 풍백은 그런 여유를 가지게 놔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제기랄…… 어쩐지 이번 의뢰는 느낌이 싸하다 싶었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마적삼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마적삼의 귀에 누군가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이 개 같은 노옴!”
그리고 곧 풍백의 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마적삼은 나타난 사람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뭐야? 호위무사…… 아니야?’
갑자기 나타나 풍백에게 일검을 날린 사람은 다름 아닌 염평이었다.
풍백은 뒤에서 급작스럽게 날아온 공세에 가볍게 혀를 차고는 보법의 방향을 바꿔 옆으로 피하다가 지면을 박차고 훌쩍 뒤로 날아올라 염평의 공세를 피했다.
사뿐히 지면에 내려선 풍백이 염평을 바라봤다. 그리고 풍백의 얼굴에 실소가 떠올랐다.
염평은 온몸으로 크게 낭패를 봤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물에서 나왔기에 흠뻑 젖은 건 당연했고,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으며, 찢어진 옷 사이로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했다.
혈도를 점해 놨는지 피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워낙 상처가 많기에 조금씩 흐르는 피라고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
“꽤 낭패를 본 모양이오.”
얼굴에 환히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풍백의 모습은 노골적인 조롱과 다름이 없었다.
염평은 그런 풍백을 보며 이를 뿌득뿌득 갈 수밖에 없었다.
이십여 명의 청사파 무사에게 둘러싸인 염평은 결정을 해야 했다.
‘승부를 봐야 해!’
이대로 있다가는 사냥을 당하는 짐승처럼 조금씩 상처를 입다가 지쳐서 죽어 갈 것이 분명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염평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육참골단(肉斬骨斷,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이었다.
이때부터 염평은 무사들이 공세를 펼치면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끌어들여 확실하게 죽여 갔다. 상처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무사들 역시 목숨을 잃어 가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거의 스무 명에 가까운 무사를 죽이고 나서야 살아남은 무사들이 도망쳤다.
그제야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염평은 풍백과 마적삼이 싸우는 걸 볼 수 있었다.
“미련한 새끼들…… 결국 저놈들도 적풍백을 노리던 것이었구나!”
염평은 이제야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똑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왔다가 서로를 오해해서 싸웠다는 것을 말이다.
상황 파악이 끝난 염평은 천천히 풍백이 있는 곳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몸에 상처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싸우지 못할 정도로 다친 것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육참골단의 방법을 사용했을 뿐, 내공을 과도하게 소모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신에게 비웃음을 날리던 풍백의 목을 비틀어 버리지 않으면 복장이 터져 죽어 버릴 것 같았다.
물론 염평이 단순히 복수심만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호반으로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헤엄쳐 가면서 염평의 눈은 예리하게 풍백과 마적삼이 싸우는 걸 지켜보며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저 멍청한 놈은 일류고수 수준이고, 적풍백도 일류고수다. 하지만…… 펼치는 무공은 그리 대단치 않은 무공이야.’
풍백이 펼치는 무공들이 흔히 아무 곳에서나 구할 수 있는 그런 무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대단한 절공이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대신 몇 가지 무공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능력은 충분히 박수를 쳐 줄 만했다.
그에 비하여 자신이 익힌 태산십삼검(泰山十三劍)은 강호에서도 알아주는 절공이었다.
중원오악(中原五岳)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에는 과거 태산파(泰山派)라는 문파가 있었다.
태산파는 비록 구파일방에 속할 정도는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바로 아래에 위치할 때가 있었을 정도로 강호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문파였다.
그랬던 태산파가 모종의 사건으로 무너지면서 태산파의 무공이 강호로 흘러나오게 됐는데, 염평이 익힌 태산십삼검이 바로 이 태산파의 절공 중 하나였다. 한때 강호십검(江湖十劍) 중 하나로 손꼽혔던 고수의 성명절학이 태산십삼검이기도 했다.
물론 염평이 그 정도 고수는 아니었다. 태산십삼검을 익히기는 했어도 독문내공심법을 익히지는 못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에도 태산십삼검은 대단한 절공이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염평은 자신이 풍백과 싸운다면 지금 그가 펼치는 허접한 무공 정도는 초식으로 충분히 눌러 버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먼저 적풍백 저놈을 죽이고, 너는 그다음이다…….’
염평은 마적삼을 보면서 살기를 뿜었다.
오해로 시작된 싸움이라고 하더라도 염평은 하마터면 이류무인에 불과한 무사들에게 개죽임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제대로 무공도 펼치지 못하고 말이다.
이런 더러운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 마적삼을 살려 둘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호반에 도착한 염평의 눈에 내상을 입고 입에서 피를 토하는 마적삼과 그런 마적삼을 끝장내기 위해 장법을 펼치고 있는 풍백이 들어왔다.
염평은 풍백이 마적삼을 죽이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마적삼 역시 자신이 죽여야 했다.
“이 개 같은 노옴!”
바로 고함을 지르며 지면을 박찬 염평이 풍백의 뒤통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암습하듯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마적삼을 죽이지 못하게 견제하려는 것이다.
‘쉽게 죽일 수는 없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도록 만들어 주겠다.’
그렇기에 풍백이 마지막 일격을 포기하고 거리를 벌리는 것을 보면서도 쫓아가지 않았다. 이미 자신이 물속이 아닌 땅을 밟고 있는 이상, 풍백은 죽은 목숨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풍백은 이런 깊은 마음도 모르고 감히 자신의 낭패한 몰골을 보더니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꽤 낭패를 본 모양이오.”
이가 절로 뿌득뿌득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