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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80화 (80/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80화

마적삼은 가장 멀리서 상황을 판단하고 간혹 무사들에게 정해진 신호를 보냈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야.’

그런 마적삼이 염평을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솔직히 염평이 물 밖으로 솟구쳐 엄청난 경공을 선보였을 때는 마적삼도 입을 쩍 벌릴 정도로 놀랐다. 아마 지상에서 싸우는 것이었다면 일류고수인 마적삼조차 혼자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것을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하는 것인가?

이렇게 대단한 무공을 가진 염평이 물속에서는 우스울 정도로 쉬운 상대였다. 물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물속에서 벌이는 싸움에 익숙해 보이지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무사들이 전혀 다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정도 고수를 저 정도 손해로 잡아낸다는 건 대단히 운이 좋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염평을 청사파 무사들이 잡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 마적삼이 목표인 풍백을 찾았다.

어차피 풍백은 무공도 모르는 상인이었다. 그러니 염평을 묶어 놓은 지금이라면 너무나 쉽게 처리가 가능했다.

‘저기 있군.’

풍백은 물속에서 염평이 당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호위무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 보며 크게 당황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의뢰를 끝내기 위해 직접 가서 끝장을 내려고 했는데, 마침 두 명의 무사가 풍백에게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끝났군.’

당연히 풍백이 죽을 거라고 생각한 마적삼은 이번 의뢰가 너무 어려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단지 상인 하나 죽이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쉽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일을 치러 보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히 의뢰비가 비싼 것이 아니었어.’

오늘 무사들이 제법 죽었으니, 손실이 난 전력을 다시 메우기 위해 당분간은 몸을 좀 사려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던 마적삼의 눈에 풍백이 끔찍할 정도로 익숙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더니 무사 하나의 목을 꺾어 버리는 것이 들어왔다.

‘……어?’

나머지 무사가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나 풍백은 유유히 그런 무사를 쫓아가 머리통을 붙잡고 한 바퀴 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솔직히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풍백이 보여 준 한 수는 절대 무공이 아니었다. 그저…… 물에 너무 익숙한 것일 뿐이다.

‘좆됐다! 빨리 후퇴를…….’

깜짝 놀란 마적삼이 후퇴를 명하려고 했다.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풍백이 염평을 노리는 무사들의 후방에서 공격을 하면, 순식간에 청사파 무인들이 모두 몰살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풍백은 염평을 공격하는 청사파 무사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유유히 서호 밖을 향해 헤엄치고 있었다.

‘뭐지? 왜 돕지를 않는 거지? 혹시…… 두려워서 그러는 건가?’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풍백이 무사 두 명의 숨통을 끊는 모습이 너무 거리낌 없어 보였었다.

잠시 고민하던 마적산은 곧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무사들 일부를 불러들이면 염평을 상대할 인원이 부족해질 수 있었다. 염평이 풀려나는 위험을 감수하느니 직접 풍백을 처리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 맞았다.

대신 물속에서 싸울 생각은 버렸다.

잘못하면 지금 염평이 당하는 것을 자신이 풍백에게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 무공은 분명히 모른다고 했었어.’

방금 보여 준 것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청해상방에서 보내는 자료와 직접 조사한 바에 따르면 풍백은 무공을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그저 어디서 배운 건지, 아니면 타고난 것인지 물속에서 끝내주는 모습을 보여 줬을 뿐이다.

그리고 만약…… 아주 만약에 풍백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염평의 호위를 받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염평보다는 약할 것 아닌가.

마적삼은 풍백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서호 호반 중에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한 풍백은 호수 밖으로 나와 혀를 찼다.

“쯧…… 옷은 새로 하나 사야겠는데?”

옷이 물에 푹 젖어 거추장스러웠다. 겉옷을 벗어 대충 한쪽에 내려놓은 풍백이 몸을 푸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뼈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던 풍백이 호수 쪽을 바라봤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조용하고 아름다운 서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염평이 이십여 명의 무사들을 상대로 생사결을 치르는 중이라는 것이 묘하게 다가왔다.

‘살아 나올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은 염평에게 이십여 명의 무사들이 상처 입은 짐승을 노리는 식인어처럼 몰려드는 것이었다.

단순히 봤을 때는 염평이 살아 나올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염평은 고수였다. 아무리 물속에서 움직임이 제약적이라고 하더라도 무작정 죽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어쩌면 살아서 나올지도 모르지.”

나지막하게 말한 풍백이 수풀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그러나 수풀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풍백은 여전히 수풀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거기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물속에서 따라올 때부터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괜히 숨어 있지 말고 나오는 게 어때?”

그러자 잠시 후 수풀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한 사람이 일어났다.

마적삼이었다.

최대한 소리도 없이 호반에 올라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마적삼은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빠르게 풍백을 죽일 생각이었다.

풍백이 당연히 무공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모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취했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풍백이 이렇게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하니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 더 나았다.

‘망할…… 이 새끼 무공을 익히고 있다!’

굳이 깊게 이것저것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만약 무공을 모른다면 풍백이 이렇게 여유롭게 서 있을 리가 없었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지 도망치려고 했겠지.

마적삼은 수풀 밖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놀랍군. 단순히 지방에 있는 중소 상방의 상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내가 원래 좀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편이지. 그보다 너는 누구 의뢰를 받고 왔을까?”

“그냥 너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뭘 그렇게 숨기려고 해? 어차피 청해상방의 늙은이가 의뢰했을 텐데.”

풍백의 말에 마적삼 역시 미세하지만 반응을 했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질 않네.’

어차피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청해상방이든지 영파상방이든지, 오늘 벌인 일에 대한 대가는 곧 받게 될 것이다.

마적삼은 그런 풍백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손해가 막심하군.”

처음에는 비싼 의뢰비를 받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수인 염평부터 잘못된 정보, 무공을 익힌 풍백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손해처럼 느껴졌다.

마적삼은 의뢰가 실패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풍백이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강할 리는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슬슬 시작하려고?”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말을 마친 마적삼이 손에 들고 있는 분수도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분수도는 물속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병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 밖에서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물 밖에서는 일반 도와 비슷한 것이 분수도였다.

그런 마적삼을 보며 풍백이 두 손을 펼쳤다.

“나는 무기가 없는데, 남는 무기가 있으면 하나쯤 건네주지?”

너스레를 떠는 풍백을 보며 눈을 예리하게 뜬 마적삼이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다가와 분수도를 휘둘렀다.

쉐에엑!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분수도는 당장 풍백을 두 쪽으로 가를 것처럼 사선으로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풍백은 그런 분수도의 움직임에 가볍게 난화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분수도는 그런 풍백의 앞을 가르고 지나갔다.

‘역시 무공을 익히고 있어!’

놀라지는 않았다. 어차피 풍백이 무공을 익히고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금 전 한 수가 단순히 시험을 하기 위한 수였다고 하더라도 너무 수월하게 피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풍백이 무공이 생각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집중…….’

마적삼이 뒤로 물러서는 풍백을 따라 빠르게 접근하며 분수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초식을 사용했는지, 분수도는 현란한 궤적을 만들어 내며 풍백의 눈을 가리고 어깨로 떨어져 내렸다.

지면을 박차고 뒤로 크게 한 바퀴 돌며 분수도를 피한 풍백의 움직임에 마적삼이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빠르게 풍백에게 접근하며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풍백의 빠른 보법에 분수도는 계속해서 허공을 가르고 지나갈 뿐이었다.

분수도를 피하던 풍백이 가볍게 웃었다.

“훗!”

생각보다 마적삼의 도법이 대단치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무언가 생각한 풍백이 뒤로 물러서던 것을 멈췄다. 그런 풍백의 머리 위로 분수도가 몇 개의 도영(刀影)을 만들어 내며 비처럼 쏟아졌다.

가만히 서서 분수도가 떨어지던 것을 지켜보던 풍백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단 한 걸음이었지만, 난화보의 묘리가 섞였기에 그 속도는 대단했다.

한 걸음에 마적삼과 풍백 사이의 간극(間隙)이 사라졌다.

풍백은 한 손을 들어 떨어지는 분수도의 검파 부분을 잡으려고 하면서, 다른 한 손은 군부에서 배웠던 쇄옥장을 펼쳤다.

그 순간, 마적삼이 눈을 빛내더니 분수도를 놓고 검파를 잡았던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더니 풍백의 머리를 긁어 왔다.

마적삼이 펼친 조법(爪法)은 분수도로 펼치던 도법에 담겨 있던 힘과 완전히 달랐다.

도법이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었다. 단지 지금 펼친 조법에는 분수도에는 담겨 있지 않았던 범상치 않은 느낌이 서려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조법을 보고 풍백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일류고수가 사용하는 도법이라 하기에는 조금 애매했었다. 그렇기에 진신절학은 따로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분수도를 휘두른 마적삼에게 뛰어든 것이다.

풍백은 장법을 수법으로 바꾸며 팔을 떨쳤다.

땅!

먼저 마적삼이 손에서 놨던 분수도가 풍백의 수장에 부딪치더니 맑은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분수도를 튕겨 낸 풍백의 수장이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마적삼의 조법과 부딪쳤다.

파바바박!

두 사람의 손이 순식간에 대여섯 번 부딪쳤다.

마적삼은 뒤로 훌쩍 몸을 뺐다. 지면에 내려선 마적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마적삼의 눈은 자신의 조법을 막아 낸 풍백의 손을 향해 있었다.

‘흔적…… 도 없어?’

지금 마적삼이 펼쳤던 조법은 탈명살조(奪命殺爪)라 불리는 무공이었다. 마적삼은 탈명살조를 배운 이후로 자신의 손과 부딪치고 저렇게 멀쩡한 손을 본 적이 없었다.

탈명살조는 살벌한 이름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사람의 육장(肉掌)은 물론이고, 하수의 경우에는 병장기마저 마적삼의 손아귀에서 비틀리고 구멍이 났었다.

그렇기에 마적삼이 탈명살조에 갖는 믿음은 대단했다.

심지어 마적삼은 탈명살조로 확실한 우위를 받아 내기 위해 분수도를 사용하는 것처럼 위장까지 했었지 않던가.

그런데 풍백은 이런 탈명살조를 받아 내는 것도 모자라 손에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 말은 지금 눈앞에 있는 풍백이 어쩌면…… 지금껏 만나 보지 못한 수준의 고수일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마적삼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딱 한 수를 교환했을 뿐이다. 이 정도로 겁을 먹고 도망친다?

아마 그렇게 살아왔다면 마적삼은 벌써 어디선가 죽었든지, 아니면 무공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도망가려고 한다면, 풍백이 가만히 지켜볼까?

풍백은 지금까지 자신의 무공을 숨기고 있던 놈이었다. 그런 풍백이 자신을 도망치게 놔둘 리가 없었다.

‘결국은 생사결을 나눠야 한다는 것!’

마음을 다잡고 있는 마적삼을 보고 풍백이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다시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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