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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79화 (79/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79화

그 소리를 들은 염평은 풍백에게 달려들 생각을 접었다.

염평이 물에서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은 깜짝 놀랄 정도로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수공을 익힌 사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특히 지금 청사파 무사들은 분수도에 분수자를 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물속에 빠져서 수중에서 싸우게 된다면 물의 저항에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건 검을 사용하는 염평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였다.

‘제기랄…… 무사를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무사들이 이들을 막아 내는 사이에 적어도 풍백을 인질로 삼든지, 아니면 서둘러 목을 자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지금은 이 불청객들이 배에 구멍을 내는 걸 막아야 했다.

풍백은 배에 구멍을 뚫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이야. 상대를 내가 유리한 곳으로 끌어내는 건 필수지.’

지켜보고 있던 풍백 역시 청사파 무사들이 기껏해야 이류무인 수준이라는 걸 알아봤다. 하지만 만약 배가 가라앉고 물속에서 싸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사람들은 무공이 강한 일류고수가 이류무인과 물속에서 싸우면 당연히 일류고수가 이긴다고 생각한다.

이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물속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자신보다 훨씬 약한 사람에게도 목숨을 빼앗길 수 있었다.

심지어는 강호에서 명성이 높았던 절정고수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바람에 황하(黃河)에서 익사를 하는 일이 발생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청사파 무사들이 물 밖에서는 이류무인, 삼류무사라 불릴지 몰라도 물속에서는 일류고수보다 무서운 실력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염평이 배에 구멍이 뚫리는 걸 막기 위해 중구난방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상대적으로 청사파 무사들에게 여유가 생겼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기만 하더라도 염평이 뛰어왔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그러자 슬슬 청사파 무사들이 물속에서 풍백이 있는 뱃고물을 향해 다가왔다.

풍백은 히죽 웃으며 노를 저었다. 그러자 배가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점점 속도를 높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풍백에게 다가가려던 청사파 무사들은 배가 움직이니 그걸 따라 바삐 수영하다 결국 숨이 막혀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귀에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았다, 요놈!”

딱!

풍백이 쥐고 있던 노가 머리통을 때리고 지나가자 머리를 맞은 청사파 무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으며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죽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그를 구해 주지 않으면 이대로 익사할 것이다.

청사파 무사 하나를 잡은 풍백이 노를 마치 봉처럼 붕붕 돌리더니 반대쪽에서 튀어나오던 무사의 머리를 정확히 두드렸다.

딱!

“끄응…….”

이번에도 머리를 맞은 무사는 어김없이 정신을 잃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슬금슬금 움직이며 고개를 내미는 무사들을 때려잡는 풍백의 행태에 따라오던 청사파 무사들이 이를 갈았다.

차라리 염평처럼 압도적으로 무공이 강한 거라면 모르겠는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찰나를 노려 머리를 후려갈기는 풍백의 수는 꽤 열 받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청사파 무사들은 풍백을 노리는 걸 포기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배를 완전히 침몰시킨 다음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풍백을 죽이는 방법이 더 쉬웠다.

그리고 잠시 후, 뱃바닥에서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빠직!

“제기랄!”

염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솔직히 그가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배를 온전히 두면서 청사파 무사들을 막으려면 물속으로 들어가 직접 싸워야 했는데, 그럴 거라면 뭐하러 배가 침몰하는 걸 막겠는가?

무언가 결심한 염평이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는 곳으로 오더니 검을 들고 잠시 대기했다. 그리고 다시 뱃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를 악물고 검을 깊숙이 박았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이 박힌 자리로 피가 배어 나왔다.

한 명을 죽였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오히려 바닥이 구멍투성이가 되어 자신의 손으로 배를 침몰시킬 것이다.

하지만 염평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검을 다시 뽑은 염평이 배의 좌현과 우현의 나무들을 발로 차고 다녔다.

콰직! 콰직! 콰지직!

현측이 부서진 것 정도로 배가 침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침몰하는 대신 염평의 발에 차인 부분은 큼직하게 찢겨 호수 위에 떠다녔다.

‘제멋대로 오해하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염평은 배가 침몰할 상황을 예상하며 미리 물 위에서 버틸 수 있는 조각을 띄워 놓으려는 생각인 듯했다.

풍백은 히죽 웃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한다면?’

풍백이 손에 쥐고 있던 노를 힘차게 저었다. 그러자 그가 노를 저을 때마다 배가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주변에 뿌려졌던 나뭇조각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걸 본 염평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죽일 놈! 당장 네놈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오랜만에 물속에서 청사파 무사들이 튀어나와 염평을 공격했다. 아무래도 청사파 무사들은 풍백이 배를 몰고 도망칠 생각이라 예상한 것 같았다.

다시 바삐 검을 휘두르며 청사파 무사들과 드잡이질을 시작하는 염평을 보고 풍백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한쪽에서는 염평이 청사파 무사들과 병장기를 휘두르고 있고, 뱃바닥에서는 나무가 쪼개지는 소리가 계속되는 와중에 배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위험한 소리가 났다.

콰지지직!

요란한 소리와 함께 뱃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제기랄!”

염평이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었다. 풍백은 그런 염평을 보며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주먹감자를 먹여 보였다.

그걸 본 염평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가 무언가를 할 여지가 없었다. 당장 배가 침몰하고 있었고, 물이 벌써 종아리를 적시고 있었다.

어차피 배가 부숴졌기 때문일까?

염평은 한쪽 발을 들어 힘껏 진각을 밟았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염평이 진각을 내지른 곳을 기준으로 배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 탓에 염평이 바로 물에 빠졌지만, 대신 배가 부서지며 제법 큼직한 나뭇가지들이 물 위를 떠다녔다.

염평은 자신이 물에 빠졌다는 걸 자각하자마자 바로 물속으로 깊게 들어갔다.

몸이 물속에 잠겨 있는 상황에서 얼굴만 수면 위로 내놓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이 없었다. 물 위에 얼굴을 내놓고 있다는 건, 수면 아래에서 들어오는 공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말이니까.

그렇기에 수중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수면 밖에 내놓고 있다가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물속으로 들어가니 이제야 자신을 공격하던 청사파 무사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배 위에서 꽤 많이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거의 서른 명에 가까운 무사들이 헤엄치며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망할…… 어피로 된 옷까지 챙겨 입고 있군.’

아무래도 오늘은 길(吉)보다 흉(凶)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청사파의 무사들이 유려하게 헤엄치며 다가오고 있었다.

염평은 가장 앞에서 달려드는 무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물속에서 휘두르는 염평의 검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무사는 손을 휘저으며 속도를 줄였고, 그런 무사의 앞으로 염평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훤하게 노출된 염평의 뒤에서 두 명의 무사들이 빠르게 접근해 분수도를 휘둘렀다.

염평이 황급히 몸을 돌려 분수도를 막아 냈다. 그러자 방금 전 잠시 멈췄던 무사가 다시 빠르게 헤엄쳐 분수자를 이용해 염평의 옆구리에 제법 깊숙한 자상(刺傷)을 남겼다.

‘이 개 같은 것들이!’

크게 분노한 염평이 난폭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걸 본 청사방 무사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섰으나 조금 늦게 움직였던 무사 하나는 상체가 두 동강이 나며 서호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동료가 눈앞에서 죽고, 눈앞이 피로 물들었기 때문일까?

청사방의 무사들은 잔혹하게 죽은 동료를 보고도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더욱 혈안이 되어 염평을 공격해 갔다.

물속에서 싸움은 지상과 달랐다. 사방에서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와 다리 아래에서도 달려들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방향에서 달려드는 청사방의 공세에 염평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염평과 청사방 무사들의 싸움은 흡사 거대하고 흉포한 육식 동물 한 마리를 수십 마리의 늑대가 달려들어 천천히 상처를 내며 사냥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염평은 큰 중상은 입지는 않았지만, 점점 자잘한 상처가 늘어나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입술을 깨문 염평이 빠르게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푸학!

수면 위로 염평이 튀어 올라왔다. 그런 염평의 발밑으로는 그를 쫓아 물 위로 튀어 올라온 수 명의 청사방 무사들이 분수자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리가 분수자에 난자될 상황이었다.

“어림없다!”

염평이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며 허공에서 거꾸로 서더니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나온 염평의 검은 절정을 바라보는 일류고수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서거걱!

챙!

채챙!

순식간에 목이나 상체를 베인 청사방 무사 네 명이 피로 된 비를 뿌리며 떨어졌고, 두 명이 간신히 염평의 검을 막고 다시 수면으로 떨어져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염평은 분수자와 부딪친 힘을 이용해 다시 한번 공중제비를 돌더니 수면 위에 떠 있는 배 잔해 위로 떨어졌다.

툭!

가볍게 배 잔해를 박찬 염평은 또다시 허공에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가 밟았던 배 잔해는 물속에서 나온 분수자에 의해 산산이 찢겨 사라졌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지상에서는 자신의 검 한 번 받지도 못할 놈들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염평은 귀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곳에서는 염평이 약자였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겠어!’

이제 풍백을 죽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가 자신이 죽게 생겼다.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서호에는 몇 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하다는 삼담인월(三潭印月)이 지금 염평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웠다. 거리로 말하면 약 십 장만 어떻게 가면 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삼담인월까지 밟고 갈 나무 널판이나 배 잔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저 앞에 있는 배 잔해를 이용하면 최대 오 장은 이동할 수가 있어!’

염평은 허공에서 몸을 한 번 비틀어 배 잔해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경공을 펼치기 위해 준비를 하며 배 잔해로 떨어지는데, 막 밟으려는 배 잔해가 분수도와 분수자에 의해 부서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빌어먹을!”

분노의 고함을 지르며 물에 빠진 염평이 다급히 사방을 둘러봤다. 사방은 물론이고, 발아래에서도 분수도와 분수자를 예리한 이빨처럼 빛내며 청사방의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염평이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청사파 무인들의 병기를 피하는 것뿐이었다.

‘즐거워 보이네.’

풍백은 멀리서 염평이 청사파 무사들을 상대로 상처 입은 맹수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걸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염평이 발을 구르면서 배가 완전히 침몰했을 때, 풍백이 서 있던 뱃고물 부분은 그나마 상태가 온전해 조금 더 늦게 침몰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노를 세워 그 위에 올라가는 방법으로 최대한 늦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최대한 청사파 무사들이 염평에게 집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풍백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는지, 물속에 들어와 본 것은 염평을 향해 식인어처럼 몰려드는 청사파 무사들이었다.

‘저대로 둘이 알아서 싸우라고 놔두고 나는 슬슬 나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슬 움직이려는 풍백에게 청사파 무사 두 명이 물속에서 매끄럽게 움직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청사파 무사들은 서로 먼저 풍백을 죽이겠다는 것처럼 전력을 다해 헤엄치고 있었다.

풍백은 가만히 물속에서 다가오는 청사파 무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사파 무사 두 명 중 앞서 있던 무사가 풍백이 분수자가 닿는 범위에 들어왔다고 판단하고 힘껏 찔러 갔다.

그 순간, 풍백이 마치 교룡(蛟龍)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분수자를 피하더니 유영하듯 움직여 무사의 뒤로 돌아가 목을 잡고 비틀었다.

우드득!

그걸 본 나머지 무사 하나가 화들짝 놀라 급히 움직이던 방향을 틀었다.

‘미친…… 우리보다 훨씬 물에 익숙한 놈이다!’

그러나 무사가 반 장도 채 움직이기 전에 목이 자신의 의지와 달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

물속에서 뭐라 말하려 했는지, 입에서 거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무사의 목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아갔다.

순식간에 무사 두 명을 처리한 풍백은 피식 웃었다.

‘내가 물속에서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안다면 이렇게 달려들지 않았을 텐데.’

풍백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만약 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물속에서라면 청사파 전체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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