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78화
서호 호반(湖畔)에 일단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청사파의 무사들이었다.
무사들이 모두 호반에 도착하자, 마적삼이 보고를 하러 달려왔던 사내에게 물었다.
“그래서 적풍백이라는 놈이 어디에 있지?”
“저, 저기에 있는 배에 있습니다!”
마적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멀리 있는 배 위를 바라봤다. 그런데 바라보던 마적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 명이잖아.”
“그, 그러네요?”
어벙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내의 말에 마적삼이 하마터면 주먹을 들어 올릴 뻔했다.
“뭐가 그렇습니다야! 왜 두 명이야? 혼자라며? 혼자 서호에서 뱃놀이를 나갔다고 했잖아!”
“부, 분명 그, 그랬는데…… 한 명은 누굴까…… 요?”
빡!
“억! 내 눈!”
결국 분노한 마적삼에게 한 대 얻어맞은 사내가 눈을 부여잡고 뒹굴었다.
마적삼은 그런 사내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인상을 쓰며 풍백이 타고 있는 배를 노려봤다.
지금은 청사파에게 너무나 유리한 상황이었다.
청사파는 항주 아래에 있는 부양현(富陽縣)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양현의 옆에는 바닷길이 들어와 있어서 수공에 능했다.
마적삼은 청사파 무사들을 바라봤다. 무사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분수도(分水刀)와 분수자(分水刺)가 들려 있었다. 분수도와 분수자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생긴 무기들이었다.
마적삼은 풍백이 같이 있는 사람이 아마도 고우길일 거라 예상했다.
처음부터 호위무사인 고우길이 풍백을 혼자 놔두고 서문세가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됐었다. 아마도 모종의 일 때문에 잠시 풍백을 혼자 놔뒀을 뿐이고, 감시하던 무사가 보고를 하기 위해 돌아가고 난 이후 다시 풍백에게 합류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봤자 죽여야 할 놈이 한 명 늘어났을 뿐이야.’
호위무사의 무공이 꽤 대단하다는 것 같지만, 그래 봐야 상단 호위무사일 뿐이다. 그리고 물 위는 청사파의 주전장(主戰場)이었다.
“지금부터 물속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접근한다. 그리고 저 배에 타고 있는 두 놈을 모두 죽이는 거다. 이해 못한 멍청한 놈이 있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풍백이 타고 있는 배를 바라보며 전의를 돋우면서 겉옷을 벗고 있을 뿐이다. 겉옷을 벗은 무사들은 하나같이 물속에서 움직이기 좋은 어피(魚皮)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마적삼이 손을 앞으로 뻗자 청사파 무사들이 소리를 죽이며 서호 속으로 사라졌다. 마적삼은 가장 마지막으로 서호에 몸을 던졌다.
* * *
풍백이 과거 부대에서 가장 많이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미행이다. 아무래도 수행하는 임무의 특성상 미행은 그냥 생활과 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풍백은 자신을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금세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굳이 언제 눈치를 챘냐고 묻는다면, 대략 서문세가에서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사실 미행을 하는 방법의 기본은 아주 간단하다.
대략 육 장에서 십오 장 후방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건 당연하고, 보행 속도는 감시하는 대상과 비슷하게 유지해야 했다.
너무 빠르거나 느리면 상대가 감시자를 의식할 수 있다. 그렇게 의식을 한 번 하게 되면 미행은 절반 정도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미행 대상과 눈이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지만, 굳이 그걸 의식하며 눈을 피하면 그게 더 대상의 의심을 살 수 있다. 만약 눈이 마주쳤다면, 차라리 적당한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만약 상대가 걸음을 멈췄다고 해서 굳이 따라 걷던 것을 멈출 필요는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연스럽게 대상을 지나쳐 걸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만약 상대를 완벽하게 미행할 생각이라면 감시자 혼자가 아니라 적어도 두 명에서 세 명이 교차하며 감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이다.
이것 외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미행을 할 때 상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평범한 복장을 갖추는 법부터 시선 처리 방법, 미행 대상의 동선를 예측하고 미행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 의심을 줄이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심층적인 방법까지 논할 필요도 없었다. 애당초 풍백을 미행하던 사람들은 기본적인 방법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자신을 미행 및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파악한 풍백은 그들이 어떤 의도로 미행하는지, 어디서 나온 사람들인지 살피며 성황각에서 식사를 했었다.
그러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를 노리는 것이다.’
자신을 노리는지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문약란이라는 엄청난 미인이 같이 있는데도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간단하게 자신을 노리는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확인이 끝난 풍백은 일행을 모두 돌려보냈다. 보아하니 여차하면 서문세가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이 있더라도 습격할 것 같은데, 괜한 위험에 왕삼이나 문약란 등을 노출시키느니 차라리 혼자 상대하는 것이 더 편했다.
염평은 풍백의 웃음에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내가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거지?”
“흠…… 달이 좋아서?”
“……제법 간이 크구나. 이런 상황에 농담을 던지는 걸 보면.”
“굳이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소?”
“하긴, 그 말도 틀리지 않군.”
염평의 목표는 풍백이었다. 그리고 풍백은 바로 자신의 앞에 있고 말이다.
또한 지금은 이곳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호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풍백과 자신, 단둘만이 있는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이유를 따지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면 내가 널 처리하려는 이유도 궁금하지 않겠구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소. 나를 죽이고 싶어 할 곳이 세 곳 정도 생각이 나니까 말이오.”
풍백이 떠올린 세 곳은 청해상방과 영파상방, 백건상방이었다. 세 상방 모두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염평은 일류고수, 그것도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수였다. 백건상방에 이 정도 고수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청해상방과 영파상방이었다.
‘그리고 청해상방에서 이 먼 곳까지 직접 날 암살할 고수를 보낸다고? 그럴 생각이었다면 진작 그랬겠지.’
몇 가지 가정만 해도 소거법을 이용해서 눈앞의 상대를 어디서 보낸 것인지 간단히 추측할 수 있었다.
“영파상방에서 호초를 빼앗긴 게 꽤 쓰렸던 모양인가 보군.”
풍백의 말에 염평은 미소를 지었다.
속이려고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풍백의 눈에는 염평이 영파상방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때 미세하게 보인 반응을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영파상방이 맞네.”
“글쎄, 과연 그럴까?”
“당신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이미 당신 얼굴에 다 드러났소. 영파상방이 상방의 탈을 쓰고 꽤 무림방파와 같은 일 처리를 좋아하네. 특이하군.”
염평은 풍백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구나.”
“어차피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다고 나를 죽이지 않을 건 아니지 않소?”
“그건 맞지. 그 덕분에 조금이라도 더 숨 쉴 시간을 줄이고 말았고.”
말을 마친 염평이 자신의 검파를 잡고 검을 뽑았다.
스르릉!
검집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풍백은 시큰둥한 얼굴로 염평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염평이 검을 뽑는 순간, 예상치 못한 변고(變故)가 일어났다.
물 위에 눈만 내놓고 청사파 무사들이 배에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마적삼은 염평이 검을 뽑는 것을 보고 인상을 썼다.
‘제기랄! 들켰다!’
마적삼은 염평이 자신들이 접근하는 걸 먼저 눈치채고 검을 뽑았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예상하고 있던 호위무사의 무공 수준을 조금 더 높게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마적삼은 곧 수하들을 향해 수신호로 명령을 내렸다.
- 호위무사를 먼저 죽여라!
풍백은 어차피 배를 타고 있는 이상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거나 다음이 없으니까.
촤아악!
“뭐, 뭐냐!”
천천히 풍백을 향해 다가가려던 염평은 갑자기 물속에서 두 명의 무사들이 튀어나와 분수자를 휘두르자 대경실색하며 황급히 검으로 막았다.
채챙!
한 번 공세를 펼쳤던 무사들은 다시 물속으로 자맥질해서 사라졌다.
염평이 급히 풍백을 바라봤다. 풍백은 묘한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 본 염평이 고함을 쳤다.
“이 교활한 놈! 함정이었구나!”
염평은 자신이 미행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풍백이 성황각을 나와 일행을 보내면서 무사들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수공에 능한 무사들을 말이다.
하긴 자신의 미행을 눈치챘으면서 호위무사마저 돌려보낸 풍백의 행보가 이상했던 염평이었다. 미행을 눈치챘으면 먼저 공격을 하든지, 아니면 서둘러 피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서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오히려 스스로를 미끼 삼아 자신을 불러들였다는 합리적인 결론을 낸 것이다.
대체 어디서 풍백이 이런 무사들을 구했는지 알지도 못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까.
염평의 고함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물속에서 청사파의 무사들이 연이어 솟구쳐 나와 분수도와 분수자를 휘둘렀다.
염평은 청사파 무사들의 공세를 막아 내면서 풍백에게 다가서려고 했다. 이 함정을 풍백이 팠으니, 풍백을 잡으면 청사파 무사들의 공세가 멈출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염평이 풍백에게 다가서려고 하자 청사파의 공세가 더욱 심해졌다.
청사파 무사들은 염평이 풍백을 지키기 위해 다가서려는 거라 판단하고 그를 막아서려 한 것이다.
“이 개 같은!”
‘뭐냐? 이 흥미진진한 전개는?’
풍백은 청사파의 공세를 받아 내느라 정신이 없는 염평을 보며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것이 두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습격을 대비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풍백은 습격할 수 있는 수단 자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처럼 호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면 풍백을 죽이거나 습격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은 오직 두 가지로 제한된다.
하나는 염평이 했던 것처럼 물 위로 배를 타고 접근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물속에서 접근하는 방법뿐이다. 그래서 하늘을 보는 척하며 물속에서 누가 접근하는지 감각을 예민하게 일으켜 감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감시하고 있는 와중에 접근한 염평이 풍백의 배에 올라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속에서 청사파가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을 노리고 접근한 두 곳이 서로를 적으로 인식해 공격할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청사파가 염평을 공격하는 걸 보면서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속에서 접근한 놈들은 염평이 내 일행이거나 호위무사 정도로 생각했겠군. 염평은 이곳이 함정이라고 생각했겠고.’
제법 즐거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염평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청사파를 향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크헉!”
“죽어…… 아악!”
“내 팔!”
청사파 무사들은 자신만만하게 뛰어들었다가 매서운 염평의 검에 단숨에 절명을 하든지, 아니면 어디 한 구석 베이며 다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부지불식간에 나타난 청사파 때문에 크게 당황했던 염평은 반대로 점차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잘해 봐야 이류무사 수준이야!’
곧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염평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튀어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류무인 수준에게 당할 리가 없었다.
염평은 잠시 시선을 돌려 풍백을 바라봤다. 혹시나 이 난리를 이용해서 도망친 것은 아닌지 확인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풍백은 뱃고물 쪽에 노를 팔걸이 삼아 여유 있게 서 있는 것 아닌가.
도망가려는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염평이 싸우는 걸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미소까지 지으며 흥미롭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 죽일 놈이!’
눈에서 불똥이 튄 염평이 한 번에 청사파 무사들을 밀어내고 풍백에게 몸을 날리려고 했다. 당장이라도 저놈의 목을 잘라 내지 않으면 성이 안 찰 것 같았다.
그런 염평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멍청한 놈들! 배에 구멍을 내! 물속으로 끌어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