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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75화 (75/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75화

“후우…….”

대주천(大周天)을 끝마친 풍백이 탁기를 토해 내며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기광은 이제 번뜩이는 수준이 아니라 정광을 뿜어낸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이제 슬슬 일월합벽(日月合闢)을 이루고 있어.’

오룡봉성의 단계를 밟은 풍백의 다음 단계는 일월합벽이었다. 흔히 일월합벽을 이뤄 내게 되면 내공이 순후해지며 절정에 단계에 오르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

풍백은 이제 곧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마 적가상방이 멸문했던 날이 되기 전에 절정에 오를 수 있겠어.’

이건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였다.

사실 멸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자신이 절정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혼자만으로는 멸문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청송무관도 있었고, 서문세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유금성도 있지. 그 사람은 동생을 잘 만났으려나? 슬슬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적가상방으로 오라고 전갈(傳喝)을 보내야겠어.’

이 정도면 일단 적가상방이 멸문을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준비가 끝났다는 건 아니었다. 멸문을 당할 일이 없다는 말이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니까.

준비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감히 적가상방을 넘볼 수도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다음엔…… 그 망할 놈들을 쫓아가?’

간혹 생각하던 것이다.

만약 멸문을 피한다면?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어쩌면…… 언제가 되었든지 기회가 되면 적가상방을 멸문하려고 들지 않을까? 대체 적가상방을 멸문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대답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근래에 드는 생각은 멸문을 막은 이후, 어떤 놈들이 이런 악독한 짓을 벌였던 것인지, 쫓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 중이었다.

불안한 점도 있었다.

만약 적가상방을 멸문시켰던 놈들을 쫓다가 그놈들이 눈치를 챈다면? 그 이후에는 적가상방을 적극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을까?

이 역시 누구도 대답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 덕분에 풍백은 멸문을 막은 이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떤 방향으로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풍백이 고민에 잠겨 있던 그때, 방문 앞에서 왕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소가주님이신가?”

“아닙니다. 당가타에서 오신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왕삼의 말에 풍백의 눈이 슬쩍 이채가 흘렀다.

‘드디어 돌아가려고 하는 건가? 서문세가주하고 얘기가 어떻게 되었으려나?’

서문자건의 생일잔치가 끝난 것도 벌써 거의 열흘가량 지난 상태였다.

당가타는 생일잔치가 끝난 이후에도 지금까지 사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서문자건과 면담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라면 서문표가 이야기를 전해 줘서 그나마 면담 자체는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당가타의 두 사람은 사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서문자건과 면담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는 말은 서문표를 통해 전해 들었던 풍백이었다. 오늘 찾아온 걸 보면 이제 슬슬 사천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기에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거라 짐작했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풍백의 대답과 함께 방문이 열리며 당한수와 당세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잘 지내셨습니까, 적 공자님.”

“하하! 저야 여기서 잘 움직이지 않으니 매일이 똑같지요. 일단 앉아서 얘기를 하지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잠시 후 문약란이 찻주전자와 찻잔을 가져와 세 사람 앞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세기는 의연하게 앉아 있으면서도 은근슬쩍 문약란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걸 본 풍백은 가볍게 속으로 혀를 찼다.

‘희한하단 말이야. 원래 신괴가 이렇게 철이 없었나?’

풍백이 알던 신괴는 과묵하고 여자는커녕 돈이나 음식 등 온갖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가 관심을 넘어 집착했던 것은 오로지 임무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당세기는 그랬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그 나이에 맞게 아름다운 여인에게 눈이 현혹된 모습을 여실히 내보이는 중이었다.

‘하긴, 나도 적가상방이 멸문하는 일을 겪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망나니로 살고 있었을 테니까.’

속으로 쓴웃음을 지은 풍백은 문약란이 차를 준비하고 나가자 당한수가 문득 물었다.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입니다.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미모나 행동거지를 보면 보통 신분은 아닐 것 같은데요.”

“응? 소란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세기도 아니고 왜 당한수가 이런 걸 묻는지 의문을 가졌던 풍백은 이내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당세기를 보고 대충 알아챌 수 있었다.

‘당세기가 묻지를 못하니 대신 물어보는 것이군.’

이것도 웃겼다. 과거 부대에서 작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상대가 누구든지 할 말을 다 했던 당세기였는데, 지금은 이런 것도 먼저 묻지 못할 정도로 숫기가 없다니…….

“사연이 좀 있어서 적가상방에 의탁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어떤 사연인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그건 좀…… 어렵겠군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제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당세기가 눈에 보이도록 실망하는 모습이 보였다.

피식 웃은 풍백은 당한수와 당세기의 옷차림을 살피고는 물었다.

“혹시 오늘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하러 오신 겁니까?”

“하하…… 맞습니다.”

“어제 가주님과 면담을 하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어떻게, 성과를 좀 얻으셨습니까?”

이미 뭐라 대답을 할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마도 거절을 당했겠지.’

만약 좋은 대답을 들었다면, 어제 면담이 끝났다고 오늘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역시 쓴웃음을 짓고 있는 당한수의 대답은 풍백의 예상대로였다.

“안타깝게도 그리 좋은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당가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음…… 일단 돌아갈 생각이기는 한데, 가는 도중에 몇 군데 들러서 얘기를 좀 해야겠지요.”

거짓말이었다.

남궁세가를 비롯한 전통적인 세가는 당가타의 부활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신흥세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말이다.

서문자건이 그나마 이익을 생각하기보다 대의를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말에 그를 찾아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당한수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따로 들를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풍백이 당가타를 도울 수 있는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겨우 절강성 남부에 위치한 중소 규모 상방이 무얼 해 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당가타를 위해 자존심을 모두 내려놨다고 하더라도, 무인이 아닌 상방 사람인 풍백에게까지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풍백은 이런 당한수의 마음까지 짐작했다.

만약 당가타가 부탁할 다른 문파가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풍백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갔어야 정상이다.

당한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문세가를 떠나기 전에 적 공자를 만나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대단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니지요, 적 공자가 아니었다면 연회에 참석도 못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아마도 서문세가주님을 만나 뵙지도 못했었겠지요.”

“연회를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린 건 맞지만, 제가 가주님을 만나 뵙도록 해 드린 건 아니지요. 그건 모두 당 대협께서 소가주님과 이야기를 잘해서 만들어 낸 겁니다.”

“계기조차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적 공자님께 신세를 진 것과 같습니다. 또한 소기가 큰 낭패를 당할 뻔한 걸 피하도록 해 주셨지 않습니까.”

“음…… 당시 사마세가에서 좀 치사하게 나오고 있어서 끼어들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제 호위무사인 고 무사가 일검단악이라는 별호도 받을 수 있었으니 서로서로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우길은 서문자건에게 별호를 받은 이후로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러다가 별호를 가슴에 수놓고 다닐 기세였다.

또한 풍백에게 다시 한번 완전 충성을 맹세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나머지 난파칠식을 가르쳐 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말이다.

“적 공자는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대단하기는요.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역에서 유명한 망나니였습니다.”

“아마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요.”

풍백에게 얼마나 빠졌는지, 풍백이 뭐라고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믿음을 보여 줄 것 같은 당한수였다.

아무래도 이런 적극적인 믿음을 보여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풍백이 슬슬 말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사마세가에서 그 뒤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궁금하군요. 혹시 찾아와서 이상한 짓이라도 하진 않았습니까?”

“저희에게 찾아온 적은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연회가 끝나고 이틀 정도 지난 이후 사마세가로 돌아갔다고 하더군요.”

“그냥 돌아갔다고요? 의외네요.”

정파답지 않게 교활한 수작을 부리던 사마세가가 조용히 돌아갔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아무래도 그날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거처에서도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가 이른 새벽에 떠났다고 하더군요.”

“사마장위라는 사람은 어떻다고 합니까?”

“제가 듣기로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더라고 하던데,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한수와 풍백은 같이 미소를 지었다.

사마장위에게 큰 원한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당시에 보여 준 모습이 많이 치사하기는 했었다. 특히 남을 밟고 자신을 돋보이려는 의도는 최악이었고 말이다.

그 죄에 대한 대가는 바로 받게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사마장위는 강호출도를 하더라도 이번에 보여 준 모습 때문에 고생이 많을 것이다. 어쩌면 제법 놀림을 당할지도 모르고.

“거처에서 거의 나오시지 않으시니 모르실 것 같은데, 남궁진 소협이 아직도 세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다고요?”

풍백은 놀랐다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연회가 끝난 이후 대부분의 손님들은 며칠 사이로 모두 떠났다. 그래서 서문세가에 일이 있는 자신과 당가타를 제외하고 모두 떠난 줄 알고 있던 풍백이었다.

“아무래도 꽤 오래 서문세가에 머물고 있을 것 같다고 하더이다.”

“아니, 왜 아직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겁니까?”

“하하! 그게…… 뒷말을 하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기 좀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서문세령 소저 때문인 것 같더군요.”

“아…….”

서문세령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풍백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과거의 기억으로 남궁진이 서문세령에게 푹 빠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풍백이었다. 이전에는 서문세령이 남궁진과 혼인을 하기 이전 얘기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때부터 서문세령에게 꽤 적극적으로 다가섰던 모양이었다.

“재미있군요. 그래서 서문세령 소저는 어떻다고 합니까?”

“제가 듣기로는 서문세령 소저는 그다지 마음에 없는지…… 피해 다닌다고 하는 것 같더군요.”

“하하…… 남궁 소협이 꽤 힘들겠군요.”

이후로도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누던 당한수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출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늦게 출발하다가는 노숙을 해야 될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풍백은 일어서는 당한수와 당세기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절강성으로 올 일이 있으십니까?”

“음…… 아무래도 장담을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사천성과 절강성의 거리를 생각하면 쉽게 대답하기가 힘드니까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하나만 기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풍백의 말에 당한수는 무슨 말인가 싶은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 당한수에게 풍백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가타는 혼자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 적가상방은 당가타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지요.”

“아…… 네…….”

“당가타의 소문을 들어 보면 앞으로의 여정도 그리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당 대협도 알고 계실 겁니다.”

당한수와 당세기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사실 강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당가타의 현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명문세가가 무너지면 과연 어디까지 몰락할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예시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천당가라 불리던 당가타의 지나간 영광을 안타까워했고, 다른 어떤 사람은 이제는 약자가 되어 버린 당가타를 보며 꼴좋다고 박수를 치기도 했으니까.

풍백은 그런 두 사람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을 때, 더 이상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그런 말이 온다면…… 적어도 절강성에 있는 적가상방은 그런 당가타를 걱정하고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십시오.”

“아…….”

“당장 저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런 답도 없는 상황이 온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진한 감동을 느끼며 풍백을 바라봤다.

사천에서도 당가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사천을 떠난 이후로 더욱 매서운 강호의 인심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강호의 문파도 아니고, 그저 중소 규모 상방일 뿐인 적가상방이 보여 주는 모습은 두 사람에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풍백은 그들에게 감동만 주고 있었다.

당한수와 당세기는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하며 허리를 깊게 숙여 포권을 했다.

“꼭…… 마음에 담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풍백도 그런 그들에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마주 포권을 했다.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풍백은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깝네. 상방에 여유가 있으면 당장 우리가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문파 하나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도 일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어렵다.

청해상방의 수작으로 적가상방이 힘든 지금, 당가타를 도와줄 여력은 없었다.

또한 단순히 자금 지원으로 끝낼 수도 없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당가타는 자금을 집어삼키는 무저갱(無底坑)이 될 뿐이다.

‘이번 일이 끝나고 난 이후에 천천히 생각을 해 봐야지. 어차피 당가타가 무너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부차적으로 당가타가 힘들어질수록 차후에 적가상방의 도움을 더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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