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74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건 고우길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를 떠나 이해 자체를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사마장위였다.
‘내가…… 겨우 상방…… 무사 따위에게 졌다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곳은 서문세가의 연회장이지만, 사마장위에게는 미래에 강호를 종횡하고 사마세가의 중심이 될 자신이 처음으로 출사표(出師表)를 내미는 자리였다.
그래서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해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대협객(大俠客)이 될 자신을 위해 제물이 되어 줄 꼴도 보기 싫은 당가타의 무능한 놈까지 있었다.
‘그…… 런데 왜 지금 이렇게 된 거지? 왜 사람들이 저…… 놈에게 환호를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놈이었다. 내공만 사용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한 수에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반쯤 정신이 나간 사마장위의 눈에 사마중의 모습이 들어왔다. 벌겋게 달아올라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사마중의 모습은 흉신악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사마중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표정을 바꿨다. 그러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연무장에 올라 입을 열었다.
“아직 정식으로 출두를 하지 않은 후배에게 강호의 쓴맛을 제대로 보여 주셨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사마중의 말은 교묘했다.
사마장위가 아직 제대로 강호 출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단순히 강호의 쓴맛이라 표현하며 무공이 아닌 작전에 의해 승리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사마중은 어떻게든 대련에서 패한 것에 대해 의미를 퇴색되게 만들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에 비해 고우길은 아직 자신이 만든 결과에 어안이 벙벙한지 이런 사마중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련을 보면서 의문이 드는 점이 있던데, 마지막에 펼친 무공이 너무 살기(殺氣)가 짙더군요.”
“그…… 렇습니까?”
어눌하게 대답하는 고우길의 모습에 사마중은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좋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물어봐서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바로 물어보겠습니다.”
“네…….”
“혹시 사파(邪派)의 무공입니까?”
사마중의 말에 고우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번뜩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파와 사파는 양립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강호의 역사는 정파와 사파가 난립하며 서로 병장기를 겨누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고우길이 그런 사파의 무공을 사용한 것이라면, 이 자리는 그에게 별로 좋은 방향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우길은 사마중의 느닷없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사파의 무공이라니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펼치신 초식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정파의 무공에서 느낄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무공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그, 그건…….”
고우길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풍백에게 무공을 배우는 대신, 자신에게 배운 무공에 대해 다른 곳에서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져 갔다.
사마중은 혹시나 싶어서 찌른 구석이 의외의 결과를 내놓는 것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만약 이대로 고우길이 사파의 무공을 익힌 것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면, 오늘 사마장위가 패한 것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비무도 아니고 대련이지 않던가.
하지만 이런 사마중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풍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무사님, 그냥 무공명을 말씀하시지요?”
“……네?”
고우길은 풍백의 물음에 반문했다. 그런 고우길에게 풍백이 얘기했다.
“고 무사님이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기 싫어하신다는 건 알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그냥 말씀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 어…….”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과거의 인연? 무슨 인연? 내 과거라고 해 봤자 낭인무사였을 적뿐인데…….’
“참 신념이 대단하십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답을 하지 않으시다니……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말을 마친 풍백이 사람들을 향해 몇 번의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저희 적가상방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무사님이 이상한 오해를 받지 않는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원래는 비밀로 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제가 대신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귀공(貴公)이 저 무공을 알고 있다는 말이오?”
사마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풍백은 사마중의 눈빛 속에 예리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어떤 무공이오?”
“저희 고 무사님이 지금은 적가상방에 몸을 담고 있지만, 사실 그 전에는 군문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풍백의 말에 사람들의 웅성임이 커졌다.
“군문이라고?”
“그래서 초식에 살기가 그렇게 짙었던 것이구만.”
“군문의 무공은 초식에 살기가 짙은가?”
“당연하지. 군에서 싸움은 무조건 상대를 죽이는 것이 기준이니까. 어쩔 때는 사파의 무공보다 더 악랄한 것도 있더구만.”
군문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중에서 고우길을 탓하는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군문에서 파생된 무공의 특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마중은 달라지는 분위기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며 물었다.
“그렇다면 군문에서 배운 무공일 텐데, 무공명이 어떻게 되는 것이오?”
“무공명을 말하면 아시는 건가요?”
“나는 군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곳에 있는 많은 고수분들 모두 대단히 견문이 넓으신 분이오. 그러니 어지간한 무공은 대부분 이름을 들어 봤다고 할 수 있소.”
“음…… 만약 아는 분이 없으면요?”
“그러면 안타깝지만 사파가 아닌지 약간의 조사를 해야 할 것 같소.”
“그건 너무 무리한 조치가 아닙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의 넓은 견문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호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알고 계시지는 않을 텐데요.”
“걱정할 필요는 없소. 잠시 개방의 도움을 받을 때까지 며칠만 운신이 자유롭지 못할 뿐일 테니 말이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람들의 뇌리에 고우길의 마지막 모습은 사파로 오해를 받는 모습만 남을 것이고, 개방이 모든 의혹을 증명했을 때는 각자의 문파로 다들 돌아간 이후일 테니까.
솔직히 군문의 무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 얘기를 듣는 고우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좆됐다, 좆됐어! 사파라니! 내가 사파라니! 난 그냥 상방의 무사일 뿐인데…….’
아무래도 정파에 잡힌 사파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날조에 가까운 풍문을 들어온 고우길이기에 뭔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풍백은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아는 분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으면 조사를 받아야겠지요.”
“그럼 무공명이 어떻게 되는가?”
“난파칠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마중의 눈빛이 빛났다.
‘들어 본 적이 없는 검법이다!’
스스로 제법 견문이 넓다고 생각하는 사마중이었다. 이런 자신이 모르니 제법 승산이 높아졌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온갖 잡학다식한 것들을 다 알고 있는 개방의 인물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신의 한 수처럼 느껴졌다.
사마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 난파칠식이라고 들어 보신 분이 계십니까?”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들어 본 적 있소?”
“글쎄…… 나는 처음 들어 보는데…….”
“음…… 난화검법(亂花劍法)은 들어 봤는데…….”
두런두런 의견을 교환해 보지만, 사마중의 생각처럼 난파칠식을 아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자 저도 모르게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사마중이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소. 아무래도 고우길 대협께서는 잠시 협조를…….”
사마중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난파칠식에 대해서는 내가 들어 봤소만?”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 목소리를 낸 사람에게 일제히 쏠렸다. 그 사람을 찾기도 쉬웠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서문세가주 서문자건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 등장하자 사마중의 얼굴이 굳었다.
“가주님께서…… 난파칠식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들어 봤소. 군부에서도 새외(塞外) 쪽에 있는 특작 부대가 익히는 무공 중 난파칠식이라고 있다고 하더이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사마중이 다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난파칠식과 방금 고우길 대협이 펼친 초식이 같은 무공이라는 증거는…….”
“그 정도만 하시오.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난파칠식에 대해서는 제법 잘 알고 있으니 말이오. 방금 고우길 대협이 펼친 난파칠식은 전사식 중 두 개의 초식과 후삼식의 한 개의 초식이었소. 그렇지 않소?”
서문자건의 물음에 고우길에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러면 이제 고우길 대협이 사파의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군.”
“이익…….”
사마중이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서문자건이 인정한 이상 사마중이 무엇을 하겠는가?
서문자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 위에 올라 말했다.
“방금 고우길 대협이 보여 준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소. 그래서 그런데, 혹시 별호가 있으시오?”
“없…… 습니다.”
“그러면 내가 별호 하나를 지어 줘도 되겠소?”
고우길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무려 서문세가의 가주가 자신의 별호를 지어 주겠다니, 이게 현실인가 싶은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별호를 누가 지어 주느냐 역시 강호에서는 아주 중요한 명예 중 하나였다.
“지어 주신다면 아주 영광이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한 수의 강렬함이 아주 인상적이었으니, 별호로 일검단악(一劍斷岳)은 어떻소?”
너무 과분한 별호였다. 실제로 검으로 바위도 자르지 못할 고우길이었으니 말이다.
“머, 멋진 별호를 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대련을 보여 주신 일검단악 고우길 대협께 박수를 보내며 술 석 잔을 올리겠소.”
서문자건의 말에 시비 중 하나가 급히 술잔 두 개와 술병을 가져와 건네줬다.
술잔 하나를 고우길에게 건넨 서문자건이 술잔을 채우고, 그에 맞춰 장내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렸다.
“향후 일검단악 고우길 대협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일제히 석 잔의 술을 마시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풍백은 조용히 그 모습을 보며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 풍백의 귀에 서문자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부탁은 두 개가 되는 것이네.]
서문자건이 나선 건 풍백이 사마중이 나서서 수작을 부리는 것을 확인하고 전음으로 협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실제로 서문자건은 난파칠식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단지 초식까지 알고 있던 것이 아닐 뿐.
만약을 대비해 서문자건에게 나서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서문자건은 간단하게 협상을 했다.
[그러면 부탁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일세?]
그 말에 풍백은 쓴웃음을 지었다.
‘명문세가 가주가 아니라 장사꾼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풍백에게 당한수의 전음이 들려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돌리자 당한수가 크게 감동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세기 역시 그 옆에서 깊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당세기가 낭패에 빠지고, 향후 강호 활동을 하는 데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풍백이 나서며 구해 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풍백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래전, 사람들은 사천당가를 떠올리면 유명한 문구가 뒤이어 떠올랐었다.
- 은혜는 두 배로 갚고,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
지금은 그럴 힘이 없지만, 만약 이들이 다시 힘을 되찾게 된다면 어떤 보상을 받게 될까?
‘그리고 사마세가는 열 배의 원한을 어떻게 받아 낼지도 궁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