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73화
‘내가 어쩌다가…….’
보법도 제대로 모르는 것인지 잰걸음으로 달려오는 고우길의 움직임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어쩌면 딱 중소 상방에서 무사를 할 그런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장중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듯한 검로가 장점인 숭양검법이 사마장위를 향해 밀려갔다.
그걸 본 사마장위는 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검을 움직여 고우길의 목검을 튕겨 냈다. 단순히 부딪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단순해 보이는 사마장위의 한 수에는 전사(纏絲)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전사란 회전을 의미한다. 즉, 사마장위의 목검이 고우길의 목검과 부딪치는 순간 회전의 묘리를 담아 더 강하게 고우길의 목검을 튕겨 냈다는 말이었다.
이 간단한 한 수가 대단히 쉬울 것 같아도, 사실 이류무인은 흉내 내는 것조차 어려운 기술이었다.
검과 검이 마주치는 그 찰나와 같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상대의 검을 튕겨 낼 정도의 위력을 담은 회전의 묘리를 담는다는 건 묘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고급 수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사마장위의 수준은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윽!”
목검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처럼 강하게 튕겨 나오자 고우길이 급히 검파를 강하게 쥐었다.
사마장위는 그런 고우길을 향해 검을 떨쳤다.
쐐애액!
“헉!”
엄청난 빠르기로 자신의 얼굴로 찔러 오는 사마장위의 목검을 보고 대경실색한 고우길이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그러자 사마장위는 고우길이 물러선 만큼 따라오며 계속해서 목검을 찔러 갔다.
고우길은 목검과 자신의 얼굴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이를 악물고 목검을 움직여 사마장위의 목검을 후려쳤다.
하지만 목검이 닿기도 전에 사마장위의 목검이 경로를 바꾸더니 이번에는 고우길의 허리를 베어 왔다.
“이익!”
고우길이 간신히 목검을 움직여 사마장위의 목검을 받아치자, 마치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그 힘을 이용하여 다시 움직이더니 고우길의 요혈을 노려 왔다.
고우길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며 좌우앞뒤로 목검을 휘둘렀다. 목검을 막아 낼 때마다 그 힘을 이용해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사방을 공격하는 사마장위의 공세는 마치 흩날리는 빗방울처럼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사마장위의 천변검법은 사마세가의 무공들 중에서도 고위의 무공이었다. 환검(幻劍)의 일종에 속하는 변검(變劍)에 기반을 둔 검법으로,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며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변검법이 변검이라는 것에 주목하지만, 사실 천변검법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한 번 공세가 시작되면 적이 쓰러지기 전까지 끊이지 않는 연환격(連環擊)에 있었다.
실제로 지금 사마장위는 고우길이 자신의 목검을 쳐 내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힘을 이용하여 더욱 강맹한 공세를 이어 나갔고, 그에 고우길은 거의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연신 물러서기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의 대련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고우길이 사마장위를 이길 거라고 예상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얼마나 사마장위의 공세를 버텨낼까를 주목할 뿐이었다.
오히려 순식간에 쓰러지지 않고 용케 사마장위의 공세를 막아 내는 고우길의 모습에 신기해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마장위의 속마음은 조금 초조해지고 있었다.
‘제길…… 왜 안 쓰러지는 거야!’
세 초식 만에 쓰러뜨리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고우길은 꾸역꾸역 자신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다섯 번째 초식마저도 막아 낸 고우길이었다.
사마장위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사마중을 스쳐 지나가듯 향했다. 그런 그의 시선에 점점 얼굴이 굳어 가고 있는 사마중이 보였다.
아마도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 비무였다면 벌써 싸움은 끝났을 것이다. 강맹한 내공을 담은 자신의 공세를 고우길이 받아 낼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사마장위와 고우길은 대련을 하는 중이다. 내공을 쓸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압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대련이 장기화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대로 가면…… 세가 내에서 내 평판에도 문제가 생기겠어! 서둘러 끝내자!’
사마장위는 대련을 빨리 끝내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먹은 사마장위의 목검이 이전보다 더욱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우길은 이미 거의 방어적으로만 목검을 움직이는 중이었으나, 이제는 아주 뒤로 뛰듯이 물러서야만 했다.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사마장위의 검세가 달라진 것을 느끼며 이제 곧 대련이 끝날 것을 예상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다.
따악!
크게 한 번 부딪치자 고우길이 목검에 담긴 힘을 모두 감당하지 못해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고우길의 움직임에서 빈틈을 발견한 사마장위가 다시 한번 검을 떨쳤다. 그 순간 그의 목검이 만들어 낸 몇 개의 검영이 고우길의 상체로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내공을 쓰지 않고서 검영을 만들어 낸 사마장위의 한 수에 사람들은 감탄했다.
‘확실히 일류고수군!’
‘저 정도면 어지간한 후기지수 중에서도 빼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고우길은 막을 힘이 없다는 듯이 멍하니 자신에게 떨어지는 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마장위는 이제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다.
‘이겼다!’
사마장위는 꽤 시간을 끌게 만든 것이 괘씸하니 가볍게 뼈 하나를 부러뜨릴지, 아니면 대인배의 면모를 보이기 위해 목검을 멈춰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바로 그때.
이미 승리를 자신하고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마장위를 향해 고우길의 목검이 움직였다.
좌악!
좌에서 우로 그어진 일검.
난파칠식의 두 번째 초식이었다.
그 한 수에 검영이 찢어지듯이 사라지며 검영에 가려져 있던 사마장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 말은 사마장위의 빈틈이 드러났다는 말과 같았다. 부릅뜬 사마장위의 눈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반증을 해 주고 있었다.
놀란 사마장위를 향해 다시 난파칠식의 첫 번째 초식이 펼쳐졌다.
난파칠식의 장점은 정파무공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필요한 예법을 모두 걷어 내고, 그 대신 상대를 상하게 하거나 숨통을 끊는 것에 집중한 아주 공격적이고 실전적인 검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실전적인 검초가 빈틈이 드러난 자신을 노리고 다가오자 사마장위는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얼마나 놀랐는지, 사마장위가 황급히 사마세가의 독문보법인 용산무형보(龍散無影步)를 펼치며 뒤로 물러섰다. 고우길의 초식이 얼마나 난폭했는지, 감히 받아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슨 창피를!’
사마장위는 뜻밖의 모습을 보여 준 고우길에게 놀라기보다, 겨우 상방의 무사 정도에게 무려 가문의 독문 보법까지 펼치며 물러섰다 것에 극심하게 창피함을 느꼈다.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신의 승리는 보장된 것이라 여긴 것이다.
지금까지 고우길은 제대로 된 보법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무려 용산무형보를 펼치며 뒤로 물러서는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우길은 그런 사마장위를 비웃듯이 보법을 펼치고 있었다.
얼마 전 풍백에게 배운 난화보였다.
난화보는 말했듯이 이름과 달리 화려함보다 단거리를 빠르게 좁히는 것에 장점이 있는 보법이었다.
고우길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는 자신을 따라잡자, 사마장위의 얼굴은 경악과 다급함으로 점철되었다.
그런 사마장위를 향해 고우길의 목검이 움직였다.
하늘로 치솟은 고우길의 목검이 벼락같이 사마장위를 향해 떨어졌다.
어떠한 변화도, 어떠한 기교도 없었다. 단지 세상을 두 쪽으로 쪼갤 것처럼 일도양단(一刀兩斷)의 기세로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난화보와 함께 얼마 전 풍백에게 전수받았던 난파칠식 중 후삼식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제기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마장위는 자세가 무너져 검에 제대로 힘을 담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목검을 부딪쳐 갔다.
게으른 당나귀가 땅바닥을 기는 모습이라고 강호무인들에게 수치라 불리는 나려타곤(懶驢陀坤)을 사용하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마장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사의 묘리를 담아서 받아 내면 튕겨 낼 수 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적어도 나려타곤을 사용했으면 패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타앙!
고우길의 목검과 부딪치는 순간 사마장위의 목검은 그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고우길의 목검은 그런 사마장위의 목덜미에 가볍게 닿으며 멈췄다.
장내가 침묵에 빠졌다.
창백해진 사마장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고 있었고, 몇몇 사람은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 펼쳐지자 입을 떡 벌리고 말았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건, 정작 대련에서 승리한 고우길조차 자신의 승리에 놀란 것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 누군가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짝!
풍백이었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는 풍백을 본 사람들이 이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수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고우길이 황급히 목검을 거두며 조금 물러나서 사마장위에게 포권을 했다.
“조,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고우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정말 이겼네?’
얼떨떨한 고우길은 연무장으로 오르기 전, 풍백이 했던 전음을 떠올렸다.
[객관적으로 고 무사가 이길 수 없는 대련이오. 하지만 내 말을 따른다면, 아주 희박하나마 가능성은 있는데 한번 해 보겠소?]
아무리 강호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는 하나,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비참하게 패배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우길은 고개를 끄덕였다.
풍백은 대책 중 하나로 절대 선공을 하지 않고 방어적인 자세만 취하도록 했다. 그리고 무조건 시간을 끌며 자신이 알려 준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 이유는 고우길이 이전에 상대했던 청해상방 무사와 달리, 사마장위는 상승무공을 익힌 무사였기에 정면으로 승부를 하면 초식으로 우위에 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풍백에게 배운 난파칠식과 난화보는 드러내지 말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한 번에 난파칠식과 난화보를 사용하여 몰아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풍백은 수비적으로 나오며 시간을 끌면 알아서 사마장위가 무리를 할 것이라 말했다.
솔직히 고우길은 풍백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그러면서도 풍백의 말을 따른 건, 어차피 그에게 다른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풍백은 자신보다 훨씬 고수이지 않던가.
그렇게 최대한 버티는 방향으로 시간을 끌자 정말 풍백의 말처럼 사마장위가 무리하게 승부를 보려고 나왔다.
그 순간을 기다리던 고우길을 자신이 알고 있던 난파칠식의 전사식 중 두 초식으로 사마장위를 물러서게 만들고, 물러선 사마장위를 난화보로 쫓아간 후 후삼식 중 한 초식을 펼쳐 사마장위에게 승리한 것이다.
만약 이 공세가 먹히지 않았다면 고우길이 패배했을 것이다. 심지어 고우길이 배운 난파칠식은 지금 사용한 세 초식이 전부였기에 대안도 없었다.
‘미리 난파칠식 후삼식 중 하나하고 난화보를 가르쳐 주길 잘했네.’
풍백은 꽤 흐뭇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곽종도와 윤마철을 때려잡은 다음, 풍백은 고우길이 매우 쓸모가 많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고우길을 조금 더 써먹을 생각을 했다. 곽종도와 윤마철 사건에서 제법 공을 세웠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완전한 난화보를 가르쳐 주고 추가로 난파칠검 후삼식 중 첫 번째 초식을 전수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 추가로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당세기가 농락당하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몰랐다.
고우길을 대련에 내보낸다고 해서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또한 고우길에게 손해가 되거나 큰 문제가 생길 것도 없었고 말이다.
그리고 고우길이 사마장위에게 무조건 패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우길이 사마장위를 이기게 된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풍백이 과거에 훈련을 받고 직접 작전을 세우며 배운 것이 있다면, 무공이 강하면 좋지만 무공이 무조건 승패를 가르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마장위는 자신의 무공이 더 강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고우길을 제대로 된 상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면 간단했다.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시간에 집착하게 되니까.
아니나 다를까 고우길이 방어적으로 시간을 끌자 사마장위는 점점 무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 결과는 지금처럼 나왔고 말이다.
사마장위가 제법 경험이 많은 상대였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겠지만, 지금 사마장위는 강호에 출도조차 하지 못한 애송이일 뿐이었다.
아주 쉬운 작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