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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72화 (72/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72화

당한수는 서문표와 담소를 나누며 친분을 쌓고 있었다.

사실 서문세가에 오면서 어떻게 서문자건과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조금 막막하던 당한수였다.

자신의 생일잔치니 당연히 모습을 보일 테고, 여차하면 막무가내로 쫓아가서 대화를 요청해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풍백이라는 사람 덕분에 모든 것이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연무장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서문표까지 소개를 해 준 격이 된 것이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다행히 서문표는 자신과 나누는 대담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이제 차츰 이야기의 주제를 서문자건과 대담을 부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사마중이 연무장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마세가라면 이가 갈리는 당한수지만, 지금은 사마세가에 관심을 보일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마중에 이어 연무장에 올라온 사마장위가 당세기를 거론하기 전까지였다.

“당세기 소협, 어떻습니까? 한번 저와 대련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사마장위의 외침에 당세기보다 당한수가 먼저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사마중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를 보고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우, 우리 세기를 발판 삼으려는 속셈이구나!’

이렇게 많은 무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대단히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무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운이 좋으면 별호를 얻을 수도 있었다.

대신…… 여기서 상대를 하다가 패배한 사람은 대단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심지어 사마장위는 아직 정식으로 강호에 출두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공개적으로 대련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 말은 사마장위가 앞으로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면, 지금 벌인 대련이 언제까지고 계속 회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회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세기 역시 아직 강호에 정식으로 출두를 하지 않았다. 그런 당세기가 향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구설수에 오른다니, 마음 같아서는 반드시 막고 싶었다.

하지만 막기가 애매했다.

사마장위는 지금 대련을 하자고 하고 있었다. 비무도 아니고 대련이다.

그런데 이것을 거절한다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최악의 경우 단소귀(胆小鬼, 겁쟁이)라는 별호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가타를 싫어하는 사마중이 이런 말이 나오도록 부채질하고 다닐 건 안 봐도 뻔한 일이고 말이다.

“당 소협?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마장위가 거듭 요청했다.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눈치 빠른 사람과 당가타와 사마세가 사이를 아는 사람들은 사마중이 어떤 의도로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알아채고 재미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당가타의 편은 없었다.

풍백은 한 편의 경극(京劇) 같은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내심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당세기가 나가면 진다.’

당세기의 무공은 풍백의 안목에 따르면 이제 이류무인에 진입한 수준이다. 솔직히 과거 사천당가를 떠올리고 비교를 하면 어떻게 겨우 이 정도 수준일 수 있는가 싶은 면이 있었다.

그에 비해 사마장위는 일류고수에 진입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방금 전 연무장에 올라서며 보여 줬던 경공을 봤을 때, 일류고수에 이제 막 진입한 수준도 아니고 완숙한 단계에 올라선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순히 일류고수와 이류무인의 대련이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싸움이 될 텐데, 완숙한 일류고수와 이제 막 이류무인에 올라선 두 사람의 대련은 당세기가 십여 초나 버틸까 싶은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사마장위가 사정을 봐줬을 때 얘기다. 당연히 사정을 봐주지 않을 테고 말이다.

당세기를 힐끔 보자,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 생각한 것인지 얼굴에 슬슬 전의(戰意)를 떠올리고 있었다.

‘하여간 이래서 무인이라는 놈들이 단순하고 멍청하다는 욕을 먹는 거지.’

풍백은 과거 온갖 작전을 하면서 이득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싸움을 벌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어떤 모욕을 당하든지 허허 웃으며 상황을 벗어날 계획을 짰다.

그러나 무인은, 특히 정파의 무인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당장 죽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나서서 싸웠다.

강호에서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무인의 기개(氣槪)라며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풍백의 눈에는 자기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기어 들어가는 미련하고 멍청한 놈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대체 왜 그런 싸움을 하려는 것인가?

아무 이득도 없고 손해만 볼 수 있는 싸움인데 말이다.

지금 당세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풍백이 당세기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연무장에 오르지 않았다.

사마장위의 도발에 맞서든지 맞서지 않든지 향후 평판에 문제가 생긴다면, 차라리 연무장에 오르지 않고 마치 무언가 있다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할 방법을 찾을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여간 무인이라는 놈들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어떻게 할까 고심에 빠졌다.

과거 당세기와 풍백은 제법 괜찮은 관계였다. 그래서 그 인연을 생각하여 소연무장에 들어오고, 서문표를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 줬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와준 것 같았다.

‘음…… 그래도 원래처럼 연회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수모를 받을 이유도 없었을 텐데…….’

이러는 사이 사마장위가 진한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을 하려고 했다. 아마도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당연히 당가타를 도발할 수 있거나, 약간의 조롱이 섞인 말일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당세기가 연무장에 올라갈 테고 말이다.

풍백이 입을 열었다.

“꼭 당 소협이 나서야 하는 겁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풍백에게 꽂혔다.

“누구지?”

“당가타하고 같은 식탁에 앉아 있는 걸 봐서는…… 아마도 무인이겠지?”

“어디 사람이야?”

풍백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웅성거렸다.

사마장위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나섰기 때문인지, 살짝 얼굴이 변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까 잠시 지나쳤던 분이군요. 적가상방…… 분이셨던 가요?”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고 합니다.”

풍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 포권은 당연히 사마장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상방분이라는 말씀이신데…… 당 소협 대신 저와 대련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마장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풍백은 그 표정이 비웃음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다 보니 나온 표정이라는 걸 알았다.

풍백 역시 사마장위에게 미소를 보였다. 아주 환한 미소를 말이다. 마치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처럼.

“글쎄요. 그 전에 일단 꼭 당 소협과 대련을 하시겠다는 말씀인지 궁금한데요.”

“당연히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귀하(貴下)가 나서겠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사마장위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서는 예리하게 번뜩이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 풍백이 사마중과 자신에게 보였던 태도를 당연히 잊어버리지 않았다. 기회만 된다면 얼마든지 조용히 밟아 줄 의향이 있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나서 주니 반가울 정도였다.

풍백은 사마장위의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하하하! 일개 상인인 제가 무공을 알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런가요?”

“대신 검을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 마침 적당한 대련 상대가 있어서요.”

말을 마친 풍백이 슬그머니 음식을 향해 젓가락을 뻗고 있던 고우길에게 대뜸 말했다.

“고 무사? 대련 한번 하고 오시는 건 어떤가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고우길에게 향했다. 그에 당황한 고우길에 움직이던 젓가락을 우뚝 멈췄다.

“제, 제가요? 대련을요?”

풍백은 그런 고우길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사마장위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고 무사는 저희 적가상방에 소속된 무사입니다. 과분하게도 제 호위를 전담하고 계시지요. 마침 검을 사용하시는 분이니, 대련 상대로 부족함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 도련님?”

당황한 고우길이 풍백을 불렀고, 풍백은 고개를 돌며 고우길을 바라봤다. 그런 고우길의 귀에 풍백의 전음이 들려왔다.

[하세요. 무조건.]

전음까지 들은 고우길은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

풍백이 사마중과 사마장위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모두 목격했던 고우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모욕이라도 당했다는 듯이 사마장위가 서슬 시퍼렇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비무를 펼치는 것이라면 불행한 사고가 발생할 여지가 있지만, 단순한 대련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기랄…… 이 죽일 놈이!’

사마장위는 설마 풍백이 자신의 호위무사를 내보낼 거라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상방의 무사라는 건 대부분 무인과 낭인무사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했다. 그렇기에 아주 큰 대상방 소속 무사가 아닌 이상 그 취급은 낭인무사와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강호에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대련을 겨우 상방의 무사 따위와 한다니, 이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연무하는 걸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방금 전, 상대는 굳이 당세기가 아니어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선 고우길이 연무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고우길의 귀에 풍백이 전음으로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전음을 사용하지 못하는 고우길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했다.

연무장에 올라온 고우길이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움찔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고수들의 시선을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몇몇 고수들의 경우는 고우길마저 알아볼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고수들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대련을 해야 한다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고우길이 긴장되는 마음을 달래며 포권을 했다.

“적가상방의 고우길이라고 합니다.”

“……사마세가의 사마장위입니다.”

인사를 마친 고우길이 허리를 펴자, 연무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문세가 무사들이 목검 두 자루를 고우길과 사마장위에게 던졌다.

대련이기에 진검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고우길이 목검을 받아 예를 표하며 동자배불(童子拜佛)을 취했다.

동자배불은 본디 불문 무공의 기수식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기수식이 강호로 흘러나가며 어지간한 사람은 모두 아는 기수식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강호의 낭인무사들은 극히 드물지만 예를 표해야 할 경우 동자배불을 펼치고는 한다.

즉, 고우길은 제대로 된 독문 무공도 없어서 동자배불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고우길이 익힌 숭양검법은 기수식이 따로 없으며, 사마장위는 숭양검법과 같은 무공은 독문 무공이라 칭하지도 않았다.

격이 떨어지는 상대에 맥이 풀렸다. 그런 사마장위의 귀에 사마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압도적으로 다섯 초식 안에 해치워라.]

‘흥! 다섯 초식? 세 초식이면 충분합니다!’

이를 악문 사마장위가 검을 뽑아 가문의 독문 검법 중 하나인 천변검법(千變劍法)의 기수식을 취했다. 이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걸 본 고우길이 잰걸음으로 달려들며 숭양검법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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