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68화
파바바바박!
붉은색을 종이로 감싼 화약이 요란하게 터지며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편폭(鞭爆)이라는 것으로 혼인식이나 개업식과 같은 좋은 일이 있는 날에 사용되며, 특히 춘절(春節)에 편폭이 절정을 이룬다.
이런 편폭을 사용하게 된 것은 년(年)이라는 괴물과 관련된 설화 때문인데, 사람들은 잡귀나 악귀가 물러가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허름한 녹의를 입은 사내 두 명이 편폭 때문에 잔뜩 시끄러운 항주 거리를 바삐 걸어가다가, 바로 옆에서 편폭이 터지기 시작하자 그 소음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어우…….”
두 사람 중 이제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당세기는 탄식과 같은 소리를 내며 귀를 막았다. 편폭이 옆에서 터지는 바람에 귀에서 찡하는 소리가 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귀를 비비고 입을 크게 벌리며 귀를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노력하다가 앞에서 먼저 걸어가고 있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당한수에게 말했다.
“숙부님, 항주 전체가 축제를 벌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절강성 전체에 큰 영향력을 지닌 서문세가다. 항주는 서문세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고. 그런 서문세가주의 생일이니 이들에게는 축제가 맞지.”
“얘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게 절강성과 항주에서 서문세가의 위치다. 그리고…….”
당한수는 말하려던 것을 삼켰다.
‘과거 우리가 세가라 불렸을 때에도 이 정도 위세가 있었다고 하지…….’
사실 당한수 역시 실제로 본 적은 없기에 모른다. 그저 가문의 과거를 적어 놓은 책에서 읽어 봤을 뿐이다.
이백 하고도 수십 년 전, 강호 역사에 남을 만큼 엄청난 규모의 싸움이 일어났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전쟁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전 무림의 문파들이 뒤엉켜 싸웠다.
당시 사천당가(四川唐家) 또는 사천당문(四川唐門)이라 불렸던 그들은 이 싸움의 여파로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다.
본가가 화마(火魔)에 휩싸여 주춧돌까지 타 버렸을 정도였으니, 당시 무림의 문파 중에서 사천당가만큼 큰 피해를 입은 곳도 드물 것이다.
이 엄청난 싸움이 끝나고, 가주부터 시작해 원로(元老)와 높은 직급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한 사천당가는 상처뿐인 승리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런 사천당가의 피해를 기리며 다시 세가를 세울 수 있도록 정파의 많은 문파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그런 도움을 받았다고 다시 원래의 위세를 찾을 수는 없었다.
가문의 핵심 인사가 모두 죽임을 당하면서 많은 무공이 실전되었고, 세가가 불타며 암기를 만들던 장인들 역시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천당가 사람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또한 정파의 도움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도 아니었다. 다행히 남궁세가(南宮世家)를 필두로 만들어진 군웅회(群雄會)에서 적지만 근래까지 지속적으로 도움을 베풀었지만, 약 십여 년 전부터는 적은 지원조차 끊어지게 되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이렇게 점차 힘을 잃어 가며 사천당가라는 이름조차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문파 이름 앞에 지역이 붙는다는 말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강자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당가가 사천을 대표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장 사천에 당가보다 강력한 무력을 갖춘 문파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천당가는 현판을 내리고 아주 오래전 과거에 사용했던 당가타(唐家陀)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당한수는 얼른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서두르도록 하자. 이러다가 늦겠구나.”
“네,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당세기는 얼른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당한수를 쫓았다.
그런데 결국 서문세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낭패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부 서문세가를 찾아온 사람이란 말입니까?”
당세기의 물음에 당한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서문세가의 정문에는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었는데, 그 길이가 적어도 이십 장은 될 것 같았다.
“일단 앞으로 가서 물어보고 올 테니, 너는 일단 줄을 서고 있거라.”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가서 물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무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혹시 무인은 신원을 밝히면 그냥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세기에게 줄을 서도록 하고, 서문세가 정문으로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반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 외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당한수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가주님 생신을 축하드리기 위해 당가타에서 왔습니다만, 안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초대장은 가지고 계십니까?”
당한수의 얼굴이 굳었다.
당연하게도 당한수에게 초대장은 없었다.
딱히 당가타를 무시해서 초대장을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단지 당가타와 서문세가 사이에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사천성은 절강성과 완전히 반대쪽에 있었다. 그러니 서문세가에서 당가타에 초대장을 보낼 일은 없었다.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고, 줄을 서고 확인을 받으셔야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당한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욕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아마 똑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강호에서 이름이 높은 대문파가 초대장이 없이 찾아온다면 당연히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한수는 당가타라는 이름을 듣고도 줄을 서라는 말에, 현 당가타의 위신을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이곳에 오면서 자존심을 버리고 오지 않았나. 겨우 이 정도에 낙담하고 있을 수는 없지.’
당한수가 서문세가를 찾아온 것은 단순히 서문자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현재 당가타는 직계(直系)가 아니라 방계(傍系)가 득세하고 모든 결정을 내리는 중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과거 죽었던 사천당가의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직계였다는 점과 그 탓에 직계가 익히는 무공이 대부분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방계는 당시 많은 사람이 죽었기는 하지만, 방계만이 익히는 무공 자체는 아직까지 제대로 전수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직계보다 방계가 득세하게 되면서 소수의 직계는 그저 명목상의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십여 년 전 적지만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 주던 세가들이 지원을 중단하면서 당가타의 재정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됐다.
세가들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이백 년이 지나도 자립하지 못하는 당가타를 대체 언제까지 도와줘야 하는 건가?
아무튼 이렇게 재정에 문제가 생기자 방계에서는 얼토당토 않는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다시 세가들이 지원하던 지원금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서문자건은 강호에서 알아주는 대협이었다. 그러니 당가타의 현 상황을 말하고 지원을 부탁하면 수가 생기지 않을까 고심하며 여기까지 온 당한수였다.
방계의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막아 내기 위해 지원금을 받아 낼 수 있다면, 어떤 모욕도 감내할 준비가 된 당한수였다.
당한수가 돌아오자 줄을 서고 있던 당세기가 물었다.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까?”
“그럴 수 없다고 하더구나. 줄을 서서 들어가야겠구나.”
“그렇군요. 그러면 숙부님은 잠시 저쪽 그늘에 앉아서 쉬고 계시지요. 줄은 제가 서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씩씩하게 말하며 자신에게 좀 쉬다 오라는 당세기의 말과 태도는 매우 기특했다.
당세기는 얼마 없는 직계 중에서 제법 기대를 많이 받고 있었다. 좋은 인성과 무재를 지녀 앞으로 당가타를 이끌어 갈 인재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좋은 무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질 못해 아직도 이류무사 수준 밖에 안 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좀 있는 직계들은 이런 당세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작 당세기는 제대로 된 무공조차 없어서 미안해하는 직계 어른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고 다녔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냥 기다리고 있어야지.”
“여기까지 바삐 오느라 많이 피곤하시잖아요. 그러니 좀 쉬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렇게 치면 너도 피곤할 것 아니더냐.”
“저는 아직 거뜬합니다.”
진짜라는 듯이 알통을 보여 줄 듯한 당세기의 재롱에 당한수는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줄은 길었어도 사람이 줄어드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접수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명부에 당가타와 이름을 적은 다음에야 당한수와 당세기는 마침내 서문세가의 문을 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서문자건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서문세가의 거대한 규모에 놀라면서 걸어가던 두 사람은 곧 들려오는 소리로 잔치가 두 군데에서 벌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한수는 서문세가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통제하던 무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잔치가 두 군데서 열리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초대장이 있는 분들은 소연무장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을 하실 수 있고, 초대장이 없는 분들은 대연무장에 마련된 잔칫상에서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대연무장에 있으면 서문세가 가주님을 만나 뵐 수 있소?”
“가주님은 대연무장에 나오시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내총관 어르신께서 대연무장에 나와 잔치에 참석하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그럼 소연무장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할 수는 없는 것이오?”
당한수가 무사의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총관을 만나서 얘기를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찾아왔다는 사실조차 서문자건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총관은 세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총관들은 필요 이상의 예산이 집행되는 걸 대단히 꺼려 한다.
아마도 당가타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 것을 가장 반겼을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총관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무사는 당한수의 말에 정중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참석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천에 있는 당가타에서 온 사람들이오. 가주님께 긴히 드릴 얘기가 있어서 찾아왔는데…….”
“그렇다면 가주님께 면담 요청을 정식으로 올리고 기다리시는 게 어떠실지…….”
무사의 말에 당한수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세가의 가주라는 위치는 사람을 만날 시간이 적었다. 특히 이렇게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왔다면 정말 무한정 기다리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사정을 좀 봐줄 수는 없소? 우리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서…….”
무사가 그런 당한수에게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이게 누구신가? 당가타의 당한수 대협이 아니신지?”
자신을 부르는 이름에 혹시 아는 사람인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 당한수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대략 사십대로 보이는 사내와 그 뒤에 서 있는 당세기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였다. 두 사내는 모두 허리에 검을 패용(佩用)하고 있었고, 그 검의 검파에는 사마(司馬)라는 두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사마중…….’
사마세가(司馬世家)의 사람이었다.
하남성(河南省)의 천년고도(千年古都)라 불리는 낙양(洛陽)에 위치한 사마세가는 신진세가 중 하나였다.
과거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곳이었는데, 당가타가 점점 몰락해 가는 이백여 년 동안 꾸준히 발전해, 지금은 강호에서 세가를 논하면 한 번쯤 꼭 이름이 튀어나오는 명문세가가 되었다.
당한수가 사마중을 보며 얼굴을 굳힌 이유는 간단했다.
당가타에 대한 지원이 중단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마세가를 비롯한 신진세가의 불만 때문인 탓이었다.
특히 사마세가는 그런 신진세가의 가장 선봉에 서서 그러한 불만을 토로했던 곳이고 말이다.
심지어 사마중은 당한수와 그리 사이가 좋지도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마중이 노골적으로 당한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이고, 과거에 당한수는 사마중에게 제법 큰 모욕을 당했던 적도 있었다.
당시에는 이 모욕을 반드시 갚겠다고 맹세했었지만…… 그 맹세를 한 것도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 가고, 당가타는 그때보다 더 몰락한 상태였다.
묘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사마중이 다가와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이게 얼마 만이오? 너무 오랜만에 봬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소.”
“오랜만…… 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절대 존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 당가타의 상황과 사마세가의 위치를 생각하니 존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묵직한 것이 목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지만, 당한수는 그것을 꾹 눌렀다. 이미 어떤 모욕이라도 달게 받겠다고 의지를 다지며 오지 않았던가.
“당가타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상당한데, 이렇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소.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시오?”
“걱정해 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옷차림이 영…… 잘 지내지 못하는 걸로 보이는데.”
사마중이 이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며 조소와 같은 비웃음을 지은 채 당한수의 옷차림을 훑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