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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67화 (67/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67화

“글쎄, 영파상방일지 아니면 다른 어딘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

서문자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보이는 묘한 미소는 마치 영파상방은 맞지만, 굳이 긍정을 하지는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영파상방과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건 맞는 얘기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풍백 역시 인정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런 풍백의 모습에 서문자건은 낮게 웃었다.

“서문세가와 영파상방이 별로 친밀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항주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서로 확인할 것이 끝났으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 나를 만나서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더군.”

“맞습니다.”

“적가상방과 자네 덕분에 우리 세가에서 운영하는 상방이 제법 이득을 봤으니,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면 들어줄 의향이 있네.”

“음…… 어렵다면 어려운 부탁이지만, 아마도 가주님께 어려운 부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허허! 궁금하군. 어떤 부탁인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신 풍백이 입을 열었다.

“도지휘사와 포정사를 독대할 수 있도록 소개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풍백의 말에 서문자건은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도지휘사와 포정사를?”

도지휘사는 절강성의 모든 군권을 손에 쥐고 있는 정이품의 고관이고, 포정사는 절강성의 모든 행정을 손에 쥐고 있는 종이품의 고관이다.

아무리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자건이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도지휘사와 포정사에게 밉보이면 서문세가 역시 꽤 골치 아플 수 있었다.

물론 관과 무림은 서로의 영역에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구대문파처럼 산속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곤란한 상황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고관들이기에 도지휘사와 포정사를 독대할 수 있다는 건 적어도 적가상방과 같은 작은 상방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서문세가는 달랐다.

말했듯이 서문세가와 관부가 직접적으로 서로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문세가의 위치와 영향력을 생각하면 독대할 수 있는 자격은 충분했다.

“가능하겠습니까?”

풍백의 물음에 서문자건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을 해 주지 않겠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을 드리자면, 서문세가에 절대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이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잠시 생각을 하던 서문자건이 의자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쉬운 일도 아니고, 독대를 하려면 행사가 끝난 뒤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네.”

“괜찮습니다.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지. 하지만 그 부탁을 그냥 들어 달라는 건 아니겠지?”

그 말에 풍백이 슬쩍 자신의 뺨을 긁적였다.

“그냥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하…….”

“그럴 수는 없지. 도지휘사와 포정사를 동시에 독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나? 아니지,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부탁을 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도 없이 들어 달라고?”

쉽게 소개를 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대놓고 대가를 바랄 줄은 몰랐다.

현재 적가상방의 상황을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체 어떤 대가를 내밀어야 서문자건이 만족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혔다.

애당초 서문세가는 적가상방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재력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서문자건에게 금원보 몇 개를 내밀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금 조롱하는 거냐고 분노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떤 대가를 바라시는지…….”

“상인이라면서 장사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것 같군. 상대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내미는 것이 상인이 아닌가 싶네만?”

“……솔직히 저희처럼 작은 상방이 가주님이 원하는 걸 어떻게 맞춰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생각하고 있는 대가가 있다면 말씀을 해 주시면…….”

“나도 딱히 어떤 대가를 생각한 것은 없네. 그러니까 자네에게 얘기를 해 보라고 한 것 아니겠나.”

서문자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풍백의 얼굴은 점점 곤혹스럽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문자건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어떻게 말입니까?”

“자네는 내가 빚을 진 걸세. 그러니 나중에 내 부탁 하나를 무조건 들어주는 건 어떤가?”

“무조건…… 은 힘듭니다.”

당연했다.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약 서문자건이 적가상방을 스스로 무너뜨리라든지, 아니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를 죽이라고 하는 것처럼 절대로 이행할 수 없는 곤란한 부탁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서문자건은 풍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만약 내 부탁이 도의에 어긋나거나 자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거절해도 된다고 하는 거지.”

“그 판단을 저에게 맡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자네가 판단해야지 누가 판단하나? 사람마다 가슴에 담고 있는 기준이 다를 텐데 말이야.”

“……만약 제가 무조건 도의를 벗어났다고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내가 봤을 때, 자네는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군. 혹시 틀리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겠지.”

풍백은 대체 서문자건이 자신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조건을 내거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이런 조건을 어떻게 거절하겠나?

“좋습니다. 도의에 어긋나거나 제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주님이 하는 부탁을 한 가지 들어 드리는 것으로 하지요.”

“그럼 거래 성립이네.”

풍백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던 서문자건이 문득 말했다.

“자네 눈에는 어떤가?”

그러자 옆방 문이 열리며 중년의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강직한 성격으로 보이는 외향의 중년 사내는 바로 가주인 서문자건을 암중에서 호위하는 수신호위(守身護衛)인 서문초였다.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자입니다.”

“호오? 왜 그런가?”

“숨기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렇게 치면 우리 역시 숨기는 것이 많지 않나?”

“서문세가와 적가상방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교 못할 것도 없지. 단지 서문세가는 강호에 조금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뿐이지 않나.”

“상방의 규모 차이도 큽니다. 또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적가상방은 백건상방에 눌려 질식당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 정도면 비교하기도 민망합니다.”

냉정한 서문초의 말에도 서문자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제법 저 아이가 마음에 드는군.”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시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음…… 나도 설명하기 어렵군. 어쩌면 표아가 그렇게 좋아하니 더 마음에 드는 걸지도 모르지.”

서문자건은 그렇게 말하며 슬슬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풍백을 보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서도 진신 무공을 숨기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이전부터 서문표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주의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집중해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무공을 숨기기 위해 망나니로 위장하고 있었다는 것도 제법 특이했고, 능력을 드러내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몇 달 전부터 풍백이 보여 준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딱 여기까지였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간혹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군.’

* * *

“그래서? 지금 적풍백이라는 놈이 항주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문태성의 물음에 총관 엄탁이 대답했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문태성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대체 항주에는 왜 간 걸까?”

“항주에 있는 심오경이라는 자와 호초 계약을 하면서 동시에 서문세가에 호초의 일부를 넘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혹시 서문세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간 건 아닐까요?”

“흠…… 그럴듯하군.”

현재 적가상방은 청해상방의 지원을 받는 백건상방의 압도적인 물량 공세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고사되는 중이었다.

기존에 거래하고 있던 곳은 거의 모두 백건상방에 빼앗겼고, 구주현만이 청송무관의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적가상방은 백건상방의 이런 공세를 상대하며 자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서문세가에서 지원을 해 준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서문세가가 청해상방처럼 압도적인 자금을 손에 쥐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절강성에서 보여 주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서문세가가 적가상방을 도와줄 여력이 있을까?”

적가상방을 찍어 버리기 위해 절강성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 절강성에서 영향력이 강한 서문세가는 당연히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조사에 따르면 서문세가는 현재 영파상방과 벌이고 있는 암투가 심각하다고 했다.

무력은 당연히 서문세가가 강할지 몰라도, 정파인 이상 무력으로 영파상방을 압박할 수는 없었다. 영파상방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는 선에서 서문세가에게 자주 도발을 날리는 중이었고 말이다.

상행에 관련해서는 이미 영파상방에게 밀려 항주 최고의 상방 자리를 내준 서문세가였다.

이런 서문세가가 적가상방까지 도와줄 여력은 없을 것 같았다.

엄탁이 이런 생각을 하는 문태성에게 말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데…… 일단 대비 정도는 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문태성이 침음성을 내며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결단을 내렸는지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탕!

“좋아, 어쩔 수 없지. 내 아들을 죽인 놈일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붙잡아 세상의 모든 고통을 퍼부어 주려고 했지만…… 괜한 걱정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지.”

말을 마친 문태성이 엄탁을 바라봤다. 엄탁은 혹시 불호령이 떨어질까 싶어서 찔끔하며 고개를 숙였다.

“절강성에 청사파(靑蛇派)라는 사파가 있다고 했지?”

“네, 있습니다.”

“그놈들에게 의뢰를 넣도록 하지. 돈은 충분히 줄 테니, 적풍백이라는 놈이 적어도 항주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도록 죽여 버리라고 해. 가능하겠지?”

“가능할 겁니다.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고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무공도 모르는 놈이라며? 대신 그놈 주위에 있는 호위무사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을 해 놔. 일류고수였던 내 아들 호위무사까지 죽인 놈이니까.”

“알겠습니다!”

* * *

“아직 눈속임으로 사용할 놈을 찾지 못했습니까?”

이립(而立, 30세)이 넘었을 법한 사내가 말했다.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섭선(摺扇)을 흔들고 있는 사내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앞에 부복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는 안색이 창백한 채로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적당한 놈이 영 나타나질 않아서…….”

“이것 참 실망스럽군요.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있으니 서문세가에서는 팔자 좋게 생일이랍시고 잔치나 하려고 드는 것 아닙니까.”

“죄, 죄송합니다…….”

“내가 그런 입바른 말이나 듣자고 묻는 것 같습니까? 뭐라도 진행을 하면서 죄송하다고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중년의 사내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급히 말했다.

“어, 얼마 전 호초의 공급권을 가진 보부상 하나가 서문세가로 빠져나간 걸 기억하십니까?”

착!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사내는 섭선으로 자신의 다른 손바닥을 때리며 소리 나게 접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입가에 떠 있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기억하고말고요. 아마 그것도 당신이 지휘하던 일이었죠?”

꿀꺽!

마른침을 삼킨 중년 사내가 서둘러 말했다.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던 적가상방 놈이 오늘 서문세가에 들어갔습니다!”

“아…… 서문세가주 생일잔치에 왔군요.”

“듣자 하니 서문표가 적풍백이라는 놈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전에 감히 우리 일에 끼어들었던 그놈을 징치하는 겸해서 처치를 해 버리면…… 아마 서문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내는 흥미가 생긴다는 듯이 다시 섭선을 펼쳤다.

“흐음…… 제법 재미있군요. 행여나 서문표가 가만히 있는다고 하더라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서문표가 열 받아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맞습니다! 제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년 사내는 반색하며 대답했다.

“한번 진행을 해 보세요. 그렇다고 서문세가 안까지 들어가서 암살을 하지는 말고, 적당히 항주를 떠나기 전에 처리하는 걸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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