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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64화 (64/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64화

백건상방에서 전격적으로 상행을 준비하는 일은 금세 적가상방에도 알려졌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백건상방은 상행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적가상방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백건상방이 상행을 준비하는 것이 정말 순수하게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적호경과 진덕양을 비롯하여 적가상방의 행수들은 모두 꽁지에 불이 붙은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기존에 거래하고 있는 곳과 돈독한 관계를 확인하고, 조금 소원해졌던 곳은 다시 친분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고도 부족해서 매일 상방 회의를 하기도 했다.

“굳이 상행을 하려는 이유가 뭘까?”

적호경의 물음에 행수 중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상행을 해 봤자 이익을 보기 힘들다는 건 백건상방에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손해를 각오하면서까지 우리에게 칼을 빼 들었다는 말인가?”

“그…… 러게 말입니다…….”

행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내 말을 줄였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진덕양은 달랐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 손해를 각오했다는 말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곽자억 방주가 그런 식으로 장사를 했다면 지금의 백건상방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를 말이지?”

“청해상방 말입니다.”

청해상방이라는 말이 나오자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약 광동성 오대 상방 중 하나인 청해상방이 백건상방과 손을 잡았다면, 적가상방에서는 그 공세를 받아 내기가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백건상방에 청해상방의 총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어왔…….”

“아니, 그런 얘기를 왜 지금에서야 하는 건가?”

행수 중 하나가 눈치를 보며 꺼낸 얘기에 적호경은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치고 말았다.

“그, 그게 봤다는 사람 역시 청해상방의 총관이 맞는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끄응…… 그래도 얘기는 해 줬어야 대책을 세웠을 것 아닌가!”

“죄송합니다…….”

이렇게 성질을 부린 적호경이었지만, 사실 조금 더 빨리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적가상방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청해상방의 지원을 받으며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말인가?”

“……어쩌면 지원을 받아서 출혈 경쟁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설마 그럴 리가. 우리가 버티는 정도로 시간을 끌며 상황을 장기전으로 만들면 청해상방이나 백건상방 모두 막대한 금액을 손해를 보게 될 테니 그럴 리가 없지.”

적호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단호한 태도가 꼭 그렇게 믿기 때문은 아니었다.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백건상방이 상행을 시작하자 적가상방에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얼마에 팔아?”

방금 한 말을 듣지 못했기에 다시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진덕양은 참혹한 얼굴로 다시 대답했다.

“저희가 파는 가격에 오 할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가격이었다.

품목에 따라 가격이 모두 다르지만, 가장 이득이 많이 붙는 품목이라고 하더라도 육 할 미만으로 판매하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는 백건상방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백건상방은 전 품목을 기존 가격의 절반만 받고 판매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거래처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당연히 난리가 났습니다.”

백건상방이 이렇게 판매를 하기 시작하면서 적가상방의 물품을 구입하던 거래처들은 모두 들고 일어났다.

“당장 적어도 백건상방이 파는 것에 비슷한 금액이라도 맞춰 달라며…… 그렇지 못하면 미안하지만 백건상방의 물건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리와 지금까지 거래했던 곳이 전부 그런 뜻을 보인 건가?”

“몇몇 곳은…… 우리 얼굴을 봐서 얘기는 못하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물건 판매 경로나 거래처를 만드는 일은 쉽지가 않다. 어쩌면 상방의 일들 중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판매 경로나 거래처는 한 번 잃으면 다시 끌어오는 일이 첫 거래를 하는 것보다 수 배는 힘들게 된다.

특히 적가상방의 경우 상산현과 구주현의 점포 수입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미리 만들어 놓은 외부 상행에서 더 많이 나온다. 그러니 거래처를 잃는 일은 최대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심각하게 고민하던 적호경이 힘겹게 물었다.

“만약 우리가 금액을 똑같이 오 할로 내린다면…….”

“당장 거래처가 떠나는 건 막을 수 있겠지만, 상행을 나갈 때마다 손해가 중첩되게 될 겁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거래처를 떠나게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진덕양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태는 타협을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하지만 적가상방의 고난은 끝이 아니었다.

“뭐라고? 이번에는 사…… 사 할이라고?”

백건상방은 가격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하여 적가상방 역시 대번에 알게 되었다.

지금 백건상방은 분명히 청해상방에게 어마어마한 거액의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금까지 청해상방에서 백건상방으로 물건을 보냈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러니 손해가 나는 만큼 청해상방에서 직접 돈을 보내 보전을 해 주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어마어마한 적자를 보고 있는 적가상방이었다. 더 이상 손해를 보며 상행을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백건상방을 따라서 가격을 낮추면 상방 전체가 휘청이게 될 것이 자명했다.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물어뜯고 있는 적호경에게 진덕양이 초췌해진 얼굴로 말했다.

“문제가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 뭐가 문젠가?”

“이제 상산현에서도 백건상방의 모든 점포가 가격의 사 할만 받고 물건을 파는 중입니다. 또한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조만간 구주현에서도 점포를 마련하려 한다고…….”

“맙소사…….”

적호경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급히 물었다.

“금호상방은? 금호상방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던가?”

“금호상방에서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런 대처를 안 해? 그쪽도 손해가 막심할 텐데 대체 왜?”

“사실 금호상방과 백건상방은 겹치는 품목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겹치는 품목조차 금호상방의 주요 사업이 아니고 말입니다. 아마도…… 금호상방은 이번 일이 끝나기까지 관망할 것 같습니다.”

적호경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금호상방을 욕할 수는 없었다. 분명 금호상방은 그들이 약속한 것처럼 관부의 압박을 막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처럼 지금까지 관부에서 압박이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만 하더라도 금호상방은 적가상방에 큰 빚을 지운 것과 같았다.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망연히 있는 적호경에게 진덕양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적가상방이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고부가가치 품목인 호초는 저희가 독점하고 있으니, 적어도 호초 판매는 문제가 없습니다.”

“…….”

“당분간 외부 상행은…… 중단을 하고, 호초를 중심으로 판매하며 버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백건상방 역시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쪽도 땅 파서 장사를 하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나마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꺼낸 진덕양이었다.

그러나 겨우 이 정도 이야기를 가지고는 상방 회의의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었다.

* * *

‘어떡하지?’

문약란은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방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비록 문약란이 풍백의 전담 시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적가상방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백건상방이 청해상방을 등에 업고 적가상방의 모든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말은 비밀도 아니었다. 당장 적가상방 밖으로 나가기만 하더라도 상산현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백건상방의 파격적인 가격에 대해 논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적가상방이 어마어마한 피해를 보면서 적가상방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얼굴에 짙은 그늘이 생기게 되었다.

그건 문약란의 친구인 수월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적가상방이 망하면 어떡하지? 나 여기를 떠나면 갈 곳도 없는데…….”

“괜찮을 거야…….”

“이번에는 엄청 심각한 것 같아. 다른 사람들도 다들 난리도 아니라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갈 곳을 찾아서 일을 구해야 하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고.”

“아…….”

“만약 여기 망해도 소란이 너는 꼭 나하고 같이 일하러 가는 거다? 알았지?”

“……알았어.”

대답은 이렇게 했었지만, 정말 적가상방이 망하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청해상방이 적가상방을 이렇게 공격하는 건 당연히 자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너무 힘들었다.

자신 하나 때문에 적가상방이, 이곳에 속한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차라리 자신 때문에 청해상방이 이렇게 나온다는 걸 알리고, 이 모든 사람의 비난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을 지켜본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자신 하나 살기 위해 적가상방과 일하는 모든 사람의 삶이 흔들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문약란은 굳은 결심이 담긴 눈으로 풍백의 거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적 공자님께 청해상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아버지께는…… 시키는 모든 일을 할 테니, 적가상방은 이대로 놔둬 달라고 빌겠어.’

이렇게 마음을 먹는 문약란이 풍백의 거처로 들어갔다.

풍백은 가만히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전각 앞에 있는 넓은 정원 가운데에 서 있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적가상방이 모두 난리가 난 상황이라는 걸 감안하면, 풍백의 모습은 너무나 담담해 보였다. 적가상방이 평온할 때 모습과 다른 바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하긴 풍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결심한 것을 말해 주고, 서둘러 청해상방으로 떠나야 할 때였다.

“적 공자님, 할 얘기가…….”

“마침 잘 왔군. 내일 항주로 떠날 일이 있으니, 여행 준비를 하도록 해.”

이제 슬슬 서문세가주의 생신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적호경과 진덕양에게 모두 허락을 받아 냈다.

사실 적호경과 진덕양은 적가상방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항주로 보내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풍백은 그런 두 사람에게 서문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핑계를 대며 항주행 허락을 받아 내고 말았다.

그 결과, 바로 내일 서문세가로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네? 여행…… 이요?”

“저번에 네가 말했잖아. 다음에 또 장기간 떠날 일이 생기면 꼭 데리고 가 달라고. 이번이 그런 일정이니까 준비하라고.”

사실 꼭 문약란의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같이 가자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고강한 무공을 가진 누군가가 문약란을 납치할 가능성이 있기에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문약란은 자신이 했던 얘기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풍백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이게 아니야! 정신 차려!’

서둘러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문약란이 말했다.

“저는 같이 못 가요.”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저 청해상방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더 이상…… 저 때문에 적가상방과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어요.”

비장한 문약란의 모습을 바라보던 풍백은 피식 웃었다.

“돌아갈 필요 없어.”

“아니요, 무슨 얘기를 하시더라도 더는 폐를 끼칠 수…….”

“그게 아니라, 이미 늦었다는 말이야.”

“……네?”

“네가 돌아간다고 청해상방이 물러날 것 같아? 그러려면 이전에 내가 문영후를 죽이지 않았어야 했어. 지금은 이미 늦은 일이지.”

“그, 그게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얘기하면…….”

“불가능해. 그리고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 어차피 이런 상황이 닥칠 거라는 건 문영후를 죽이면서 예상했던 일이야. 단지 생각보다 일이 빨리 터져서 조금 당황했을 뿐이지.”

문약란은 풍백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가슴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자신을 구하면 가문에 문제가 발생할 걸 알면서도 결국 위험에 처한 자신을 구해 줬다는 말이 너무 귀에 남았다. 이기적일지 몰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잔뜩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던 문약란은 풍백이 중얼거리듯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내기에는 꽤 열 받는단 말이지.”

아무래도 문영후를 버러지처럼 키운 죄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일단 본격적으로 청해상방을 찍어 내기 전에 적가상방의 체급을 올리는 작업이 필요했다.

“어쨌건 청해상방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내일 당장 항주로 떠날 테니까 여행 준비를 철저하게 하도록 해.”

“하,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적가상방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렇지 않아도 이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항주로 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풍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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