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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가상방 개망나니-63화 (63/313)

적가상방 개망나니 63화

“히익! 그, 그만! 그만 때려, 그만!”

어두운 구석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곽종도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곽자억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상태는 어떤가?”

그 물음에 옆에 있던 의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몸에 있던 상처는 대부분 나아 가고 있고, 손에 있던 관통상도 다행히 장애를 남기지 않을 정도라서 시간이 지나면 흉터 정도만 남을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는?”

“그건……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 봐야…….”

의원의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다.

정신적인 상처라는 것이 그렇다. 마음에 안정을 줄 수 있는 탕약을 지어 주는 걸 제외하고 어떤 방법도 없었다.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야 될 뿐이다.

그러나 희망적인 얘기를 할 수 없는 건, 곽종도가 상산현에서 알아주는 망나니 중 하나였기에 본래 가지고 있던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스스로를 다잡을 정도로 정신력이 뛰어났다면 망나니로 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곽자억이 한 걸음 다가서자 곽종도가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오,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그 모습을 보던 곽자억은 결국 뒤돌아서 방을 나오고 말았다.

사실 곽종도는 풍백이 과거에 맞았던 것에 비해 더 심하게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난생처음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로 미친 듯이 두들겨 맞았다는 것 때문인지 반쯤 정신이 나가고 말았다.

자신의 집무실로 걸어가는 곽자억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속마음까지 아무렇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적가상방…… 적풍백…… 이놈…….’

마음속으로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곽자억은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호위무사인 양 무사를 통해서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두 들었던 곽자억이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곽종도와 포목점의 윤마철이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일이 계획한 것처럼 풀리지 않았고, 결국 오히려 풍백에게 제압당한 상태로 구타를 당했다.

이런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적가상방을 비난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곽자억이 나설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금 백건상방이 적가상방을 찍어 낼 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적가상방이 호초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백건상방은 실질적으로 적가상방을 찍어 낼 수 있는 어떠한 무기도 갖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굳이 유리한 점을 말하자면, 상산현에 점포가 더 많다는 사실과 지금까지 축적한 자금이 조금 더 풍부하다는 정도?

그러나 겨우 이런 이점을 가지고 적가상방과 싸우다가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을 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만에 하나 금호상방이 끼어들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고 말이다.

결국 원독 어린 눈으로 적가상방을 노려보며 이를 가는 것을 제외하고 곽자억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

기회가 언젠가는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 기회만 온다면 적가상방을 찍어 내고, 곽종도를 저런 상태로 만든 풍백을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었다.

비록 망나니로 살고 있는 곽종도에게 많은 실망을 했던 곽자억이지만, 그 역시 아비 된 사람으로서 곽종도를 남달리 아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곽종도가 지금으로서는 폐인(廢人)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은 이제 적가상방이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됐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곽자억이 집무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일꾼 하나가 다가와 뭐라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곽자억은 지금 아무런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았기에 손을 올려 입을 다물도록 만들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집무실의 문을 연 곽자억은 멈칫하고 멈추고 말았다. 집무실에 한 사람이 이미 기다리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일꾼이 얘기하려던 것은 지금 손님이 찾아왔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곽자억을 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청해상방에서 온 엄탁이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총관의 직책을 맡고 있지요.”

평소였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곽자억은 대단히 신경질적인 상태였다.

“주인이 없는 집무실에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니,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하하……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여기서 기다리라는 얘기만 듣고 있었던 터라…….”

아무래도 청해상방을 아는 사람이 대상방이라는 사실에 겁을 먹고 집무실을 내준 것 같았다.

집무실로 들어온 곽자억이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내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해서 시간을 오래 내어 드리지는 못할 것 같소.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것이오?”

퉁명스러운 곽자억의 태도에도 엄탁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혹시 적가상방 때문은 아니십니까?”

“멀리 광동성에서 오신 분이 별걸 다 알고 있구려.”

놀랄 필요도 없었다. 당장 상산현에서 백건상방과 적가상방의 싸움을 모르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곧이어 엄탁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곽자억의 퉁명스러운 태도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요. 제가 백건상방을 찾아온 이유가 바로 적가상방 때문인데 말입니다.”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곽자억이 물었다.

“광동성에 있는 청해상방에서 왜 상산현에 있는 작은 상방인 적가상방에 신경을 쓰는 것이오?”

엄탁은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일단 그런 얘기를 하기 앞서 저는 백건상방과 방주님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슨 얘기를 말이오?”

“지금까지 백건상방의 행보와 적가상방과 맺어진 관계를 보면 두 상방은 공존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피식 웃은 곽자억이 대답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그걸 물어야 아는 것이오? 얼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소?”

“음…… 소방주님이 적가상방의 적풍백이라는 자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요.”

엄탁의 말에 잠시 그를 바라보던 곽자억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가상방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소. 이제 남은 것은 기회가 생기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오.”

그 대답에 아주 만족스런다는 듯이 엄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 기회를 저희 청해상방이 제공해 준다면, 적가상방을 완전히 찍어 낼 수 있겠군요.”

“어떤 기회를 준다는 말이오? 그들은 호초를 유통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오? 청해상방이 우리에게 호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기회를 가지고는 적가상방을 위협할 수 없을 텐데 말이오.”

곽자억이 알기로 청해상방이 거대 상방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호초를 취급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호초는 중원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상방이 취급하는 고급 물품이었다.

이 말을 듣고도 엄탁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밖에 대고 소리를 쳤을 뿐이었다.

“가지고 들어와라.”

그러자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장정 두 명이 커다란 궤짝을 들고 들어왔다.

장정들이 나가고 엄탁은 궤짝을 열어서 곽자억에게 보여 줬다. 궤짝 안을 본 곽자억의 눈은 찢어질 것처럼 커다랗게 변하고 말았다.

“이…… 이걸 왜 보여 주는 것이오?”

“저희 청해상방이 백건상방에게 제공하려고 하는 기회입니다.”

꿀꺽!

엄탁의 말을 들으면서도 곽자억의 눈은 궤짝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군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궤짝 안에는 금원보가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궤짝의 크기를 보면 몇 층에 걸쳐서 금원보가 쌓였을 것 같은데, 대충 한 층에 자리 잡고 있는 금원보의 개수가 무려 마흔 개나 되었다.

“금원보 이백 개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 이백 개…….”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백건상방이 한 해에 순이익으로 얻는 이익이 금원보 이백 개가 넘지 않았다. 금호상방처럼 직접 물품을 생산하는 곳이라면 순이익이 좋겠지만, 백건상방은 직접 물품을 생산하는 품목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이었다.

멍하니 금원보를 바라보고 있는 곽자억을 보며 더욱 진한 미소를 지은 엄탁이 말했다.

“너무 놀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건 단지 일차로 넘겨주는 자금일 뿐입니다. 상황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이차, 삼차 지원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허…….”

“저희와 손을 잡고 적가상방을 무너뜨려 주신다면, 그 보상으로 백건상방이 상산현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계속 지원을 해 줄 의향도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 동원력에 곽자억은 뭐라 말도 하지 못했다.

광동성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대상방이라고 하더라도 상산현에서는 그저 듣도 보도 못한 상방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자금에 그런 생각은 어딘가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대상방의 역량인가?’

곽자억은 짧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리고 엄탁을 바라봤다. 엄탁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해상방이 적가상방의 완전한 몰락을 바란다는 건 알겠소. 그래서 이 자금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아주 간단합니다. 이전에 한 번 백건상방이 하려고 했던 계획을 실행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하려고 했던 계획?”

“네, 아마 상행을 만들어서 적가상방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소규모 마을 등의 시장을 빼앗으려고 했었지요? 그걸 다시 시작하시면 됩니다.”

곽자억은 살짝 인상을 썼다.

“그건 이미 틀린 계획이오. 우리가 적가상방의 텃밭을 공략하려고 한다면, 적가상방은 호초를 무기 삼아 상산현에서 휘두를 것이란 말이오.”

그 말에 엄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겁난다는 말이신지…….”

“겁난다는 말은 아니지만, 상산현에서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한다는 말이오. 그 싸움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지 모르는 것이오?”

“방주님이야말로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지금 저희가 상산현에서 어떤 수익을 보기 위해 적가상방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저희가 지원해 주는 자금은 순전히 백건상방이 상산현을 장악하기 위해 드리는 화살입니다. 전장에서 화살은 어떤 품목에 들어가지요?”

엄탁의 질문은 곽자억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소모품…….”

“바로 그겁니다. 지금 저희가 지원하는 이 모든 금액은 다시 돌려받기 위한 투자금이 아닙니다. 그저 적가상방을 무너뜨리고 백건상방이 상산현을 장악하는 데 소모하라고 드리는 소모품입니다.”

“…….”

“호초가 가지고 있는 힘이 두렵다고요? 왜 그걸 두려워하십니까? 호초를 제외하고 모든 품목을 적가상방 판매 가격의 절반 이하로 판다면? 그래도 과연 상산현을 비롯하여 소규모 마을에서 적가상방의 물건을 사려고 할까요?”

“그러면 물건 구입 비용보다 판매 비용이 더 싸다는 말인데……. 엄청난 자금 소모가…….”

“말했듯이 지금 가져온 금액은 일부일 뿐입니다.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상, 청해상방은 지금 지원하는 금액 이상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엄탁의 말에 곽자억은 쉽게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엄청난 자금을 무기로 상대를 말려 죽일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청해상방의 배포가 얼마나 대단한지 너무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방법이라면 솔직히 적가상방이 어떻게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마치 돈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상대에 맞추려면, 적가상방 역시 돈을 무기처럼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나만 묻겠소…….”

“네, 얼마든지 물어보시지요.”

“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적가상방을 무너뜨리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적어도 이유는 알아야 했다. 그래야 싸움 중간에 청해상방이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갈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적가상방이 저희 상방주님의 일에 끼어들었고, 그 결과 백건상방과 적가상방 사이보다 더욱 심각한 사이가 됐다고만 얘기를 드릴 수 있겠군요.”

“겨우 그 정도밖에 얘기를 못 해 주는 것이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얘기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요.”

“음…….”

“만약 이런 부분이 마음에 걸리신다면 지금까지 제가 했던 제안은 그냥 잊어 주시면 됩니다.”

엄탁의 말에 곽자억이 움찔했다.

대충 느낌이 왔다. 만약 여기서 정말 곽자억이 물러선다면, 아마 엄탁이 똑같은 제안을 금호상방에게 할 것이다.

처음에야 당연히 그 칼날이 적가상방을 향하겠지만, 방금 전 엄탁이 제안했던 것처럼 최종적으로는 그 칼날이 백건상방을 향할 터였다.

즉, 이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이걸 받아야 하는 건가……?’

고민하는 곽자억의 뇌리를 스치는 것은 적가상방과 풍백, 그리고 방금 전에 보고 왔던 곽종도의 모습이었다.

적가상방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지금까지 쌓였던 적가상방에 대한 분노가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래,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좋소! 청해상방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좋은 선택이십니다. 그러면 백건상방이 적가상방을 완전히 무너뜨릴 때까지 자금은 충분히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건상방에서 하나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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