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가상방 개망나니 62화
풍백과 달리 적호경과 진덕양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 멍하니 조태명을 바라봤다.
“설마…… 광동성의 청해상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세상에 청해상방이 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일세.”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알고 있나?”
“광동성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대상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끝인가?”
“더……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까?”
적호경의 물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거대한 상방이라고 하더라도 청해상방은 광동성에 있었다. 절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상방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청해상방에 대해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정도였다. 이런 청해상방을 왜 언급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태명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지주대인에게서 연락이 왔네.”
지주대인은 이곳 상산현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지주대인 역시 조태명의 금호상방과 끈끈한 관계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지주대인을 만나 보니, 청탁이 들어왔다고 하더군. 무슨 청탁인지 알겠나?”
불길한 조태명의 분위기에 방 안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갔다.
“설마…….”
“맞네. 적가상방을 압박해 달라는 청탁이었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청해상방은 광동성에 있기는 하더라도 그 규모는 금호상방이나 적가상방과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청해상방이 적가상방의 압박을 요청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청해상방은 상산현에 물품을 판매하는 점포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이 가진 풍부한 자금은 중원 어디에서도 충분히 먹힐 것이다.
조태명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는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서지 말아 달라고 해 놨으니, 적어도 관부에서는 아무 문제도 야기하지 않을 것이네.”
조태명의 말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금호상방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건상방이 적가상방을 압박하는 걸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적가상방이 무너지는 걸 부추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청해상방의 공세를 막아 줬다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마를 쓸어 올린 적호경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감사합니다만…… 적가상방에게 어떤 대가를 원하시는 겁니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조태명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적가상방을 도와준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조태명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원하는 대가는 없네.”
“그러면 왜 저희를 도와주는 겁니까?”
“자네를 도우려고 했던 것이 아니야. 도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맞는 말이겠지.”
“……그게 무슨 말입니까?”
품에서 곰방대를 꺼낸 조태명이 연초(煙草)를 채우고 불을 붙여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자네들은 청해상방주 문태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그 물음에 적호경은 쉽게 대답을 못하고 진덕양을 바라봤다. 솔직히 청해상방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그렇다고 문태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는 못했던 적호경이었다.
그러자 잔뜩 고민하던 표정을 짓던 진덕양이 슬쩍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많이 알지는 못합니다. 나이가 대략 지천명(知天命, 50세)을 넘었다는 것과 냉철한 성격을 가졌다는 부분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쯧쯧…… 그래도 멀리 있는 곳이기는 하더라도 같은 상방이니, 적당히 파악은 하고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조태명의 타박에 적호경과 진덕양은 뭐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문태성은 아주 공격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걸로 유명하지. 그가 청해상방을 맡은 이후로 경쟁 상방을 차례대로 무너뜨려 흡수하고, 정략혼인 등을 이용하여 청해상방을 단시간에 광동성 오대 상방 중 하나로 만들었으니까.”
“아…… 그렇습니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야. 솔직히 청해상방이 왜 관부를 움직여 적가상방을 압박하려고 했는지, 그딴 것은 전혀 관심이 없어. 상방 일을 하면서 누가 더 옳은 것인지가 무슨 상관이겠나? 서로 빈틈만 보이면 물어뜯는 것이 당연한 거지.”
이 말에 풍백은 미미하게 조소를 지었다. 금호상방이 관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적가상방이 흔들리고, 그 자리에 청해상방이 들어온다? 이건 아주 큰 문제지. 그들의 악랄한 장사 방식을 보면, 그놈들이 상산현에 들어와서 일으킬 분란은 굳이 당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바로 이것이었다.
금호상방은 청해상방이 감히 상산현에 발끝 하나 들이미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청해상방은 너무 난폭한 포식자이기에 상산현에 들어오게 된다면 금호상방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될 테니까.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가장 희망적인 예상이라는 점이었다.
“방주님께서는 그럼 청해상방이 지금 절강성으로 진출하기 위해 상산현을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저희 적가상방은 그 제물일 뿐이고요?”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겠나?”
“방금 말씀을 그렇게…….”
“정확한 이유는 자네가 직접 찾아야겠지.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청해상방이 상산현에 들어온다는 가정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일말의 여지조차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적호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막 자립이 가능한 수준이 된 적가상방이다. 백건상방조차 버거운 상황에 거대 상방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대단한 부담이 되었다.
“그러면 방주님은 저희와 손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청해상방이 가하는 관부의 압박을 막아 준 것을 생각하며 물었다.
하지만 조태명을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럴 수 없지. 애당초 지금 청해상방의 의중을 전혀 모르는 상태 아닌가? 만약 저들이 상산현에 진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가상방 자체가 목표라면?”
이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던 적호경이었다. 겨우 절강성 상산현 인근에 영향력을 조금씩 늘려 가는 적가상방을 거대 상방인 청해상방이 노릴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자네와 손을 잡는다는 말은 우리 금호상방 역시 청해상방과 정면으로 싸울 수 있다는 말이야. 그건 우리도 너무 부담이 크지. 적어도 청해상방의 의중 정도는 파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단지 청해상방의 의중을 대체 어떻게 알아채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심각하게 고민에 빠진 적호경과 진덕양을 본 조태명이 다시 한번 곰방대를 빨아들이고는 말했다.
“대신 내가 이것 하나는 약속을 해 주겠네.”
“무슨 약속을…….”
“적어도 관부가 움직여서 적가상방을 흔드는 시도는 없을 것이야. 내가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네. 하지만 대신 적가상방이 우리 금호상방에게 큰 빚을 하나 졌다는 것을 꼭 기억하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적호경과 진덕양이 크게 대답하며 포권을 취했다.
적가상방은 관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니 금호상방에서 관부의 압박을 막아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큰 도움이었다.
할 말을 모두 마친 자리에서 일어난 조태명이 집무실을 나섰다.
이제 세 사람만 남게 되자 적호경이 급히 말했다.
“지금 당장 적가상방의 모든 상행에 대해 점검을 하도록 하게. 나가는 돈이든지 들어오는 물건이든지 무조건 두 번, 세 번 검사를 하고 확인을 진행해야 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청해상방이 관부만이 아니라 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 상산현 안팎으로 상세히 상황을 살피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확인을 해야 하고…….”
옆에서 적호경과 진덕양이 긴박하게 얘기하는 것을 들으며 풍백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보다 대응이 빠르네. 두 달만 더 지난 이후였다면 상황이 그리 어렵진 않았을 텐데…….’
풍백은 지금 청해상방이 왜 적가상방을 노리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연하게도 문영후가 죽었고, 그 이유가 풍백이라는 걸 특정 지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가상방이 그 배후에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일 터였다.
그나마 광동성에서 절강성까지는 거리가 엄청난 만큼 또 다른 어떤 계략이나 공세가 취하기에는 제법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래도 항주로 조금 빨리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풍백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적호경의 지시를 모두 들은 진덕양이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달려서 집무실을 나갔다.
적호경은 풍백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분간은 너 역시 적가상방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들었다시피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니 말이야.”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곧 서문세가의 초청 때문에 항주로 출발해야 합니다.”
“아, 그게 있었군…….”
초청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절강성에서 서문세가의 영향력은 대단하고, 심지어 강호 문파이기도 했다.
향후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오히려 이런 상황일수록 서문세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적가상방에게 유리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서문세가의 초청을 받아서 가는 겁니다. 강호에서는 초청을 받아서 가는 사람을 습격한다면, 초청한 문파를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청해상방에서 그런 저를 습격한다면, 서문세가의 분노를 살 테니 저를 노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 그렇겠구나.”
강호문파 사이에는 이런 불문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적호경의 얼굴이 그나마 편해졌다.
하지만 사실 이런 불문율이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런 불문율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강호에 무슨 분란이 있겠는가?
풍백은 이걸 알면서도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일 뿐이다. 이번 서문세가행은 절대로 꼭 가야 하니까.
* * *
“얘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적가상방에서 돌아온 조태명과 집무실에서 독대하게 된 모심천이 물었다.
“나쁘게 끝날 일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지.”
“하긴, 적가상방 입장에서는 청해상방의 수작을 막아 주고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문제가 없었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지. 그보다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지?”
“물품을 최대한 비축하고, 납품을 받는 점포에는 사정을 설명하면서 저희 사정을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될까?”
“청해상방이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것이라면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럴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모심천의 무심한 말에 조태명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 생각도 그런가?”
“당연한 결론입니다.”
“왜 당연한 결론인가?”
“청해상방이 상산현에 진출하려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굳이 적가상방을 노릴 이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우리 금호상방이나 백건상방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지요. 적가상방은 실질적으로 상산현에 점포조차 몇 개 없으니까요.”
그 말에 조태명의 미소가 짙어졌다. 모심천의 말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대답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모심천은 말을 이었다.
“저는 오히려 적가상방을 위해 관부의 움직임을 멈춰 준 방주님이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굳이 적가상방을 도와줄 이유가 있었는가 싶어서 말입니다.”
“이유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 아이에 대한 내 판단이 맞는지 궁금했을 뿐이었지.”
“적풍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네. 재미있는 건 오늘 내 얘기를 들으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더군. 자네라면 어떻겠나? 거대 상방이 관부를 움직이며 자신의 가문을 찍어 내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말일세.”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겠지요.”
“그렇지? 그런데 그 아이는 흔들림이 없었어. 보통 그런 사람은 바보이거나…….”
“어떤 대책이나 믿는 구석이 있을 때겠지요.”
조태명은 풍백을 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곁눈질로 그의 안색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풍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던 조태명이었지만, 오늘 직접 만나 보니 자신의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걸 알았다.
아마 풍백이 적가상방의 소방주가 아니었다면, 억만금을 써서라도 자신의 밑에 두려고 했을 것이다.
“청해상방과 적가상방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이 싸움에서 적가상방이 승리한다면…… 오늘 내가 적가상방에 안긴 빚은 우리 금호상방이 살아날 길이 되겠지.”
“적가상방이 이길 수 있습니까? 제가 봤을 때는 규모 차이가 너무 심해서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거야 모를 일이지. 자네가 청해상방이라면 적가상방을 찍어 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겠나?”
그 말에 모심천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만약 적가상방을 찍어 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다면…… 당연히 백건상방을 이용해서 대신 싸우게 만들겠지요. 어차피 상산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봤다면 백건상방과 적가상방 사이의 알력을 모를 리 없을 테니까요.”
그 말을 들은 조태명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했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